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판'된 ETN…뒤늦은 '발행한도 확대·거래 중지' 대책
-'투기판'된 ETN -금감원, 사상 첫 소비자경보 '위험' 발령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의 '유가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20달러 아래로 떨어지자 '역사적 저점'으로 생각한 투자자들의 과감한 투자가 시작됐다. 원유 관련 상장지수증권(ETN)에 투자자의 매수세가 몰렸고, 증권사의 공급 물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ETN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 이에 따라 한국거래소는 매매거래 정지라는 대책을, 금융감독원은 최고 수준의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하지만 투기판으로 변한 원유시장의 '과열'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일 종가 기준 주요 레버리지(상승장에서 수익을 냄) ETN 상품의 괴리율은 35.6~95.4%로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 1000원짜리 상품이 1900원에… 종목별로 보면 삼성 레버리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ETN의 괴리율이 종가 기준 95.4%로 가장 높았다. 이는 1632원에 거래돼야 하는 ETN이 3190원에 거래됐다는 의미다. 또 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75.9%, NH의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은 73.4%,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은 35.6% 괴리율이 발생했다. ETN은 주식, 채권, 원자재 등 기초지수 수익률과 연동되도록 증권회사가 발행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상장지수펀드(ETF)가 자산운용사에서 만든 것이라면 ETN은 증권사가 만든 파생상품이다. 원유 ETN은 원유 가격과 연동되는 상품인 것이다. ETN의 가격은 기초자산을 기준으로 증권사가 유동성을 공급해 조정한다. 즉, 증권사가 유동성공급자(LP)다. LP는 매수량이 급증하면 물량을 공급하고, 매도량이 늘어나면 물량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적정가격을 유지한다. 문제는 최근 유가 ETN에 매수세가 급격히 몰리면서 시작됐다. 유가가 역사적 저점이라고 판단한 투자자들이 대거 유가 레버리지를 통해 '통큰 베팅'을 한 것이다. 특히 ETN은 ETF에 비해 레버리지 상품이 다양해 이같은 투기 자금이 크게 몰렸다. 실제 지난 3월 삼성, 신한, NH, 미래에셋 등 4개사가 판매한 레버리지 ETN에 개인은 3800억원어치 순매수세를 보였다. 지난 1월 278억원 순매수세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무려 1266.9% 증가했다. 이처럼 매수세가 급증하면서 LP의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물량이 부족한 가운데 매수 호가가 높아지면서 적정 가치가 1000원인 ETN이 1900원까지도 높아지는 상황에서 LP는 손을 쓸 수가 없었다. 물량을 공급해내지 못해서다. 이에 따라 ETN 가격의 괴리율은 점점 높아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ETN 시장에서 지금같은 매수세가 몰린 적은 없었다"면서 "아무리 물량을 구해서 넣어도 금세 빠져나가 가격 조정의 효과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증권사들은 최대 8배 수준의 발행한도 확대에 나섰다.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지난달 ETN의 발행한도를 각각 2조원, 4조원 늘리는 내용을 담은 신고서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 뒤늦은 대책…최고등급의 소비자 경보 하지만 증권사가 발행한도를 늘리는데 15영업일이 걸린다. 이에 따라 신한금투와 삼성증권의 발행한도가 늘어나는 시점은 각각 20일, 22일 이후다. 그 전까지 ETN의 괴리율을 해소하는 방법은 투자자들이 자생적으로 수급을 조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8일부터 ETN의 괴리율이 일정수준 확대될 경우 매매거래정지 조치를 시행키로 했다. 정규시장 매매거래시간 종료시 실시간 지표가치를 기준으로 산출한 괴리율이 5매매거래일간 연속해 30%를 초과하는 경우다. 즉, 9일부터 15일까지 5일동안 괴리율이 30%를 넘는 경우 다음날인 16일 관련 상품의 매매거래가 중지되는 방식이다. 아울러 금감원은 이날 레버리지 WTI 선물 ETN 관련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금융감독원이 소비자경보 제도를 도입(2012년 6월)한 이후 최고 등급(위험)의 소비자경보를 발령하는 첫 사례다. 금감원 관계자는 "괴리율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레버리지 ETN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어 "오히려 시장가격이 지표가치에 수렴해 정상화되는 경우 큰 투자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ETN의 괴리율이 일정 수준 이상 벌어지면 자동으로 해당 상품을 청산하게 되어있다"면서 "시장을 만든 거래소, 제도를 만든 금융위원회가 이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발생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더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엄지기자 sonumji301@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