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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전기차 화재사고 '0' 외친 현대차 BMS 믿어도 될까?

'전기차 화재 언제쯤 안심할 수 있을까?' 지난달 29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한 오피스텔 지하 2층 주차장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불길은 빠르게 번졌고 검은 연기가 계단과 복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퍼지며 주민 100여명이 대피했고 15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해 인천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이후 다양한 완성차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차량에 적용한 배터리 안전성을 높이는 기술을 앞다퉈 공개한 지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또다시 문제가 됐다. 특히 이번 전기차 화재는 그동안 배터리 안전 기술을 강조해온 현대차그룹의 차량이라는 점에서 회사의 신뢰도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안전을 책임지는 핵심 기술'로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을 공개했다. BMS는 배터리를 전체적으로 관리함과 동시에 자동차가 배터리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제어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담한다. BMS는 높은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는 배터리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만큼 전기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핵심 기술이다. 현대차·기아는 BMS의 역할 중 하나인 배터리가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정밀 '배터리 시스템 모니터링'을 통해 배터리 이상 징후 발견 시 신속하게 탐지, 위험도 판정, 차량 안전제어를 수행하게 되고 필요시에 고객에게 통지함으로써 더 큰 문제로의 발생을 미리 방지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을 적용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번 화재 차량의 차주에게 알림 메시지가 갔지만 이는 당시 오피스텔 경비가 차량 화재를 확인하고 119에 신고한 뒤 진행됐다는 점이다. 차량의 배터리 상태가 불안정할 경우 신속한 알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당시 차주에게 알림이 갔지만 이미 해당 오피스텔 경비가 차량 화재를 인지하고 신고한 상태였다"고 사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정부의 정밀 감식과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지만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쌓아가기 위해서는 제조사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만큼 전기차 화재 사고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전기차에 대한 신뢰를 심어줬으면 한다.

2025-11-10 16:20:43 양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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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지방 부실채권의 악순환

최근 제주도를 찾았을 때 1600평 가량의 토지에 '본건매각'이란 푯말을 발견했다. 이렇게 넓고 황량한 토지를 매각하려는 이유가 뭘까. 이를 추적해 보니 그 끝에는 예상치 못한 상호금융권 발 부실채권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정은 이렇다. 제주도 한 상호금융에서 도민 A 씨에게 해당 농지를 담보로 잡고, 약 다섯 차례 대출을 내주었다. A씨가 대출을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자 농지는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 그럼에도 회수가 어렵자 상호금융권은 보유하고 있던 A 씨의 채권을 부실채권(NPL) 시장에 매각했다. 부실채권을 털어내 연체율 상승을 방어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문제는 없다. 진짜 문제는 이후다. 부실채권이 부실채권 자산관리 전문업체에게 넘어가도 리스크는 잔존한다. 경매로 넘어간 해당 땅은 반복 유찰됐다. 유찰로 인해 감정가 9억원에서 최저 경매가 3억원까지 떨어졌다. 담보 가치 하락이다. 담보 가치가 하락한 농지, 이를 담보로 잡은 채권은 자산관리 전문업체 입장에서도 골치다. 지방 농지의 경우, 땅을 매입하려면 '농지취득자격증명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경우 그 절차와 요건이 더 까다롭다. 상호금융권으로 부실채권을 사들인 자산관리 전문업체가 해당 농지를 직접 소유한 뒤 자산화할 유인도 크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국 이 부실채권은 다시 일반 투자자를 향한다. 자산관리 전문업체들은 이 부실채권을 넘기기 위해 "자신들과 계약을 체결하면 경매에 나온 이 땅의 우선권을 부여하고 높은 가격으로 낙찰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높은 가격으로 낙찰받아 토지를 보유하게 되면 대출을 더 받을 수 있다고도 유인한다. 부실채권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위험은 형태만 바뀐 채 시장을 맴돈다. 인구감소, 농지취득증명서 등 규제로 지방 농지의 투자 수요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도 모른 채, 지방 상호금융권이 계속해서 부실 심사 대출을 감행하고 이를 부실채권화 해 시장에 되판다면, 그 부실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뇌관으로 집중될 뿐이다. 부실채권 매각이 다가 아니다. 구조적인 위험을 낮추기 위해 상호 금융권의 느슨한 부실대출 심사 관행부터 손봐야 한다.

