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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진성오의 심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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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피그말리온 효과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여신(女神) 아프로디테(로마 신화의 비너스)의 조각상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살을 붙여 만든 이야기다. 피그말리온이 여인상을 조각하고 그 조각한 여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자 아프로디테가 그 여인상을 진짜로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로 바꾸었다고 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심리학에서는 '어떤 대상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하여도 진정으로 존중하고, 뭔가를 기대하면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교육학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념이기도 한데 하버드 대학교 사회 심리학 교수인 로젠탈(Rosenthal, Robert)의 이름을 따서 '로젠탈 효과'라고도 하며 심리학적으로 같은 개념으로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도 한다. 이는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어떤 사람들이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타인의 기대감에 부응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보통 타인에 대해서 사용되는 효과이지만 피그말리온 효과는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어떤 행동을 스스로 할 것이라고 믿는 경우에는 실제로 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면, 금연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금연에 성공할 것 같은지에 대해 '예'라고 대답한 사람들 80%가 실제로 금연에 성공한다고 한다. 이를 돌려서 보면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를 잘못 오해하면 근거 없는 확신이나 근거 없는 신념만을 주장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로또에 당첨되고 싶은 마음에 로또가 당첨될 것이라고 믿고 자신에게 신념을 불어 넣는 것은 자기 충족적 예언이 아니라 자기 충동적 망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피그말리온 효과는 사람에 대해 적용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런 효과가 원래 어원처럼 사랑하는 연인 간에 더 효과적이면서 더 자주 관찰된다고도 볼 수 있다. 연인들은 서로가 바라는 모습을 서로의 마음에서 투영하게 되고 이렇게 투영된 모습에 자신들이 맞춰져 간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서로가 사랑하는 모습은 상대방이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이쪽에서 내적으로 봐주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면에서는 서로의 허상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작이 허상이라고 하여도 이 허상이 추후에는 진짜 그러한 모습으로도 변화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사랑이란 진정 아프로디테 여신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 상대가 싫어하는데도 지속적으로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스토킹을 한다'고 표현한다.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2020-02-19 10:28:46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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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근심

근심은 어떤 사실이나 사건에 관한 마음을 쓰는 상태나 그 마음을 의미한다. 심리학적으로 근심은 불안의 사고적 요소로서 개인이 문제 상황에 직면하여 그 문제 상황이 앞으로 초래할 결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인 동시에 문제 상황에 대한 문제해결 방법을 조사하는 과정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러한 근심은 일시적인 경우 순기능을 하지만 만성적인 형태가 되면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심리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잘 지내다가 어떤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갈등이나 문제 상황을 경험하면 근심을 하게 된다. 사는 동안 한 번도 근심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문제 상황이 아닌 데도 만성적으로 근심을 하기도 한다. 이런 근심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오직 인간에게만 관찰되는 현상이다. 근심을 걱정과 같은 의미로 보통 사용하고 있어서 사전적으로 보면 근심은 '괴롭게 애를 쓰는 마음'으로도 설명되고 걱정은 '근심으로 마음을 태우는 일'의 의미로도 설명된다. 일반적으로 근심은 정상적인 근심이 있는가 하면 병리적 근심이 있다. 병리적 근심을 경험하는 대표적인 장애는 불안장애 환자들로, 그들은 정상인보다 다양한 위협에 관해 근심하고 더 자주 근심을 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자주 만성적으로 근심을 경험하고 있다면 다양한 정신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근심은 위에서 설명한데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데 따른 부작용 혹은 비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물들은 근심이 없다고 하는데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태평하게 지내는 존재로 고양이를 들 수 있다. 고양이가 근심이 없는 것은 오직 현재에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고양이는 미래를 가져와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동물들이 그렇다. 인간은 예외적으로 미래를 예상하고 대책을 세우고 그래서 이러한 능력 때문에 지구에서 가장 다양한 지역에 많은 숫자로 번식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우리에게 앞으로 생기지 않을, 혹은 미리 생각할 필요 없는, 혹은 생겨도 어쩔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미리 불필요하게 시간을 당겨 근심하도록 하는 저주를 같이 주게 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근심 혹은 걱정을 줄이는 방법이 발견된다. 물론, 이 말은 이미 인간의 역사에서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기도 한데, 바로 오직 현재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현재 내가 경험하는 것들에만 신경을 쓰고 과거도 미래도 고려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은 근심을 관리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또 이를 전문적으로 하도록 개발된 방법이 바로 명상이며 마음 챙김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 말이 미래는 생각지도 말고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데로 살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현재에 의식을 두고 현재에 벌어지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면들 때문에 고양이가 만물의 영장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현명하게 진화한 측면이 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듯도 하다. /진성오 당신의마음 연구소장

