[기자수첩]월세시대 선언만 하면 준비 끝?
정부가 사실상 월세시대를 공식화했다. 정부는 지난달 말 임대시장의 중심의 전세에서 월세로 옮겨감에 따라 전세 지원을 줄이는 대신 월세 지원은 늘리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월세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해 월세액의 10%를 소득세에서 직접 빼주고, 대상도 총급여 5000만원에서 7000만원 이하 근로자로 확대키로 했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될 때 세입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이를 덜어주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방안은 전세는 언젠가 사라질 제도이고, 다가오는 월세시대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얼핏 선제적으로 대응한 훌륭한 대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전세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상황에서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월세시대를 선언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복지 등의 사회 안전망은 여전히 후진적인 상황에서 월세만 낸다고 '주택임대차 선진화'가 이뤄질 지도 의문이다. 복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회에서의 월세시대는 서민들은 평생 아프지도 말고 일만 해서 매달 집세만 내라는 것과 다름없다. 근로자의 상당수가 월세 세액공제 자체를 받지 못한다는 점도 세입자의 늘어나는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이번 제도와 배치된다. 물론, 돈은 있어도 비용·세금 처리 등의 문제로 일부러 고가 월세에 사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세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상 월세는 전세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확률이 높다. 불과 며칠 전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층은 월세 세액공제라는 선진화 방안의 수혜를 전혀 받을 수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전세라는 제도가 앞으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다만 전세보증금이 현재로써는 서민들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성급한 월세 전환은 서민들의 숨통을 조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제는 월세"라고 선언한다고 어느 날 갑자기 월세시대가 도래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안전망 확충, 수요자들의 인식 변화 등이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전세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월세가 차지하는 날이 올 수 있도록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