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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현실이 된 AI 직원 대체...기회일까 위기일까

직원을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는 건 빅테크 기업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현실은 훨씬 더 가까이 와 있었다. 지난 주말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테이블 간격이 좁아 옆자리 대화를 주워듣게 됐다. 이야기인즉, 자기가 다니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AI가 신입 직원보다 일을 잘해 새로 사람을 뽑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너는 괜찮은 거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는 "중간 관리자라 아직은 괜찮지만, 아마 다음은 내 차례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두 사람은 자신의 앞날뿐 아니라, AI가 고용 시장을 집어삼킨 뒤의 근미래도 걱정했다. 일자리가 사라져 사람들의 주머니가 비면, 이 첨단 AI 기술을 누가 이용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나왔다. 최근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최재천의 아마존'에 흥미로운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AI 세상, 인간은 어디에'라는 제목의 콘텐츠에서 최 교수는 '직업 창출 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어렵고 힘든 일은 AI가 대신하고, 그 덕분에 생긴 여유와 생산성을 인간이 새로운 가치 창조에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최 교수는 "AI에게 일자리를 뺏긴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그들에게 일거리를 맡기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며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최고경영자)가 한 얘기가 가장 현실적이다. AI 때문에 직장을 잃는 게 아니라, 나보다 먼저 AI를 활용한 사람에게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AI로 인한 빈부격차 심화와 공동체 위기도 우려했다. 그는 "성공하는 소수만 살아남고 대다수는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은 결국 사회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런 일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전에 이 문제를 성장이냐, 분배냐의 이분법으로만 보지 말고 함께 고민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신이 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 이상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돈을 기본 소득으로 지급해 각자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게 하겠다고 답변했다.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시를 짓고,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은 영화를 찍고, 여행을 가고 싶은 사람은 여행을 떠나는 세상. 모두가 꿈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처럼 치열한 아귀다툼은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AI는 기술 그 자체이기에 이런 유토피아를 실현해줄 수 없다. 기술이 인간을 구원할지, 궁지로 몰아갈지는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2025-06-29 12:39:26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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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브레이크 없는 車손해율

자동차보험은 사고 충격을 완화해 주는 '금융 에어백'이다. 하지만 최근 자동차보험은 여기저기서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사고 빈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섰고 정비공임·부품비·교통량이 동반 상승하면서 보험사가 떠안는 비용은 급격히 불어났다. 그럼에도 보험료는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에어백이 터져야 할 순간, 안쪽 충전재가 비어 가는 형국이다. 올해 1∼5월 대형 손보사들의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평균 82.7%까지 치솟았다. 1년 새 2.9%포인트나 오른 수치로 업계가 손익분기점으로 삼는 80% 선을 넘어선 지 오래다. 보험업계는 "여름 장마가 본격화되면 손해율이 더 올라갈 것"이라며 진한 우려를 내비친다. 적자는 이미 숫자로 드러난다. 삼성화재·메리츠화재·DB손해보험·현대해상·KB손해보험 등 5개사의 1분기 당기순이익 총합은 전년 대비 20% 감소했다. 독감·산불 같은 계절 변수도 있었지만 "자동차보험 손익이 각각 50% 안팎으로 급감한 것이 치명타"라는 게 업계의 공통 진단이다. DB손보의 경우 자동차보험 이익이 458억원으로 1년 새 51.4% 줄었고, 삼성화재 역시 관련 손익이 70% 가까이 축소됐다. 아이러니는 이런 적자에도 보험료가 거꾸로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화재·KB손해보험 등 대형사는 올 초 자동차보험료를 최대 1% 인하했다. 보험개발원 집계 평균 보험료는 작년보다 3.6% 줄어든 69만원에 그쳤다. "한 번 낮춘 요율은 올리기 어렵다"는 정치적 부담이 요율 인상 논의를 가로막는다. 반면 정비공임은 2.7% 올랐고 부품비, 교통량까지 함께 뛰었다. 보험료 수입은 줄고 원가는 불어나니 적자는 예고된 사고였다. 회계장부는 새빨갛지만 누구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다. 보험사는 "정부 눈치"를, 정부는 "물가 안정"을, 소비자는 "더 내려야 한다"를 외친다. 손해율이 더 오르면 급제동은 불가피하다. 이 구조를 방치하면 다음 신호는 뻔하다. 보험료 급등, 담보 축소, 할증 강화 중 하나다. 에어백이 터진 뒤에야 안전벨트를 찾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의 페달'을 밟을 주체가 결정을 미루지 않는 일이다.

