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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투사'를 원한 민주당 전당대회

4선 중진 정청래(서울 마포구을) 더불민주당 의원이 당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신임 당 대표에 선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마음이 상대 후보였던 박찬대 의원에게 있다고 알려졌고, 이를 추측케 하는 정치 행보들도 있었으나 '강력한 개혁 당 대표'를 표방한 정 의원이 당권을 잡았다. 두 후보 모두 친명(친이재명)계라는 점에서 발표하는 입장들은 비슷했다. 정 의원은 이재명 대표 1기 지도부의 수석 최고위원이자 윤석열 정부에서 국회 법안 통과의 최종 관문인 법제사법위원장을 지냈다. 박 의원은 이재명 2기 지도부에서 원내대표를 지냈다. 정 의원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당원과의 소통에 집중하는 친(親)당원 행보를 보인 반면, 박 의원은 기자회견 등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회의원과 함께 서서 지지를 호소했다. 국회에만 있으면 당심은 박 의원에게 있는 것으로 이해했겠으나,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결과는 반대였다. 박 의원은 전당대회 초반부터 대통령의 마음이 자신을 향한다고 말하며, 의원들을 대동한 선거운동을 펼친 것이 패착으로 작용한 듯하다. 당원과 동고동락한 세월이 긴 정 의원이 당에서 핍박받는 듯한 모습이 됐고, 선거운동 막판 수해복구에 전념한 행보를 당원들이 높이 평가한 듯 하다. 그간 정 의원이 쌓아온 '투사'의 이미지도 당선에 도움이 됐다. 정 의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국회 법사위원장을 맡아 회의 운영에 항의하는 국민의힘 법사위원에 대해 국회법 조문을 읽으며 퇴장 조치를 내리는 등 강경한 모습을 보여왔다. 박 의원은 여야 협상을 총괄하고 당내 갈등을 조정하는 원내대표직을 맡아 '투사'의 이미지보단 '중재자'의 이미지가 가까웠다. 구속 수감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당한 법 집행에 완강히 저항하고,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극우화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당원들은 강력하게 '반지성', '기득권 카르텔'과 맞서 싸우는 당 대표 후보를 원했을 수 있다. 혹자는, 민주당원들이 야당 시절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우려하지만 그만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와 이에 찬동하는 보수 정당의 행보가 국민과 민주당원에게 할퀸 상처는 여전히 깊은 듯 하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 사회에 저강도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당 대표가 된 정 의원이 혼란을 증폭할지, 잠재울지 지켜볼 일이다.

2025-08-03 13:40:03 박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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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생산적 금융을 고민할때

은행권이 가계대출 관리를 방패삼아 이자수익으로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가계대출이 불어났고,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를 위한 가산금리 인상이 수익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실적이 좋다는 것은 칭찬받아야 할 일이지만 외부의 시선이 곱지 않은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은행권은 금리 하락기를 맞아 예금금리를 내렸다. 앞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수신금리도 내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예금은행의 저축성수신금리는 연 2.55%로 작년 10월(3.37%) 이후 9개월 연속 하락했다. 반면 대출금리는 금리인하와 달리 오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6월 기준 연 3.93%로 올해 2월(4.23%) 이후 5개월 만에 상승 전환했다. 은행은 대출 급증세를 잠재우기 위해 대출 금리인상이 불가피 하다고 해명한다. 당분간은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도 최소한 올해 연말까지는 가계대출 관리 강화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은행이 당국의 관리 기조에 대응하면서 예대금리차(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는 확대됐다.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6월 신규취급액 기준 가계대출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는 1.418%포인트(p)로 집계됐다. 전월 (1.336%p) 대비 0.082%p 확대된 수치다. 금융 소비자 입장에서는 예·적금으로 받을 이자는 줄어 들고 갚아야 하는 대출 이자 부담은 커진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나서 '이자장사'로 늘어난 은행 이익을 지적하며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그냥 자금을 출자하는 방법으로는 생산적 금융이 될 수 없다. 마중물과 같이 은행의 투자로 소비자들의 금융혜택이 늘어나는 방안이 필요하다. 다시금 금융소비자와의 상생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생산적 금융은 무엇일까. 단순히 대출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방식을 뛰어 넘어, 경제 성장과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금융활동이 생산적 금융이다. 즉, 은행 자금이 미래 성장동력이나 실물경제 활성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상생금융을 통해 사회 환원에만 신경썼다면 좀 더 고차원적인 금융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2025-07-31 17:07:06 나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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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복잡한 일, AI가 대신해줘도 사람 몫은 남아 있다

