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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K-엔비디아 골든타임

인공지능(AI) 기술은 이제 산업 패권을 가르는 핵심 무기가 됐다. 한국이 독자적 AI 연구·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국내 생태계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특히 AI 스타트업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 확대와 제도 보완이 맞물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 가능성은 이미 증명됐다. 한국 인공지능 반도체 스타트업 퓨리오사AI는 메타의 8억달러 인수 제안을 거절하고 오픈 AI와 손잡았다. 이후 GPU 없이 지속가능한 엔터프라이즈 AI미래를 시연했다. 최근 퓨리오사AI는 자체 AI추론 가속기 RNGD(렌게이드)를 활용해 gpt-oss 120B 오픈소스 모델을 구동했다. gpt-oss 120B는 오픈AI가 공개한 세계 최고 수준의 오픈 소스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퓨리오사는 두 개의 RNGD칩만으로 대규모 모델을 실시간 챗봇에 적용하며 GPU 대비 훨씬 낮은 에너지 소비와 표준 데이터센터 수준의 전력 예산 안에서 운영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시연을 넘어 중고 규모 데이터센터에서도 고성능 모델을 운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사례다. 더욱이 AI칩 시장이 엔비디아 GPU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흐름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또한 전력 효율적이고 병렬화가 극대화된 구조는 기업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AI 모델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GPU 인프라가 요구하는 막대한 전력 비용과 냉각 설비가 부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신 기술이 계속 등장하려면 결국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우선 질 좋은 특허를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 단계부터 지원하고 해외 출원을 돕는 방안이 필요하다. 양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경쟁력 없는 특허를 국내에만 쌓아두는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AI 스타트업 평가지표 역시 유연해져야 한다. AI산업은 본질적으로 리스크가 크고 상장 이후 기업 밸류에이션이 반토막 나는 경우가 많다. 장기 연구개발보다 단기 실적에 쫓기게 만드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국내 AI 기업들은 '버티기 경영'에 매몰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K-엔비디아를 실현할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국산 AI반도체 생태계를 키워내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시작이다. /차현정기자 hyeon@metroseoul.co.kr

2025-09-16 15:53:16 차현정 기자
[기자수첩] 부동산 '당근과 채찍'

정부가 또다시 칼을 빼들었다. 이번에는 수도권에만 135만호를 착공하겠다는 초대형 공급 카드와 함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축소와 임대사업자 대출 전면 금지 등 고강도 규제를 동시에 꺼내 들었다. 공급 확대로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당근'과 불법 거래 차단·대출 억제로 투기 수요를 틀어막겠다는 '채찍'을 한꺼번에 내민 것이다. 정부는 오는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수도권에 연평균 27만호, 총 135만호를 착공하겠다고 못박았다. 최근 3년 평균 15만8000호 대비 1.7배 늘어난 수치다. 공급 통계를 인허가에서 착공으로 전환한 것도 현실과 괴리를 줄이려는 의도다. 구체적으로는 공공택지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접 시행해 6만호를 추가 공급하고 노후 임대주택을 용적률 500%까지 높여 재건축(2만3000호)한다. 유휴 국공유지·청사 부지·폐교도 주택으로 전환한다. 틈새 땅을 쥐어짜서라도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규제지역 LTV는 50%에서 40%로 축소되고 수도권·규제지역 내 임대사업자 주담대는 전면 금지됐다. 1주택자 전세대출 한도도 2억원으로 일원화됐다. 공급 확대와 동시에 투기 수요 억제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공급 기준을 착공으로 전환한 점은 긍정적이지만 단기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LH의 직접 시행은 분양가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체감 공급은 2027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한계를 지적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 역시 "외곽 위주 공급으로는 강남·용산 등 핵심 수요를 잡기 어렵다"고 했다. 국토부·금융위·국세청·경찰청·금감원이 참여하는 범정부 부동산 범죄 대응 조직으로 불법 거래 차단 장치를 강화한 부분도 눈에 띈다. 이상경 국토부 제1차관이 "부동산시장관리원과 같은 수준의 위상을 가질 것"이라고 밝힌 것 처럼 단순 행정조사에 그치지 않고 특별사법경찰, 경찰과 공조해 기획부동산·허위매물·다운계약 같은 불법 행위에 정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거래 신고 단계부터 계약서와 자금 증빙자료 제출을 의무화한 것도 그 연장선이다. 정부가 내놓은 이번 대책은 공급 확대와 규제 강화가 한몸처럼 묶여 있어 그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공급과 규제, '당근과 채찍'이 시장에서 어떤 균형을 만들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2025-09-15 10:25:03 전지원 기자
[기자수첩] 한·미 조선 협력, 파업과 비자 규제로 불확실성 확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는 한미 협력의 새로운 이정표로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 파견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미 이민 당국에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한미 협력에 금이 가면서 마스가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취업비자 발급에 엄격한 미국의 비자 정책에 미봉책으로 일을 처리한 국내 기업들의 문제를 1차로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동맹국, 나아가 수십조원대 일방향 투자와 첨단 제조시설 설립에 나선 우리 기업의 전문인력들을 그 어떤 여지도 없이 전격적으로 범죄자 취급하고 감금했다는 점에서 향후 대미 투자협력 사업을 낙관할 수 없을 것이다. 비자 발급이 지연되면 현지 대형 프로젝트에 투입할 숙련 인력 확보가 늦어지고 단기 일정 차질뿐 아니라 장기적인 수주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취업비자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으나 기업이 해결할 수 없기에 당분간 한미 당국의 협의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국내 노사 갈등도 마스가의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는 변수로 떠올랐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11일부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지난 7월 1차 잠정합의안이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된 뒤 노사 협상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임단협이 미타결된 상황에서 회사가 HD현대미포와의 합병, 싱가포르 투자 전문 계열사 설립 등 굵직한 경영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협상은 경색됐다. 더구나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하청 노조까지 파업에 가세할 가능성까지 제기돼 불안은 확산되는 분위기다. 노조는 전향적인 협상안이 나올 때까지 전면 파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분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비자 규제와 국내 노사 갈등이 조선업계가 동시에 풀어야 할 이중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기업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을 향한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북미 전략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려면 무엇보다 노사 갈등을 조속히 매듭짓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 역시 비자 제도의 현실적 개선과 외교적 지원을 병행해 기업들이 현지에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 두 가지 난제를 슬기롭게 해결해야만 한미 협력을 통한 미국 시장 진출이 차질 없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원관희기자 wkh@metroseoul.co.kr

