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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의 와이 와인]<291>와인잔에 대한 재미있는 실험…"글라스는 과학이다"

술을 가져가도 별도의 비용을 받지 않는 '콜키지 프리' 식당의 유일한 단점은 잔이다. 돈을 안내면 서비스도 없다. 막잔을 줘도 불평할 수 없다. 식당에 술을 가져가 마시는게 보편적인 중국은 고급 식당이 아닌 이상 백주를 가져가도 물잔, 와인을 가져가도 물잔이 기본이다. 투박한 물잔엔 맥주도 맛이 없는데 하물며 와인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 오니 와인잔을 내주긴 하는데 안깨지게 두툼한 잔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잔에 마시는지에 따라 와인의 맛이 진짜 달라질까. 일단 심미적인 부분에서는 와인잔의 압승이다. 잔은 투명하고, 선은 유려하고, 지탱하는 다리는 가늘고 길다. 슈피겔라우 장 밥티스트 아시아태평양 부사장은 "한 잔의 와인을 즐기는데 있어서는 심미적 만족이 있어야 한다"며 "무겁고 투박한 잔이라면 멋들어진 경험을 할 것이란 기대를 주지 못하지만 멋진 와인잔은 그런 감정을 먼저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슈피겔라우는 독일의 와인글라스 브랜드다. 같은 회사 내에 브랜드 리델이 프리미엄 라인이라면 슈피겔라우는 자동화 생산으로 뛰어난 기능성과 가성비를 가진 라인이다. 십여년 전만 해도 와인잔은 소위 '호레카(호텔·레스토랑·카페)'에서만 썼지만 지금은 집에서도 다들 와인잔에 와인을 마신다. 가성비의 슈피겔라우가 크게 각광을 받은 이유다. 밥티스트 부사장은 "와인잔 산업은 늘 변화를 거듭해왔다. 기술과 혁신에 따른 것이기도 했고, 양조 기술 발달과도 궤를 같이 했지만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도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왔다. 팬데믹 이후 최근 몇 년 간 가장 큰 변화라면 업장보다 최종 소비자들이 와인잔을 많이 찾는다는 점으로 작년에 출시한 데피니션과 이번 하이-라이트 라인 모두 그런 흐름속에서 선보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제 본격적인 비교 실험이다. 잔은 야외에서 자주 쓰는 플라스틱 투명컵과 하이-라이트 유니버셜, 하이-라이트 보르도, 하이-라이트 버건디다. 매번 90도 가까이 기울여 와인을 잔에 도포해 향과 맛의 차이를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비교는 와인잔 대 플라스틱 컵이다. 와인은 화이트인 '앙리 부르주아 상세르 블랑', 잔은 하이-라이트 유니버셜이다. 이번에도 와인잔이 코에서나 입에서나 압도적이다. 재질인 크리스탈과 플라스틱의 차이가 아니라 모양 때문이다. 튤립같은 와인잔은 향을 모아 아로마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컵은 와인을 내벽에 모두 도포해도 뻗어나가는 일자 각도라 향을 거의 느낄 수가 없었다. 와인이 입 안에서 어느 부분에 떨어지는지도 중요하다. 혀 끝은 단맛, 중간은 신맛과 짠맛, 가장 안 쪽은 쓴맛을 주로 느낀다. 기다란 와인잔으로 마시려면 자연스레 고개를 들게되고 와인은 혀의 앞 부분에 떨어진다. 산미가 충분한 소비뇽 블랑 와인이 단맛을 먼저 감지하는 곳에 떨어지니 균형이 맞춰진다. 반면 컵은 혀 중간 부분에 바로 와인이 들이닥치니 같은 와인이라도 신맛이 강하고 과실미가 덜 느껴졌다. 그럼 같은 와인잔이라도 쓰임새나 모양에 따라 맛이 달라질까. '부샤 빼레 에 피스 본 뒤 샤또 1등급'을 3개의 와인잔에 모두 따른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피노누아 품종 와인으로 붉은 과실 풍미에 우아한 레드와인이다. 결과부터 말하면 와인잔에 따라 맛과 향이 달랐다. 베스트는 섬세한 아로마의 레드 와인을 위해 만들어진 하이-라이트 버건디다. 넓은 볼의 충분한 공간이 피노누아의 미묘한 뉘앙스 잘 느낄 수 있도록 했고, 역시 와인이 혀 앞부분에 떨어지면서 타닌은 조밀하게 느껴지고 둥글고 긴 여운이 남았다. 다음은 같은 레드 와인이니 하이-라이트 보르도가 괜찮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화이트 와인을 위한 잔으로 여겼던 하이-라이트 유니버셜이다. 버건디보다는 좁은 볼로 아로마는 다소 밋밋했지만 입 안에서는 피노누아의 매력이 충분히 발현됐다. 반면 하이-라이트 보르도는 과실미는 약해졌고, 드라이하고 쌉쌀한 맛이 더 느껴졌다. 와인잔이 좀 더 직선으로 뻗어있다보니 쓴 맛을 느끼는 혀 뒷부분이 역할을 하면서다. 이 정도면 와인잔은 과학으로 인정이다. 밥티스트 부사장은 "현실적으로 집에서 유용하게 쓸 한 가지만 고르라면 유니버셜 글라스지만 보다 와인을 잘 즐기고자 하면 와인 종류에 따른 적정한 와인을 구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와인잔은 식기세척기에서도 사용할 만큼 내구성이 좋아졌지만 잘 관리하면 더 오래 쓸 수 있다. 와인잔을 닦을 때 양쪽 끝을 잡으면 와인볼과 다리를 잇는 중간 부분이 뚝 끊어지기 쉽다. 너무 차가운 와인을 데울 때처럼 손가락 사이에 다리를 끼우고 닦으면 안전하다.