2020-02-05 14:49:49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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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신경증

신경증이란 용어는 한권의 책으로 정리될 정도로 매우 광범위하면서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일반적인 정신과 혹은 상담 장면에서도 가장 흔하게 만나게 되는 정신과적 증상이며 전문적인 진단용어이기도 하다. 정신의학적으론 신경증은 '급성 혹은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대한 정서적 반응'으로 궁극적으로 그 스트레스를 해결하는데 부적절한 감정이나 행동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직 까지도 신경증이란 용어는 정신과 의사에 따라 상이하게 사용되다 보니 대부분의 독자들이 신경증에 대해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무엇인지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 이유도 용어의 미묘함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정신병과 반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현실감각이 심각하게 손상되면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그렇지 않은 경우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신경증이란 용어를 무의식적 갈등의 존재를 의미하는 정신역동적인 문제로도 이해하였다가 진단편람에서 폐기되기도 하였다. 신경증이란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784년 컬렌(Cullen)이란 의사에 의해서인데 이때는 감각과 운동의 초자연적 질병을 기술하기 위해 영어에 처음 도입되었다고 한다. 이는 특정 장기에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경계 전체 또는 감각과 운동이 종속되어 있는 신체계통의 질병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어떤 사람이 신경에 문제가 있다면 어디로 데려가야 할까? 아마 신경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미치지는 않아서 현실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들어하고 자살을 생각한다면 어디로 데리고 갈 것인가? 아마 정신과일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신경의 문제와 신경증적인 문제의 구분은 초기에는 구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미치지 않았는데 그리고 실제로도 신경에는 큰 문제가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일반인들의 용어는 '신경에 문제가 있어'였던 것이다. 그래서 1940년대 정신분석이 나오기 전까지는 의사들도 정신병이든 신경증이든 모두 다 본질상 '신경에 의한 것'이라는 일종의 허구에 동조하였고 특히 당시의 정신과 의사들은 매우 열성적으로 이러한 시선에 동조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실 좀 단순하지만 흥미 진지하다. 정신의학이 현대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정신병을 전문적으로 치료-사실 감금에 좀 가까운-하는 정신과 의사라고 상상해 보라.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교수로 남고 싶지만 개업을 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처한 입장은 열자라는 중국 고전 중 한 부분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한다. 용을 잡는 무술을 10년 동안 훈련한 무술의 고수와 같은 것이다. 공부를 마치고 그래서 스승으로부터 떠밀리다 시피해서 하산했다. 자 당신이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 용을 잡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그렇다. 용이 없었던 것이다. 이럴 때 누군가가 어디서 용이 되기 전의 이무기란 놈을 봤다고 하고 그것을 잡아 줄 수 있는지 한다면 어떨 것인가? 그것이 지렁이라고 하여도 아마 용이 되려는 이무기라고 우기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와 동의되는 공모를 통해 도시의 신경-전문의사, 전기치료사, 신경정신과 의사로 불리면서 사회적 지위와 높은 수입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왜 신경정신과였다가 신경과, 정신과였다가 다시 신경정신과였다가 하면서 한 여자랑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 하는 것 같은 상황이 정신의학에서 일어났는지 감이 올 것이다. 현재는 완전히 다른 여성과 재혼해서 정신건강 의학과 의원이 되었지만 말이다.

