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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본통신권 보장? 데이터 무제한의 함정

2026년 봄, 정부가 내놓은 통신 정책의 수사(修辭)는 화려했다. '데이터 안심옵션(QoS) 전면 도입'과 '모든 국민의 기본 통신권 보장'. 기본 데이터를 다 써도 추가 요금 없이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발표는 언뜻 파격적이다. 연간 3221억 원의 통신비 절감이라는 장밋빛 통계치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발표장의 열기와 달리, 스마트폰 화면 너머 이용자들의 반응은 서늘하다. 정부가 보장하겠다는 그 '기본'의 해상도가 지나치게 낮기 때문이다. 이번 정책의 핵심인 속도 제한값 '400Kbps'를 들여다보면 실소가 나온다. 이는 20여 년 전, 3G 서비스가 갓 태동하던 시절의 속도다. 텍스트 위주의 메신저 대화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이미지와 영상이 흐르듯 소비되는 현대 웹 환경에서 400Kbps는 사실상 '불통'에 가깝다. 포털 사이트 첫 화면을 띄우는 데 수십 초를 기다려야 하고, 실시간 길 찾기 서비스는 멈춰 서기 일쑤다. 고속도로 위에 자전거를 올려두고 이동권을 보장했다고 말하는 격이다. 정부는 "데이터가 끊겨도 최소한의 검색과 네비게이션은 가능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고화질 콘텐츠가 공기처럼 존재하는 2026년에 이 기준은 너무나 빈약하다. 특히 이번 정책에서 정작 가격에 민감한 알뜰폰(MVNO) 이용자들이 초기 논의에서 배제된 점은 뼈아프다.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통신권을 누려야 할 이들이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황에서 '보편적 권리'를 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결국 이번 QoS 전면 도입은 실질적인 이용자 편익보다는 '통계상의 성과'를 내기 위한 생색내기용 정책이라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통신사들은 이미 고가 요금제에서 QoS를 제공해왔고, 저가 요금제로의 이탈 가능성이 낮은 것을 알기에 정부의 요구를 흔쾌히 수용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안심은 되지만 쓸모는 없는, 이른바 '계륵' 같은 옵션을 하나 더 얻었을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기본 통신권은 단순히 '연결'되는 것을 넘어, 최소한의 사회적·경제적 활동이 가능한 '품질'이 담보될 때 완성된다. 정부가 진심으로 통신비 부담을 덜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싶다면, 20년 전 속도를 시혜적으로 베풀 것이 아니라 현대적 기준에 맞는 실효성 있는 속도 상향과 알뜰폰 이용자에 대한 평등한 혜택을 고민해야 한다. '무제한'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빈약한 속도가 국민의 권리를 오히려 좁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2026-04-13 17:21:49 김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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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우리 정치권은 40년 가까이 단 한 차례도 개헌을 이뤄내지 못했다. 39년간 개헌안을 발의한 건 총 3차례(2018·2020·2026년) 뿐이다. 2018년 개헌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2020년 안은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는 현행 헌법의 개정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정치적 합의가 아주 어렵다는 뜻이다. 올해 발의된 개헌안은 국민의힘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찬성 하고 있다. 이번 개헌안은 권력구조 개편을 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헌 논의는 항상 권력구조 개편을 두고 진영 간 이견이 생기면서 무산돼 왔으니, 이번에는 개헌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6·3 지방선거 이후 개헌 논의를 하자는 입장을 냈다. 게다가 갑자기 장동혁 대표는 7일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연임을 하지 않겠다고 선제적으로 선언하면 개헌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개헌저지선(107석)을 쥐고 있고, 현재 발의된 헌법 개정안을 수정할 수도 없으니 우려하지 말라는 취지로 답했다. 그럼에도 장 대표는 9일 "이 대통령은 어물쩍 딴 얘기만 하고 대답을 회피했다"면서 "결국 연임 빌드업 개헌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재명 임기 연장 시나리오'를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럼 장 대표의 주장대로 이 대통령이 정말 연임을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능하다. 현행 헌법 제128조2항에는 "대통령의 임기연장 또는 중임변경을 위한 헌법개정은 그 헌법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하여는 효력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그리고 대다수 헌법학자는 현직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이 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나서, 연임 조항을 추가하는 식으로 임기를 연장할 수 없다고 본다. 이 조항 자체가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고, 이를 삭제하려는 시도를 할 경우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결국 장 대표의 주장은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이자, 야권 지지자들을 향한 공포 마케팅이다. 이쯤되면 국민의힘도 솔직해져야 한다. '졸속 개헌'이라서 반대하는지, 아니면 한 중진 의원의 "이재명에게 시대의 영웅 날개를 달아주자는데 어찌 찬성하느냐"는 발언이 솔직한 마음인지….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서예진기자 syj@metroseoul.co.kr