2025-11-09 14:28:38 안재선 기자
[기자수첩] 종이빨대, 소비자는 불편·기업은 파산

솔직히 말해서 기자인 나도 종이빨대가 싫다. 음료를 마실 때마다 눅눅하게 흐물거리고, 몇 번 빨다 보면 빨대가 찢어진다. 음료는 한참 남았는데, 빨대는 이미 수명을 다 한듯 종이 냄새와 뒤섞인 음료를 마시는 것 같아 불편하다. 많은 소비자가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국회 국정감사장에서의 종이빨대 업계 사람들의 표정은 불편함보다 절박함에 가까웠다 정부의 친환경 정책은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길'이라 불렸다. 종이빨대 업체들은 그 길을 믿고 따라나섰지만 도착한 곳은 '파산 위기'였다. 지난달 29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의 최광현 대표는 "정부가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규제한다고 해서 당연히 종이빨대 수요가 늘어날 줄 알았다. 그래서 설비를 늘리고, 인력을 충원했는데 정책이 중단되면서 모든 게 부채로 바뀌었다"고 토로했다. 그의 말처럼 정부가 추진하던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탈플라스틱 정책은 지난해부터 잇따라 축소·폐지됐다. 정책을 믿고 투자한 업체들만 남았다. 최 대표는 "정부 정책 철회로 직원이 40명에서 10명 이하로 줄었고,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며 "정부를 믿은 죄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종이빨대 제조업체는 한때 17곳이었지만, 지금은 6곳만 남았다. 나머지는 폐업하거나 사실상 가동 중단 상태다. '집을 팔아 버티는 업체도 있다'는 말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정책 변경이 시장에 미친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며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정부는 말하지만, 이미 무너진 시장의 신뢰를 되돌리기엔 늦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한때 '탈플라스틱'을 외치며 기업들에게 친환경 전환을 독려했다. 하지만 일회용컵 보증금제와 종이빨대 정책이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슬그머니 철회했다. 소비자 불만을 의식한 결과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종이빨대의 불편함이 '진짜 문제'일 수 있다. 제품 완성도는 아직 낮고, 가격은 비싸다. 기술 개발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기술개발은 시장이 지속 가능해야 가능하다. 정책이 바뀌고 수요가 끊기면, 누가 돈과 시간을 들여 개선하겠는가. 친환경의 진정성은 구호가 아니다. 소비자의 체감, 기업의 지속성, 정부의 일관성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의 종이빨대는 불편하고 미완성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도 미완성임을 잊지말아야 한다.

2025-11-06 14:49:08 신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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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핀테크의 편리함과 '함정'