2019-12-11 14:54:30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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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루시퍼 신드롬

'루시퍼 신드롬'은 스텐퍼드 심리학과 교수인 필립 짐바르도가 수행한 일종의 심리학 실험에서 근원한 용어로 학교 지하에 교도소를 만들어놓고 지원자를 뽑아 죄수와 교도관 역할의 두 집단을 만들고 2주간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나는 가를 관찰 연구한 실험을 기록한 책의 이름이다. 이 책에서 짐바르도는 자신의 단순한 실험이며 역할 놀이에 가까웠던 실험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피험자들은 자신의 역할과 행동을 일치시켜가기 시작하며 실제 실험을 넘어서서 성적 학대 수준의 행동까지 이어지게 된다. 결국 2주를 예정한 실험은 참가한 피험자들의 우울증, 정신적 고통 등으로 6일 만에 종료되었다. 독자도 이러한 이야기를 신문이나 혹은 여러 영화로 접해 보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실험에서 우리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도, 악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론 적어도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경우 대부분의 인간은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루시퍼와 같은 악마가 쉽게 될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루시퍼는 악마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시퍼라는 말은 원래 샛별인 금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여성적인 요소의 비하가 일종의 '악마의 왕' 위치까지 올려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은 짐바르도의 실험에서 관찰한 인간의 악한 변화를 어떤 면에서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나 욕심으로 혹은 단순히 나보다 힘센 사람이 시켰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악한지의 여부나 판단보다 먼저 행동을 실천하는 무기력한 존재다. 이런 루시퍼 효과는 사실 짐바로드의 실험 이전에 무수한 인간 역사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는 한나 아렌트가 기술했던 '악의 평범성'에도 나온다. 그녀는 우리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악마의 왕인 루시퍼가 특별히 뿔을 달고 얼굴이 빨갛고 꼬리가 달린 것이 아니라 그냥 옆집에서 혹은 회사에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냥 우리가 지하철에서 만나는 남자나 여자가 어떤 상황에서 아무런 생각없이 타인의 목숨까지도 뺐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행동이 2차 대전에 독일인들에 의해서 유대인에게 자행된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프로모 레비는 자신의 수용소의 생존 40년 이후 당시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그 때 무슨 일인지를 깊이 성찰하는 과정을 '가라 앉은 자 구조된 자'라는 책에서 저술한다. 그 책에서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피해자인 사람들의 영역 안에서도 더욱 가해자의 역할을 하는 모습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가해자들이 일상성과 평범성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한다. 이후 1년 후 자신의 집 창문으로 뛰어 내려서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 고통스러운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은 생존자가 삶이라는 아우슈비츠에서는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풀려났던 것이다. 필자가 더 아이러니하게 느끼는 것은 그렇게 살아 남은 사람들의 자손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미사일을 날리면서 광경을 구경하고 쾌감을 느끼며 식사를 한다는 사실이다. 어쩜 이건 그냥 우리가 루시퍼의 자식이란 것을 말해주는게 아닐까?

2019-12-04 12:50:18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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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망상(妄想, delusion)

망상(妄想, delusion)은 실제 근거가 없는 사실을 진짜로 믿는 것이다. 보통은 병리적인 수준의 믿음을 의미하지만 믿음보다는 가정이나 의견이라고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상학적으로는 망상은 사실과 다르고 설득되지 않는 믿음으로 그 믿음을 믿는 사람의 교육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과 부합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환자는 망상 내용을 확고하게 신봉하고 스스로 진정 옳다고 믿는다. 이런 면에서 주관적으로 정상적인 믿음과는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어떤 면에서 간단히 정리하면 망상이란 자신은 사실이라고 믿으나 타인들이 보기에는 잘못된 생각이다. 망상은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가장 흔한 형태는 피해망상이다. 보통 자신의 삶이 타인으로부터 방해 받고 도움은커녕 해를 입는다고 느낀다. 이것의 변형된 형태의 하나는 편견 망상이다. 이 망상은 자신이 다른 사람의 이익 때문에 무시당하고 경시되며 승진에서 추월당한다고 믿는다. 가해자는 꼭 사람만이 아니라 기계, 체계, 조직, 제도 일 수도 있다. 다른 흔하게 볼 수 있는 망상 중 하나는 병적 질투가 있다. 병적 질투는 지배관념과 연관되는 측면이 있다. '그녀는 나에게 속하고' '나는 그녀에게 속한다'. 그런데 이 서로의 지배 관계에 누가 끼어드는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는 형태이다. 그래서 병적인 질투를 보이는 환자는 자신이 배우자의 부정으로 인해 자신만이 누려야 하는 정절의 권리를 침해 받는다고 느낀다. 특히, 이런 경우 망상의 내용은 성적일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질투 망상에서 희생자는 성적으로 더 많은 매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환자 스스로 과거 성적으로 문란했을 가능성이 높고 자신의 배우자도 비슷한 행동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이런 망상은 폭력을 동반하게 되고 망상의 대상이 되는 연적보다는 배우자에게 더 강하게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면에서 스토킹도 가볍게 진행되는 질투 망상의 색채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치료자들은 망상을 변화시킬 수 있거나 설득하기 불가능한 영역으로 보고 접근한다. 그래서 망상의 주제 자체를 가지고 논박하거나 설득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고 효과적이지도 않다고 여긴다. 아직 어떤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고 있으며 과학자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늘에 보는 태양이나 달은 둥근 데 지구만 어떻게 평평한가? 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그들은 다양한 논박을 한다. 이런 형태의 망상이 심하게 작동하면서 자신을 괴롭히거나 타인을 괴롭힌다면 우리는 치료를 권유한다. 그러나 어떤 망상들은 사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언 듯 볼 때 망상으로 보였던 생각들이 실제 실천되면서 인간의 문명이 발전한 면도 있다.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이 없었다면, 혹은 우주를 개척할 것이라는 망상이 없었다면 우리는 현재와 같은 시대를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망상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 자체가 망상일 수 있겠지만, 실현 가능한 좋은 망상인지의 여부는 인간이 판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그 망상이 실현되었을 때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그려 본다면 좋은 망상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망상을 가져본다.

