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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범 입시 토크] '학생부 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대학은 '숫자'가 증명하는 '역량'을 먼저 읽는다

전국의 고등학교 교실은 지금 '기록'이라는 거대한 신기루를 쫓고 있다. 수행평가 철이 되면 학생들은 밤을 새워 탐구 보고서를 급조하고, 교사들은 학생의 개성을 500자라는 제한된 틀에 우겨 넣기 위해 작문 전쟁을 벌인다. 학교생활기록부가 내신의 불리함을 단숨에 뒤집을 마법의 열쇠라는 믿음, 이른바 '생기부 만능론'이 공교육 현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 기록이 과연 대학 문턱을 넘게 해줄 실질적인 무기일까. 입시 데이터와 대학의 평가 메커니즘을 냉정하게 분석해 보면 결론은 자명하다. 기록은 '숫자'라는 보증수표가 있을 때만 가치를 지닌다. 대학 평가 프로세스는 수험생의 기대보다 훨씬 더 냉혹하고 효율적이다. 수도권 주요 대학의 경우 입학사정관 한 명이 검토해야 할 서류는 연간 수천 건에 달한다. 고려대학교 등 주요 대학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 서류 평가 기간 중 사정관 1인이 학생 1명의 생기부를 검토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 10분 내외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사정관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정독하며 숨겨진 진주를 찾지 않는다. 핗자가 분석한 합격사례를 교차 분석한 결과, 대학은 우선 '학업 성취도'라는 정량적 지표로 평가 대상을 1차 선별한다. 즉, 성적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 학생의 화려한 기록은 사정관의 눈에 닿기도 전에 이미 평가 순위에서 밀려난다는 뜻이다. 특히 현재 고1 부터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에 따른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내신이 5등급제로 완화되며 1등급이 10%까지 확대되자, 등급 변별력이 약해져 생기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는 대학의 생리를 간과한 해석이다. 1등급이 흔해질수록 대학은 역설적으로 그 숫자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원점수와 등수가 전교 최상위권인 학생의 세특은 '탁월한 탐구력'으로 읽히지만, 등수가 밀린 학생의 화려한 세특은 '화려한 포장지' 혹은 '신뢰할 수 없는 과장'으로 치부된다. 즉, 5등급제 체제에서 생기부는 낮은 성적을 가려주는 가면이 아니라, 우수한 성적을 증명하는 검증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입시 데이터는 성적대별로 투입해야 할 에너지의 비중이 완전히 달라야 함을 시사한다. 내신 1~2등급대의 상위권 학생들에게 생기부는 동점자 사이에서 우위를 점하는 결정적 한 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3등급 이하의 중하위권 학생들이 부족한 점수를 메우기 위해 기록 관리에 몰두하는 것은 전략적 패착이다. 교육 당국의 통계는 낮은 성적을 기록으로 뒤집는 역전극이 극히 이례적인 사례임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 시간을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데 투자해 성적 자체를 올리는 것이 합격 확률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성적이 낮은 상태에서 작성된 고난도 탐구 보고서는 입학사정관에게 학생의 역량이 아닌 '교사의 미사여구' 혹은 '대필'로 비칠 뿐이다. 결국 대입의 본질은 '학업 역량'으로 수렴된다. 생기부는 그 역량을 증명하는 보조 자료이지, 실력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가면이 아니다. "제발 시간 낭비하지 마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는 입시의 주객을 혼동하지 말라는 뼈아픈 충고다. 대학은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아니라, 이미 공부를 잘하고 있음을 숫자로 증명한 학생을 뽑고 싶어 한다. 성적이 곧 생기부의 '독자'를 결정한다는 냉정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기록을 위한 작문 기술이 아니라, 교과서의 원리를 파고드는 치열한 공부다. 기초가 부실한 기록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다. 숫자가 증명하지 못하는 역량은 결코 대학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지상범 JBS진로진학연구소장

2026-02-04 10:38:21 신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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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붕괴’된 디지털 미술의 미래