'AI 에이전트'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건 '진짜 비서'를 뛰어넘는 존재였다. 복잡한 업무를 몇 줄의 명령어만으로 끝내줄 거라는 기대. 그래서 일부러 오픈AI의 챗GPT 에이전트에 까다로운 일을 맡겨봤다. 일본 문구 여행을 위한 코스 짜기와 프리랜서 앱 개발 목적의 시장 조사. 하나는 감성과 취향이 섞인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와 논리로 무장한 시장 분석이다. 정반대 성격의 과제였다. 놀랍게도 챗GPT 에이전트는 대부분의 임무를 이해했고, 유려한 결과물들을 도출해냈다. 에이전트는 도시별 문구점, 한정판 제품 정보, 최적의 경로를 빠르게 정리해 제시했다. 특히 신칸센 이동 시간까지 반영해 '최소 이동 루트'와 '여유형 루트'를 구분해낸 건 감탄할 만했다. 그러나 AI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영역도 있었다. 항공권 예매 사이트의 정보를 끌어오긴 했지만, 최저가를 찾거나 바로 예약하는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다. 일종의 '벽'이 존재했다. 에이전트는 사용자 지시의 맥락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마지막엔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했다. 시장조사도 마찬가지였다. 프리랜서들이 자주 사용하는 플랫폼별 기능과 단점을 단 몇 분 만에 파악해 분석했지만, 이용자 요구의 뉘앙스나 '진짜 불편'은 놓친 부분이 있었다. 예컨대 앱스토어 리뷰에 "수수료도 최악, 패널티도 최악"이라는 불만사항이 있었지만, 그게 단순한 사용자 오해인지, 아니면 플랫폼 정책 구조 탓인지 해석하진 못했다. 사람들의 분노, 실망, 기대 같은 정서는 여전히 AI의 사각지대였다. PDF 보고서도 명령대로 만들어냈지만, 한글 폰트 깨짐이나 출처 링크 접속 장애 같은 소소한 결함은 남아 있었다. 모두 인간이 직접 작업했다면, 문제없었을 부분들이었다. 사소한 결점들을 제외하면 챗GPT 에이전트 기능은 생각보다 훨씬 쓸만했다. AI는 이제 '도우미'를 넘어 '대리인'이 될 수 있는 문턱에 도달한 듯하다. 오픈AI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선을 그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 반년, 아니 몇 달만 더 데이터를 학습해 기술이 고도화된다면 정말로 'AI 대리인'의 시대가 열릴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최종 판단과 책임은 여전히 사람 몫이라는 점이다. AI 에이전트는 도구일 뿐, 기술의 주인은 언제나 우리, 인간이다.

2025-07-30 14:47:34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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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자장사’ 탓하기 전에 볼 것들