2025-07-10 10:39:46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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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윤열의 푸드톡톡] 인공혈액과 촉각로봇 기술

매년 <메트로경제신문>이 개최하고 있는 “푸드이노베아션포럼”이 지난 달 25일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맛의 알고리즘, AI가 만드는 음식의 미래”였다. 필자는 “푸드에 테크를 더(+)하다”라는 타이틀로 강연을 마쳤다. 강 연을 준비하면서 필자가 산 업체 재직시절 개발했던 국내 유명 브랜드의 조미식품 개발과정을 인공지능과 더불어 진행하였다. 레시피 개발은 물론 한국인이 선호하는 맛의 조합과 원료의 전처리에 따른 품질특성의 차이를 계수화하여 도표까지 제시해 주었다. 프롬프팅의 적합도에 따라서 인공지능(보조연구 원)의 결과 값은 달라진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본격화된 인공지능(AI) 시대는 식품산업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식물성 재료 기반의 대체육(plant-based meat) 개발은 지속가능한 식량 확보와 동물복지 측면에서 중요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대체육이 소비자에게 진짜 고기처럼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맛과 질감'이라는 두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 장벽을 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 생명공학, 디지털 센서에 기반한 융합기술이 필수적이다. 미국의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s) 창업자 패트릭 브라운 박사는 컴퓨터 생물화학자로서 2009년 교수직을 사퇴한 후에 '동물 농업이 지구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줄인다'는 명제 하에 2011년 임파서블푸드를 설립했다. 그는 IT와 BT지식을 배경으로 대체육 개발 과정에서 고기 풍미의 핵심은 혈액이라고 판단했다. 혈액의 주성분이 헤모글로빈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콩과식물의 뿌리에서 식물성 헤모글로빈 분자물질을 추출하여 효모를 유전공학적 발효과정을 거쳐 업스케일 하였다. 자연상태에서 추출하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었기 때문이다. 브라운 교수는 "육류가 이토록 고기처럼 느껴지는 이유중 약 95%는 헴(Heme)분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기 맛을 구현하는 핵심 요소로 헴을 지목했는데, 헴은 혈액안에 철분분자를 함유하고 있으므로 고기의 붉은색과 특유의 풍미를 나타낸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도 주목할 만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정부는 'K-블러드 파밍 프로젝트'를 통해 세포기반의 인공혈액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적혈구에서 유래한 헴 단백질의 생산을 위한 줄기세포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이러한 인공혈액 기술은 의료용을 넘어 식품용으로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알파폴드와 로제타폴드 같은 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기술과 결합하면, 대체육에 적용할 수 있는 헴이나 이와 유사한 풍미의 분자구조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AI는 식물성 단백질의 입체구조를 재구성하여 고기의 풍미를 지배하는 입자수준의 반응을 예측하고 인공혈액의 헴 성분을 최적농도로 배합하여 실제 고기와 유사한 풍미 실현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식품업계에서 신제품을 개발하거나 품질을 개선하는 경우 식품의 식감, 조직감, 씹힘 정도 등은 대부분 관능평가(Sensory evaluation)에 의존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객관성과 재현성에 한계가 있다. 이에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나노코리아 2025'에서 촉각센서를 탑재한 로봇핸드기술을 공개했다. 이 기술은 인간의 손가락처럼 촉감, 온도, 압력 등을 감지할 수 있어서 식품의 조직감, 점성, 탄력성 등을 수치화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 로봇핸드에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결합하면 축적된 수많은 관능데이터와 비교하여 식품품질을 자동으로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고기의 씹힘정도나 조직의 결을 사람의 손처럼 감지하고, 그 데이터를 AI가 분석하여 "이 제품은 실제 고기와 92% 유사"라는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인공치아, 전자코, 전자혀가 개발되어 관능평가를 대체하듯이 촉감까지 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할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앞으로는 대체육 개발 과정에서 AI가 레시피를 설계하고, 로봇이 시제품을 평가하며, 인공혈액에서 유래한 헴 성분이 풍미를 완성하는 전 주기적 디지털 푸드개발 시스템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융합을 넘어 사람의 미각과 감각을 데이터화하여 공정을 표준화하고, 향후 지속가능한 고부가가치 식품산업 생태계로 확장될 수 있다. AI 시대에 푸드테크는 더 이상 '첨단'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인공혈액 기술로 풍미를 보완하고, 촉각로봇으로 식감을 판별하며, AI로 전체과정을 설계한다면 식품개발은 더 안전하고, 더 지속가능하며,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식탁을 바꿔놓을 것이다. AI기술의 진보는 곧 인류의 식문화 진화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이 맛을 알고, 로봇이 고기를 느끼는 시대", 지금 우리는 그 문턱에 서 있다. /연윤열 (사)인천푸드테크협회 사무총장