2019-11-13 11:00:46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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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오타쿠

'오타쿠'라는 말은 일본말 중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용어 가운데 하나다. 최초로 이 말이 사용된 것은 1983년 글 기고가인 나카모리 아키오가 '망가 부릿코'라는 소위 일본 만화 중독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니메 팬들이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는 일본의 2인칭을 따와서 약간의 야유가 섞인 말로 '오타쿠'라고 부른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이 용어는 약간의 차별적인 뉘앙스를 가지면서 주류문화가 아닌 하위문화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1989년 소녀 연속 살인사건이 계기가 되면서 한 순간에 모든 사람의 뇌리에 알려지게 된 용어이기도 하다. 이후 199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해외 팬들에 의해 유럽과 미국에서 일종의 외래어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말은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서 애매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보통 '마니아'와 동의어로 많이 사용되기도 하며 의미에서는 '집에 틀어박혀 있으며 대인관계가 나쁘고 어두운 사람'이라고도 설명되기도 한다. 일본의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는 오타쿠들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허구적 콘텐츠에 친화성이 높은 사람이며 허구 그 자체에서 성적 대상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기 위해 허구화라는 수단이 작용하는 사람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마니아와의 차이는 마니아는 현대적이기보다는 문명의 기원까지도 올라 갈 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고 오타쿠는 이러한 마니아의 일부가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변종으로 나타난 것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오타쿠가 대상으로 하는 물건들은 아니메(애니메이션을 줄인 일본말), TV게임 성우 아이돌, C급 아이돌, 동인지, 전투미소녀 등에 해당되며 마니아적 대상물은 우표수집, 서적, 오디오, 카메라, 천체관측, 버드워칭, 곤충채집, 음악전반, 그 외 수집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오타쿠가 한국에 넘어와 한국식 축약된 발음으로 '오덕(또는 덕후)'이라는 용어로 전환된다. 한국의 오덕은 웹툰이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일본의 망가나 아니메에 빠져들어 있는 청소년층으로도 볼 수 있지만 대중들에게 강하게 인상을 남긴 것은 한 TV프로그램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구 옆에 있는 행성에서 사는 사람들이란 의미의 단어가 타이틀였던 이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애니메인션 캐릭터가 그려진 베개를 가지고 있는 방송 주인공이 캐릭터와 혼인하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일본에서와 비슷하게 다소 경멸적인 용어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한국의 오타쿠인 오덕은 일본의 오타쿠와 다른 결을 가진다고 보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덕은 인터넷 문화의 일종으로 진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오덕의 행동을 보통 덕질을 한다고 하고 다른 표현으로 덕후라고도 표현하는데 한국에서도 이제 덕후라는 말 혹은 덕질이라는 말은 어떤 대상에 대해 매우 심취해 있는 상태로 마니아와 동의어로도 사용되고 있다. 특히 아이돌의 팬이 되는 것과 같은 행동도 덕질이라고 하며 이러한 덕후가 되는 입문을 입덕이라고도 하며 완전한 팬이 되는 것을 성덕이라고 하는 등 일종의 문화적인 용어로 자리를 잡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가 많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보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사람들은 대부분 덕후가 아닐까 편을 들어보기도 한다. 아인슈타인만 해도 어렸을 때 빛을 타고 가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궁금해 하였다고 하며, 이를 성인이 되어 과학적으로 연구한 것이 특수상대성 이론이라고 하니 이런 과학 덕후의 자질이 없지 않을까.