2026-04-09 16:22:15 서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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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흔들려도, 결국 '신작'이다

올해 국내 게임업계는 분명한 역설 위에 서 있다. 실적은 흔들리는데, 신작은 오히려 늘어난다. 펄어비스의 '붉은사막'을 비롯해 넷마블의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 NHN의 '디시디아 듀엘룸 파이널 판타지' 등 주요 게임사들이 잇따라 신작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공격적인 라인업이다. 그러나 실적 흐름은 다르다. 인건비와 마케팅 비용은 늘었고, 글로벌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일부 기업은 영업이익 감소를 넘어 수익성 악화를 겪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신작 확대는 분명 부담이다. 개발비는 수천억 원 단위로 커졌고, 실패할 경우 손실은 고스란히 기업에 남는다. 시장에서는 여전히 "성과 없는 투자"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일부 신작은 이미 성과를 통해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넷마블의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은 출시 이후 스팀 매출 상위 20위권을 유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3월 무료게임 차트에서도 주요 지역 1위를 기록했다. NHN의 '디시디아 듀엘룸 파이널 판타지' 역시 일본 앱스토어 매출 순위 17위를 기록하며 초반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게임사들이 신작을 줄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임 산업에서 반등은 언제나 신작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기존 서비스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고, 결국 새로운 IP와 콘텐츠가 시장을 다시 움직인다. 선택이 아니라 구조에 가깝다. 문제는 시장의 시선이다. 확률형 아이템 중심의 수익모델과 반복된 유사 장르 논란은 국내 게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신작이 공개될 때마다 기대보다 의심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그 사이 글로벌 경쟁은 더 빠르게 변했다. 한때 뒤처져 있던 중국 게임 산업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웠다. 자본과 기술을 바탕으로 콘솔과 PC 시장까지 확장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 지점에서 국내 게임사들의 선택을 단순한 리스크로만 볼 수는 없다. 실적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투자를 줄이지 않고 신작 개발을 이어가는 것은 단기 대응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비용을 줄여 버티는 대신,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게임 산업은 대표적인 수출 콘텐츠 산업이다. 하나의 성공작은 매출을 넘어 산업 전반으로 확장된다. 반대로 실패는 비용으로 남는다. 그만큼 위험하지만, 동시에 기회도 크다. 과거의 문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의 움직임까지 같은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부족하다. 지금은 결과를 단정할 때가 아니라, 선택의 의미를 짚어볼 때다. 실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신작 개발을 멈추지 않는 흐름은 분명 산업의 의지다. 적어도 이 방향성만큼은, 한 번쯤은 지켜보고 응원할 이유가 있다.

2026-04-08 14:42:28 최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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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비상의 조건

삼성전자가 1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메모리 가격 반등과 인공지능(AI)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중심에 섰다는 평가다. 증권가에서는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를 잇달아 상향 조정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장밋빛 전망과 달리 내부에서는 또 다른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임금 및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조는 사측의 성과급 지급안에 반발하며 교섭 중단을 선언했고, 성과급 상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다. 핵심 쟁점은 성과급 체계의 구조적 개편이다. 노조는 실적 확대에 걸맞은 보상 체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사업부 간 수익 격차와 조직 안정성을 고려한 점진적 접근을 택하고 있다. 양측의 시각차는 단순한 금액 문제가 아니라 '보상 기준' 자체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이어지며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시기다. 반도체 산업이 AI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차세대 시장에서 경쟁사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중요한 국면에 놓여 있다. 이 시점에서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는 노사 갈등은 단순한 내부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지금이 삼성전자에 있어 '기회의 시간'인 동시에 '시험의 시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역대급 실적과 안정적인 재무 여건을 바탕으로 투자 여력은 충분하지만 내부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할 경우 성장 동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이번 갈등은 노사 문제를 넘어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핵심 산업인 만큼 생산 차질이나 의사결정 지연은 글로벌 공급망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를 더 벌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날아오를 것인가'다. 실적이 급상승기류를 탄 지금, 삼성전자에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균형이다. 내부의 균열을 봉합하고 조직의 힘을 하나로 모을 때 비로소 더 높은 도약이 가능하다.삼성전자가 다시 한번 '초격차'를 말하려면 기술뿐 아니라 조직 내부의 균열부터 메우는 일이 먼저일지 모른다. /차현정기자 hyeon@metroseoul.co.kr