2025-07-09 15:45:30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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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신비한 심리사전] 액체 근대: 고정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뇌와 마음

독자들 중에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을 들어본 분이 있을 것 같다.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라는 분이 제시한 이 개념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를 딱 액체와 같은 사회라고 정리한다. 바우만은 과거의 '고체 근대' 즉, 명확한 역할, 고정된 가치, 안정된 직장과 관계로 대표되던 시대에서 이제는 모든 것이 흐르고, 녹고, 바뀌고 있는 시대가 지금의 현대라고 말한다. 사회적 관계도, 직업도, 정체성도 더 이상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우리는 그야말로 '흘러가는 세계' 위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쩌면 여전히 우리의 뇌는 그렇게 흘러가는 세계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뇌는 기본적으로 예측 가능한 환경을 선호하며 뭔가 반복되고, 안정적이며, 익숙한 것이 있을 때 뇌는 에너지를 덜 소모하고, 더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인지 절약 성향(cognitive miser)'이라고 부른다. 반복되는 루틴, 오래된 관계, 확실한 목표는 우리 뇌에 일종의 '에너지 절약 모드'를 제공한다. 사실, 임상 상황에는 이러한 인지 절약 성향을 일종의 치료적 틀로 제공한다.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내담자로 하여금 매일 루틴을 만들어서 반복적으로 꾸준하게 일상을 유지하도록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는 정신적 여력을 좀 더 창의적이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에너지로 전환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몇 천년을 버티는 조직이 바로 종교 단체이며 군대이기도 할 것 같다. 매우 짜여진 삶의 방식이 매우 답답하고 지루할 수 있겠지만 뇌로 하여금 내일 혹은 한달 혹은 10년 뒤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에너지를 절약해준다는 측면에서 인간의 경험 과학적인 현명함이 사회적 구조로 유지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거 같다. 액체 근대는 정반대이다. 고정된 것이 없고, 변화가 일상인 사회를 말한다. 회사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고, 인간관계는 메시지 하나로 끊어지기도 하며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른 브랜드를 달고 살아간다. 유동적이면서 변화가 무쌍 한 것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이런 환경은 뇌에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불안을 유발할 수 있고 부정적인 사건이 많은 사회에서는 이러한 흐르는 환경 때문에 분명히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불확실성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사람은 일상적인 상황조차 위협으로 느끼며, 만성적인 긴장 상태에 놓이고 이것이 공황이나 사회 불안 증상으로 경험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러한 적응의 어려움은 사람의 문제와 경험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 혹은 현재 사회가 액체처럼 흐르는 사회라는 환경 때문일 수 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시대에는 무엇이 '정상'인지조차 모호해졌다. 예전엔 단순했던 사회 환경은 우리에게 일정 정도의 가이드를 줬다. '좋은 직장', '괜찮은 사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대충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의 기준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문화적 혹은 개성적 자존감처럼 이야기 된다. 하지만 이 말을 잘 뒤집어 보면 이러한 선택의 개인적 자유가 사실은 그 실패에 대한 무거운 책임도 자기 혼자 져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선택은 늘 우리 몫이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도 위로보다는 '네가 고른 거잖아'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하는 것은 가벼운 관계와 빠른 전환을 택하기도 한다. 흐르는 현실이 주는 불안을 도파민의 짧은 흥분으로 둔하게 만드는 것이다. 채팅 앱에서 사람을 고르듯, 직업도, 취미도, 심지어 가치관도 스와이프하며 살아가며 그래서 모든 것이 '임시적'이고 '조건부'이며, 그 안에서 깊이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면서 행하는 행동을 통한 애착이나 소속감은 점점 희미해진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유동성은 우리가 새로움을 추구하도록 하는 도파민 시스템을 과도하게 자극하고 새로움에 대한 탐색 욕구는 본래 생존을 위한 중요한 메커니즘이지만, 요즘은 '지루함을 못 견디는 뇌'로 우리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액체 근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바우만은 명확하게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 거 같지만 그냥 아는 척 심리학적 적응 방식을 하나 제시한다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유연성(cognitive flexibility)이 그 하나가 아닐까 한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고, 새롭게 등장한 정보에 따라 사고방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이러한 유연성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역량이 되고 고정된 답이 없는 시대에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근데 막상 제안을 하고 보니 필자의 마음도 뭔가 액체처럼 흘러가는 듯 독자들에게 자신있게 말하기 힘들다. 