2019-10-23 15:05:00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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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우울증

우울증(憂鬱症, depression)은 기분장애의 일종으로 우울한 기분, 의욕·관심·정신 활동의 저하, 초조(번민), 식욕 저하, 불면증, 혹은 과도한 수면, 지속적인 슬픔·불안 등을 특징으로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생에서 적어도 한번은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적인 정신과 장애로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우울증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우울증은 정신의학적으로는 하위에 몇 가지의 유형이 있고 증상에서도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우울과 관련된 하위 유형에는 증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주요 우울장애가 있다. 다양한 증상이 있으나 기본적인 두가지 증상은 지속적인 우울한 기분과,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이 거의 매일 지속되는 경우이다. 기타 증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에 세분화시켜서 불안한 양상을 가지는 것, 기분이 다소 뜨는 조증이나 경조증이 나타나는 혼재성 양상이 있는 것, 멜랑꼴리한 양상을 가지는 것, 외적 자극에 기분 반응성이 우세하게 나타나는 비전형적인 양상이 있는 것, 기분과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는 형태의 정신증 양상이 있는 것, 긴장증이 있거나 산후에 나타나는 것, 특정한 계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등으로 세분화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흔하다고 해서 우울증 증상이 평범하고 별거 아닌 것은 아니다. 단순히 우울한 기분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 우울증을 경험하는 사람은 지구에 혼자 살아 남은 것과 같은 수준의 고통을 경험한다. 보통 우울증에 걸리면 집중, 의사결정이 어려워지고 고통스러워지며 심한 경우에는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또한 불안은 흔하게 우울과 동반되어서 같이 나타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한다. 증상의 빈도로 보면 남자들의 경우 거의 100% 빈도로 우울 기분을 경험하며 다음으로 흥미 상실, 불안, 수면의 어려움, 자살 시도나 의도, 신체적 증상, 초조, 지체, 건강염려, 하루 중 감정의 변화를 보인다. 여성의 경우도 비슷한 순서의 빈도를 보이나 신체증상과 죄책감의 순서가 좀 더 많은 빈도를 보인다. 뇌 과학에서 우울은 우울의 늪으로 빠져드는 나선형의 회전으로도 설명한다. 이를 우울의 늪으로 가는 하강 곡선이라고도 표현하는데 이 하강 곡선의 심각한 문제는 우울 자체가 아니다. 누구나 우울을 경험하고 또 한편으로 인생을 살면서 우울하지 않다면 주변에 무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이렇게 우울해 졌을 때 보통 정상적인 경우 다시 기분을 회복한다. 문제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다. 이들은 우울한 감정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우울의 늪으로 가라앉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 나선형의 회전은 반대 방향으로도 회전이 가능하고 모든 사람은 모두 공통적인 나선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이 하강 나사의 회전을 거꾸로 돌리는 방법이다. 걱정을 정리하여 첵크리스트를 만들고 당장 벌어지지 않는 것들을 지워라. 낮에는 밖에 나가 햇볕을 쐬고 적어도 1시간은 운동을 하라. 웃길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웃으면 뇌는 웃은 이유를 찾는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웃어라. 심호흡을 자주하고 밤에는 꼭 잠들려고 노력하라. 우울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 행동을 나선형으로 회전시킨다. 행동에는 이유가 없다. 그러니 지금 나열한 것을 하면서 적어도 한달만 먼저 행동해 보라. 그리고 두고 보라. 하나 더. 혼자 힘들다면 전문가를 찾아가라. 우울한 사람이 전문가를 찾지 않는 것은 치료 효과가 없을 거란 자신의 우울한 감정에 속기 때문이다. 자신의 우울감에 속지마라. 결과는 고통뿐이니.

