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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OLED, 국내 디스플레이의 산업의 보루

한때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의 무대 위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낸 건 한국이었다. 그러나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업체 BOE를 비롯한 후발 주자들이 저가 공세로 시장을 장악해 LCD 주도권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됐다. 이에 맞서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차세대 기술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전장에서 다시 격차를 벌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K-디스플레이 2025' 전시회는 이 같은 흐름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삼성 디스플레이는 혼합현실(XR) 기기용 초미세 올라도스(OLEDoS), 마이크로 LED 워치 등 혁신 제품을 공개했다. LG디스플레이는 4세대 OLED 기술이 적용된 83인치 OLED 패널을 선보였다. 4세대 OLED 기술은 업계 최초로 빛의 삼원색(적·녹·청)을 모두 독립된 층으로 쌓은 '프라이머리 RGB탠덤' 기술을 기반으로 최대 4000니트 밝기를 달성했다. 이처럼 OLED는 고부가가치 기술로 중국의 단가 경쟁을 방어할 수 있는 핵심 키로 주목받고 있다. BOE가 삼성디스플레이와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며 미국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린 점도 국내 디스플레이 산업에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2023년 10월 삼성디스플레이는 OLED 기술 관련 자사 영업비밀을 BOE가 부정하게 도용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예비판결문에 따르면 BOE는 삼성디스플레의 핵심 직원들을 고용하고 제조 장비 업체에 접촉해 기술을 베꼈다. ITC는 예비판결문에서 "BOE는 자사의 OLED 연구개발(R&D)에 투자한 금액을 증거로 제시하지 못했다"며 "삼성디스플레이의 전직 직원과 영업비밀의 도움 없이 OLED를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타임라인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ITC는 BOE에 중국 본사와 미국 현지 법인 등의 미국 내 마케팅·판매·광고 등을 모두 금지해 BOE의 미국 내 영업활동을 사실상 하지 못하도록 했다. 최종 판결은 오는 11월 중 이뤄질 전망이다. OLED전쟁은 단순한 패널 싸움이 아니라 국가의 기술 자립과 산업 전략이 맞물린 대결이다. LCD를 내줬다고 해서 산업 전체를 포기할 수 없다. OLED는 반드시 지켜야 할 최후의 방어선이다. /차현정기자 hyeon@metroseoul.co.kr

2025-08-19 16:38:39 차현정 기자
[기자수첩] 지방 건설투자 방안, 마스터키는 아니지만

"침체된 지방 건설경기의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에 중점을 뒀다." 정부가 지난 14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한 지방 중심 건설투자 보강방안의 메시지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마련한 이번 안은 지방 부동산 수요를 보완하고 사업 지연과 유찰을 막음과 동시에 건설업계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한다. 정책 내용은 낯설지 않다. 이미 여러 차례 반복돼온 대책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이걸로 지방 경기가 살아나겠느냐"는 식으로 삐딱하게 볼 일 만도 아니다. 건설경기는 본래 경기 전체 흐름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정부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 자체가 의미가 있다. 대책은 다섯 가지다. 특례 적용 범위를 넓힌 '세컨드홈' 세제 지원 확대는 인구감소지역 주택 매입을 유도하려는 조치지만 별장·주말농장 같은 성격이 강해 효과가 지역별로 제한적일 수 있다. 매입형 10년 민간임대 복원 역시 민간 사업자의 임대·시세차익 목적 때문에 전 지역에서 균등한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 보다 직접적인 카드는 지방 악성 미분양 취득 시 세제 완화다. 하지만 무주택자가 움직일지는 불확실하고 오히려 다주택자나 리츠 자금이 단기 투자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공공 매입 확대도 마찬가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시장 전체를 떠받칠 수는 없고 일시적으로 여건이 악화된 우량 사업장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업계 호평이 많은 부분은 공공공사 유찰·지연 방지다. 사회간접자본(SOC) 예타 기준금액을 올려 사업 속도를 높이고 단가와 물가 반영 기준을 현실화해 적정 공사비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이다. 중소공사 낙찰하한율을 높여 덤핑 입찰을 줄이는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결국 이번 보강방안은 지방 건설경기를 단숨에 회복시킬 마스터키는 아니다. 다만 정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하겠다는 신호를 보냈다는 점에서 시장 안정에 의미가 있다. 중요한 건 이후다. 단기 처방에 그칠 게 아니라 지방 수요 구조와 체질을 어떻게 개선할 지가 관건이다.