역시 액체 근대 혹은 액체 현대를 살고 있는 나를 느낀다. /진성오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2025-07-07 11:29:37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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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형의 본초 테라피] '수박'이 여름 과일의 왕인 이유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무엇일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3년 식품소비행태조사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사과가 1위(15.1%), 그리고 수박이 2위(13.0%)를 차지했다. 늘 한두 손가락에 꼽힐 만큼 '수박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과일'이다. 특히 여름철이 아니면 제맛을 즐기기 힘든, 대표적인 여름 과일이다. 여름에 수박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맛 때문만이 아니다. 한여름 무더위에서 우리 몸을 지켜줄 만큼 건강에 좋은 음식인 이유도 있다. 서쪽에서 온 박, 서과(西瓜)라고도 불리는 수박은 고려 시대에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수박이 번갈(가슴이 답답하여 입이 마르고 갈증이 나는 증세)과 더위로 인한 독을 풀어준다고 전하고 있다. 몇 년 사이 여름만 되면 심각한 수준의 폭염과 열대야 때문에 온열질환자가 급증했다. 수박을 잘 챙겨 먹는다면 무더위를 이겨내고 온열질환을 예방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수박은 더위를 식히고 갈증을 해소해 주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영양소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리코펜이 있다. 리코펜은 토마토, 수박 등 붉은색을 띠는 과일이나 채소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천연 색소다.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는 카로티노이드의 일종으로, 세포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암이나 심혈관질환 등의 질병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 준다. 수박에 들어있는 항산화 성분은 리코펜만이 아니다. 사과, 딸기, 포도 등 인기 높은 과일에는 거의 없거나 소량만 들어있는 '베타카로틴'이 수박에는 풍부하다. 베타카로틴은 카로티노이드 계열에 속하는 물질로 항산화 작용을 하고 눈 건강, 피부 건강 유지에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 붉은 과육만이 아니라 하얀 속껍질 부분 또한 얇게 깎아 피부에 올려놓으면 진정 효과를 내고 톤을 밝게 해 준다. 이렇듯 수박은 맛도 맛이지만 여름철 피부 관리는 물론이고 무더위를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건강 과일이기도 하니 먹지 않을 이유가 없다.

2025-07-07 05:06:10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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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오 변호사의 콘텐츠(Content) 법률 산책] 버추얼아이돌의 아바타 모욕과 손해배상책임

K-POP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실제 인간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가상의 아바타로 활동하는 '버추얼 아이돌(virtual idol)'도 주목받고 있다. 버추얼 아이돌 시장은 2028년에는 전 세계 시장규모가 174억달러(약 25조 281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등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버추얼 아이돌의 활동은 보통 본체(사람)가 따로 있고, 본체는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 채 모션캡처 기술 등을 활용한 본체의 아바타 등을 통해서 그 활동이 이뤄진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아바타에 대한 모욕적 표현 등과 관련해 참고할 만한 하급심 판결(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5. 5. 14. 선고 2025가단50721 판결)이 선고돼 소개해 본다.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원고들은 버추얼 아이돌 그룹 P의 본체들이고, 피고는 SNS 등에서 아이돌 그룹 P나 그 멤버들에 대해서 수차례에 걸쳐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한 글, 영상 등을 게시한 사람이다. 원고들은 피고의 이러한 행위(이하 '본건 게시행위')를 문제 삼으면서 피고에 대해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위 소송에서 피고는 "아이돌 그룹 P는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에 불과하고 각 멤버의 실제 본체는 비공개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피고가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한 아이돌 그룹 P와 실제 본체들은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본건 게시행위의 피해자가 원고들로 특정됐다고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위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의 위 주장을 배척하면서 "모욕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하려면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는데, 반드시 사람의 성명이나 단체의 명칭을 명시하는 정도로 특정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성명을 명시하지 않더라도 그 표현내용을 주위 사정과 종합해 볼 때 피해자를 아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이 그 표시가 피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라면 피해자가 특정됐다고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또한 법원은 위 소송의 특수한 쟁점(아바타에 대한 모욕적 표현 등)을 고려해 "아바타는 현실의 사용자가 디지털 공간에서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가상의 표현물을 말한다. 