2025-06-26 15:24:42 김주형 기자
[기자수첩] 성장 대신 생존…수익성 무너진 상장사들

대전의 전문 제빵업체인 성심당이 지난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478억원이다. 놀랍게도 이 금액은 코스피 상장사의 63%, 코스닥 상장사의 95%가 넘지 못한 수치다. 이는 상장사 상당수가 지역의 전문 제빵업체만도 못한 수준으로 '성장'이 아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우리 증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상장사 수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빛 좋은 개살구 격이다. 외형은 그럭저럭 갖췄지만 내실을 갖추지 못한 기업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은 더욱 안 좋다.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들의 절반가량이 영업적자를 냈고, 상당수 상장사는 수년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기적인 경기 둔화와 고금리의 영향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구조를 갖추지 못한 채 상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장 이후에도 신제품이나 기술력을 쌓은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과거 사업모델에만 의존해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수익성이 나쁜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도 크게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기업 비중은 40.9%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래 가장 높았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10곳 중 4곳에 달한다는 의미다. 특히 영업이익이 마이너스여서 이자보상비율이 0% 이하인 기업도 28.3%에 이른다. 사실상 기업으로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적 없이 상장사 지위만 유지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자본시장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수익 기반이 무너진 기업을 시장에 그대로 두면 투자자는 물론 건전한 기업들에게 그 부담이 전가된다. 또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 자금만 흡수하는 구조가 고착되면 성장 여력이 있는 기업들의 숨통까지 막힌다. 연명은 가능할지 몰라도 회복은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원칙 있는 정책 집행이다.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게 자원을 집중하는 대신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과감히 퇴출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지원은 시장의 효율성을 해치고, 결국 전체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과감한 정책을 실행에 옮겨야 할 시점이다.

2025-06-25 11:14:34 원관희 기자
[기자수첩] ‘진짜 성장’과 ‘호텔경제학’의 미학

'진짜 성장'이라는 말에는 묘한 울림이 있다. 최근 출범한 이재명 정권은 과거 정부의 성장을 '가짜'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모델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기술주도(T), 모두를 위한(G), 공정한(F) 성장이라는 'TGF 전략'은 얼핏 그럴듯하다. AI·바이오·콘텐츠 산업을 육성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포부는 구호만 보면 미학(美學)에 가깝다. '가짜'를 걷어내고 '진짜'가 온다니 국민 입장에선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지난 19일 발표한 첫 추가경정예산안을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핵심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상위 10%는 15만원, 일반 국민은 25만원, 차상위층은 40만원, 기초수급자는 50만원을 받는다. 이름만 다를 뿐, 실질은 전국민 지역화폐 지급이다. 기술 혁신을 말하던 정부가 첫 카드로 꺼내든 건 소비만 부추기고 생산은 자극하지 못하는 과거식 경기부양의 반복이었다.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자주 언급한 '호텔경제학' 모델이 깔려 있는 듯하다. 호텔 손님이 맡긴 10만원이 지역 상권을 돌며 모두의 빚을 갚고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는 비유다. 순환이 이뤄지면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낙관적 서사지만 이상적인 이론일수록 현실에선 깨지기 쉽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의 매출 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효과가 있어도 슈퍼·식료품점 등 일부 업종에 국한되며, 실질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단기 수요 쏠림으로 서비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감사원은 일부 지자체의 허위발행과 부정 결제 사례를 지적했다. 지역화폐는 실효성, 효율성, 투명성 모두에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번 추경에는 배드뱅크도 포함됐다. 5000만원 이하 장기채무를 탕감해주는 구조다. 사회안전망은 필요하지만, 재정으로 모든 문제를 덮으려는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조치를 '진짜 성장'의 마중물이라 자평한다. 국가채무는 이미 1200조원을 넘었다. 대규모 현금성 지출을 반복하면서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이는 정책이 아니라 정치 마케팅에 가깝다. '진짜 성장'은 정책이 현실을 정직하게 직면할 때 설계될 수 있다. 소비로 돌리는 순환에 의존하는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순환에만 머문다면, '진짜'라는 말은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다.