2025-09-14 14:46:13 원관희 기자
[기자수첩]글로벌 제약·바이오 패권 경쟁과 한국의 대응 과제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다시 날을 세우고 있다. 현재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의약품에 대한 엄격한 제한 조치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품목허가 장벽 강화, 중국 임상시험 데이터에 대한 규제 수수료 인상 등이 거론된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미국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우대 정책도 포함된다. 지난 2월에도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 투자 정책'이라는 제목의 각서를 발표했다. 이 정책은 자국 안보와 경제를 강조하며 특정 전략 산업에서 '해외 적대국'과 관련된 투자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바이오와 헬스케어 산업을 꼽았고 '중국'을 언급했다. 이른바 미국과 중국 중심의 '패권 전쟁'의 새 국면이다. 미국의 이러한 견제 속에서도 중국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신약 개발 역량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중국은 43개의 혁신신약을 승인했고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9% 급증한 성과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은 16개의 신약을 내놓아 전년 동기 대비 21개에서 줄어든 기록을 냈다.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도 주목을 받는다. 올해 6월 기준 미국 제약 업계는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과 약 183억 달러에 달하는 14건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2건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도권을 잡으려는 전방위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정부와 제약·바이오 업계도 변곡점을 맞고 있다. 국내외의 복합적인 환경 변화를 신속하게 반영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K제약·바이오 위상을 높이기 위한 핵심 성장동력은 신약 개발임은 자명한 사실이며, 생산 능력, 공급망 안정화 등에도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최근에는 대통령 주재 바이오 혁신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했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조성하는 국내 최초 대규모 투자펀드에는 바이오·백신 자금도 이름을 올렸다. 보다 많은 투자와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은 업계에 긍정적인 신호로 작용할 것이다. 이와 함께 국내 기업들이 직면한 실제 현장의 목소리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각종 규제와 실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법, 기업에 대한 신뢰 등이 반영되는지가 향후 미래 성장의 열쇠가 될 것이다.