형법상 모욕죄가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부적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다. 현실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융합된 메타버스(Metaverse) 시대에서 아바타는 단순한 가상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용자의 자기표현, 정체성, 사회적 소통 수단임을 고려할 때,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아바타에 대한 모욕행위 역시 실제 사용자에 대한 외부적 명예를 침해하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아바타를 사용하는 사람의 정체가 드러나 있고, 불특정 다수에게 아바타가 그 사용자와 동일시되고 있는 경우라면 아바타에 대한 모욕행위는 실제 사용자에 대한 모욕행위로 볼 수 있다"라고도 판단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원고들이 아이돌 그룹 P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은 매니지먼트사의 정책과 무관하게 불특정 다수에게 이미 알려져 있으므로 본건 게시행위의 피해자를 원고들로 특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서 피고의 원고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위 판결은 사람(본체)을 대신하는 아바타나 캐릭터 등이 널리 활용되고 있는 최근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사건 등의 피해자 특정이 문제되는 여러 동일 또는 유사사건에 참고할 만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5-07-06 10:59:40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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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의 와이 와인]<290>伊 풀리아 '리베라'…와인을 마시고 입맛을 다시다

<290>이탈리아 풀리아 '리베라' 최고의 와인이란? 비싼 와인도, 유명한 와인도 아니다. 바로 빈 병이 된 와인이다. 정말 직관적이지 않은가. 와인을 마시고 쩝쩝 입맛을 다시게 될 줄이야. 한 모금 더 하라는 신호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의 위상을 바꿔놓은 와이너리 리베라의 와인이다. 리베라의 오너 세바스티아노 데 코라토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최고의 와인은 첫 모금만 인상적이고 멈추는 와인이 아니라 차분하되 끝까지 비울 수 있는 와인"이라며 "리베라는 신선하면서 골격이 잡 잡혀 한 모금 마시고 '쩝쩝' 입맛을 다시며 어느새 한 병을 다 비우게 되는 와인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리베라는 이탈리아 풀리아에 위치했다. 사실 풀리아라는 지역은 낯설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밀은 물론 올리브 오일의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부라타 치즈가 유래한 곳이기도 하다. 와인 역시 풀리아가 이탈리아 전체 생산량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은 높지만 품질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벌크 와인이나 대량으로 내보내던 곳이었다. 와인은 농축된 과실로 묵직하면서 달콤했고, 한 모금은 맛있지만 금새 질렸다. 이런 풀리아에서는 처음으로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어낸 곳이 바로 리베라다. 네로 디 트로이아나 알리아니코, 프리미티보 등 잊혀졌던 토착품종을 살려냈고, 풀리아에서는 처음으로 샤도네이 와인도 선보였다. 40년 전 풀리아에 샤도네이를 처음으로 식재한 이가 세바스티아노의 아버지다. 샤도네이는 가장 많이 재배되는 화이트 품종이고, 환경 적응성도 좋지만 풀리아에서는 쉽지 않았다. 더운 날씨에 자칫하면 과숙돼 산도라곤 죽어버린 납작한 와인이 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카스텔 델 몬테 DOC에서도 가능한 높이 올라갔다. 고급 샤도네이로 유명한 프랑스 부르고뉴와 같이 석회암 바위가 많은 곳이었다. 흙이라곤 없는 땅에 커다란 암석을 모두 분쇄한 아버지의 '미친 아이디어' 덕분에 풀리아에서는 처음으로, 그것도 좋은 품질의 샤도네이 와인이 탄생하게 됐다. '리베라 프렐루디오 넘버 원 샤도네이 2023'은 신선하고 좋은 과실미를 지니면서 복합미가 균형을 이뤘다. 고소한 견과류향이 오크 숙성을 떠올리지만 리베라는 스틸탱크로만 발효를 한다. 효모 앙금과 같이 숙성한 효과다. 넘버 원은 풀리아 지역에 처음으로 심어진 샤도네이란 의미다. 프렐루디오는 서곡이란 뜻이다. 그럼 본 곡이 연주될 차례다. '리베라 라마 데이 꼬르비 샤도네이 2022'다. 서곡보다 진지하게 부르고뉴 스타일의 샤도네이를 만들고자 했다. 세바스티아노는 "일부 오크통에서 숙성을 하지만 오크가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될 수 있도록 만든다"며 "버터 풍미와 질감이있지만 여운에서는 침샘을 자극하는 정확한 산미가 있어 다음잔에 또 손이 가는 와인"이라고 강조했다. '리베라 푸에르 아풀리에'는 리베라가 만드는 최고 등급 와인이자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네로 디 트로이아 품종 100%인 와인이다. 타닌이 워낙 강하다보니 다른 곳에서는 엄두를 못내지만 리베라는 다스리는데 성공을 했다. 검은 과실미에 꽃과 향신료 향이 어우러지고, 치즈나 살라미는 물론 한국 바베큐와도 잘 어울릴 맛이다. '리베라 일 팔코네'는 리베라가 설립된 1950년부터 만든 와인이다. 지역 대대로 내려온 네로 디 트로이아 70%와 몬테풀치아노 30%의 비율로 블렌딩했다. 미디엄 바디에도 구조감이 잘 잡혔다. 좋은 산도와 타닌으로 숙성잠재력은 이미 검증됐다. 와이너리가 첫 빈티지인 1950부터 100병씩 보관했는데 1950에서도 약간의 타닌이 느껴지는 상태다. 2013 빈티지는 10년이 지났지만 과실미가 생동감이 있었고, 2009 빈티지도 좋은 산도가 여전했다. 그는 "리베라 일 팔코네는 매우 천천히 숙성돼 뛰어난 복합미를 보여준다"며 "기차로 비유하면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괘도를 따라가며 정해진 시점에 정확히 도착하는 완행열차"라고 전했다.