2019-10-10 09:37:49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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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멘탈리스트

사전에는 멘탈리스트라고 하면 유심론자라고 한다. 유심론자란 세상이 물질이 아니라 정신으로 이뤄져 있고 정신으로 환원된다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의미를 가지는데 지금은 이런 의미 보다는 정신적 추측·제안(암시)를 하는 사람, 심리주의자, 독심술가, 혹은 사고와 행동의 조종에 통달한 사람을 의미한다. 멘탈리스트는 보통 멘탈 매직이라는 쇼를 하는 마술사를 말하기도 한다. 미국 드라마인 '멘탈리스트'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으로 드라마의 주인공도 마술사 출신이라고 설정되어 있다. 거기서 주인공인 '쉐인'은 형사가 아니면서도 멘탈 매직의 기술을 활용해서 범인들을 유추하고 밝혀 나간다. 멘탈 매직은 마술적인 기술과 최면적 기술, 독심술과 같은 기술을 혼합한 일종의 마술 기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멘탈리스트가 사용하는 기술들은 최면기법이나 최면 기법의 엑기스를 정리한 NLP(Neuro Linguistic Programing) 등에서 활용하는 설득 기법들과도 연관되어 있고, 이러한 기법들은 어둠의 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는 다소 언더그라운드 심리학의 영역과도 연관되어 있다. 어둠의 심리학(Dark Psychology)이라고 하면 매우 신비하고 오컬트 같은 느낌을 주지만 어둠의 심리학의 원리들은 행동주의 심리학의 고전적 조건화, 감각 박탈, 최면의 대사 밀턴 에릭슨의 암묵적 최면 기법, NLP 등을 포함하는 일종의 세뇌 혹은 설득의 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을 라스베이거스의 쇼 장면에서 매우 신비하고 재미있게 연출하는 형태로 변형한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실 자신이 잘 모르는 자신의 영역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잠시 어제 마지막으로 먹었던 식사를 한번 떠올려 보라.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기억을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눈동자가 위로 올라갔을 가능성은 매우 높고 그것도 오른쪽 방향으로 올라갔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것은 사실 많이 알려진 인간의 자연스러운 기억 회상의 관념운동 중 하나이다. 보통, 마음 하면 내면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멘탈리스트나 독심술을 훈련하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자신도 모르게 겉으로 들어나는 인간의 미묘한 표정, 자세, 호흡 등을 통해 내적인 상태를 추정하고 유추하여 맞춰 나간다. 결국 사람의 마음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겉으로 들어난다. 그래서 우리가 애정을 가지는, 혹은 심도 있게 상대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처럼 타인이 보내는 신체적 정보들을 아주 열심히 자신도 모르게 읽기 때문에 일상의 대화를 넘어서는 정보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내 눈을 바라봐~ 너의 마음을 읽어 줄게'는 틀린 주장은 아닌 것이다. 이글을 읽는 독자도 한 번 자신의 관심 가는 대상의 얼굴 표정과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라. 아마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항상 그렇듯 마음은 심장 안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더 타당한 듯 하다.

2019-09-25 10:38:2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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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할머니 손은 약손