한때 'NFT'(대체불가능토큰)는 디지털 시대 예술의 등기부등본이라 불렸다. 무한 복제가 가능한 가상 환경에서 '유일성'을 부여한다는 논리는 매혹적이었고, 2021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마이크 윙켈만(Beeple)의 작품이 약 7,000만 달러에 낙찰되자 세상은 이를 '디지털 르네상스'의 서막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NFT로 생성한 후 원작을 소각하는 식의 극단적인 광풍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이지만 NFT 미술작품이 자생적 미학 가치를 획득하기 어렵다는 결론은 예상보다 일찍 나타났으며, 디지털 미술의 미래라고 불리던 NFT 시장은 불과 몇 년 만에 거래량이 90% 이상 급감하며 붕괴했다. 실제로 2026년 현재, 디지털 파일이 물리적 회화를 대체하고 NFT를 통한 미술사적 맥락의 전환을 촉발할 것이라는 낙관론은 완전히 빗나갔다. 공격적으로 NFT 영역에 진입했던 바이비트(Bybit) 등의 대형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수익성 악화로 관련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대폭 축소했다. NFT의 대중화를 견인했던 전문 마켓플레이스 니프티 게이트웨이(Nifty Gateway) 또한 운영 구조의 한계를 드러내며 시장 영향력을 상실했다. NFT가 내세운 핵심 기치는 '원본의 증명'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블록체인에 기록되는 것은 미술작품 자체가 아닌 특정 서버의 경로를 가리키는 '토큰'에 불과하다. 즉, NFT는 태생적으로 블록체인 상의 토큰화된 메타데이터이며, 디지털 이미지 소유권만 제공할 뿐 작품 자체의 내용이나 미학적 완성도를 보장하지 않는다. 사실 NFT에 대한 열광은 자본주의 욕망의 크기와 비례했다. 작가도 수집가도 그랬다. 그러다보니 감상의 대상이어야 할 작품은 금세 '플리핑'(단기 전매 차익)의 수단으로 전락했으며, 커뮤니티의 결속력과 유명 인사의 언급 한 줄이 작품의 질보다 우선시되었다. 냉정히 말하면 그것은 예술 시장이라기보다 정교하게 설계된 '디지털 카지노'에 가까웠다. 예술사의 거대한 전환은 언제나 기술이 아닌 인식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르네상스는 원근법이라는 도구에 앞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옹립시켰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모더니즘은 재현의 굴레에서 벗어나 예술의 자율성을 선언했기에 혁명적이었으며, 1960년대 개념미술 또한 물질적 결과물보다 사고의 구조를 예술로 정의하며 기존 가치 체계를 뒤흔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된다. 반면 NFT는 소유의 기록 방식만 바꾸었을 뿐, 예술의 정의를 확장하거나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여는 데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아니, 처음부터 예술이 NFT를 통해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NFT라는 기술로 돈을 벌기 위해 예술이 '소모성 콘텐츠'로 이용되는 양상을 보였기에 그럴 가능성조차 없었다는 게 맞다. 물론 코드 기반의 생성 예술(Generative Art)처럼 블록체인 고유의 특성을 활용한 시도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거대한 투기 광풍 속에서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여기에 원저작권자의 동의 없는 무단 민팅(minting), 가격 부풀리기를 위한 자전거래, 그리고 불투명한 내부자 거래 등은 기술이 약속했던 '신뢰의 네트워크'를 스스로 파괴했다. 그러자 기술이 예술적 성취를 자동으로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도 와해됐다. 기술만으론 미학을 대신할 수 없다. 예술의 생명력은 기술적 증명이 아니라 미학적 밀도와 시대적 통찰, 그리고 비평적 논의에서 나온다. 제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이 본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2026-02-03 10:01:13 한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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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동현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 여의도 삼킨 팬덤 "새로운 문화인가, 정치의 붕괴인가"

정치권은 바야흐로 '팬덤'의 시대다. 과거 노사모가 정치인 팬덤의 서막을 알렸다면, 지금 여의도를 지배하는 팬덤은 그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민주당의 개딸(개혁의 딸)로 대변되는 강성 지지층의 등장을 보며 "전체주의적 행태"라 비판하던 보수 정당 역시, 이제는 팬덤 현상 한가운데 서 있다. 이러한 팬덤이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다. 대상만 다를 뿐, 방식은 놀랍도록 유사하다. 특정 인물을 절대 선(善)으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악으로 간주하며 집단행동에 나선다. 여야를 막론하고 특정 인물을 아이돌처럼 소비하고, 그를 맹목적으로 호위하는 이 현상. 우리는 이것을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정치 문화인가, 아니면 민주주의가 중우(衆愚)정치로 퇴행하는 징후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팬덤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은 정당의 무력화다. 과거 정치는 정당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정책과 노선으로 경쟁했다. 그러나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능동적인 대중이 등장한 지금, 정당의 시스템은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제는 정당을 거치지 않고 유력 정치인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 내 손으로 정치인을 키우고 지킨다는 정치적 효능감은 투표장에만 머물던 유권자를 광장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끌어냈다. 이것은 분명 민주주의의 외연을 넓힌 참여의 에너지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향하는 방향이다. 팬덤 정치의 핵심 동력은 배타적 분노다. "우리 정치인을 지켜야 한다"라는 비장함은 내부의 건전한 비판조차 배신으로 낙인찍는다. 예를 들면, 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당내 비판 세력을 '수박'이라 부르며 좌표를 찍었던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이 국민의힘에서도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 지금의 팬덤 정치는 정치인을 공적 대리인이 아닌, 욕망이 투영된 아바타이자 아이돌로 변질시키고 있다. 정당의 생명은 다양성과 자정 능력에 있다. 그러나 팬덤의 화력이 당의 시스템을 압도하는 순간, 정치인들은 당론이나 양심보다 당원 게시판의 여론을 먼저 살피게 될 것이다. 극단적 목소리만 과대 대표되는 반지성주의가 당을 잠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팬덤 정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팬덤 현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상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새로운 문화라고 긍정하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당은 팬덤의 함성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팬덤 뒤에 숨는 비겁함을 버려야 한다. 지지자들의 환호가 달콤할지라도, 그들이 배타적인 공격성을 보일 때는 단호하게 자제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남을 공격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정치인의 자격이다. 지지자들 또한 변해야 한다. 진정한 지지는 맹목적인 숭배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정치인이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지, 품격을 잃지 않는지 감시하는 눈을 가질 때 팬덤은 비로소 건강한 정치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다. 여의도를 집어삼킨 팬덤 정치.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흉기가 될지, 정치를 혁신하는 도구가 될지는 오직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다. 맹신하는 신도가 될 것인가, 깨어있는 시민이 될 것인가.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안동현 전 국민의힘 윤리위원