2025-09-11 16:44:15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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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교육의 무게 앞에 선 인사 논란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것은 역대 정부마다 빠지지 않는 교육 공약이었다. 지금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자리에 사교육업체 대표 출신 인사가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육계와 학부모 사회에 파장이 일었다. 교육시민단체 39곳은 대통령실 앞에서 지명 철회를 요구했고, 현장 교사들도 "입시 경쟁이 심화될 것", "사교육비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교육 정책의 핵심 자리에 사교육 대표 인사가 앉는다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불안 신호로 읽히는 이유다. 대통령실은 곧바로 "사실이 아니다"라며 보도를 부인했다. 그러나 짧은 파동만으로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정부의 기조와 국민 인식 사이에 얼마나 큰 불신의 간극이 존재하는지를 보여줬다. 누가 교육비서관에 앉든, 국민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원칙을 제대로 지켜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거론된 인사는 과거 공론화 과정에서 "학생부 평가가 교사 재량에 따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수능이 상대적으로 더 공정하다고 강조했지만, 교사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노력을 폄훼하는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교사들과의 신뢰가 무너진다면 공교육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는 이미 가계 부담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다. 초등 의대반, 유아 선행반, 재수·N수 시장이 커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줄여 달라"고 요구하지만, 이번 논란은 "사교육을 키울 수 있다"는 반대 해석을 낳았다. 차기 교육비서관은 과거 경력이나 인선 논란에 매몰되기보다, 앞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공교육 강화와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분명한 신호를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방과후 프로그램 확대와 돌봄 강화, 지역 간 격차 해소 같은 생활 밀착형 대책 없이는 개혁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한 고교학점제와 개정 교육과정의 안착, 교사의 업무 부담 해소, 학생 선택권 보장 등 현장의 과제를 해결할 구체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교사·학부모·학생이 정책 설계 단계부터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신뢰를 회복하는 일 역시 시급하다. 공정성 논쟁은 단순히 시험 제도의 문제를 넘어서, 아이들의 삶 전반의 형평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출발선의 불평등을 줄이고 다양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넓히는 것이야말로 교육이 지향해야 할 진짜 공정이다. 국민의 요구는 단순하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교가 제 역할을 하며, 아이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되찾는 것이다. 교육비서관 자리에 누가 앉든, 이 원칙을 지켜낼 때만 국민은 안심할 수 있다. /이현진기자 lhj@metroseoul.co.kr

2025-09-10 14:20:26 이현진 기자
[기자수첩] 더 많은 칼보다, 더 나은 칼이 필요하다

주방에 칼이 많다고 요리가 더 맛있어지는 건 아니다. 잘 들지 않는 칼이 아무리 많아도 음식은 거칠고, 손질은 지저분하며, 요리사는 어깨와 손목에 통증만 남긴다. 요리에 중요한 건 '칼의 수'가 아니라 '칼을 쥔 손의 숙련도'와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원칙이다. 금융감독 체계도 마찬가지다. 조직도를 화려하게 갈라놓는다고 해서 감독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을 둘로 쪼개고, 금감위라는 새 조직을 세우고, 소비자 보호를 내세운 금융소비자보호원까지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각난 체계 속에서 최종적으로 길을 잃게 되는 건 감독당국이 아니라 소비자가 될 공산이 크다. 사고는 한몸으로 터지는데, 책임은 흩어지게 된다. 202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지를 두고 독립성 논란이 격화됐던 시기다. 당시에도 지적된 건 '정치로부터의 거리'였다. IMF가 금감원을 특수법인으로 설계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2025년, 상황은 훨씬 복잡해졌다. ESG 회계, 디지털 자산, PF 사업성 평가, 이해상충 점검처럼, 단일 부서나 단일 조직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연일 쏟아진다. 이제는 감독국 간의 수평적 공조와 기능 간의 입체적 연결이 필수다. 조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어떻게 조율하고 연결할지가 중요한 때다. 하지만 지금의 개편안은 그 흐름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제도 설계의 출발점은 '기능의 효율적 배분'이어야 하지만, 실제 논의는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로 흘러가고 있다. 전직 원장의 '미운털'이나, 특정 인사를 위한 자리 만들기 같은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해석들이 마치 개편의 동력처럼 작용한다. 항간에는 "금소원 자리에 친정권 측근을 앉히기 위한 큰 그림"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그 사이 실무자들은 감독 개혁이 아닌, 불필요한 루머 관리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심지어 소통하는 리더가 되겠다던 이찬진 금감원장은 개편안 발표 다음 날 열린 긴급 설명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장은 조직발표 후 출근길에서도, 금융업권 CEO들이 모이는 간담회 자리에서도, 자신을 쫓는 기자들 앞에서도 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는 일체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정부는 조직을 잘게 나누며 감독 개편과 소비자 보호 강화를 외치지만 자리를 나누는 개편에 최소한의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그 설계에는 방향이 없다. 조직 내 소통을 강조하며 "조직을 가물치처럼 팔딱 뛰게 만들겠다"던 이 원장은 침묵 중이다. 지금 필요한 건 조직을 나누는 '많은 칼'이 아니라, 그 칼로 무엇을 지킬지 말할 사람이다.

