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는 '생물'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언제부터인지 정치권에서 격언으로 통한다. 정치인이 언제든지 입장을 다르게 낼 수 있는 뜻으로, 그러한 일들도 종종 일어나기에 다양한 상황에서 쓰이곤 한다. 제6공화국이 들어선 1987년 이후 한국 정치사를 돌아보면, 이 격언의 함의(含意)에 절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이 격언이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은,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덕분이다.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려던 나경원 전 의원에 온갖 비판을 쏟아낸 친윤(親윤석열)계는 어느새 입장이 달라졌다. 당 대표가 되기 위해 나 전 의원 힘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친윤계는 나 전 의원이 전당대회 출마에 대해 고심할 때, '반윤(反윤석열) 우두머리', '자신의 출마 명분을 위해 대통령의 뜻을 왜곡하고, 동료들을 간신으로 매도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 등 표현을 써가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입장은 180도 바뀌었다. 친윤계 초선 의원 9명은 지난 6일 나 전 의원이 있는 서울 동작구 지역구 사무실에 방문, 양해와 위로의 뜻을 전했다. 당시 나 전 의원을 찾은 박성민 의원은 "나 전 의원께서 불출마 선언 뒤 두문불출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단일화 성사로 윤석열 정부 탄생에 기여한 안철수 당 대표 후보를 향한 입장도 180도 달라졌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지난해 3월 단일화 공동선언에서 "저희 두 사람은 원팀"이라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어주며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고, 상호보완적으로 유능하고 준비된 행정부를 통해 반드시 성공한 정권을 만들겠다"고 했다. 11개월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의 '원팀'은 사라졌고 안 후보는 '자유민주주의 부정 세력'이 됐다. 당 대표 경선 경쟁자인 김기현 후보는 7일 안 후보의 과거 발언을 언급한 뒤 "시장 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국민의힘 정신에 부합하는 생각과 소신을 가지고 있느냐는 근본적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 후보에게 사실상 사상검증을 한 것이다. 물론 정치인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가 생물처럼 바뀌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생물처럼 정치 환경이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