2026-04-07 15:49:54 차현정 기자
[기자수첩] 울산 석유화학 재편, 왜 제자리걸음만 하나

울산 석유화학단지 재편 논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급 과잉을 줄여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정작 부담은 누가 질 것인지를 두고 업체 간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논란의 중심에는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가 있다. 에쓰오일은 올해 말 가동을 앞둔 샤힌 프로젝트를 감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유와 부산물을 곧바로 석유화학 원료로 전환하는 TC2C 공정을 갖춘 신규 고효율 설비인 만큼, 기존 NCC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는 논리다.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신규 설비라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배경이다. 에쓰오일은 이번 재편 논의의 목적이 단순 감축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 강화에 있는 만큼 경쟁력이 낮은 노후 설비를 중심으로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업체들의 시선은 다르다. 공급 과잉 해소를 위해 생산능력 감축과 구조조정을 논의하는 상황에서 특정 기업만 신규 설비라는 이유로 구조조정에서 비켜서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특히 샤힌 프로젝트는 아직 가동도 하지 않은 설비다. 기존 공정보다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도 검증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감축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존 설비 업체들은 자신들만 먼저 생산능력을 줄이는 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에쓰오일 역시 대규모 신규 투자를 스스로 접는 선택을 쉽게 할 수 없다. 결국 울산 논의는 기술이나 효율성 논쟁을 넘어 구조조정에 모두가 어느 정도의 책임과 부담을 나눠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최근 중동발 원유·나프타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서 업계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울산단지의 구조조정이 빨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지금 막혀 있는 것은 단순한 시간 문제가 아니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누구는 아프게 버티고 누구는 비켜서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울산단지의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선 업체 간 신뢰 회복이 먼저다. 무임승차 한다는 인식을 주기보다는 같이 구조조정에 참여한다는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2026-04-06 14:03:18 원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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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멈춰선 안 될 것은 공정(工程)과 공정(公正)

4월 5일은 식목일이자 절기로는 청명이다. 24절기 중 청명(淸明)은 하늘이 맑아지고 땅이 풀리는 날이다. 예로부터 농가에서는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며 '기본'을 다지는 시기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산업의 들녘에는 먹구름이 짙게 깔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노사 갈등은 심화되고 있다.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 성과급 배분, 인사권 합의 등을 제시하며 오는 5월 전면 파업을 예고하자, 사측은 법원에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청구했다. 양측 법적 대응의 핵심은 생산 공정 멈춤에 대한 설전으로 이어진다.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는 공정(工程) 특성상 365일 가동은 필수적이고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의약품 공급은 끊겨선 안 된다는 사측 논리는 분명 타당하다. 다만 배양기를 돌리는 것은 아직 사람이며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은 공정(公正)의 연속성이다. 현재 노조가 내놓은 요구안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회사의 중요 권한인 채용, 승진 등 인사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신약개발 명가라는 전통을 가진 한미약품에서도 최근 비슷한 긴장감이 있었다. 내부 승진 중심의 '한미맨' 인사 기조가 깨지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외부 출신 대표가 취임했다. 신임 대표는 첫 공식 행보로 제조 현장과 연구개발 센터를 방문하며 조직과 적극 소통하고 있다. 다만 앞서 전임 대표 역시 기존 임기에 맞춰 회사를 떠나며 토종 제약 기업의 신약개발이 계속되기를 바랐고 남은 내부 구성원의 안위를 당부했다. 공정(工程)이 중단되면 세포가 죽고 공정(公正)이 흐려지면 사람 마음의 안녕은 깨진다. 이 원리는 제약·바이오 산업뿐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격언은 진부하지만 강력하다. 경영진 권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도 그 결정에 따르는 책임감이 있기 때문이다. 청명의 농부는 가래질을 하고 둑을 살핀다. 논과 밭의 흙을 고르게 하고 물이 새지 않도록 기초를 튼튼히 하는 작업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리더와 구성원,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되새겨볼 시점이다. 특히 그 균형이 합리성을 잃고 치우치면 내부에 쌓인 애사심과 충성심이라는 둑은 무너지고 아무리 우수한 기술과 전략이 있어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2026-04-05 14:19:40 이청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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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학만 바라보는 진로교육…직업교육부터 살려야