핀테크(Fintech), 금융(Finance),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가 발전하고 있다. 단순 송금 서비스에서 시작한 핀테크는 탈규제와 기술 발달에 힘입어 지갑 없는 시대를 가져왔고, 계좌 개설·대출 등 금융 거래는 이미 비대면의 영역에 진입했다. 각종 은행, 카드사, 보험사에 흩어진 금융상품도 하나의 '슈퍼 앱'을 통해 비교·관리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각종 투자상품도 핀테크의 영역에 진입했다. 핀테크앱에서 종목 거래와 시황 조회가 가능해진 것은 지난 2020~2021년이지만, 최근에는 해외 주식이나 각종 파생상품도 핀테크 앱에 본격 입점했다. 투자자가 다양한 상품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핀테크 특유의 우수한 접근성이 고위험 상품과 결합해서다. '옵션'으로 대표되는 파생상품은 일반적인 증권 상품과는 달리 '전액손실'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기존 상품 대비 몇 배나 되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지만, 손실 가능성도 수익률에 비례해 극대화된다. 금융당국은 파생상품 거래를 희망하는 투자자들에게 사전교육 및 모의거래를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정한다. 의무 교육에는 통상 1시간 이상 소요된다. 그런데 핀테크 앱은 이같은 필수 교육을 수십 초면 풀 수 있는 퀴즈 형태로 간략화했고, 직관적인 사용자경험(UX)·사용자공간(UI)을 통해 상품의 매력을 부각시킨다. 초보 투자자에게 '맹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청년 세대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투자에 참여하는 '빚투족'이 늘었다. 상반기부터 국내·외 자본시장의 호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하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 때문이다. 빚을 내서라도 투자에 동참하는 젊은 투자자와 손쉽게 접근 가능한 고위험 상품이 만나 '빚쟁이 청년'을 양산할 수 있는 형세가 됐다. 과거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당시 인터넷은행은 청년을 대상으로 무담보·비대면을 앞세운 '비상금대출'을 적극 취급했다. 소득이 없어도 이용이 가능했던 만큼, 막대한 수요가 몰렸다. 그리고 몇 년 만에, 수십만원에 불과한 빚에도 대출을 갚지 못하는 '청년 연체자'가 쏟아졌다. 핀테크는 우리 생활에 대체 불가능한 편리함을 가져왔다. 그러나 손쉬운 대출, 고위험 투자상품과 같은 위험성도 가까운 곳까지 끌어들였다. 이를 인식하고 분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몫으로 남았다.

2025-11-06 14:28:10 안승진 기자
[기자수첩] ETF의 미래, 키(key)는 ‘사람’이다

글로벌 증시가 전례 없는 강세장을 이어가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시장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23년 100조원을 넘어선 한국 ETF 시장은 올해 270조원을 돌파했고, 내년이면 300조원 고지를 넘어설 전망이다. 그야말로 'ETF 전성시대'다. 하지만 화려한 외피 속에서 업계는 정작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ETF 시장을 키운 운용역들이 하나둘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커지는데, 그 시장을 실제로 설계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젊은 ETF 매니저들은 "일은 늘어나는데, 매번 신입은 뽑지만 오래 업계에 남아 있는 사람이 적다"고 토로한다. ETF 운용은 흔히 '기계적인 복제'로 오해받지만, 실제로는 수십 종목의 이벤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괴리율이 터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다. 지수 구성 종목의 감자나 분할 하나를 놓쳐도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성과에 대한 보상은 조직 구조 안에 갇혀 있고, 운용역 개인의 공로는 평가받기 어렵다. 자산운용 업계에서 10년 이상 재직한 한 중견 매니저는 "ETF 매니저가 돈을 못 버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성과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팀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라는 푸념을 하기도 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운용역들은 증권사로 이탈하고 있다. ETF 거래를 중개하는 LP(유동성공급자)로 옮겨가거나, 다른 업종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이들 사이에서 "운용사에 남아봐야 미래가 안 보인다"는 냉소가 퍼지는 이유다.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콘셉트를 시도할 사람이 줄어드니, '상품 카피(베끼기)'가 늘어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7일 기준 국내 ETF는 1031종목, 순자산총액은 260조원을 넘어섰다. 1년 새 50% 넘게 불어난 규모지만, 유사 ETF가 범람하면서 "상품별 특색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매니저들은 새로운 전략을 설계하기보다 출시 속도 경쟁에 내몰리고, 그 과정에서 상품의 질보다 '몇 개를 내느냐'가 성과의 기준이 되고 있다. ETF는 개인투자자에게 가장 접근하기 쉬운 금융상품이다. 그렇기에 더 세밀하고 성실한 운용이 필요하다. 좋은 ETF 운용역이 시장에 남아야 좋은 상품이 나온다. ETF 시장의 진짜 성장은 '규모'가 아니라 '사람'에서 시작된다. /허정윤기자 zelkova@metroseoul.co.kr