2026-02-02 11:27:31 박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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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비타민 가득한 겨울 채소 ‘봄동’

한겨울이 되면 식물들은 잎을 거두고 월동에 들어간다. 최대한 움츠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고 봄을 기다린다. 하지만 어떤 식물들은 여전히 푸른 잎으로, 온전히 추위를 견디면서 자라나기도 한다. 이제는 겨울을 대표하는 식재료 중 하나가 된 ‘봄동’이 그렇다. 봄동은 배추의 일종이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배추와는 많이 다르다. 일반적인 배추는 결구(結球)배추라고 하여 속이 꽉 차 있으며, 속이 완전히 차지 않고 위쪽이 벌어져 자라는 종을 반결구배추라 한다. 봄동은 “노지(露地)에서 겨울을 보내어, 속이 들지 못한 배추”를 의미하는데 아예 처음부터 벌어져 자라고 모양은 납작하다. 봄동은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다. 특히 식물성 식재료 중에서도 칼슘이 많이 함유된 편이다. 봄동 100g에는 100mg 정도의 칼슘이 들어있는데 이는 달걀의 2배, 그리고 거의 우유와 비슷한 수준이다. 흔히 칼슘이라 하면 뼈의 성장과 뼈 건강 유지를 위해 먹어야 한다고 알고 있지만 혈액응고, 신경전달, 근육 수축 및 이완 등 생리 기능 조절에 꼭 필요한 미네랄이다. 그럼에도 한국인 70%는 칼슘을 부족하게 섭취하는 만큼, 제철을 맞은 봄동과 같은 식재료에 관심을 기울이면 좋다. 봄동은 항산화 성분의 보고이기도 하다. 비타민 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은 배추에 비해 6배 이상 들어있으며, 비타민 C의 함량 역시 배추와 양배추보다 월등하다. 이 두 성분은 강력한 항산화 성분들로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노화, 암, 심혈관질환의 예방을 위해 꼭 챙겨야 할 영양소들이다. 봄동에 풍부한 캠페롤, 퀘르세틴과 같은 플라보노이드 성분 역시 항산화 성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노화를 늦추며 항염증, 항암 등의 효과를 낸다. 한국에서 비만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만병의 근원인 비만 예방을 위해서라도 봄동처럼 칼로리는 낮으면서도 식이섬유와 항산화 성분 가득한 식재료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더욱이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쉽게 떨어지기 쉬운 체력과 에너지의 회복에도 좋다.

2026-02-02 05:00:1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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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희 변호사의 슬기로운 법 생활] 누수문제 협조 안 하는 윗집에 대처하는 법