은행은 '돈의 정수기'다. 수도관에서 흙탕물이 들어오면 필터·전기·관리비를 써가며 맑은 물로 거른다. 그런데 우리는 그 비용 전부를 '이자장사' 한마디로 몰아세우곤 한다. 지난 3월 5대 시중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는 1.47%포인트(p)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올해 상반기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21조원, 순이익은 10조원으로 모두 사상 최대다. '땅 짚고 헤엄친다'는 비판이 고개를 든 배경이다. 하지만 예대마진은 공짜가 아니다. 국내 은행들은 총자본비율 10.5% 이상을 맞추지 못하면 배당은 커녕 감독당국 제재를 받는다. 아울러 부실을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고 예금보험료와 IT전환비용도 지불한다. 게다가 현행 규제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위험가중치가 평균 18.9%인 반면 기업대출은 60%대여서 은행이 안전한 담보대출로 쏠릴 유인을 키운다. 은행들이 번 돈이 전부 곳간에 쌓이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은행권이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한 금액은 1조8934억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그럼에도 문제가 남는다. 과점 구조 속 '느린 금리 인하'로 가계 부담이 늘고 기업·벤처로 가야 할 자금이 주택시장에 갇힌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손쉬운 주담대 이자놀이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라며 첫 공개 경고를 날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금융기관도 건전하게 성장·발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손쉬운 주택담보대출 같은 이자 놀이, 이자 수익에 매달릴 게 아니라 투자 확대에도 신경 써주시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금융회사들은 정부의 소상공인·첨단산업 지원 정책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도 금융사가 생산적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규제를 전면 재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돈이 막히면 경제도 숨 막힌다. 해답은 '덜 버는 은행'이 아니라 '잘 흘러가든 돈'에 있다. 규제는 정수기의 필터를 교체하는 일이지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이 아니다. 필터 값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물길이 고르게 트일 때 '이자장사'라는 오해도 맑은 물 처럼 사라질 것이다.

2025-07-29 14:10:53 김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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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카드사 체질개선 과제

최근 취재를 위해 전통시장에 방문했다. 오전 10시 좀 넘어서 시장에 도착했는데 이른 시간에도 소비쿠폰을 사용하기 위한 방문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정부는 소비쿠폰을 신용·체크카드와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등 3가지 형태로 지급했다. 대부분이 카드를 활용해 결제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제는 물건을 살 때 현금보다 카드 사용이 더 익숙한 풍경이다. 전통시장에서도 현금을 요구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급결제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카드 이용 건수와 금액은 전년 대비 각각 3.6%, 4.1%씩 증가했다. 체크카드 이용 건수와 금액 또한 각각 3.2%, 3.6%씩 늘었다. 수표와 정액권 등 현금 성격의 결제 수단은 모두 두자릿수 감소세를 기록했다. 카드는 지급결제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반면 카드업계는 먹구름이다. 최근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카드사의 합산 순이익이 전년 대비 감소세를 기록하면서다. 올해 가맹점수수료율이 낮아진 데다 고금리 시기에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금리가 발목을 잡으면서다. 궁여지책으로 카드론을 늘린 탓에 아직까지 높은 수준의 대손 비용을 감당하면서 역성장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올해 가맹점수수료율을 낮춘 것이 장기적인 흐름에서 악수(惡手)였다고 본다. 지난 2월 금융당국은 가맹점에 적용하는 신용·체크카드 수수료율을 일괄 0.05~0.1%포인트(p) 인하했다. 연체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카드사 본업을 저해한 만큼 돌파구 마련을 위한 발판조차 없애버린 것으로 풀이된다. 애당초 관련 논의가 있었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카드업계는 수수료율이 낮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명목은 적격비용 재산정이지만 사실상 인하 수준을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유는 소상공인의 실질적인 부담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지율 유지를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수수료율을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소상공인과 카드사의 대립각이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신용카드 시장이 성장한 배경에는 정부가 세금 탈루 예방을 꾀할 수 있단 셈법이 작용했을 뿐더러 소비쿠폰 또한 신용카드사의 결제 인프라를 적극 활용했다. 카드사의 공익적 역할이 적지 않다. 이제는 지지율과 표심 등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건전성 제고를 유도하고 본업에서 지속가능성을 높일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2025-07-28 13:33:33 김정산 기자
[기자수첩] 배추총리와 농업의 미래