서울시교육청이 2일 발표한 '서울학생 진로·진학 지원 강화 계획'은 입시 불안과 사교육 의존이 커진 현실에 대응해 공교육의 진로·진학 지원 기능을 넓히겠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진로·진학 상담 인력을 늘리고, 고교학점제에 맞춘 진로 설계를 돕는 등 학교 안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은 분명 의미가 있다. 이번 계획의 배경에는 대학 진학에 편중된 진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정근식 교육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핀란드의 직업계고교 진학 비중이 40%대인 반면 한국은 10%대에 머물러 있다고 짚었다. 이는 핀란드에서는 대학 외 진로가 실제 선택으로 작동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선택이 대학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 진로교육이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는 진로를 말하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끝내 묻는 것은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느냐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서울시교육청도 직업교육 경로를 넓히는 보완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서울학생 직업교육 계획(가칭)'도 마련 중이다. 학생들이 직업계고를 찾아가 직업교육의 특성을 체험하는 방안이 담겼다는 게 시교육청 설명이다. 방향은 맞다. 다만 단순 홍보나 체험 확대에 머물러서는 한계가 있다. 대학 진학에 편중된 구조를 바꾸려면 직업계고와 직업교육 경로에 대한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학생과 학부모가 직업계고를 '차선책'이 아니라 하나의 경쟁력 있는 경로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공지능 시대에는 기존의 직업 서열이 더는 절대적이지 않다.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직업도 기술 변화에 따라 재편되고, 유망 학과와 직종의 선호도도 빠르게 달라진다. 그래서 공교육은 학교나 학과 선택에 따른 특정 진로를 정답처럼 제시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변화 속에서 선택하고 다시 설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한국 공교육 체계도 이런 방향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진로교육은 입시 상담의 부속물이 아니라 독립된 교육이어야 한다. 결국 진로교육을 살리는 일은 상담 인력을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 진학에 편중된 구조를 바꾸겠다는 문제의식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려면, 직업계고와 직업교육이 공교육 안에서 분명한 진로 경로로 자리 잡아야 한다. 핀란드의 40%대와 한국의 10%대 격차가 보여주는 것도 결국 그 점이다. /이현진기자 lhj@metroseoul.co.kr

2026-04-02 15:15:20 이현진 기자
[기자수첩] 서학개미 유턴 '머뭇'…RIA에 붙은 '물음표'

"5월 안에 국내시장복귀계좌(RIA)로 미국 주식을 팔고 국내 주식을 사면 세금이 없다는데 맞나요? 그런데 환율도 높고, 지금 팔면 손해 아닌가요." 최근 증권사 고객 상담에서 반복되는 질문이다. 환율 안정을 위해 도입된 RIA 계좌 수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작 자금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나들며 고환율 고착화 우려가 커지자, 해외투자 확대가 원화 약세를 부추겼다는 책임론도 제기됐다. 해외주식 매수를 위한 달러 수요가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웠다는 시각이다. 이에 정부는 해외주식을 팔고 국내로 자금을 돌리면 세제 혜택을 주는 RIA를 내놨다. 개인 투자자의 달러 수요를 낮춰 환율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기대에 못 미친다. 출시 일주일 만에 계좌는 약 5만7000개로 늘었지만, 실제 유입 자금은 3300억원에 그쳤다. 해외주식 보관액이 200조원을 웃도는 점을 감안하면 0.15% 수준에 불과하다. 계좌는 늘었지만 돈은 움직이지 않는 셈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여전히 미국 주식 매도에 신중하다. 수익률과 환율, 재진입 시점을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적립식으로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투자자에게 RIA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미국 증시 조정에도 낙폭이 제한적인 종목이 적지 않고,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도 변수다. 여기에 국내 증시 역시 변동성이 커 자금을 옮길 뚜렷한 대안이 부족하다. 결국 정책과 시장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 셈이다. 투자자는 세제 혜택보다 타이밍을 우선하고, 자금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 형국이다. 아쉬운 건 RIA의 설계다. 현행 제도는 특정 시점까지 매도와 1년 보유를 동시에 요구하는 '기한 집중형' 구조로, 투자자에게 한 번에 큰 결정을 강요한다.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오히려 자금 이동을 지연시키는 요인이 된다. 보유 기간에 따라 공제 혜택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행처럼 1년 보유를 전제로 최대 혜택을 주는 단일 구조는 개인투자자로 하여금 진입 부담을 키운다. 최고 한도는 유지하되 일정 기간 이상의 중기 보유 구간(예를 들어 6개월 기준 2000만원 등)을 두고 혜택을 나누는 방식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실제 자금 유입을 유도하는 보다 현실적인 접근 방법이 될 수 있다. 세제 혜택은 마련됐다. 이제 필요한 것은 혜택의 크기가 아니라, 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납득할 수 있는 구조다.

