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촛불', 민주주의 '불씨' 살렸다
지난 5일 서울ㆍ대전ㆍ대구ㆍ광주 등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 촛불집회가 있었다. 이날 오후 4시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발언과 각계 시국연설 등으로 시작한 서울 집회의 경우 주최측 추산 예상 인원인 2~5만명을 4배 이상 훌쩍 뛰어넘은 20만명의 시민들이 집결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으며, 대전ㆍ대구ㆍ광주 등에서도 수천명에서 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는 지난 주 대비 10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주최 측도 놀란 눈치다. '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나고 있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최 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검찰 수사를 통해 하나씩 사실로 드러나면서, 그리고 박 대통령의 이번 파문 관련 대국민담화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이다. 이날 집회에서는 교복 차림의 10대 청소년들과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집회 참석 이유를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았다. 10대 청소년들은 시간이 흘러 자신들의 자식ㆍ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과 부모가 되고 싶다고 밝혔으며,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아이가 자라서 당시 뭘 했는지 물어봤을 때 '함께 이 자리에 있었다'며 설명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 2016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온 국민은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학생ㆍ시민들을 위해 가슴으로 울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무능력ㆍ무책임한 대응에 분노했고,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만연한 '반칙'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동시에 그동안 '반칙'에 대해 너그러웠던 우리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다시는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 후 2년 동안 우리는 또 다시 일상으로, 제자리로 돌아왔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일상에서 조금 떨어진, 어쩌면 멀게만 느껴지는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져만 갔다. 지난 4월 총선의 선거 참여만 봐도 예상치에서 크게 못 미치며, 정치인들로 하여금 '안심'하게 했다. 13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는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예비되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집회에서 앞장서 '촛불'을 든 10대 청소년들, 아이와 함께 한 부모들은 격변의 시기에 벽 뒤에서 숨어 있는 우리를 다시 한 번 끌어주며 우리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불씨'를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생각이다. 감사하고,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