2025-11-05 16:57:02 허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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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국정감사장에서 드러난 국회의원의 '사적' 마인드

올해 국정감사는 급하게 막을 내린 윤석열 정부의 후반기를 돌아보고 이재명 정부의 미래 사업을 점검하는 등 중요성이 높았지만, 중요 상임위에서 민생과 미래를 위한 감사가 덜 주목받았다는 전반적인 평가가 나왔다. 대신, 이번 국감은 '대(大)숏폼시대' 도래와 함께 자극적이고 감사와 상관 없는 이슈들이 주목 받았다. 특히, 미래 과학 기술 진흥과 방송의 중립성 등 중차대한 현안이 산적한 국회과학기술방송정보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는 상임위원들이 보여줄 수 있는 바닥을 보여줬다. 과방위 국정감사는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사감(私感)'에 휩싸여 생중계 중인 회의장에서 욕설과 고성을 지르며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자녀가 국감 기간 중 국회 경내에 있는 사랑재에서 결혼을 했고 과방위 피감기관이 해당 결혼식에 화환과 축의금을 보낸 것이 알려져 큰 논란이 됐다. 모바일 청첩장에는 '카드결제' 기능까지 탑재돼 있어 혀를 내두르게 했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피감기관에서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을 상대하는 대관(對官) 직원들은 '을'이 아니라 '병', '정'의 위치로 추락한다. 피감기관이나 기업을 상대로 한 의원 질의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불철주야 의원회관을 돌아다니고 읍소전략을 펼친다. 그런데, 하필 피감기관의 신경이 곤두선 국감 기간에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의 자녀가 결혼하다니, 국회의원이 가진 막강한 권한의 무게를 망각한 '사적 마인드'로 점철된 사건이다. 보통 이런 경우엔 자녀의 결혼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거나, 축의금과 화환을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다.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을 갖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대관 직원들은 진실로 최 위원장의 자녀의 결혼을 축하했을까. 오히려 최 위원장에게 마음의 빚을 지우기 위해 보내지 않았을까. 여야를 떠나 공과 사를 구분하고, 국민이 위임한 권한으로 자신의 사적 욕망을 실현하지 않는 '공적 마인드'가 선출직인 국회의원에게 찾아보기 힘든 현실이다. 여야 정쟁의 수준이 높은 상임위일수록 이를 이끄는 위원장의 공적 마인드도 철저해야 한다. 정당도 주요 직책을 인선하기 전에 후보자가 가진 '공적 마인드' 수준을 철저히 검토해 부적격자가 '필터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길 바란다.

2025-11-03 14:48:29 박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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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은행 이익의 착시

4대 시중은행이 올해 3분기까지 1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뒀다. 금리 인하 국면에서도 대출자산이 꾸준히 증가하며 이자이익이 실적을 견인했다. 표면상으론 '사상 최대 실적'이지만, 그 이면엔 불길한 신호가 감지된다. 연체율이 조용히 오르고 있는 것이다. 4대 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지난해 3분기 0.2%대에서 올 3분기 0.3%대로 상승했다. 국민은행은 0.28%→0.34%, 우리은행은 0.30%→0.36%로 뛰었다. 신한·하나은행도 소폭 상승했다. 문제는 가계대출 규제 속에 은행들이 기업대출로 방향을 틀면서 연체 증가의 중심이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은행의 기업대출 연체율은 0.36%로 총대출 연체율보다 0.03%포인트 높고, 신한·하나·우리은행도 모두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경기 회복이 더디면서 기업들의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주택담보대출 등은 담보가 있어 돈을 떼일 우려가 거의 없다. 하지만 기업은 다르다. 경제 상황에 따라 하루 아침에 문을 닫는 곳이 속출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이 '이익의 착시'를 낳을 수 있다. 경기보다 앞선 대출 확장은 단기적으로 실적을 끌어 올리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실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은행의 이익이 늘수록 금융의 본질적 역할이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생산적 금융'이란 명분 아래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단기 실적을 위한 선택이 되어선 안된다. 자금이 흘러가야 할 곳은 여전히 회복의 숨을 고르고 있는 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지역경제다. 숫자로는 잡히지 않는 '지속 가능한 금융의 품질'이 지금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 금융권이 진짜로 보여줘야 할 성과는 위험을 미리 예견하고 대비하는 능력이다. 이익의 곡선 뒤에서 조용히 오르는 연체율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경기와 금융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은행의 진짜 실적은 '얼마를 벌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는 '이익'보다 '내실'이, '확장'보다 '균형'이 중요할 때다.