우리나라는 공동주택의 비율이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한다. 일상적으로 윗집, 아랫집, 옆집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층간소음, 누수 등은 공동주택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다툼 사례이다. 이러한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 원만하게 협의해 적정한 선에서 합의를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물은 기본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아랫집의 누수 문제는 윗집의 바닥 부분의 누수 하자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윗집에서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일 경우 아랫집에서 윗집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누수 탐지 공사 자체에 대해 협조가 이뤄지면 문제해결은 간단해진다. 아랫집은 누수 탐지업체를 불러 윗집에 의심 가는 부분에 누수 탐지를 실시하고, 공사를 하면 된다. 이때 발생하는 비용은 하자 발생 부분이 윗집의 전유부분이라면 윗집에서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고, 공용부분이라면 관리사무소에서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 윗집에서 원만히 합의해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오면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 아랫집에서 입은 천장 도배 등의 비용 또한 적절히 합의된다면 그대로 사건은 종결된다. 그런데, 누수 탐지 공사 자체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라면 골치가 아프다.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연락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먼저 내용증명을 보내 누수 탐지 공사에 대해 요구해야 한다. 통상 내용증명을 받게 되면 순순히 협조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면 소송에 들어가야 한다. 누수 상황에서 아랫집이 가장 급한 건 돈이 아니다. 바로 적절한 누수 지점을 찾아 수리해 더 이상의 누수 피해를 막는 것이다. 따라서 소송의 형태는 공사 이행이라는 다소 생소한 특정이행청구 방식이 된다. 그리고 이 소송은 신속한 권리구제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처분을 통해 누수 탐지 공사 및 누수 방지 공사의 이행을 구하는 것이 유효적절하다. 가처분은 아랫집이 윗집에 출입해 누수탐지공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으로 신청을 제기한다. 윗집에서 이를 수용하지 않을 시 간접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해 그 의무의 이행을 강제하도록 한다. 간접강제금은 의무 위반 시 또는 위반일마다 10만원 내지 20만원씩 발생하기 때문에, 의무이행을 강제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대부분은 가처분을 제기해 심문기일에 양측이 출석하게 되면, 판사가 양 당사자를 설득해 적절히 분쟁을 해결하도록 권유하기도 한다. 윗집으로서는 가처분 재판을 받게 되면 그 자체로 강한 심리적 압박이 되기 때문에, 대체로 그 시점에는 누수 문제에 대해 협조하게 된다. 그러나 심문기일을 지났음에도 협조하지 않는다면 가처분결정을 통해 윗집에 누수 탐지 공사 등을 실시할 수 있다. 가처분 결정을 받기 위해서는 실내의 누수사실을 증명할 동영상, 사진, 윗집에서 협조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을 밝힐 수 있는 자료 등을 첨부해서 판사를 충분히 설득해야 인용 결정을 받을 수 있다.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분쟁은 법률수단으로 해결하기가 참 쉽지 않다. 그렇기때문에 이러한 분쟁에 있어서는 서로 양보하고 원만히 합의해 법적인 절차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해결이 어려우면 가처분이란 법적 절차를 통해 신속한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다. /법무법인 바른

2026-02-01 11:12:42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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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의 와이 와인]<310>로랑 퐁소, 부르고뉴 대자연과 신기술의 절묘한 조화

