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와 만난 보이스피싱 "범인은 모든 걸 알고있다"…피해자 속출
개인정보 유출, 이제는 심각하지도 않을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이 단순 마케팅 활용이 아닌 보이스피싱 범죄와 만나 괴물로 태어났다. 은행거래 내역, 채무상태, 신용조회 내역 등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사기범들에게 속수 무책으로 당하는 피해자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때 수 많은 피해자와 함께 재산피해를 냈던 보이스피싱이 개인정보를 업고 더욱 진화 한 것이다. 지난 8월 25일 오전, 기자의 지인 김모씨(29)는 이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A은행에 대출 상담을 받았다. 당시 신용조회 등을 하고 관련 서류를 준비하던 김씨는 그날 오후 A은행 대출상담팀 김민수 팀장(가해자)이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미 해당은행으로부터 상담을 받고 나온 당일이었기 때문에 김씨는 의심이 없었다. 범인은 연 3%대 금리로 2500만원 상당의 돈을 대출 받을 수 있다며 관련 서류를 빠르게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범인은 김씨의 집주소는 물론 은행거래 내역, 채무상태까지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타 은행에서 빌린 돈을 성실히 갚으셨고 신용등급이 높아 바로 진행가능하다"는 사탕발린 말로 피해자를 속였다. 당시 김씨는 은행으로부터 신용관리 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때문에 금융기관의 신용조회가 발생하면 발생상황을 문자로 받아볼 수 있었다. 범인이 김씨의 금융거래 이력을 말할 때마다 신용조회가 발생했으므로 김씨의 신뢰는 한층 더 높아졌다. 실제 은행이 자신의 신용정보를 보고 있다고 믿은 것이다. 9월 20일 업무 등의 이유로 서류 준비가 늦은 김씨에게 또 다른 범인이 자신이 대출 심사팀이라며 재차 전화를 걸었다. 한달 만의 일이다. 그는 대출 상품이 마감되니 빨리 서류를 보내 달라고 보챘다. 김씨는 당일 주민등록등·초본, 통장사본, 입출금 내역 등의 서류를 팩스로 전송했다. 사실상 일반 대출과 같은 과정이다. 범인이 계약서를 보냈을 때는 저금리에 빠른 대출이 가능하다는 마음에 기쁘기만 했다. 판단은 이미 흐려진 후였다. 9월 21일 자신을 심사팀이라 소개한 범인에게 재차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고객님이 김민수 팀장님과 지인이라는 말을 들어 상황을 잘 봐주려 한다. 신용 평점이 조금 낮아 사실상 대출이 조금 어렵지만 한 과정만 거치면 평점이 올라 오늘 내로 입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통해 대출을 해 당일 돈을 갚으면 신용평점이 오른다는 내용이다. 자신을 지인이라고까지 소개한 김민수 팀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범인이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수법이다. 김씨는 범인의 말을 믿고 소개받은 저축은행에서 1000만원을 대출받는다. 이때 범인은 "고객님의 주거래 통장에 돈이 들어온 걸 확인했다"며 "돈을 쓰지 말고 A은행으로 보내주면 은행에서 완납처리 후 대출을 진행하겠다"고 말한다. 김씨는 의심 없이 해당은행으로 1000만원의 돈을 입금했다. 범인은 "평점을 올리기 위한 꼼수기 때문에 은행연합회에서 의심하고 전화가 갈수 있다. 은행에서 전화가 온다면 그냥 지인에게 돈을 갚는 것이라고 말해라. 그렇지 않으면 평점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거래 은행에서 보이스피싱 범죄를 의심하고 전화가 걸려왔지만 김씨는 범인 시키는 대로 답변했다. 은행 팀은 관련 보이스피싱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재차 확인을 당부했지만 그는 귀찮다는 듯이 전화를 빨리 끊기를 요구했다. 잠시 후 범인들은 자신들이 해당 저축은행에 돈을 완납했다며 증명서를 보냈다. 그들은 증명서를 보내며 "일단 돈은 완납을 해서 평점이 올랐는데 한 3점정도 부족하다. 한번 더 대출을 할 수 있느냐"며 재차 대출을 강요했다. 완납증명서를 보던 김씨는 잘못 기재된 자신의 주민번호, 이름, 대출금액 등을 보고 의심을 하게 된다. 곧바로 저축은행에 전화해 완납 여부를 물었으나 저축은행측은 들어온 돈이 없다고 답했다. 이제서야 사태를 파악한 김씨는 제발 사기가 아니기만을 기도하며 김민수 팀장에게 연락을 한다. 김민수 팀장은 "그럴리가 없는데, 다시 확인하고 연락드릴께요"라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급하게 돈을 입금한 은행에 지급정지 신청을 하고 경찰에 고소했지만 이미 범인들이 돈을 빼낸 후였다. 이들의 범죄는 김씨가 A은행에서 상담을 받을 때부터 계획됐다. 자금이 필요한 김씨가 A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받은만큼 해당은행으로 접근하면 의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유출된 김씨의 개인정보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씨를 속이기 위해 상담도중 신용평가기관에 김씨의 이름으로 신용조회를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들이 전화를 걸어온 번호는 지역번호가 서울이었지만 이 역시 조작된 전화번호였다. 연락이 두절되고 남은 것은 법정최고이자의 1000만원 빚이었다. 기존 보이스피싱이 입 발린 거짓말로만 진행됐다면 이제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자신들이 금융사임을 믿도록 한다. 22일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들어 다시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의 신고가 늘고 있다. 서울에서만 하루 수십 건에 달한다. 서울 관악경찰서 지능팀 형사는 "유출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피해자가 최근 어디서 대출 상담을 받았는지까지 알고 있다. 피해자들은 속을 수 밖에 없다"며 "범인들은 주로 사무실을 중국이나 일본에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검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금이 필요한 피해자를 타깃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를 활용한 사기는 기가 막히게 잘 먹혀든다. 너무 흔하게 일어나서 무관심해지기까지한 '개인정보 유출'. 이제는 피해자들의 재산을 노리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