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거수기가 된 공직자'출신'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질적 평등은 없다. 사회적 대우는 개인의 능력에 따른다. 법만이 평등의 최후 보루다. 누구나 그 앞에서만은 평등하길 바란다. 그래서 국민은 법대로 나라를 꾸릴 사람에게 칼자루를 쥐어준다. 권력의 위임이다. 권력을 받아 든 이들은 장·차관, 판·검사, 국세청장, 공정거래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공권력을 행사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국민이 만들어 준 자리에서 공직자는 명예와 권력을 얻는다. 그리고 몇 년 후, 명예과 권력을 움켜쥔 이들이 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 대신경제연구소가 올해 주주총회 안건을 공고한 주요 상장사 126사를 분석한 결과, 사외이사 신규선임 86건 중 공직과 법조계 경력을 보유한 비중이 33.7%에 달했다.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은 기아자동차의 사외이사 후보에 올랐다. 이병국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은 현대차,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두산중공업의 사외이사를 맡을 예정이다.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발표한 '대규모 기업집단의 사외이사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 사외이사 직업군 중 공직 출신은 193명(24.42%), 법조인 116명(14.76%)이다. 공직 및 법조 출신이 전체 사외이사의 약 40%를 차지한다. 이들은 과연 기업을 감시하고 있는가. 지난해 대기업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안건에 대한 찬성률은 무려 99.7%에 달한다. 관료도, 법조인도 기업의 안건에 찬성 일색이다. 사외이사들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4900만원이다. 회의 한 번 참석으로 수백만원을 받는다. '공'권력을 주무르던 이들은 '돈'권력자가 된다. '사외이사의 자격요건을 강화하라',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절차를 개선하라' 아무도 새겨 듣지 않는 뻔한 충고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