<310>佛 부르고뉴 '로랑 퐁소' 인터뷰 "21세기의 신기술을 이용해 대자연이 주는 그대로를 담기로 했다." 언뜻 보면 신기술과 대자연이 대척점에 있는듯 하지만 로랑 퐁소 와인에 있어 신기술은 대자연을 담기 위한 훌륭한 도구다. 보수적인 프랑스 내에서도 지극히 고전적인 부르고뉴 와인인데 우주에서 온 듯한 회색 레이블에, 천연 코르크가 아닌 인공 마개다. 와인병에 내장된 근거리 무선 통신(NFC) 칩은 태그할 때마다 IP가 바뀌면서 복제나 위조가 불가능하게 해놨다. ◆ 대자연에 대한 존경…좋은 와인은 좋은 포도에서 로랑 퐁소(Laurent Ponsot)는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철학은 대자연에 대한 존경과 존중"이라며 "자연이 실행하는 모든 것을 담아 가장 진정성 있고 순수한 와인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좋은 와인은 좋은 포도에서 나온다. 인위적으로 만드는게 아니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와인메이커(Winemaker)가 아닌 양조학자(Oenologist)라고 칭한다. 로랑은 "부르고뉴는 길이 70㎞, 평균 폭 1㎞에 불과한 작은 지역이지만 1200개의 아펠라시옹(appellation·원산지 통제명칭)이 있으며, 와인 생산자는 그보다도 많다"며 "바로 옆에 위치한 포도밭도 특징이 다를만큼 작은 플롯마다 나타나는 사소한 차이라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나쁜 포도로도 좋은 와인을 만들 순 있겠지만 많은 조작과 첨가가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2024년엔 단 한 병의 와인도 만들지 않았다. 비가 많이 왔고, 날씨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자체 포도밭에서 키운 포도조차 모두 외부에 팔아치웠다. 기억하시라. 행여 수십 년 후에라도 어디선가 로랑 퐁소 2024년 빈티지가 보인다면 모두 가짜다. (로랑은 희대의 와인사기꾼으로 꼽히는 루디 커니아완을 잡아내는데 공헌한 이들 중 한 명이다. 로랑 퐁소 와인에 위조품을 방지하는 신기술이 많이 적용된 것도 그래서다.) ◆ 가장 부르고뉴 답게…가장 하이테크적인 사실 로랑은 부르고뉴에서도 역사깊은 가문 도멘 퐁소(Domaine Ponsot)의 일원이다. 36년간 도멘 퐁소를 몸을 담았다가 2017년에 자신의 이름을 건 메종 로랑 퐁소를 설립해 나왔다. 떠날 당시부터 지금까지 "개인적인 이유"라고 밝히고 있지만 와이너리 명을 보면 답은 보인다. 부르고뉴에서 '도멘'은 자신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를, '메종'은 여러 곳에서 포도를 사서 와인을 만드는 상인을 말하는 네고시앙 하우스다. 최근에는 도멘이 고품질 와인의 상징처럼 됐지만 부르고뉴의 정체성은 네고시앙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부르고뉴는 네고시앙의 역사가 굉장히 길고, 이들이 부르고뉴의 명성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이 가장 좋은 원단과 자재를 찾아 자신만의 고급 맞춤 의상을 만드는 오트 쿠틔르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적 기술 역시 오트 쿠튀르 부르고뉴를 구현하기 위한 부자재다. 와인 양조 과정에서는 이산화황이나 인공 효모나 효소를 쓰지 않기 위해, 병입된 이후에는 온도변화나 코르크 문제로 와인이 변질되는 것을 막는다. 특히 와인과 동일시됐던 코르크 마개와 오크통을 신기술로 대체하는 일은 업계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오크통을 대체하는 신기술은 리서치를 진행 중이다. 로랑은 "오크 배럴은 박테리아가 있을 수도 있고 와인 숙성 중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며 "오크 배럴과 비슷한 밀도로 와인이 숨을 쉬고 일정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배럴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 오트 쿠튀르 부르고뉴…로랑 퐁소 컬렉션 이제 오트 쿠튀르 부르고뉴의 로랑 퐁소 컬렉션을 만나볼 차례다. 와인 레이블은 미래적인 회색빛에 나사(NASA)에서 따온 폰트로 되어 있지만 와인 이름은 자연에서 따왔다. 화이트 와인에는 꽃, 레드 와인에는 나무 이름을 붙였다. 별명처럼 말이다. 부르고뉴 세부 생산지가 어려웠던 일반 소비자 입장에선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좋다. 로랑은 "별명같은 꽃과 나무 이름은 와인의 아로마나 맛의 특징이 아니라 지향하는 이미지나 떠오랐던 영감"이라며 "숙성 잠재력이 있는 레드 와인의 경우 깊이 뿌리내려 더 성장라는 의미에서 나무로 붙였다"고 설명했다. '로랑 퐁소 뫼르소 퀴베 뒤 판도레아 2022'는 8명의 재배자가 15개 플롯에서 생산한 포도로 만들었다. 보편적인 뫼르소를 대표하는 '유니버셜 뫼르소'가 지향점이다. 판도레아는 부르고뉴에서 자생하는 흰 덩굴꽃을 말한다. 풍성한 과실향이 나는가 하더니 입에서는 드라이하면서도 녹진하게 좋은 질감이 입 안을 파고든다. 로랑은 화이트는 물론 레드 와인도 새 오크를 쓰지 않는다. '로랑 퐁소 부르고뉴 루즈 퀴베 데 페플리에 2022'는 부르고뉴 피노누아의 정석을 보여준다. 페플리에는 포퓰러 나무를 말한다. 잘 익은 과실부터 허브, 연필심같은 미네랄 향에 부드럽지만 분명 존재감 있는 타닌이 산도와 균형을 이룬다. 기본급이지만 로랑이 추구한 순수함이 이런건가 싶은 와인이다. '로랑 퐁소 클로 드 부조 그랑 크뤼 퀴베 뒤 세드르 2019'는 잘 익은 검은 체리와 꽃향, 감초까지 좋은 향수를 맡는 듯하다. 그랑 크뤼의 구조감을 가지면서도 과실은 우아하고, 산도는 생동감이 있다. 세드르는 삼나무를 뜻한다.