2025-07-03 13:24:14 안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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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치승 교수의 경제읽기] 새 정부에 바란다…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AX전환과 과제

지난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현안분석자료에 따르면, 우리의 잠재성장률은 2025~2030 기간엔 1.2~1.7%이고, 2031~2040 기간엔 0.4%~1.1%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데에는 출산율 저하에 의한 인구 및 생산가능인구의 감소가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는 한국경제에서 소비위축과 함께 노동 인력의 부족 문제를 발생시킴에 있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다른 요인으로는 한국경제의 노동생산성이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인해 낮고 총요소생산성 또한 낮음이 지적된다. 혹자는 이를 두고 한국경제가 '피크코리아' 상태에 돌입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그렇다면 잠재성장률의 제고를 위해 새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인구구조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낮은 생산성 문제를 높이는 일이다. 여기서는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후자 방법에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새 정부는 노동생산성과 더불어 총요소생산성을 높이는 경제혁신을 위해 인공지능전환(AX: AI Transformation)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AI 오픈사의 Chat GPT가 등장하기 전에는 디지털기술을 통한 생산성 제고를 위해 디지털전환(DX: Digital Transformation)이 추진됐다. 그러나 오픈 AI사의 Chat GPT가 대중에게 공개된 2022년 이후엔 AX가 거슬릴 수 없는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이제 AI는 제조, 금융, 서비스 분야 등에서 단순히 생산성 제고에만 그치지 않고 산업의 체질과 구조 재편 등의 혁신을 가져오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각인되고 있다. 올 1월 국회도서관이 발행한 글로벌 AI 기업지형도 자료에서, 국회는 AI 분야로 오픈 AI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테슬라와 같은 AI 로봇, 엔비디아와 같은 반도체, AI 에이젼트 등이 포함된 글로벌 AI 100개 기업을 선정했다. 여기에 미국은 59개 기업, 중국은 10개 기업, 영국 7개, 프랑스 5개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한국에는 한 개 기업도 포함되지 못했다. 이번 대선 기간 중 민주당은 AI 활성화 공약에서 먼저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가반도체위원회 설치 등을 목적으로 하는 반도체특별법의 조기개정, 국내에서 생산판매되는 반도체에 대해 최대 10% 생산세액공제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AI를 국가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자 AI 투자 100조원의 국부펀드 등도 제안했다. 이들 공약이 국가 정책과제로 제대로 추진되는 경우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 복원을 통해 피크코리아의 위험에서 벗어날 기회가 될 수 있다. 20년간 벤처생태계를 연구하면서 느꼈던 필자가 새정부의 AX 추진이 성공을 거두기 위한 몇 가지 과제를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집권 기간 내 결실을 보려는 조급증을 갖지 않아야 한다. 비록 시간이 걸려 그 결실이 다음 정부에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반도체나 AX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나 생태계를 먼저 조성하는 일이다. 인적 인프라로서 정부는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이 공급되는 체계를 마련하여 유능한 인재가 이공계로 몰릴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갖추어야만 한다. 또한, AX의 물적 인프라로서 용수 및 전략공급체계도 마련되어야 한다. RE100에만 매몰되지 말고 소형모듈원전(SMR)에 의한 전력공급도 현실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생태계 조성으로는 무엇보다 정부가 지원하는 R&D 과제에 대한 결과물 제출에서 연구실패가 인정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상용화가 곤란한 장롱특허나 저급기술 수준의 연구성과물이 형식적으로 제출되는 관행을 타파하려는 데에 있다. 둘째, 보여주기식 정책펀드의 지양이다. 역대 노무현정부에서 윤석열정부에 이르기까지 매번 정권별로 정책 펀드인 선박펀드, 유전펀드, 통일펀드, 뉴딜펀드, 밸류업펀드가 제시됐다. 이번에도 AX펀드가 거론되고 있다. 이들 정책펀드 대부분은 비상장 벤처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성격이 아니라 상장기업 중심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자본시장 펀드였다. 우리 경제의 혁신을 위해서는 이런 쇼 윈도식 펀드도입보다는 벤처캐피탈체계의 활용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모태펀드에서 AX 정책 목적성 섹터를 두고, 벤처캐피탈이 스타트업과 스케일업 벤처기업에 대해 투자를 하게 하는 것이다. 끝으로, AX 관련한 규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는 장해물이 된다. 규제의 원칙과 방향으로 소비자에 대한 보호는 강화하되 기업의 사업규제를 철폐하는 것이다. 규제 적용에서 생겨나는 이해상충문제의 합리적 접근 해결방안으로서 이해집단 간 발생하는 기회비용과 보상을 다룰 중개기구설치(예, 가칭 규제중재위원회)를 제안한다. /원광대 경영학과 교수

2025-07-03 07:57:38 박승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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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용의 벤처나라] 종이신문 예찬