2025-08-18 09:26:15 전지원 기자
[기자수첩] 부도 위기 넘긴 여천NCC,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국내 3위 에틸렌 생산업체 여천NCC가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넘겼다. 막판까지 몰린 상황에 한화와 DL이 긴급 자금을 투입함으로써 여천NCC는 연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태로운 시기에 두 대주주는 궁극적인 해법을 내놓기보다는 여천NCC 원료공급계약을 두고 서로의 잘못을 따지며 소모적인 싸움을 벌였다. 한화 측은 올초 여천NCC가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에틸렌, C4R1 등 제품을 시가보다 낮게 공급한 사실이 적발돼 1000억원대 과세 처분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96%가 DL과의 거래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이 불공정거래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거래 조건을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DL은 여천NCC의 가격 경쟁력 확보와 자생력 강화를 위해 단가를 낮춘 것이라며 오히려 한화가 자사에 유리한 조건만 고집해 여천NCC의 손실을 키웠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같이 양측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여천NCC의 경영 정상화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가격 책정과 정산 문제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다 보니, 호황기에는 덮고 넘어가던 갈등이 불황기에 고스란히 드러나며 위기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셈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 잘잘못을 따지고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공동의 의지가 우선이다. 여천NCC 사태는 '누가 더 잘못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갈 수 있느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정부가 석유화학산업의 구조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지금 한화와 DL은 대주주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두 대주주는 시장의 불신을 키우기보다는 여천NCC의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원관희기자 wkh@metroseoul.co.kr

2025-08-17 15:13:19 원관희 기자
[기자수첩]K제약주권, 광복 80년을 넘어선 새로운 독립의 과제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역사적인 그날이 올해는 80주년을 맞는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 위에서 대한민국은 격동의 근현대사를 이겨내고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80년 전 민족의 아픔을 함께했던 제약 기업 창업주들의 이야기는 보훈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준다.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박사는 기업가이면서 독립운동가였다. 유일한 박사는 당시 50세의 나이에 비밀 첩보 작전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해 고강도 군사훈련을 받으며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냅코 프로젝트는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 투입 3일을 앞두고 실행되지는 못했고 역사 속에 묻였던 이 노력은 유일한 박사 사후에 인정됐다. 동화약품의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고 민족을 살렸다. 활명수를 개발한 민병호 선생과 아들인 민강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 활명수를 판매해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다. 또 국내외를 연결하는 비밀 행정기관으로 연통부를 운영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원했다. 나라를 잃었던 시대를 살았던 창업자들의 시대적 소명과 독립 정신은 광복 후에도 전쟁과 가난, 질병에 시달리던 나라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됐다. 1945년 창립해 해방둥이 기업인 JW중외제약은 해방 직후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국내 제약 시장을 개척하며 열악했던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와 함께 'K제약주권'이라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국경을 봉쇄시켰고, 백신과 치료제 확보가 곧 생존 문제로 직결되는 것을 체험하게 했다. 첨단 기술이 접목된 바이오 산업에서 미국, 중국 등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서로를 견제하고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있다. 특정 조건과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인 신약개발 능력을 갖추는 것이 나라와 국민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역량이 됐다.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사회적으로 안정을 찾은 만큼, 비약적인 발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기업의 연구개발, 정부의 미흡한 정책 지원 등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들이 '생태계 조성'에만 그치지 않고 구체화되기를 바란다.

2025-08-13 16:14:24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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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반짝 호황을 넘어 지속 성장으로

