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더 많은 칼보다, 더 나은 칼이 필요하다
주방에 칼이 많다고 요리가 더 맛있어지는 건 아니다. 잘 들지 않는 칼이 아무리 많아도 음식은 거칠고, 손질은 지저분하며, 요리사는 어깨와 손목에 통증만 남긴다. 요리에 중요한 건 '칼의 수'가 아니라 '칼을 쥔 손의 숙련도'와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원칙이다. 금융감독 체계도 마찬가지다. 조직도를 화려하게 갈라놓는다고 해서 감독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금감원을 둘로 쪼개고, 금감위라는 새 조직을 세우고, 소비자 보호를 내세운 금융소비자보호원까지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조각난 체계 속에서 최종적으로 길을 잃게 되는 건 감독당국이 아니라 소비자가 될 공산이 크다. 사고는 한몸으로 터지는데, 책임은 흩어지게 된다. 2021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금감원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할지를 두고 독립성 논란이 격화됐던 시기다. 당시에도 지적된 건 '정치로부터의 거리'였다. IMF가 금감원을 특수법인으로 설계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2025년, 상황은 훨씬 복잡해졌다. ESG 회계, 디지털 자산, PF 사업성 평가, 이해상충 점검처럼, 단일 부서나 단일 조직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이슈들이 연일 쏟아진다. 이제는 감독국 간의 수평적 공조와 기능 간의 입체적 연결이 필수다. 조직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어떻게 조율하고 연결할지가 중요한 때다. 하지만 지금의 개편안은 그 흐름과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제도 설계의 출발점은 '기능의 효율적 배분'이어야 하지만, 실제 논의는 '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로 흘러가고 있다. 전직 원장의 '미운털'이나, 특정 인사를 위한 자리 만들기 같은 확인되지 않은 정치적 해석들이 마치 개편의 동력처럼 작용한다. 항간에는 "금소원 자리에 친정권 측근을 앉히기 위한 큰 그림"이라는 말까지 돌고 있다. 그 사이 실무자들은 감독 개혁이 아닌, 불필요한 루머 관리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심지어 소통하는 리더가 되겠다던 이찬진 금감원장은 개편안 발표 다음 날 열린 긴급 설명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원장은 조직발표 후 출근길에서도, 금융업권 CEO들이 모이는 간담회 자리에서도, 자신을 쫓는 기자들 앞에서도 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는 일체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정부는 조직을 잘게 나누며 감독 개편과 소비자 보호 강화를 외치지만 자리를 나누는 개편에 최소한의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그 설계에는 방향이 없다. 조직 내 소통을 강조하며 "조직을 가물치처럼 팔딱 뛰게 만들겠다"던 이 원장은 침묵 중이다. 지금 필요한 건 조직을 나누는 '많은 칼'이 아니라, 그 칼로 무엇을 지킬지 말할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