2026-01-29 17:05:25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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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의 시선]인간 노조 vs 로봇 노조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 현대차 노조가 회사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투입 방침에 반대하며 최근 내놓은 입장이다. 이에 앞서 현대차측은 오는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공장의 부품 작업 공정에 아틀라스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CES에서 첫 선을 보인 아틀라스는 56개의 자유도(DoF)를 갖춰 관절이 360도 회전하고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다. 최대 50㎏의 무게를 들어 2.3m의 높이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업계에선 아틀라스의 대당 가격을 약 13만~14만 달러로 추정한다. 우리돈 2억원 정도면 1대를 살 수 있다.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연봉이 약 8만 달러이고 이를 2교대로 돌린다고 하면 아틀라스 1대로 2년이면 본전을 뽑는다. 게다가 아틀라스의 생산량이 연간 1만대를 넘어서면 가격은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 아래로 떨어진다는 예측도 나온다. 10만 달러인 아틀라스를 5년간 하루 24시간 가동한다고 가정하면 시간당 운용비용은 3.4달러 정도로, 사람 인건비의 약 10% 수준이다. 사람이 2교대하는 대신 로봇을 투입하면 생산성이 최대 60%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가성비를 따질 수 밖에 없는 기업으로선 로봇을 도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로봇은 파업, 태업 등 쟁의도 없어 경영자 입장에선 금상첨화다. 사람을 구하기 쉽지 않은 중소기업은 자동화가 더욱 절실하다. 로봇은 인력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방에 있는 기업은 더욱 그렇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걱정하는 현대차 노조의 모습에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벌어진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 투영된다. 당시 노동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위해 섬유 제조에 쓰이던 기계를 파괴했다. 19세기의 러다이트 운동이 21세기 들어 인간과 인간을 닮아가는 로봇의 줄다리기로 바뀌고 있는 모양새다. 로봇을 '기술'이 아니라 인간을 구조조정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러다이트 운동에 대한 시각은 양분된다. 한쪽에선 기술 전환을 위한 비용을 놓고 벌어진 최초의 사회적 저항으로 평가한다. 당시 사회에 노동시간 규제, 노사 협의 제도 같은 인간적인 제도를 만드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시대에 맞는 옳은 질문을 던지면서다. 하지만 러다이트 운동을 혹평하는 쪽은 사람들이 기술을 거부하면서도 대안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산업화는 진행됐고 인간은 기계에 밀려 다른 일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지금 인간이 만든 노조는 러다이트 운동을 반면교사로 삼아야한다. 전동화와 자동화는 거스를 수 없는 추세다. 이런 현실에서 기업은 경쟁력을 잃으면 문닫을 수 밖에 없다. 로봇과 제대로 싸워보기전에 사람이 먼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노조가 공존과 공생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야하는 이유다. 좀더 상상의 나래를 펴보면 인간 노조가 자칫 로봇들이 만든 '신금속노조'와 싸울 날도 머지 않은 듯 하다.

2026-01-29 10:45:42 김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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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범 입시토크] '노력의 배신'을 끝내는 법: 고교 성적을 결정짓는 5가지 필승 알고리즘

매년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를 치른 신입생과 학부모들은 거대한 장벽 앞에 선다. 중학교 시절 상위권을 유지하며 밤잠을 설친 '성실한' 아이들이 4~5등급이라는 낯선 성적표를 받아들기 때문이다. 이른바 '노력의 배신'이다. 고등학교 학습은 방대한 범위와 심화된 사고력을 요구하기에, 기존의 단순 반복형 학습법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최신 교육 심리학 논문과 뇌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고교 3년의 승기를 잡을 5가지 전략적 설계를 제안한다. 1. '유창성의 착각'을 깨는 '화이트보드 티칭' 가장 위험한 함정은 화려한 1타 강사의 강의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를 '유창성의 착각(Illusion of Fluency)'이라 부른다. 뇌가 정보를 받아들이는 '입력'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고 믿는 오류다. 해결책은 강력한 '인출 연습(ActiveRecall)'이다. 공부가 끝난 후 빈 종이에 개념을 정리하거나, 작은 화이트보드 앞에서 가상의 학생에게 설명하듯 말해보는 '티칭 복습'을 실천해야 한다. 2. '취약점 지도(Vulnerability Mapping)'와 데이터 기반 배분 모든 과목을 균등하게 공부하는 것은 전략적 실패다. 자신의 약점을 데이터로 직면하는 '취약점 지도'를 작성해야 한다. 오답의 원인을 단순히 '계산 실수'로 치부하지 말고, '조건 누락', '개념 혼동' 등으로 정교하게 분류해 자신의 인지적 편향을 찾아내야 한다. 수학·영어 같은 계통성 과목은 평소 가용 시간의 70%를 투입하되, 사회·과학 탐구는 단원 간의 논리적 구조화를 통해 시험 기간의 부하를 줄이는 영리한 시간 배분이 필수적다. 3. 수면은 기억의 저장소이며, 체력은 집중력의 총량이다 성적 향상을 위해 잠을 줄이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다. 수면은 낮에 배운 정보를 대뇌피질로 옮겨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기억의 공고화(Consolidation)'과정이다. 또한, 장기전인 입시에서 체력은 곧 집중력의 총량이다. 뇌의 산소 공급을 돕는 유산소 운동과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는 식단 관리는 '신체 지능(PQ)'을 높여 엉덩이 힘이 아닌 뇌의 효율로 공부하게 만든다. 집중력은 의지가 아니라 최적화된 신체 상태에서 나온다. 4. 수행평가, 만점을 넘어 '입시 자산'으로 전환하라 고교학점제 아래에서 수행평가는 단순한 숙제가 아니라 학생부 종합전형의 핵심인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의 원천이다. 평가 기준을 철저히 분석해 최소 시간으로 만점을 받되, 자신의 진로와 연결된 '후속 탐구'를 덧붙여야 한다. 수행평가에서 느낀 지적 호기심을 보고서나 발표로 확장하는 과정은 기록자인 교사에게 학생의 학업 역량과 전공 적합성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전략적 수행평가 관리는 내신 점수와 입시 경쟁력을 동시에 잡는 카드다. 5. 부모의 역할: '감독관'에서 '러닝 파트너'로 고등학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회복 탄력성(Grit)이다. 성적이 정체되는 '플래토(Plateau) 구간'에서 아이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부모는 결과보다 '전략의 수정'과 '루틴의 유지'에 집중하는 마인드셋을 가져야 한다. "공부했니?"라는 다그침 대신 "오늘 계획 중 어떤 고비를 넘겼을 때 가장 성취감이 컸니?"라는 질문으로 아이의 자기 효능감을 자극해야 한다. 부모의 지지는 아이가 입시라는 긴 터널을 완주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지상범 JBS진로진학연구소장