올해 2분기 국내 방위산업 '빅4'가 세운 숫자는 기록적이다. 매출 9조4648억원, 영업이익은 1조2848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148%, 115% 증가했다. 이 같은 실적은 단순히 '좋다'는 수준을 넘어 시장 지형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국제 정세 변화가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란·이스라엘 갈등 고조, 중동의 안보 불안 등이 경쟁력 있는 신무기 도입 수요를 자극했다. 그러나 이 폭발적 성장세에는 리스크도 숨어 있다. 먼저 지정학 리스크 의존도다. 현재 수출 호황은 분쟁 지역과 군사적 긴장이 높은 시장에 집중돼 있다. 평화협정 체결이나 정세 완화는 수주 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 두번째는 공급망·생산 병목이다. 빠른 납기와 가격 경쟁력이 K-방산의 강점이지만, 수주량이 급증하면 부품 조달, 생산 인력, 물류 등 공급망 전반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국내 부품사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는 특정 부품의 공급 차질이 전체 납기 지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기술 고도화 경쟁이다. 해외 방산 강국들은 이미 차세대 무기체계 개발에 착수하고 있어 단기 수주에 안주하면 기술 격차가 다시 벌어질 수 있다. 과거 한국 조선업이 2000년대 중반 '수주 신기록'을 세운 뒤 글로벌 금융위기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고전했던 사례는 방산업에도 시사점이 크다. 당시 조선업계는 단기 호황기에 설비와 인력을 급격히 확대했지만, 수주 공백기에 구조조정의 후폭풍을 겪었다. 방산 역시 장기적인 시장 변동성을 고려한 '내실 경영'이 필수적이다. 방산은 단일 계약이 수조 원에 달하는 '빅딜 산업'이다. 단기 판매 성과를 넘어선 장기 전략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현지 생산과 유지·보수, 부품 국산화율 제고,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 한 번의 수출이 끝이 아니라, 20~30년에 걸친 후속 지원과 서비스가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 있다. K-방산의 질주가 '반짝 호황'에 그칠지, 지속 가능한 산업 생태계로 자리잡을지는 향후 몇 년이 시험대다. 지금 필요한 건 계약 건수와 매출액의 기록 경신이 아니라 그 속도를 뒷받침할 구조적 체력이다. 성장을 견인하는 엔진이 국제 정세라는 외부 변수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고 내실을 다지는 전략적 인내가 요구된다. 기록을 세우는 건 빠를 수 있지만, 기록을 지키는 건 다른 차원의 능력이다. K-방산의 다음 과제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이승용기자 lsy2665@metroseoul.co.kr

2025-08-11 16:07:53 이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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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제는 정부가 답할때…이재용·정의선·김동관 '물밑 외교'

"국내 기업들이 순탄하게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관세 등 지정학적 리스크 뿐만아니라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상법과 노조법 개정 등의 현실에 고심하는 재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지난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한미 관세 협상을 위한 정부의 활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예정에 없던 방미길에 올랐다.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상호관세는 25%에서 15%로 낮아졌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협상 결과에 정부와 재계의 협력이 주효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식 협상 테이블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한국의 주력 산업을 이끄는 총수들이 현지에서 '물밑 외교'를 펼치며 미국 측과 또 다른 접점을 만든 것이다. 정부가 미국측에 제시한 협상안이 정책 논리에 그치지 않고 실물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어 미국 측의 신뢰도 높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이재명 정부도 기업들의 발빠른 대응에 감사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최근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업들 기 살려서 좋은 나라 꼭 만들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정책을 보면 기업하기 힘든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법인세 인상에 이어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과 상법 2차 개정안 등 패키지 규제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기업인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고 상법 2차 개정안은 경영 활동을 위축시켜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어렵게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업들은 그야말로 '벼랑끝'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경제형벌합리화태스크포스 등을 가동하며 '친(親)기업 정책 보따리'를 강조하지만 기업들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의 위기 상황에 재계 총수들이 적극적으로 물밑 외교를 펼친 만큼 정부도 이에 대한 화답을 해야할 시기다. 나라경제와 산업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현명한 답을 내놓길 기대해 본다.