2025-06-22 07:30:40 김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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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난독 아이의 인생 바꾼 서울 교육…멈추지 않으려면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첫 시험.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해 0점을 받은 아이가 있었다.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라, 글자를 읽을 수 없어서였다. '난독증'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까지, 부모는 그저 아이가 느린 아이라고 생각했다. 치료도, 지원도 막막했다. 그러던 중 서울시교육청의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아이의 삶은 달라졌다. 이제는 나눗셈 문제를 척척 풀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 학습은 물론, 삶의 태도까지 바뀐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운영 중인 학습진단성장센터는 난독증, 난산증, 기초학력 부진 등 복합적인 학습 취약 요인을 가진 학생들에게 정밀 진단과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통합형 시스템이다. 기존 '학습지원센터'를 고도화해 지난 3월 서울 강동송파센터를 포함한 4개 권역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시교육청은 이를 오는 2026년까지 11개 교육지원청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사업은 정근식 교육감의 '취임 1호 결재'로 출발했으며, 서울시 초등학교 1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난독 검사를 시작하는 정책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한 명도 놓치지 않겠다"던 정 교육감의 신념이 오롯이 녹아든 정책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안착을 넘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닿기 위해선 '예산'이라는 현실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센터 한 곳당 운영 예산은 연 4~5억 원 수준이다. 이 예산 안에서 진단, 상담, 학습 지도, 정서 지원이 이뤄지지만, 난독·난산 등 정밀 진단과 집중 개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장에서는 벌써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19일 서울시교육청이 강동송파교육지원청에서 개최한 '서울시의회와 서울교육공동체가 함께하는 강동송파학습진단성장센터 간담회'에 참석한 한 중학교 교사는 "학교별 신청 가능 인원이 제한돼 있어, 실제로 난독증이나 기초학력 부족 문제를 겪는 학생이 있어도 센터 프로그램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역 특성에 맞춘 '특화 프로그램'은 별도 예산 없이 지역 대학과 공공기관의 협조에 의존하고 있다. 프로그램 확충 및 지속성 측면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할 가능성도 드러나고 있다. 아이들의 배움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 난독이나 난산처럼 '보이지 않는 학습장애'는 조기에 진단하고 정확히 개입하면 큰 어려움 없이 일상 학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문제는 정서, 자존감, 사회성 전반으로 확산된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기초학력 문제는 서울시 전체가 안고 가야 할 공동 과제"라며 "예산 확보와 등을 통해 지속적인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변화는 시작됐다. 한 아이가 시험지를 읽지 못해 늘 0점을 받다가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이 변화가 서울 전역으로, 더 나아가 전국으로 확산되길 바란다.

2025-06-19 13:16:02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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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휘두를 권력과 위임받은 권한

"우리는 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업무를 하는 대리인이니까 국민을 중심에 두고 현재 우리가 할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지난 5일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발언이다. 이날 국무회의엔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들이 대다수였다. '불편한 동거'임에도 이 대통령은 '공직자들은 국민에게 위임을 받아서 일을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이들과 업무를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과거에도 이같은 취지의 발언을 자주 했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정부를 '국민이 권한을 주고 일을 시켜놨더니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선출직 공직자는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쓰는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4일, '무덤'같던 대통령실 때문이다. 정황상,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 참모들은 청사에 있던 모든 업무용 집기를 치워버린 듯 하다. 거기다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을 모두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물론 그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가 2주간 취재해보니, 이전 정부 참모들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워졌다. 내란의 증거를 치우고 싶었을 수도 있고, 뭐든 숨기고 싶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 정부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면 안되지만.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전 정부 인사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여권 관계자들은 이를 업무방해, 증거인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자가 놀란 것은 야당이 된 지 2주도 안 된 이들의 반응이었다. "컴퓨터 없다고 일을 못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정권 잡았으니 그 정도는 넘어가 달라." 한마디로 '권력을 잡아서 기분이 좋을테니, 대충 넘어가라'는 뜻으로 들렸다.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은 공직자이거나 공직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런데 야권 관계자들은 공직자가 되면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싶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존속돼야 한다. '권력'을 잃었다고 국가의 지속성을 훼손한다면, 그것을 온전한 정치세력이라 할 수 있을까. 국민이 겪었던 6개월 간의 혼란은 이런 사고방식에서 생겼던 게 아닐까. 국민은 언제쯤 이들의 처절한 반성을 볼 수 있을까. /서예진기자 syj@metroseoul.co.kr

2025-06-18 13:48:03 서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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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배리어프리’가 또 다른 장벽이 될 때