"전세금 2억원을 빼서 배추밭에 투자해 매달 450만원씩 받았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미국 유학 시절 후원자 A씨에게 매달 송금 받은 생활비 출처를 묻자 '후원'이 아닌 '투자 수익'이라며 내놓은 답이다. 증인·참고인 없이 열린 청문회는 제도 도입 이래 처음이었다. 김 총리는 2007~2008년 A씨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2억5000만원을 받아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2018년에 빌린 4000만원은 총리 지명 직후에야 갚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문회를 보며 의문을 품은 건 해명의 논리보다 '투자 구조'였다. 현실 가능한 수익 모델이라면 기자도 배추밭 투자를 검토해볼 만하다. 실제로 지난 50년간 미국 주식시장 평균 수익률은 약 10%, 상위 헤지펀드 평균도 15% 수준이다. 김 총리의 연 27% 고정 수익은 워런 버핏, 마이클 버리 등 투자 대가들의 성과를 뛰어넘는다. 하지만 현실 농업은 다르다. 포전 계약이나 밭떼기 등 다양한 유통 방식이 있지만 가격 변동성이 큰 배추에서 매달 450만원씩 안정적 수익을 올리는 구조는 농민 사이에서도 '전설'에 가깝다. 청문회 당시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은 "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300평 밭에서 3개월 농사 수익은 370만원 정도"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김 총리는 계약 내역이나 수익 구조를 공개하지 않고 '자료 제출은 어렵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문제는 김 총리의 해명이 농업을 고수익 투자상품처럼 포장했다는 점이다. 농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건 고정 수익이 아니라 한 포기라도 제값 받고 팔 수 있는 유통 구조다. 이번 해명은 현실과 상당한 괴리를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비슷한 맥락이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한 법안은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으로 폐기됐지만, 정권 교체 후 다시 국회를 통과했다. 같은 법안을 두고 유임된 송미령 농림식품부 장관은 과거 '농망(農亡)법'이라 비판했지만 지금은 '희망법'이라 부른다. 농민단체는 물론 야당에서도 "정권이 바뀌었다고 본질까지 바뀌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의 말싸움 속에 농업의 본질은 사라졌다. 농업은 표를 얻기 위한 도구도, 수익률을 따지는 금융 상품도 아니다. 국민의 식탁과 직결된 생존의 산업이다. '배추 배당' 해명으로 설득력을 잃은 정부가 말하는 '농업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2025-07-27 10:02:44 김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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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데이터센터 신전의 신에게 묻습니다

신은 점점 말이 없어지고, 대신 인공지능(AI)이 답하기 시작했다. 삶이 막막할수록 사람들은 기도를 멈추고 검색창을 연다. 과거엔 신의 계시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AI의 추천 알고리즘이 먼저 응답한다. 내일 뭐 입을지, 누구랑 헤어져야 할지, 심지어 어떤 윤리를 따라야 할지도. 지금의 우리는 더 이상 신에게 묻지 않는다. 대신 차가운 서버룸에서 태어난 무신론적 사제에게 묻는다. 종교는 막연한 삶에 방향을 제시하고,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신의 존재 유무를 떠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믿는 행위 그 자체가 종교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제는 인공지능이 슬금슬금 채워가고 있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분석해 인간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리며, 때로는 인간의 직관보다 더 정확한 판단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점점 AI의 판단에 의지하고, 그것이 옳다고 믿는다. 근거는 복잡하고 설명은 어렵지만, 결과를 신뢰하는 태도는 점점 신앙에 가까워진다. AI는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도덕, 감정, 운명마저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묻고, AI는 대답한다. 그리고 그 대답을 따르며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신 대신, 검은 화면 속 알고리즘이 새로운 신전이 된다. 결국 우리는 묻게 된다. AI를 믿는다는 것은, 신을 믿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문제는 믿음이 너무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는 점이다. 신을 믿는 데는 최소한의 경외심이나 회의가 뒤따랐다. 그러나 AI에 대한 믿음은 훨씬 더 빠르고, 훨씬 덜 의심스럽다. '정확도'라는 포장지에 싸여, 우리는 판단을 위탁하고 사고를 외주화한다. 질문하는 인간에서, 대답을 따르는 인간으로. AI가 내린 판단은 오류일 수도 있고, 특정한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점점 그것을 '객관적 진실'로 받아들인다. 윤리와 가치, 책임과 망설임이 들어갈 여지는 줄어들고, 대신 숫자와 확률, 최적화된 선택이 자리 잡는다. 이럴수록 절실해지는 건 자기 기준의 회복이다. AI는 언제나 가장 '그러할 확률'이 높은 답변을 내놓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틀린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믿어야 할 건 검은 화면의 답이 아니라, 그 답을 대할 때의 나 자신이다. 우리가 다시 묻고, 다시 의심하고, 때로는 AI의 권위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감각. 그 감각이 사라질 때, 우리는 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잃는 것이다. /김서현기자 seoh@metroseoul.co.kr