2025-08-10 11:23:39 양성운 기자
[기자수첩] '400조 땔감', 왜 '불장' 두고 망설일까

국내 증시가 '불장'이다. 시장에는 다시 온기가 돌고, 자금은 넘쳐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불에 '땔감(자금)'이 생각만큼 투입되지 않는 모습이다. 국내 증시를 둘러싼 유동성이 3년 반 만에 정점을 찍었다. 지난 4일 기준 투자자예탁금은 70조원을 넘어섰고, 하루 단위 이자가 붙는 CMA(종합자산관리계좌)는 90조원을 돌파했다.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은 230조원을 상회하며, 연초 대비 35% 넘게 늘었다. 총 400조원에 육박하는 대기자금은 자산시장의 방향만 정해지면 언제든 움직일 태세다. 정부는 자본시장 회복 흐름에 대응해, 고배당 기업의 배당소득에 대해 분리과세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명목상으로는 진전이다. 하지만 세율 구조와 설계 방향을 들여다보면, 기대했던 장기투자 유인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득 구간별로 차등 적용된 세율은 최대 35%까지 올라간다. 이 구조에선 오히려 주식을 오래 들고 가며 배당을 받는 이들이 단기 양도차익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경우가 생긴다. 고위험을 감수한 장기투자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취지와 어긋난다. 문제는 제도의 설계 방향이다. 정부는 고배당 기업에 대해서만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배당을 많이 하는 기업을 장려하겠다는 의도지만, 실제 투자자가 해당 종목을 얼마나 오래 보유했는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장기 투자했는가'보다는 '어떤 기업이 얼마나 배당했는가'에 기준을 둔 구조다. 투자자의 행위보다 기업의 조건이 중심이 된 셈이다. 해외에선 접근 방식이 투자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미국은 '적격 배당(Qualified Dividend)' 제도를 통해 일정 기간 이상 보유한 투자자에게 최대 20% 수준의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배당에 대한 우대는 기업 정책이 아니라 투자자의 시간과 리스크 감수에 따라 부여된다. 결국 중요한 건 '세금이 얼마나 줄었느냐'가 아니라 '투자자들이 시장으로 들어올 이유가 생겼느냐'다. 장기 보유와 배당투자에 과세가 그에 걸맞는 보조를 맞추지 못한다면, 400조원 가까운 대기자금도 쉽사리 증시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분리과세는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하나의 신호다. 주식을 오래 보유해도 예금보다 불리한 세금 구조라면, 누가 배당주에 머무르겠는가. 불은 이미 붙었다. 이제 필요한 건,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2025-08-07 15:24:55 허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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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민연금 사각지대

연금개혁 시계가 움직이고 있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되지 못했지만, 군복무 크레딧 확대와 육아휴직자 연금 지원, 사회 초년생 연금 가입 등 다양한 입법 시도가 등장했다. 계속된 소득대체율 하향으로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부족해진 만큼 가입 기간을 늘려 은퇴 이후에 지급받을 금액도 늘리기 위해서다. 수 차례의 연금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은 낮아졌지만 국민연금은 여전히 가장 확실한 노후준비수단이다. 기대 수익률은 여전히 사적 연금의 몇 배에 달하며, 최소 가입 기간을 충족했다면 사망시까지 연금을 계속해서 지급받을 수 있다. 지급 또한 국가가 법으로 보장한다. 국가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월급을 받는 근로자가 국민연금에 가입하도록 강제한다. 그러나 배달기사나 대리운전, 학습지 교사와 같은 '1인 비임금근로자'는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자영업자와 같이 '지역가입자'로 분류되며, 연금공단에 소득을 신고해 보험료를 납입한다. 고용주가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는 직장인 가입자와는 달리 보험료도 전부 부담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특수형태근로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고용계약 없이 일하는 근로자는 850만명에 육박한다. 근로 형태 다양화로 특수근로자가 늘고 있지만, 특수근로자 가운데 연금보험료를 납입하는 비중은 10명 중 4명에 불과하다. 소득이 일정하지 않고, 보험료율도 직장인의 2배에 달해 납입이 부담돼서다. 지역가입자는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부담도 더 크다. 현행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은 9%이지만, 지난 3월 연금개혁에 따라 오는 2033년에는 보험료율이 13%까지 오른다. 직장인 가입자는 이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2%만 부담하면 되지만, 임의가입자는 소득의 4%를 더 내야 한다. 한 달에 300만원을 번다면 매달 12만원을 더 내야하는 셈이다. 지역가입자들이 국민연금 가입을 꺼릴수록 노후는 불안해진다. 국민연금은 최소한 10년을 납입해야 연금 형태로 지급받을 수 있다. 오래 가입할수록 지급받는 금액도 더 크다.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국회에서는 현재 특수형태근로자와 플랫폼노동자를 직장인 가입자로 재분류하는 법안이 계류중이지만,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영세 사업장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정부와 국회는 규모가 큰 플랫폼에서 해당 방안을 우선 적용하거나, 정부가 제도 정착에 앞서 일정 기간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2025-08-06 11:19:43 안승진 기자
[기자수첩] 韓 증시, 검은 돈의 '쇼장'인가