키오스크 앞에 선 노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매장을 나섰다. 화면을 누르지도 못했고, 점원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서울 시내 한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정보기술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가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부는 장애인과 고령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베리어프리 키오스크' 도입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이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매장에 장애인과 고령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인 주문기를 설치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으며, 관련 업계와 단체들은 제도 시행 유예를 요구하고 있다. 외식업계에 따르면 대상 업장은 패스트푸드점, 프랜차이즈 카페, 베이커리, 편의점, 영화관 등으로, 연면적 50㎡ 이상이거나 상시 근로자 수 100인 미만의 사업장이 포함된다. 하지만 제도의 핵심인 베리어프리 키오스크는 국내에서 인증을 받은 제조업체가 2~4곳에 불과하고, 설치 비용은 기기 한 대당 최소 300만 원에서 많게는 7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키오스크조차 부담스러운 영세 자영업자들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이라는 호소가 이어진다. 한국외식산업협회는 "베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영세 사업장의 현실을 외면한 채 추진된다면 자영업자를 범법자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논란이 커지자 한발 물러섰다. 시행 시기를 유예하고 적용 대상 업종과 사업장 기준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과태료 최대 3000만 원에 달하는 행정처분 조항에 대해서도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관련 단체들과 협의 채널도 열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뒤늦은 땜질'에 불과하다는 반응이다.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함께 제기된다. 현재 시판 중인 일부 베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시각장애인이나 고령자 등이 단독으로 사용하기엔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점자 안내, 음성 기능, 수어 영상이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메뉴 구조가 복잡하거나 반응 속도가 느리면 실사용은 사실상 어렵다. 정책은 수혜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베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는 비용 부담을 자영업자에게 떠넘기고, 정작 실질적인 효과는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다. 공공기관이나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충분한 시범 운영과 사용자 피드백을 수렴한 후, 점진적으로 중소사업장까지 확대한다면 어땠을까. 기계를 설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느냐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유예는 후퇴가 아니라, 제도의 완성도를 높이고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유연한 선택이다. 이름은 '베리어프리'인데, 그것이 또 다른 장벽이 되어선 안 된다. 진정한 접근성은 기계가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는 정책 감수성에서 시작된다.

2025-06-17 15:50:25 최빛나 기자
[기자수첩] 용산정비창 수주전과 '네거티브'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 시공사 선정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용산정비창의 첫 시작점이 될 전면1구역은 입지·사업성·조합 추진력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알짜 사업지다. 조합원 수만 400명이 넘는 데다 일반분양 물량도 상당해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높은 구역이다. 수주전에 뛰어든 건설사는 HDC현대산업개발과 포스코이앤씨다. 양 사는 역대급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홍보전에 돌입했다. 평당 공사비, 이주비, 금융 조건, 호텔 브랜드 유치, 용산역 연결 계획까지 내세운 카드는 다양하다. 지난 9일에는 같은 건물의 서로 다른 층에 나란히 홍보관을 개관하며 더욱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그런데, 일부 홍보관에서는 자사 홍보보다는 경쟁사의 조건을 분석하거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등 조합원 설득 전략이 네거티브 성격을 띠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조합원은 "자기 회사 홍보나 잘하면 되지 왜 남의 단점을 굳이 띄워놓느냐"며 불쾌함을 드러냈기도 했다. 조합을 설득하기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방식에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HDC현산이 제안한 '최대 2.5m 창호'가 일부 평형에만 해당하며, 실제 설계도면상에서는 2.2m에 그치는 세대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동시에 포스코이앤씨가 전면1구역에 적용하려는 하이엔드 브랜드 '오티에르'의 로고가 표절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공약보다 의혹에 더 초점을 맞춘 자극적인 공방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수주전에서 어떤 조건을 내걸었는지는 물론 중요한 사항이다. 하지만 본질은 실현 가능성과 신뢰다. 조합원에게 필요한 건 누가 더 화려한 말을 했느냐가 아닌, 실제로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다. 지금과 같이 네거티브가 반복되면 결국 조합원의 선택 기준도 흐려진다. 피로감은 조합원 몫이 되고 사업은 오히려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정비사업은 한 번의 계약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장기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건설사가 최종 선택을 받는 이유다. 지금 필요한 건 과열된 경쟁이 아니다. 조합과 함께할 수 있는 실력과 진정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2025-06-15 09:17:12 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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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새 정부와 대출난민