2026-01-28 15:57:50 신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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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팽의 일본 이야기] 자판기와 키오스크

일본은 자판기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거리 곳곳에 놓인 자판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반 주택가 골목은 물론이고 시골 마을의 버스 정류장, 심지어는 산속의 등산로에서도 자판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일본의 자판기는 단순한 판매 기계를 넘어 하나의 사회 인프라로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지역에서 자판기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재난 상황에서 물과 음료를 즉각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에 사회 인프라로 불러도 충분한 것이다. 일본에서 자판기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의 부족에 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인력이 부족했으며,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는 인건비가 꾸준히 상승해서 자판기는 사람의 빈자리를 메꾸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등장한 'Hot & Cold' 기술로 인해 한 대의 기계에서 따뜻한 음료와 차가운 음료가 동시에 판매할 수 있게 되며 자판기를 사계절 필수품으로 만들었다. 자판기는 편의점이 성행하기 전부터 24시간 계절에 따라 차갑거나 따뜻한 음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자판기의 판매 품목도 음료에 이어 다양한 제품으로 확대되었고 심지어 술과 담배를 판매하는 자판기로까지 진화했다. 일본에서도 술과 담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성인 인증이 필요한데, 이는 운전면허증을 통한 인증 시스템 도입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과 같이 주민등록증이 보급되지 않은 일본에서는 의료보험증과 운전면허증이 신분증으로 활동되고 있는데 운전면허증은 성인만이 취득할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확실한 대안이 되었다. 한국에도 자판기가 1970년대부터 도입되었고 1990년대에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을 판매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편의점의 등장으로 인해 자판기가 밀려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지하철역이나 공장, 병원 등의 일부 공간에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즉 일본에서는 여전히 자판기가 사회 인프라로 골목 어디서든 접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자판기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일본의 식당에 설치된 자판기의 한 종류인 식권 발매기 역시 노동력을 대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점원이 직접 주문받고 계산해서 잔돈을 거슬러 주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본의 많은 식당이 자판기를 설치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자판기 때문에 고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예전에 설치한 자판기는 현금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도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구형 자판기를 고집하다 보니 해외에서 온 여행자뿐만 아니라 국내 고객도 불편을 호소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식당에서는 오히려 자판기가 사라지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키오스크가 도입되면서 순식간에 수많은 식당에 설치되었다. 키오스크 역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지만 도입 배경이 단순한 인건비 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코로나19 펜데믹을 기점으로 비대면 주문이 요구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가속화된 것이다. 한국의 키오스크는 신용카드를 비롯하여 다양한 결제 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결제 효율성이 높다. 하지만 고령층과 디지털 취약계층에는 오히려 장벽이 되어 효율성을 얻는 대신 잃은 것도 있다. 편리성과 경제성을 먼저 달성한 자판기의 변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일본의 모습이라면, 외부 변화를 순식간에 받아들여 빠르게 확산한 키오스크는 한국의 모습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2026-01-27 09:38:28 한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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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윤열의 푸드톡톡] 2026년 새해 결심을 망치게 하는 장내 미생물

