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책임보험 '4.8%'의 벽…"보상보다 방어비용 보장부터 바꿔야"
국내 손해보험 시장에서 배상책임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기준 4.8%에 그치면서 미국(20%) 등 주요국 대비 시장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상금 보상 중심 인식에서 벗어나 분쟁 대응에 드는 '방어비용'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구조로 바꿔야 자발적 수요를 키울 수 있다는 제언이 나온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2023년 원수보험료 기준 국내 재물보험 비중이 9.3%, 배상책임보험이 4.8%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의 경우 재물보험 36%, 배상책임보험 20%로 책임보험이 위험보장 시장에서 크게 자리 잡았다. 미국 배상책임보험료 규모는 2023년 기준 262조원(재물보험 471조원)이다. 배상책임보험 활성화의 핵심 고리는 '방어비용'이다. 보험개발원이 발표한 '국내 배상책임보험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배상책임 사고는 최종 배상금이 확정되기 전부터 사실관계 확인, 증거 확보, 법률 대응이 필요하고 그 비용이 선행한다. 미국은 법원 비용 등 방어비용을 보험사가 부담하되 배상책임 손해 보상한도와 '별도로' 지급하는 구조다. 반면 국내는 방어비용이 보상한도 '내'에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 분쟁이 길어질수록 실제 보상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 이에 배상책임보험에 법률서비스보험을 '특약' 형태로 결합해 변호사 보수와 소송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이 제시된다. 기존 법률서비스보험 단독 상품은 약관이 어렵고 상품 구조가 복잡하다. 또한 주로 대면 채널 판매가 필요한데도 수수료가 낮아 지속 판매가 어려웠다. 만약 배상책임보험과 결합하면 가입 동기를 높이고 분쟁 대응 수요를 보험 체계 안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취지다. 개인(일상생활) 배상책임은 '고액 사고 대비'가 과제로 꼽힌다. 국내 판매 한도는 통상 1억~3억원이고, 고액도 최대 10억원 수준에 머문다. 소송문화 확산과 판결금액 고액화 가능성에 대비해 더 높은 한도의 상품 개발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제조물배상책임 분야에서는 리콜보험 특약 부가가 해법으로 거론된다. 실제로 리콜은 BMW 29만대(2018년), 현대·기아차 33만대(2022년), 김치냉장고 278만대(2020년) 등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고 생활·가정용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회수·교환 등 리콜 비용을 담보로 편입하면 기업의 비용 불확실성을 낮추고 보험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임원배상책임보험(D&O)은 법·제도 변화에 맞춘 약관 정비가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2022년 1월) 시행, 금융권 책무구조도(2024년 7월) 도입, 상법 개정(2025년 7월) 등으로 임원 책임이 강화되는 흐름을 반영해 보장 항목 확대와 약관의 명확화가 요구된다. 영문약관을 그대로 쓰는 경우 국내 법 적용 과정에서 의도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으므로 국내 판례와 실정에 맞춘 국문약관 정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된다. 보험개발원은 "재물보험은 기후변화 대응, 지수형 보험 도입 등을 통한 시장 확대를 모색 중"이라며 "배상책임보험은 의무보험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어 자발적인 수요 증가를 통한 활성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주형기자 gh471@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