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가 미래다…N포 세대의 우울한 자화상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는 물론, 주요 기업들까지 앞다퉈 청년 일자리 마련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와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속시원히 해결되지는 않고 있다. 청년 실업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병들게 할 수 있다. 대증요법에서부터 근본적인 원인까지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메트로미디어는 청년들의 실업 문제를 긴급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찾기 위해 '청년, 일자리가 미래다'란 주제로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싣는 순서] (1부) N포 세대의 우울한 자화상 (2부) 천년에 희망을! 국가에 미래를! (3부) 창희재단의 기부천사들 (4부)청년 일자리 창출에 애쓰는 기업들 (5부) 이젠 노동개혁이다
[메트로신문 양성운·정문경·오세성 기자] "토익 900, 졸업학점 4.1 등 스펙 쌓아도 힘듭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3포 세대'가 등장하더니 인간관계를 포기한 '4포 세대', 내 집 마련을 포기한 '5포 세대', 꿈과 희망을 포기한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최근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까지 등장했다. 20~30대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취업보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게 더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N포 세대인 캥거루족과 니트족이 늘어나면서 청년 취업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학과 사회, 국가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한민국의 허리를 책임지고 있는 2030대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올 9월 청년실업률 7.9%…20대 "사는 게 참 힘들다" 지방대를 졸업하고 일반 기업 취업을 준비했던 김경남(29·가명)씨는 연봉 2000만원의 중소기업 전자부품 품질관리직으로 입사했다가 국내 공장의 철수로 해고를 당했다. 이 후 2년 가까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았다. 2년 가까이 지나니 집에선 일단 취업을 하라고 성화였다. 심리적 압박에 못 버텨 취직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다시 취업을 위해 준비 중이다. 김씨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사는 게 참 힘들다"고 말했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10%를 넘던 청년실업률(15~29세)이 9월엔 10개월 만에 최저치인 7.9%로 떨어졌다. 작년 9월(8.5%)에 비해서는 0.6%포인트, 전달인 8월(8.0%)보다 0.1%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청년 취업자 수는 작년 9월 386만5000명에서 지난달 395만6000명으로 9만1000명 늘었고, 실업자 수는 같은 기간 35만8000명에서 34만1000명으로 줄었다. 통계 숫자상으로는 청년 고용 상황이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착시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질적 측면에선 청년들의 고용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취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지레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작년보다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업자나 마찬가지인 구직단념자가 늘어나면 실업자 수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 9월 구직단념자는 48만8000명으로 8월(53만9000명)보다는 줄었지만, 작년 9월(46만3000명)보다는 2만5000명 늘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력의 공급과 수요가 맞지 않는 수급불일치(미스매치)가 확산된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층 인구는 줄어드는 반면, 고학력 인구 비중은 증가하면서 학력 수준이나 연령대에 맞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청년층 실업 문제는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린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은행 조사국 최영준 차장과 김현재 조사역이 지난 21일 발표한 '주요국 노동시장의 미스매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학력별 노동 미스매치 지수는 2008년 0.81에서 2013년 0.88로, 연령별 미스매치 지수는 같은 기간 1.69에서 1.75로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4개국을 비교(2013년 기준)하면 한국의 학력별 노동 미스매치 지수는 13위, 연령대별 미스매치 지수는 8위다. 유럽 재정위기 경험국들이 상당수 상위권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미스매치 지수가 비교적 높은 편이라는 게 한은의 분석이다. 특히 스페인, 미국, 한국에서는 위기 이후 미스매치 정도가 커진 반면, 독일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완화됐고 일본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노동의 미스매치란 학력, 기술 등의 조건 불일치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뜻한다. 구직활동에도 불구하고 취업이 되지 않는 실업보다 넓은 의미의 노동수급 불일치로 해석할 수 있다. 최영준 차장은 "청년실업 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인적자본 형성 등을 저해해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성장률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신성장산업을 육성해 양질의 일자리 확충에 힘쓰고, 대학정원의 합리적 조정을 통해 과학력 인력 과잉공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30대 취준생 체감온도 '겨울'…포기해야 하나 오전 10시에 일어나 각 신문 메인 뉴스를 보고 집이나 도서관으로 이동해 공부를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걷거나 달리기 등의 운동을 한 뒤 인터넷으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한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새벽 5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이 홀가분하게 일주일간 면접을 준비와 휴식시간을 보내며 겪을 법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올해 35세 김순결(가명)씨의 하루 일과다. 김 씨는 서울 4년제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토익 900점, 해외 유학 경력(2년) 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잇달아 취업에 실패하면서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부모의 품에 안겨 사는 '캥거루족'이 됐다. 반도체 분야를 전공한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1년 6개월 동안 취업 준비를 했고 3년 동안 기업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시간을 보냈다. 자신의 전공을 살리기 위해 삼성전자 반도체,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회사에 주로 지원했으며 LG와 현대, SK 등 대부분 전자관련 회사에 지원서를 제출했다. 김 씨는 "전기·전자와 관련된 100대 기업의 90% 정도는 지원서를 제출한 것 같다"며 "열정을 갖고 노력했지만 취업은 쉽지 않았다. (취업을)안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털어놨다. 김 씨처럼 30대를 넘어선 취업준비생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때문에 심각한 취업난을 뚫기 위해 흔히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 많이 한다. 김 씨는 "세금을 제외하고 초봉 3000만원 초반에 주 6일 근무, 야근과 밤샘이 너무 잦지 않으며 4대 보험이 보장되는 회사에 취업하려는 게 목표를 높이 잡은 것이냐"며 "눈높이를 낮추라는 얘기를 들으면 차라리 산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장 상처 받는 말은 '아무 일이나 해라'다"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20개가 넘는 청년고용대책을 내놓았고 수 억원의 지원비를 쏟아내며 청년 취업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선 취업준비생이 느끼는 체감 온도는 한 겨울이다. 김 씨는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대부분 10대부터 20대 초중반을 위한 것"이라며 "30대에게 지원해주는 대책은 취업이 아닌 창업쪽이다. 창업할 돈이 있었으며 20대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부 등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며 "최저 임금 인상과 고용주의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