[연윤열의 푸드톡톡] 2026년 새해 결심을 망치게 하는 장내 미생물 2026년 1월 새해 결심의 80%가 이미 무너지기 시작하는 이 시점에서 내 몸 안에 장내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들이 나에게 직접 항의를 한다면 아마 "올해에도 또 새해 결심이 다이어트야? 작년에도 1월에만 하고 포기했잖아"라고 이렇게 투덜댈 것 같다. 내가 섭취한 음식을 단순히 칼로리(열량) 측면에서 계산하던 시대를 지나서 대사체(metabolomics)와 유전자 그리고 AI까지 끌어들여 '정밀영양(precision nutrition)'수준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한 끼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유전체, 대사 프로필, 장내 생태계를 실시간으로 바꾸는 '개인화된 메디푸드'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이제는 단순히 "맛 있으면 됐지"라는 개념으로는 충분치 못한 시대이기도 하다. 식품영양학이 대사체학과 연결되어 정밀영양으로 직진하면서, 우리의 한 끼가 개인의 유전자, 대사 프로필, 장의 건강까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를 방증하기라도 하듯이 최근 국내 바이오식품기업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전 생애주기에 걸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구조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건강한 한국인 정상인 코호트를 기반으로 연령별로 장내 미생물의 구성, 핵심적인 균주, 기능적 특성 및 생태 구조 변화를 종합적으로 규명하였다. 예를 들어, 똑같은 아보카도 한 개를 먹어도 김씨는 혈당 스파이크가 거의 없고, H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살짝 올라가 김씨의 장내 미생물 군집이 "좋은 지방 섭취에 감사합니다~" 라고 반응하는 반면, 박씨에게는 인슐린 저항성 때문에 포도당 대사체가 요동치고 염증 마커가 슬금슬금 상승해서 "또 지방 덩어리를 먹고 있잖아~" 라며 불만을 표시할 것이다. 똑같은 김치찌개 한 그릇을 먹어도 인슐린 민감성 높은 김씨의 혈당은 안정적이어서 장벽에 염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다음 날 아침에도 에너지가 폭발하고 컨디션 역시 최고조에 달한다. 반면 FTO 유전자 변이가 있는 박씨는 혈당 스파이크로 인해 지방이 축적되고 피로감이 급상승하여 "왜 이렇게 피곤하지? 김치찌개가 문제인가?"라고 반문하게 된다. FTO 유전자는 비만과 가장 관련이 깊은 유전자 중 하나로, 이 유전자에 FTO 유전자 변이가 있는 사람은 운동을 해도 체중 감량 효과가 적고, 운동 부족 시 고혈압 등 질병 위험이 높아진다. 특정 변이가 발생하면 식욕 조절도 어려워지고 지방 축적이 쉬워져 비만 위험이 높아진다. 이 차이가 바로 개인의 대사체 지문(metabolic fingerprint)의 차이다. 대사체와 관련된 최근 연구들을 보면, 동일하게 식사한 후에 혈중 대사체 300~500개 중 30~40%가 사람마다 다르게 변한다는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즉, 같은 김밥 한 줄이 누군가에겐 에너지 충전, 누군가에겐 염증 충전이 되는 셈이다. 결국 정밀영양의 핵심은 '맞춤'이 아니라 '균형 잡힌 쾌락'으로 귀결된다. 데이터는 도와줄 수는 있지만, 마지막 한 입은 여전히 내 혀와 마음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2026년의 진짜 개인맞춤영양이다. 모두 동일한 방법으로 건강해지는 게 아니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최적화 해야한다. 하버드 정밀영양 심포지움에서 동일하게 식사한 후에 혈중 대사체 500개 중 40%가 사람마다 완전히 다르게 변한다고 발표하였다. 지중해식 식단을 먹어도 유전자형에 따라 LDL 콜레스테롤 반응이 2배나 차이가 난다. 누군가에겐 심장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냥 맛있는 저녁식사'가 될 뿐이다. AI가 "평생 브로콜리만 먹어라"고 한다면 실천이 불가능할 것이다. 결국 데이터는 가이드일 뿐 건강한 개인맞춤 식단은 '균형 잡힌 쾌락'을 선택하거나 "자발적 불편함"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초콜릿 좋아 한다면 다크 초콜릿과 아몬드를 조화롭게 섭취함으로서 폴리페놀 섭취를 늘리고 유익한 장내 미생물이 조성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균형 잡힌 3가지 쾌락 식단'을 추천한다. 첫째, 염증 제어 혈당 안정형 식단으로 구운 연어(오메가3), 퀴노아(식이섬유), 아스파라거스, 올리브오일이다. 둘째, 항 스트레스 에너지 부스트형 식단이다. 템페(콩을 쪄서 발효시킨 인도네시아 전통식품), 현미밥, 김치, 아보카도 등이다. 셋째, 항 산화 다이어트형 식단이다. 닭가슴살, 브로콜리, 귀리, 중쇄지방산 MCT 커피, 김치(옵션)이다. /연윤열 식품기술사·푸드테크 칼럼니스트

2026-01-26 15:43:47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