2025-09-09 16:02:04 허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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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민의힘, 정기국회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수 있을까

'소수야당' 국민의힘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올해 정기국회에서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국민의힘은 지난 22대 총선에서 지역구에서 90석, 비례대표용 위성정당 국민의미래에서 18석이 당선되며 총 의석수 108석의 소수여당으로 전락했다. 이후 '찬탄파' 김상욱 의원이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하며, 국민의힘의 총 의석수는 107석이다. 총선 이후 민주당은 윤석열 퇴진을 목표로 정부·여당을 강력하게 견제했고, 결국 수세에 몰린 윤석열 대통령은 준비해왔던 비상계엄을 12·3일에 선포해 탄핵의 길을 걷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찬탄파와 반탄파로 나뉘어 갈등 양상을 보이다가 결국, 반탄파 후보가 당의 권력을 잡았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여당 성향 무소속 의원 등 범여권 의석수의 총합은 187석으로 압도적이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의 최종 관문인 법제사법위원장까지 자당 몫으로 앉히며 마음만 먹으면 입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야당은 상임위, 법사위에서 여당의 쟁점 법안 추진에 항의하고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시도했지만 여당이 이를 종료시키고 법안이 통과되는 모습만 반복해 보여줬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2차 상법 개정안, 방송3법(한국방송공사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 이렇게 처리됐다. 앞으로 3대 특검(내란·김건희·해병대원)의 기간·범위·인력 확대 법안 추진, 검찰청 폐지 등 정부조직법 개정,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내년도 예산안 심사 등 여당 주도 추진 사항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정책정당·혁신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 내 쇄신과 탄탄한 의정활동으로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끌려다니는 소수야당의 모습을 22대 국회 임기 내내 보여줄 수밖에 없다. 또한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여당에 패배한다면, 입법·지방행정 권력을 모두 민주당에게 내줘야 하는 절박한 위기다. 정기국회는 국민의힘이 여론의 지지를 가져올 수 있는 기간이다. 교섭단체 대표연설, 국정감사, 예산심사 등을 통해 국민의힘이 절박함 속에 실력을 선보일수 있을지 관심 갖고 지켜볼 차례다.

2025-09-08 15:02:45 박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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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해킹, 과징금이 능사일까

제2 금융을 중심으로 해킹 피해가 반복되면서,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 시스템 부실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짧은 기간 동안, 다수의 기업에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월부터 8월 말까지 고작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SGI서울보증에 이어 웰컴금융그룹 계열사 웰릭스에프앤아이대부, 롯데카드까지 제2 금융권에서만 3건의 해킹 피해가 잇따랐다. 금융당국은 칼을 빼 들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보안사고를 낸 은행권에 최대 200억원의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디지털 금융보안법'의 초안을 마련, 법제화를 추진 중이다. 은행권에 자율적으로 보안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사후 결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금융사고가 제2 금융을 중심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미뤄보면, 현실적으로 과징금 부과가 능사는 아니다. 특히, 제2 금융권 중 중소형 기업은 보안체계를 자율적으로 구축해 금융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금융 보안 체계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곳에 사후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제2 금융 중에서도 작은 기업의 경우 재무를 관리하는 인력조차 부족한 곳이 있다"며 "이들이 금융 보안 사고에 가장 취약할 텐데, 여기에 보안 체계를 스스로 구축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주요 대형 금융권 사이에서는 사이버 해킹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로트러스트' 보안 모델이 부상하고 있다. 제로트러스트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라는 기조 아래 모든 접근 요청에 대해 확인 및 인증 절차를 거쳐 최소한의 접근만 허용하는 보안 모델이다. 문제는 초기 구축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IT업계에 있는 한 관계자는 "제로트러스트의 경우 이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초기 비용이 꽤 많이 들어간다"며 "또, 도입했다고 끝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와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경우 부담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현실에 맞는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다. 사후 규제를 가하기 전에 중소형 은행을 대상으로 보안 시스템에 대한 교육 및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 외양간을 고치는 것보다 소를 잃지 않는 것이 먼저기 때문이다.