2025-11-02 16:33:23 나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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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AI 강국의 필수 요건, 듣는 귀와 열린 마음

지난 28일 열린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테크 컨퍼런스'의 세션 중 하나인 '시스템반도체 기술포럼'에서는 한국의 AI(인공지능) 경쟁력에 대한 흥미롭고도 역설적인 진단이 나왔다. 한국 사회의 단점으로 자주 지적되던 '다혈질적인 성격', '빨리빨리 문화', '관 주도 생태계'가 오히려 AI 산업 성장에 최적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평가였다. 패널로 참석한 국내외 빅테크 및 AI·반도체 스타트업 관계자들도 이러한 분석에 깊이 공감했다. 네이버클라우드 이동수 전무는 "문제점을 듣고 개선책을 즉각 반영하는 젠슨 황의 다혈질적인 기질이 엔비디아 혁신의 원동력인데, 한국인은 그보다 더 빠르고 성격이 급하다"며 "AI 혁신 속도전에서 우리가 가진 잠재력은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김형준 스퀴즈비츠 대표는 "한국만큼 반도체를 로우 레벨부터 서비스 레벨까지 독자적으로 다룰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더해져 AI 비즈니스를 전개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노타 AI 김태호 CTO도 "메모리와 반도체 중심의 산업 기반에 정부 주도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결합된 구조는 한국만의 특수한 강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탄탄한 기반에도 불구하고 'AI 강국'이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멀게 느껴진다. 현장 전문가들이 지목한 가장 큰 장애 요인은 '소통의 부재'였다. 이 전무는 "정부의 드라이브는 큰 동력이지만, 반도체 공급자들이 수요 기업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며 "좋은 말만 할 게 아니라, 하루를 통째로 써서라도 끝장 토론을 통해 '이건 꼭 해보자'는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AI 반도체 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안착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픈 마인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김 CTO는 "솔직히 다 까놓고 욕을 먹더라도 서로 이야기하며 치고 나갈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그런 문화가 자리 잡으면 한국이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의 선두 주자로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년 안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로 '공개-피드백-개선'의 순환 구조를 가속하는 일을 꼽았다. 김 대표는 "AI 반도체의 성능을 평가하고 비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두들겨 맞을 걸 알면서도 과감히 제품과 서비스를 공개하고 개선하는 문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비옥한 토양에 심은 식물이라도 빛과 물이 부족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AI 강국으로 가기 위해선 기술 경쟁력만큼 '듣는 귀'와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는 현장의 조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2025-10-30 16:35:0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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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실손24, ‘빨리’보다 ‘명확히’

