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자판기의 천국이라 불릴 만큼 거리 곳곳에 놓인 자판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반 주택가 골목은 물론이고 시골 마을의 버스 정류장, 심지어는 산속의 등산로에서도 자판기를 이용할 수 있다. 일본의 자판기는 단순한 판매 기계를 넘어 하나의 사회 인프라로 자리를 잡았다. 실제로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지역에서 자판기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재난 상황에서 물과 음료를 즉각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에 사회 인프라로 불러도 충분한 것이다.
일본에서 자판기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의 부족에 있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인력이 부족했으며, 일본의 고도 성장기에는 인건비가 꾸준히 상승해서 자판기는 사람의 빈자리를 메꾸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등장한 'Hot & Cold' 기술로 인해 한 대의 기계에서 따뜻한 음료와 차가운 음료가 동시에 판매할 수 있게 되며 자판기를 사계절 필수품으로 만들었다. 자판기는 편의점이 성행하기 전부터 24시간 계절에 따라 차갑거나 따뜻한 음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자판기의 판매 품목도 음료에 이어 다양한 제품으로 확대되었고 심지어 술과 담배를 판매하는 자판기로까지 진화했다. 일본에서도 술과 담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성인 인증이 필요한데, 이는 운전면허증을 통한 인증 시스템 도입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한국과 같이 주민등록증이 보급되지 않은 일본에서는 의료보험증과 운전면허증이 신분증으로 활동되고 있는데 운전면허증은 성인만이 취득할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확실한 대안이 되었다.
한국에도 자판기가 1970년대부터 도입되었고 1990년대에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종류의 제품들을 판매하며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편의점의 등장으로 인해 자판기가 밀려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지하철역이나 공장, 병원 등의 일부 공간에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즉 일본에서는 여전히 자판기가 사회 인프라로 골목 어디서든 접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자판기가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일본의 식당에 설치된 자판기의 한 종류인 식권 발매기 역시 노동력을 대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점원이 직접 주문받고 계산해서 잔돈을 거슬러 주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일본의 많은 식당이 자판기를 설치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 자판기 때문에 고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예전에 설치한 자판기는 현금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도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고 구형 자판기를 고집하다 보니 해외에서 온 여행자뿐만 아니라 국내 고객도 불편을 호소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식당에서는 오히려 자판기가 사라지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키오스크가 도입되면서 순식간에 수많은 식당에 설치되었다. 키오스크 역시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지만 도입 배경이 단순한 인건비 절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코로나19 펜데믹을 기점으로 비대면 주문이 요구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가속화된 것이다. 한국의 키오스크는 신용카드를 비롯하여 다양한 결제 수단을 이용할 수 있으므로 결제 효율성이 높다. 하지만 고령층과 디지털 취약계층에는 오히려 장벽이 되어 효율성을 얻는 대신 잃은 것도 있다.
편리성과 경제성을 먼저 달성한 자판기의 변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이 일본의 모습이라면, 외부 변화를 순식간에 받아들여 빠르게 확산한 키오스크는 한국의 모습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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