오늘도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거래처와의 중요한 미팅에 변수 없이 정시 도착하는 교통 수단으로는 지하철이 최고다. 그래서 지하철을 애용한다. 자가용 차량을 직접 몰고 다니는 것보다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어딜 가더라도 주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저녁 모임이 갑자기 잡혀도 부담이 없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 구경의 재미는 덤이다. 필자처럼 하루에도 여러 거래처를 방문하는 사업가에게는 한마디로 '가성비 갑인 모빌리티'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장점들이 있지만 지하철이 가장 쏠쏠한 이유는 따로 있다. 시간이 곧 돈인 현대인들에게 이동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승용차를 운전할 때와 달리 두 손과 눈이 자유로워 책이나 신문을 읽으며 필자가 업으로 삼는 렌털전환(RX)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지식을 쌓을 수 있다. 하루하루가 쌓여 일년을 채우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사업할 때 아이디어 원천이 되어 요긴하게 쓰인다. 필자는 지하철로 이동하는 30~40분 동안 신문을 읽는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종이신문으로 '뉴스를 읽는'다. 요즘에는 생소한 풍경일 수 있는데 아직까지 종이신문을 구독한다. 매일 새벽마다 집 앞으로 배달이 온다. 출근할 때 종이신문을 꼭 챙긴다. 이동 시간 틈틈이 읽기 위함이다. 물론,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 여러 문제가 생기는 요즘 시대에 종이신문으로 보도되는 기사는 정제된 고급 정보다. 고등교육을 받은 고도로 훈련된 기자들이 쓴 기사를 언론사 내부에서 한 번 더 검증을 거쳐 가치가 높아진 기사들만 종이신문에 실린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1급수 정보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읽는 이유다. 요즘에는 종이신문을 볼 때마다 '어쩌면 최고의 현대 사회 종합인문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종이신문 한 부에 정치, 경제, 사회, 국제, 문화 등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이 생생한 사진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일매일. 놀라운 사실은 이 최고의 종합인문서 한 부가 단 돈 1000원선이라는 점이다. 소위 말해 편의점에서 파는 껌 값보다 싸다. 더욱 놀라운 점이 또 있다. 매일 배달오는 종이신문에서 지식을 다 습득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 읽은 종이신문을 신발장이나 옷장에 넣으면 냄새와 습기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튀김 요리를 할 때도 주변에 깔아두면 안전하고 깔끔하다. 유리창을 청소할 때도 유용하다. 신문(新聞)은 한자로 '새로운 것을 깨우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에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新門)'이라는 의미도 더하고 싶다. 지금 종이신문을 한 부 구입해서 펼쳐보자. 나를 성장시키는 배움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아 차차! 오늘 아침에 깜빡하고 종이신문을 못 챙기고 나왔다. 다행히 지하철 역 앞에 반가운 무가지 신문이 있다. 무료라서 더욱 반갑다. 오늘의 문은 이걸로 열어야겠다.

2025-07-02 15:42:07 최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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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도덕적 용기를 하찮게 여기는 사회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000달러 미만의 절대빈곤상황은 80년대 초에 벗어나서 이제는 선진국 수준이라 할 3만 5천달러를 돌파하여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삶이 예전보다 향상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불안감이 오히려 커가고 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교육불안, 주거불안, 고용불안, 노후불안에 더하여 도덕불안까지 5대 불안으로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불안해하는 환경에서 근로의욕과 기업가 정신을 불태우려 들기보다, '한탕'할 건이 어디에 없을까 하고 두리번거리는 모습들도 보인다.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는 환상 속에서 성장잠재력은 오히려 저하되어 가는 까닭이다. 도덕불감증에 걸린 인사들이 큰일을 맡으면 수치심을 상실하고 오만과 편견에 젖어 남부끄러운 죄를 저지르고도 수치를 느끼기는커녕 외려 거들먹거리며 으스댄다. 저 혼자 잘났다는 소영웅심리에서 비롯되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보면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고도 자화자찬으로 덧칠하기 일쑤다. 이러한 인사가 지도층이 되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고양하는 길을 외면하고 번드르르한 가짜 애국으로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기 쉽다. 그 부작용으로 공동체의 신뢰 기반이 무너져 내려 선량한 시민들은 어쩔 수 없이 경제적 빈곤에다 정신적 굶주림으로 시달려야 한다. 도덕적 용기가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원리 원칙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다 줄었다 하여 지도층이 존경받기는커녕 손가락질받는 마구잡이 사회가 된다. 그런 환경에서는, 나라의 진짜 주인인 국민조차 그렇고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자괴감에 빠져 서로 아귀다툼하는 패거리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도덕적 용기를 갖춰야 서로 자부심을 가지면서 협력하여야 사회적 수용능력(social absorptive capacity)이 고양되어 성장잠재력 확충으로 연결된다. '도덕적 용기'란 자신에게 크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인간의 도리를 지키고 실천하려는 의지와 자세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필요조건이다. 사람들이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상황에서는 늘 지녀야 할 떳떳한 마음 즉 항심(恒心)을 잃게 되어 도덕 불감증에 빠질 수 있다. 지도층 인사들이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짓고도 얼토당토아니한 논리로 부인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도덕불안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최소한의 수치심도 죄의식도 저버린 유명 인사들을 보면서 그들은 그 금쪽같은 자식들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입으로는 정의와 애국을 외치면서 자식들에게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돈과 권력을 추구해야 잘 살고 출세도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면 그들은 미래를 이중인격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한다. 조금만 멀리 생각하면, 온 세상을 호령할 권력과 재물과 명예를 움켜쥐고 있더라도 자신에게 부끄럽다면 모두 허사가 된다. 어떤 누구라도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우리나라 성장잠재력이 떨어지는 커다란 까닭은 5대 불안 중에서도 도덕 불안 때문임을 과연 부인할 수 있을까? '도덕적 용기'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이 될 날은 언제쯤 올까?