2025-07-23 09:19:48 김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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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2008년의 민주당이 2025년의 국민의힘에게

"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 성기훈(이정재 분)이 한 대사다. 요즘 국민의힘을 보면 이 대사가 생각난다. 지리멸렬한 야당의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 아니라서다. 이미 '이 게임을 해본' 당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한 대통합민주신당. 2008년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이 된다. 그리고 이 통합민주당은 그해 열린 18대 총선에서 처참하게 패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서 81석이라는 성적을 받아든다. 의석이 절대적으로 열세이니, 강한 대여(對與) 투쟁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성과없는 투쟁의 반복은 '지리멸렬하다'는 비웃음만 샀다. 민주당은 절치부심했지만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패배했다. 또 한번 격동의 시간이 흐른 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야 8년 만에 겨우 원내 1당을 탈환한다. 그간 당명은 총 5번 바뀌었고, 지도부는 17번 교체됐다. 걸핏하면 비대위가 세워져서다. 8년 사이 당을 바꾸겠다며 세운 혁신위원회는 총 몇 번이나 있었는지 셀 엄두도 안 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겪은 민주당은 2016년부터 치러진 8번의 전국단위 선거에서 총 6번을 이기며 전성기를 맞았다. 2025년 7월에 민주당의 역사를 장황하게 읊은 이유가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그 기나긴 '터널'에 들어선 것 같아서다. 22대 총선에 이어 21대 대선도 패배했고 당내 리더십은 공백 상태니,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떤 상황을 겪을 지 눈에 선하다. 한 여당 관계자는 '암흑의 8년'을 회상하며 "그때는 한나라당이 참 무서웠다"고 말하곤 한다. 어째서 민주당이 가장 무서웠던 상대로 '한나라당'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까. 한나라당에 가장 크게 밀렸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한나라당 시절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있을까. 현재 국민의힘은 또 한번 혁신위를 띄웠다. 그러나 혁신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이 당은 미진하다고 비판받는 '윤희숙 혁신안'마저도 받아들일 힘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투쟁력이 강할까. 대여 투쟁에도 미지근한 태도를 보여 '싸울 줄도 모른다'는 비아냥을 듣는다. 지역 기반이 강한 대다수 의원들은 정치적 생존과 직결된 차기 선거에만 관심을 둔다. 당이 깨져도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긴 터널을 지나온 민주당을 본 입장에선, 현재의 국민의힘이 걱정스럽다. 그래서 진심으로 바란다. 그 터널이, 끝없는 동굴이 되지 않기를. /서예진기자 syj@metroseoul.co.kr

2025-07-21 09:17:04 서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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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성과중심' R&D개편, 스타트업 왜 울고 있나