이재명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적한 과제를 차근차근 해결하고 있다. 압도적인 표차이로 당선을 거머쥔 것은 국민들이 거는 기대감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일주일이 막 지난 시점, 국정 안정에 힘입어 '머니무브'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주식시장에는 간만에 훈풍이 불고 있다. 그야말로 단비가 따로 없다. 반면 저축은행과 카드사, 대부업권 등은 긴장감이 확산하고 있다. 새 정부가 법정최고금리(연 20.0%)를 연 15%로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면서다. 업계에서는 법정최고금리 인하 시 '대출난민'이 대거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불법사금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란 목소리다. 대출금리는 금융사별 조달금리에 차주별 환급능력에 따른 가산금리를 더해 산정한다. 신용점수가 높으면 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지만 중저신용차주는 이자 부담이 더 크다는 의미다. 카드사와 저축은행은 은행권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 자금을 수급한다. 주이용고객은 자금 변동성이 큰 소상공인이 주를 이룬다. 지난달 기준 주요 카드사 8곳이 신용점수 700점 이하 회원에게 적용한 카드론 평균금리는 연 17.53%다. 카드론은 2금융권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신용점수가 넉넉한 차주가 이용한다. 법정최고금리 연 15%의 현실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는 총 6만3187건의 피해·신고·상담을 접수했다. 그중 4만7790건은 단순 문의 상담, 1만5397건은 피해 신고 상담이었다. 불법 대부 관련 신고는 연간 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불법채권추심은 48.5% 상승했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급전을 마련하다가 빠져나오기 어려운 굴레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접수한 신고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것이란 입장이다. 십수년전부터 폭력을 동반한 반사회적 추심 행위는 꾸준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2금융권은 취약차주에게 제도권 대출을 내주는 '마지노선' 역할을 한다. 법정최고금리에 육박하는 이자를 내더라도 자금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법정최고금리 인하와 2금융권의 생존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바로 '연동형 최고금리제'다. 금리 변동에 따라 법정최고금리를 유연하게 대응하자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기에는 학계 또한 연동형 최고금리제의 필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법정최고금리 인하와 서민금융 생존 활로 개방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기업과 학계가 대안을 제시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연동형 최고금리를 도입해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금융시장은 철저하게 숫자로 움직인다. 유연한 사고와 수용이 필요한 시기다.

2025-06-12 14:11:43 김정산 기자
[기자수첩]이재명 정부 출범, K-테크 운명 가를 '골든타임'될까

6월 3일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함께 국내 전자·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취임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난 지금, 산업계의 시선은 단순한 정권 교체가 아니라, 한국 첨단산업의 생존을 좌우할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에 쏠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산업·기술 분야에 전방위적 드라이브를 걸며, 인공지능(AI)과 반도체를 핵심 축으로 삼아 5년간 100조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청사진을 제시했다. 1호 공약이었던 '반도체 산업 육성'이 단순한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새 정부는 향후 5년간 민관 합산 100조원을 투입해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 이상을 확보하고, AI 데이터센터 건설 등 'AI 고속도로'를 구축한다고 공언했다. 선거 공약에는 'AI 전용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 '한국 고유의 소버린 AI 개발' 등도 담겨있다. 여기에 연간 40조원 규모 벤처 투자 계획까지 더해지면, 스타트업 중심의 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꾀할 수 있다. 기업들의 발걸음은 이미 빨라졌다. 삼성전자는 AI 반도체 설계(팹리스) 기업 리벨리온에 고대역폭메모리(HBM) 5세대 제품 'HBM3E 12단'을, SK하이닉스는 퓨리오사AI의 대표 AI 반도체 '레니게이드'에 4세대 HBM 제품 'HBM3'를 공급 중이다. 곧 최신 HBM3E도 제공할 예정이다. AI 스타트업이 성장할수록 HBM 수요가 급증해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도 줄일 수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도 신속히 반응했다. LG디스플레이는 정부 출범 직후 파주 올레드(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설비에 7000억 원 투자를 발표했다. 이는 정부가 내놓은 '100조원 첨단전략산업 투자기금'에 대한 신뢰와 기대가 선제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한때 '코리아 디스플레이'로 불리던 한국이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난 지금, OLED를 앞세운 기술 반격의 골든타임이 1~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도 묻어난다. 이런 가운데 오는 15일부터 캐나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는 한국 산업 전략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중요한 기회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 대부분이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디리스킹' 전략에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전략적 위치가 결정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이를 단순 외교적 줄타기가 아닌 산업의 기회로 적극 활용한다면, G7은 더 이상 남의 무대가 아니다. K-테크를 둘러싼 대규모 실험이 이제 막 시작됐다. 이 정부의 첫 1년이 바로 그 골든타임이다.

2025-06-11 16:26:29 이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