2025-07-02 09:41:10 최규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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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예술 노동자가 바라본 노동자들의 삶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하는 사람을 노동자라 부른다. 법적으로는 자본가와 대등한 입장에서 노동 계약을 맺는 이를, 경제적으로는 생산 수단을 일절 갖지 않고 자기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삼는 이로 규정한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작품제작을 위해 노동력을 투자하고 그 노동력을 통해 여러 유무형의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다만 예술가의 노동 가운데 절반은 사유하는 노동이요 추상적 노동이다. 다른 절반은 실질노동자로서의 노동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정의해온 노동과는 달리 노동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을 되묻는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의 삶을 예술노동으로 빚는 건 어떤 노동일까. 그것은 노동자로써의 예술가를 수면 위로 표상화 하는 노동이면서, 공동체 속 노동(자)의 현주소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노동이다. 동시에 그 노동 자체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창조하는 실천적 노동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을 관통하는 작업 중 하나가 고(故) 구본주 작가의 <지나간 세기를 위한 기념비>(2001)이다. 서울시 영등포구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위치한 이 공공미술 작품은 모란미술관이 제정한 제1회 모란미술상(1995)을 받은 <이대리의 백일몽>의 후속 버전으로, 동판을 두드려 인체조각을 만드는 작가 특유의 기법으로 제작된 여러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육중한 철판 같은 현실에 치여 어느 덧 잊힌 꿈의 부재를 묘사한 <배대리의 여백>(1993)이나 희망 없는 소외를 다룬 <파고다 공원에 파랑새는 없다>(1992)와도 맞닿아 있다. 내용은 예술 노동자가 바라본 노동자들의 위태로운 삶이다. 12미터 길이의 곡선형 스테인리스 스틸 구축물 위에 튕겨나가듯 서 있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직장인이다. 아슬아슬하게 작은 발판을 디디고 있는 형상과 구도에서 그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오늘을 읽을 수 있다. 이 밖에도 더 있다.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시작된 샐러리맨 연작을 포함해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성 해방을 다룬 소품 군상인 <파업>(1990) 시리즈, IMF시기 언제 회사에서 잘릴지 몰라 초조해하며 눈치를 봐야했던 직장인들의 일상을 담은 <눈칫밥 삼십년>(1999) 등이 그렇다. 삶의 애환이 서린 사람들, 소주 한잔을 걸친 채 집으로 향하는 우리네 소시민들의 인생을 녹여낸 작업들이다. 불의에 맞서 죽창을 치켜든 농민을 새긴 <갑오농민전쟁>(1994)도 같은 선상에 있다. 조선 시대 지배계층에 대한 농민 주축의 최대 항쟁으로 기록된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노동자를 그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척박하게 살아가는 농민의 삶을 시대사와 엮어 강렬하게 풀어낸 걸작으로 꼽힌다. 이처럼 구본주가 주목한 것은 대체로 우리 역사와 보통사람들의 메마른 삶이었다. 고달프고 가난한 이들, 자본주의의 그늘 아래 힘없이 웅크려 있으나 새날이 오기를 포기하지 않은 나와 너, 운명처럼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과 가장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옮기는 것이 그에겐 중요한 일과였다. 이는 사실 노동자 계급성의 문제이자, 민중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안타까움, 경애에 관한 문제였다. 즉, 예술로서 노동이라는 인간의 존엄한 본성에 족쇄를 채우는 자본의 힘에 맞서며 서민들의 거친 삶과 일상의 주름을 어루만지고자 했던 것이다. 탁월한 예술노동으로 노동예술을 일구며 예술이라는 사회적 비석을 새긴 구본주는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때 나이 서른일곱, 너무 빨리 하늘의 별이 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유작 제목도 <별이 되다>(2003)이다. 형광폴리코트로 떠낸 1000개의 작은 샐러리맨 조각을 천장에 매달아 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보게 만든 설치작품이다. 그렇게 구본주는 작품 속에서처럼 우리 곁을 떠나 진짜 별이 되었고, 그의 예술은 여전히 우리를 올려다보게 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2025-07-01 10:06:01 한용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