최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사기적 부정거래 혐의 의혹을 받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인물의 자본시장법 위반이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하이브는 상장 과정에서 기존 주주들에게 상장이 지연될 것처럼 기망했지만, 결국 상장에 성공했고 일부 관련자들만 차익을 실현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하이브의 공모가는 '쇼(Show)가'나 다름없게 된다. 한국 증시는 과연 자금 조달의 장인가, 아니면 '쇼를 위한 무대'인가. '먹튀 기업공개(IPO)'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상장 직후 대규모 구주매출, 수요예측 당시 뻥튀기된 공모가, 기관·개인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 그리고 상장 후 이어지는 급락세 등이 도식처럼 반복된다. 기업들은 상장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하지 않아도 수천억원을 챙기고, 운이 안 좋은 종목에 '밸류에이션 쇼'를 믿고 들어온 개인 투자자들은 패닉셀(공포 매도)만 남긴다. '정보를 가진 자'와 '묻지 마로 들어간 자'의 운동장이 심각하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본시장은 신뢰 위에 세워져야 한다. 그 신뢰는 상장기업의 투명한 정보 제공과 시장 참여자 간의 공정한 기회 분배에서 비롯된다. 개미(개인 투자자)들만 모르는 '선행매매'도 사방에 존재한다. 최근에는 기자들이 업무적인 유리함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면서 문제가 됐다. 취재 과정에서 얻게 된 정보 등을 이용해 주식을 먼저 매수한 뒤, 호재성 기사를 게시해 매수세가 유입되면 고점에서 매도하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이로 인해 전·현직 기자 20여명이 금융당국의 수사를 받게 됐다. 최전선의 이해관계자인 증권사들의 위법·부당 행위들도 적지 않다. 가장 최근에는 NH투자증권 임직원의 미공개중요정보이용 금지 위반 혐의가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메리츠화재 전·현직 임원들도 자회사의 합병정보를 미리 파악해 주식을 사들여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22년 11월 메리츠금융이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해 합병한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행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실상 믿고 있던 인물들의 잡음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검은 돈은 쇼를 좋아한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신뢰를 자산으로 움직이는 공간이지, 연출된 서사에 박수를 보내는 극장이 아니다. 주식시장이 쇼장이 되면, 결국 모두가 무대를 잃게 된다. 우리는 이제 자본시장이 '누구를 위해 작동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되물어야 한다. 말뿐이 아닌 실현되는 '공정한 투자'를 위해 시장의 조명이 무대 뒤로 향하길 바란다.

2025-08-05 13:12:19 신하은 기자
[기자수첩] ‘수출’ 가장한 부가세 회피

물건은 분명 국내에서 만들어졌고, 결국 다시 국내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그런데도 '수출'과 '해외직구'라는 외관을 씌운 덕분에 부가가치세(부가세) 10%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최근 일부 국내 판매자들이 중국 온라인몰과 소액면세 제도를 악용해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법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든 이들은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국내 사업자 위에 올라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이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이들의 판매 방식은 이렇다. 국내에서 제품을 중국으로 '수출'한 뒤, 이를 중국 현지 온라인몰을 통해 국내 소비자에게 '해외직구'로 다시 판매한다. 국내 사업자가 '관세법'에 따른 '내국물품'을 '위탁판매수출'로 외국에 반출하고, '외국물품'이 된 물품을 국내 거주자가 미화 150달러 이하 자가사용 소액물품으로 수입하도록 거래하는 경우, 이 사업자는 거래의 실질과 다른 수출입 외관을 통해 부가가치세 부담을 회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가격 인하에 따른 수요 증가로 추가적인 경제적 이익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은 중국 온라인몰을 통해 소액 수입 면세 제도를 악용함으로써 동일 상품을 정상적인 국내 유통 채널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소비자가 한국에서 만든 제품을 중국 온라인몰을 거쳐 다시 한국에서 받는 아이러니한 구조에서, 누군가는 부가세 10%를 회피해 가격경쟁력까지 확보하는 불공정이 벌어지고 있다.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있는 국내 유통·제조 사업자들만 역차별을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결국 소비자는 가격이 낮은 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고, 세금을 성실히 낸 기업은 시장에서 밀려나게 된다. 세금 회피를 통해 얻은 마진으로 광고를 강화하거나 마케팅 비용을 추가로 투입하면, 소비자 선택은 더욱 왜곡된다. 장기적으로는 성실 납세자들이 설 자리를 잃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공정 과세와 건전한 유통 생태계를 위해 실질을 외면한 외관을 바로잡아야 할 때다. /신원선기자 tree6834@metroseoul.co.kr

2025-08-04 15:14:38 신원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