"시장에 진입도 못했는데, 시장성을 증명하라고 한다" 지난달 한 기술기반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 과제에 탈락한 사연을 이렇게 전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차세대 소재를 개발하는 이 회사는 기술 검증 단계에 있었다. 논문도 특허도 있었지만, '투자 유치 실적 없음'이라는 이유로 신청 단계조차 넘지 못했다. 그가 말한 "정부 과제가 아니라 정부 공모전"이라는 표현은, 현재 현장의 공기를 그대로 옮긴 말이었다. 2025년부터 정부가 추진 중인 연구개발(R&D) 체계 개편은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다. 정책 철학의 방향이 기술에서 '성과'로 완전히 전환되고 있다. 민간 연계와 투자 유치, 수요기업의 확약 등 사전 검증 조건이 대거 포함된 이번 개편은, 사실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에만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 같은 변화는 예산 효율성과 성과 회수를 강조하는 최근 정부 재정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정부 입장에서 '확실한 성공 가능성'을 좇는 전략은 타당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성장이 가시화된 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선순환을 위한 구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향이 결국 기술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흙을 덮어버리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정부 과제가 스타트업에게 '첫 번째 자금'으로 작용해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투자를 받은 이후에야 접근 가능한 보조금"이 돼버렸다는 자조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시장성 검증이 완료된 뒤에야 지원할 수 있다는 구조는, 사실상 중복된 잣대를 두 번 들이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기술을 가진 기업은 민간에서 외면당하고, 정부 과제에서도 밀려나는 '이중 소외' 상태에 놓인다. 이런 현상은 최근 정부 R&D 과제의 평가 기준에서도 확인된다. 상당수 사업이 기술 완성도나 혁신성보다 '시장성과 투자 유치 여부'에 높은 점수를 배정한다. 기술력 하나만으로 승부하려는 스타트업에겐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기술은 여전히 미완인데 외형 평가만 거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 R&D가 '보조금'이 아닌 '사후 포상금'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정부는 뒤늦게 '기술역량 중심 트랙'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트랙 추가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애초에 '민간 책임 강화'라는 정책 기조가 기술 기반 기업의 성장 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설계된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기술은 시장보다 늦게 피는 꽃이다. 투자자들이 꺼려하는 리스크를 정부가 감당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기술생태계의 기반은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명분 있는 예산 관리가 아니라, 시장보다 기술을 먼저 믿는 공공의 시선이다. 정부 R&D는 단순한 성과 중심 자금이 아니라, 국가가 미래에 '베팅'하는 유일한 정책 수단이다. R&D가 진정한 성장 동력이 되려면, 기술력 하나만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 같은 '성과 만능주의'는 결국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사기를 꺾고, 한국의 혁신 역량을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2025-07-20 15:03:53 최빛나 기자
[기자수첩]합치지 않아도 강하다

글로벌 조선사들이 구조 개편에 사활이다. 중국은 자국 최대 조선그룹 CSSC(중국선박그룹) 산하 양대 핵심 자회사인 중국선박공업과 중국선박중공을 통합해 초대형 국영 조선사를 탄생시킬 준비를 마쳤다. 자산 75조원, 연간 영업이익 18조원 규모의 '공룡 조선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이마바리조선과 재팬마린유나이티드를 합쳐 '국가대표 조선사'를 출범시켰다. 경쟁력 분산을 막고 기술개발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다.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는 각자의 자리에서 강점을 살리며 개별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친환경 LNG선은 물론이며 해양플랜트, 컨테이너선 등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글로벌 발주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한 우리 조선사들은 '몸집 불리기' 대신 '동맹 기반 협력'을 선택했다. 최근 주목받는 분야가 바로 MRO(유지·보수·운영) 사업이다. 해당 사업은 단순한 함정 정비를 넘어 동맹국과의 방산 협력과 수출까지 연결된다. 특히 미국 해군이 보유한 대규모 함정이 노후화로 인해 가동률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한국이 실질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국가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국영 정비조선소는 네 곳에 불과하고 수년 전부터 회계감사원이 역량 부족을 경고해 오고 있다. 결국 동맹국인 한국의 기술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내에서도 '해군 준비태새 보장법' 및 '해양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 개정안이 지난 2월 미 의회에서 발의됐다. 이로써 외국 조선소에서 해군 함정 건조를 금지하는 법에서 예외를 두게 된 것이다. 국내 조선사들은 MRO사업 수주 기회를 잡는 데 적극적이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미 해군 보급체계 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을 국내 조선사 중 최초로 체결했다. 한화오션은 최근 미국 해군 보급함 '찰스드류호' MRO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양사는 미 해군의 MRO사업을 시작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신규 함정 건조까지 내다보고 있다.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만들어내느냐다. 한국은 그 길을 택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지 않더라도 기술력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차현정기자 hyeon@metroseoul.co.kr

2025-07-17 15:01:06 차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