2025-09-07 15:12:01 안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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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디지털 전환'과 금융장벽

'디지털 전환'은 최근 몇 년간 국내 은행들의 주요 목표로 부상했다. 각종 규제가 해체되며 비대면 금융의 영역이 넓어졌고, 불필요한 비용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절감된 비용은 은행의 수익률 개선으로 이어지며, 고객에게도 더 경쟁력 있는 상품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환영할 만한 변화다. 간단한 이체·출금 업무를 위해 은행을 찾을 필요가 없어졌고, 계좌 개설과 대출조차 휴대전화와 신분증만 가지고 있다면 손쉽게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 전환'이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발길이 줄어든 은행 점포는 문을 닫고 있고, 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상담을 제공했던 전화 상담원들은 챗봇과 AI상담원으로 대체됐다. 고령자를 비롯한 금융취약계층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한 변화다. 오늘날 휴대전화를 통해 은행권 고객센터에 통화를 연결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보이는 ARS'다. 모바일뱅킹과 유사하게 설계된 화면인 만큼, 고령자에게는 이용이 어렵다. 어렵사리 버튼을 찾아 음성 ARS 연결을 요청하면 "상담원에 연결하려면 0번을 눌러달라"라는 안내 문구를 듣기까지 1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불필요한 안내 문구를 길게 늘어놓아 고객이 제풀에 지쳐 상담을 포기하게 만든다. 0번을 누르더라도 '진짜 상담원'과는 연결되지 않는다. 그 대신 AI(인공지능)상담사가 연결된다. 인공지능 상담사는 수차례에 걸쳐 문제가 무엇인지 물어오지만, 미완(未完)의 AI상담사는 반복해서 안내 문구만을 내놓기 일쑤다. 혹여 문제가 해결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연결을 일방적으로 종료해버린다. '진짜 상담원'과 연결하려면 AI 상담사에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상담사 연결을 원한다고 여러 차례 요구해야만 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공정금융 추진위원회'에서 국내 주요 은행에 고령자가 AI 상담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안내 절차를 개선해달라고 주문했다. 은행들은 개선을 약속했지만, 지금까지도 "더 말을 잘 알아듣는 AI상담원을 도입했다"라는 이야기만 매일같이 내놓고 있다.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고객센터 연결을 어렵게 만든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은행은 '신뢰'를 거래하는 곳이다. 고객에게 충분한 신뢰를 제공하기 위해선 비용 절감을 고려하기에 앞서 누구나 접근 가능한 금융환경을 조성하는 데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2025-09-04 14:50:34 안승진 기자
[기자수첩] '리테일' 왕좌의 게임

오랫동안 키움증권의 몫이었던 증권가의 '리테일 왕좌'는 이제 다자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토스증권이 2021년 출범 이후 빠른 속도로 리테일을 흡수하고 있고, 최근에는 메리츠증권이 사상 초유의 '수수료 전면 무료화' 카드를 꺼내들면서 개미를 모시고 있다. 사실상 키움증권의 독주였던 '리테일 왕좌의 게임'이 본격화된 셈이다. 토스증권의 부상은 업계가 인정하는 가장 큰 변수다. 지난 3월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이사는 키움증권 정기주주총회에서 "토스증권 커뮤니티는 리딩방 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기주총에서 '토스증권처럼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주들의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사실상 토스증권에 대한 견제가 들어나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토스증권의 성장으로 가장 위협을 느낄 증권사가 키움증권이라고 꼽는다. 토스증권이 특히 잘하고 있는 해외주식에서 그 성장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간 키움증권은 해외 주식 브로커리지 부문 점유율 1위를 수성해 왔지만, 지난해 11월 토스증권에게 선두를 뺏겼다. 그리고 경쟁자에는 메리츠증권이 추가됐다. 메리츠증권은 증권사 최초로 몇 년에 걸친 수수료 전면 무료화를 선언하면서 리테일 기반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메리츠증권의 슈퍼365 예탁자산은 지난해 10월 9200억원대에서 10조원까지 불어났으며, 해외자산도 이벤트 시행 전 1650억원에서 5조원을 상회하게 됐다. 문제는 속도전의 그늘이다. 파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는 메리츠증권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대한 물음표가 찍히기도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벤트를 통해 얻어낸 투자자인 만큼, 수수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쉽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며 "경쟁 증권사들은 메리츠증권의 '제로 수수료' 이벤트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수수료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사실상 이벤트가 종료된 이후에도 '무료 수수료'로 끌어낸 리테일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는 평가다. 내실도 충분하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증권사 전산사고는 429건으로, 금융권 전자 금융 사고 피해액의 89%가 증권사에서 발생했다. 이정운 금감원 IT검사국 팀장은 "생긴 지 몇 년 안 된 온라인 기반 증권사들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각종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동안 전산사고가 계속 발생했다"고 짚었다. 실제로 온라인 기반 증권사인 키움증권과 토스증권 등은 잦은 전상장애로 지적받고 있다. 리테일 시장의 주도권 싸움은 이제 막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왕좌'를 지킬 자격은 속도가 아니라 변덕스러운 개미의 발걸음을 오래 붙잡을 수 있는 안정성과 신뢰에서 결정될 것이다.

2025-09-03 14:11:05 신하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