실손 청구 전산화 '실손24' 2단계가 지난 25일 문을 열었다. 병원 창구 방문·서류 발급 없이도 청구가 가능하니 '원터치 편의'만 보면 혁신이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버튼은 생겼지만, 회로는 아직 헐겁다. 10월 21일 기준 실손24 연계 요양기관은 1만920곳으로 전체의 10.4%에 그친다. 단계별로 보면 1단계 대상인 병원·보건소는 54.8%로 절반을 넘겼지만 2단계의 핵심인 의원·약국은 6.9%(6630곳)다. '확대 시행'과 '낮은 참여'가 동시에 존재한다. 제도의 취지와 한계는 법 문구에 담겨 있다. 법은 '의료기관이 환자 요청 시 청구 서류를 전자적으로 전송할 수 있게 한다'고 정한다. 강제 처벌로 밀어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표준을 깔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모델이다. 전송대행기관은 보험개발원이 맡는다. 표준과 운영 주체는 정해졌지만 현장 적용의 마찰면을 줄이는 설계는 아직 진행형이다. 의료계의 반론은 '편의'가 아니라 '책임'의 언어로 나온다. 개인정보 보호, EMR(전자의무기록) 연동·유지보수 비용, 업무 부담 등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를 묻는다. 참여율이 낮은 이유가 '비협조'만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정책의 선의와 현장의 현실 사이에 남은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전산화는 신뢰를 갉아먹는 규범이 될 수 있다. 해법은 기술이 아니라 운영의 규칙을 정비하는 일이다. 요양기관·EMR업체·보험사가 비용 분담에 대한 원칙을 분명히 합의할 필요가 있다. 표준 API와 인증·접근권 관리(누가 어떤 정보에 접근하는지)는 규칙으로 공개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용 편의는 네이버·토스 등 플랫폼 연계로 높일 수 있지만, 인센티브는 정보보호와 분쟁 예방 원칙을 전제로 신중한 설계가 요구된다. '빨리'보다 '명확히'가 먼저다. 실손 전산화는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의 힘겨루기가 아니다. 소비자 편익, 진료 현장의 안전, 데이터 주권, 비용의 공정 분담이 동시에 맞물려야 굴러간다. 당국은 11월부터 네이버·토스 등 대형 플랫폼에서 실손24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예고했다. 다만 속도보다 신뢰가 먼저다. 버튼은 이미 눌렸다. 이제는 회로의 신뢰를 설계할 차례다.

2025-10-29 14:58:07 김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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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트럼프의 각본

얼마 전 해외의 한 음식점에서 미국인 부부와 합석을 하게 됐다. 우연한 기회였는데 손님들이 빙 둘러 앉는 철판구이 집이었던 탓이다. 회갑쯤 돼 보이는 부부는 시애틀에서 왔다며 말을 걸어 왔다. 기자도 스타벅스 1호점을 언급하면서 대화를 이어 갔다. 부부는 딸의 남자친구 얘기까지 늘어놓는 등 서글서글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대뜸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 왔다. 이에 살짝 웃음만 짓고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영어도 짧거니와 남의 나라 대통령에 대해 평가하기가 좀 그랬다. 부부는 트럼프를 안 좋게 말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상호관세 얘기를 꺼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에 화가 난다고 했다. 고개로만 살짝 맞장구 쳐 줬는데 남북 관계를 묻는 등 한국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남편은 남미 태생의 이민자였다. 자국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전형적인 앵글로색슨인 부인이 더 조목조목 짚고 있었다. 라틴계 이민자들과 대립각 세우는 트럼프. 기자는 부부의 이야기에 십분 공감했다. 상호관세의 경우, 우리나라에 매기려는 관세율 수준이라든지 대미투자 요구라든지 모두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참 재미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예측 불허의 발언과 행동이 주는 쾌감도 있다. 진부하지 않은, 드라마틱한 부분에 가끔 끌린다고 할까. 한반도 문제에 트럼프보다 적극 행보를 보인 미국 대통령은 없다. 그가 추구하는 바가 다른 데 있을지언정 한국으로선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다.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게 될지 이목이 쏠린다. 별 성과 없더라도 북미정상회담은 일단 성사되고 보는 게 우리에겐 이득이다. 단절된 남북 대화 복원에 백악관이 나서 주겠다는 것. 백번 반길 일이다. 단, 관세협상은 끝까지 신중했으면 좋겠다. 동맹을 떠나, 달라는 대로 주는 건 굴종이다. 굳이 경주 APEC정상회의 폐회 전 타결·서명해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가 29일 한국을 찾는다. 그가 쓰는 '드라마'의 결말이 사뭇 궁금하다.

2025-10-28 15:43:54 김연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