2026-04-01 15:21:07 허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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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AI반도체 호황 속 엇갈린 산업 온도

인공지능(AI)이 산업계의 표정을 바꾸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운 반도체 업계는 수년 만의 슈퍼사이클에 올라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AI 메모리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실적 개선과 투자 확대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반도체로 쏠리는 이유다. 실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올해 9750억달러 규모로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업황 개선이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고르게 확산되고 있는 지는 별도로 살펴봐야 할 문제다. AI 서버 증설과 빅테크의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라 HBM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 수요는 분명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같은 흐름이 산업 전반의 경기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PC와 모바일 등 전통 수요처는 여전히 약한 흐름을 이어가며 업종별 회복 속도에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스마트폰과 PC, 가전 등 소비자와 연결된 업종은 여전히 전방 수요 둔화와 원가 부담에 직면해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반도체 기업 실적에는 호재지만, 완제품 업체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역시 변수다. 여기에 애플과 테슬라를 비롯한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원가 절감과 현지 조달 확대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전자·부품업계는 수요 둔화와 공급망 변화라는 이중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수요 지표도 아직 완연한 회복과는 거리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PC 출하량은 전년 대비 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 부담이 소비 수요를 제약하고 있다는 평가다. 스마트폰 시장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리미엄 신제품 출시에도 교체 수요 회복 속도는 예상보다 더디다. 업계에서는 소비 위축과 제품 가격 부담이 맞물리며 수요가 보급형과 중고·리퍼비시 제품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반도체 업황 개선이 곧바로 전자 소비 시장의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AI 반도체와 직접 연결된 일부 영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전체 산업 생태계의 회복 속도에는 여전히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숫자의 개선과 현장의 체감 경기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낙관론의 확산보다 냉정한 점검이다. HBM 호황이 산업 전반의 구조적 회복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특정 분야에 국한된 국지적 호황에 머물지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AI가 만든 봄기운 속에서도 산업 생태계 곳곳에는 여전히 온도차가 남아 있다. /구남영기자 koogija_tea@metroseoul.co.kr

2026-03-31 16:08:43 구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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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의선 회장의 '깊은 성찰' 의미…팰리세이드 리콜 반면교사 삼아야

'깊은 성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로 내놓은 키워드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까지 판매량 기준으로 4년 연속 세계 3위 영업이익률은 2위를 기록했다. 이는 1986년 포니 엑셀로 세계 무대에 첫 발을 내 딛은지 40여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러나 정의선 회장은 '깊은 성찰'을 강조하며 성공에 안주했다가는 미래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임직원들에게 제품 기획과 개발 과정에서 타협은 없었는지, 품질은 당당한지 스스로 묻고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그룹의 모습을 보면 불안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완성차 브랜드 현대차그룹의 플래그십 모델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의 플래그십 세단인 그랜저에 이어 이번에는 팰리세이드가 안전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차량의 문제를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리콜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리콜 대상 차량은 2026년형 팰리세이드 리미티드와 캘리그래피 트림 등 총 6만8500대 규모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국내외 소비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된 시트 구조 및 센서 오작동 문제가 사고로 이어지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문제는 팰리세이드에서 그치지 않았다. 북미 시장서 돌풍을 일으킨 기아 텔루라이드도 동일한 문제로 리콜을 실시한 것이다. 두 모델 모두 양사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점에서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현대차그룹이 브랜드의 '자존심'인 최정상급 모델에 대한 열정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현대차, 기아가 판매하고 있는 라인업(60여종)이 10년여 만에 많이 증가한 부분도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차는 과거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투싼, 싼타페에서 현재 아반떼N, 캐스퍼, 베뉴, 코나, 팰리세이드,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아이오닉 9, 캐스퍼 일렉트릭, 넥쏘 등이 추가되며 2배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부분변경과 완전변경 출시 기간도 과거보다 단축됐다. 다양한 차종을 개발하고 신차 출시에 쫓기면서 품질까지 확보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차와 기아 뿐만 아니라 부품을 개발하는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 등 핵심 부품 계열사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성과보다 브랜드 신뢰를 먼저 확보하는 게 현명한 전략이다.

2026-03-30 16:24:05 양성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