필자는 어렸을 때 방학이면 외가를 자주 가서 거의 방학 내내 지내곤 하였다. 그렇게 외가를 가면 항상 외할머니가 필자를 애지중지 하시면서 돌봐 주셨다. 지금도 시골 분들은 그렇지만, 당시 시골 할머니의 정이란 항상 뭔가를 배불리 먹이는 것이었다. 귀여운 외손자니 오죽 했을까? 그래서 한번 시골을 다녀오면 초등생이었던 필자는 약 5㎏ 씩 살이 쪄서 올라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할머니가 주시는 데로 먹다 보면 간혹 소화를 못시켜 배탈을 경험하곤 하였는데 배탈치료 법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늘로 손가락 마디를 따는 것이었다. 효과가 있었지만 더 효과적인 것은 외할머니가 '내손은 약손이다'라고 말하면서 필자의 배를 문질러 주시는 것이었다. 배를 그렇게 몇 십분 문질러 주시면서 '주문'을 외우시면 감쪽같이 배탈이 나았다. 당시 어린 나이지만 필자는 그 현상을 매우 신기하게 여겼는데, 커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상을 '플라시보'라고 하며 할머니의 약손이 단순히 최면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 효과가 있는 치료법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플라시보(영어: placebo)는 라틴어로 '마음에 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진짜 약이라고 하고 가짜 약을 투여해도 '좋아질 것'이라는 환자의 믿음 때문에 병이 낫는 현상을 말한다. 실제로 약이 턱없이 부족했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많이 쓰였던 방법이며 이러한 심리현상을 플라시보 이펙트(위약효과)라고도 한다. 또한 좀 더 전문적으로 플라시보는 실험자나 피험자가 서로 플라시보 약물이 처방되는지 몰라야 하는 것과도 연관되며 이를 이중맹검 검사라고도 하는데 이는 정신약물학이나 약물정신의학에서 핵심적인 통제 요소라고도 한다.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에 간 경우 응급실 병상에 누워 별로 처치를 받지도 않았는데 아픔이 사라지는 것 같은 경험사례나 감기에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은 주변에서 혹은 볼 수 있는 사례다. 이렇듯 좋아질 것이란 믿음에서 비롯된 플라시보 효과는 사실 정신약물을 개발하는 연구원들에게는 매우 골치 아픈 것이기도 하다. 특히 심리학 실험 같은 경우에도 특정한 치료를 받을 것이라고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만 해도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현상 때문에 진짜 약물의 효과가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하물며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 실험에서는 이러한 플라시보 효과는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플라시보 효과는 무시할 수 없고, 실제 많은 학자들이 이 효과를 인정하며 더 나아가 이 효과를 치료에 이용해보려고도 한다. 분명한 것은 인간의 심리가 신체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플라시보 효과다. 이런 면에서 믿음이 산을 옮기지는 못하더라도 가끔 두통을 없앨 수는 있고, 진짜로 어떤 것을 믿으면 믿을수록 플라시보 효과는 더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아마 외할머니의 손을 진짜 약손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순수한 믿음 때문에 어떤 약과 방법보다도 더 배탈에 약효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도 외할머니의 약손이 효과를 볼까 궁금하다. 아마, 이젠 다시 그 손을 만질 수 없지만 외할머니의 손이 필자의 탈이 난 배를 문질러 주실 수 있다면 그 어떤 약보다 효과적으로 배탈을 고칠 것이다. 왜나하면 필자가 그렇게 믿기 때문에 말이다.

2019-09-04 13:59:5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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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자기 합리화의 동물, 인간

필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필자의 반에는 가난해서 옷을 잘 못 입고 당시 또래 여자아이들에 비해 좀 못생긴 여자 급우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학교에선 괴롭힘이 존재하지만 지금 같으면 심각한 문제가 될 잘못된 행동을 당시에는 쉽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군대와 학교가, 학생이 사병과, 선생님이 간부와 구분이 없었던 시대 탓과 군대의 신체적 폭력이 당연시되던 '군사부일체'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따돌림이나 집단 괴롭힘이 나쁘다는 개념 자체가 부재했고 그래서 학급의 남자 아이들이 그 여자아이를 많이 놀렸다. 그 때 필자가 왜 그런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그 여자 아이를 놀리고 장난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말도 안 되지만 '그래도 되는 아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촌스럽고 싸구려 티가 나는 옷과, 공부를 잘 못했던 것 등등이 그 여자아이를 골려도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통 그런 아이들은 학교 선생님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했던 듯 하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나이에 어린 나는 왜 그 여자 아이에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괴롭혀도 된다는 생각을 가졌을까 궁금하다. 5학년 짜리가 무엇 때문에 그 여자 아이를 골탕 먹이는 것에 대한 합리화로 가난과 공부 못함을 정당성의 이유로 생각했을까? 아마도 어린 필자는 분명히 그렇게 그 여자 아이를 놀려먹는 것이 잘못된 행동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를 괴롭혀도 된다는 이유가 필요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지만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행동이 주는 재미와 내가 악당이나 비겁한 어른들이나 하는 치졸한 행동을 설마 내가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또 그 때문에 나의 불편한 죄책감을 숨기기 위해 찾아낸 나의 합리화가 그 아이가 가난하고 공부 못하고 못생겼기 때문에 내가 놀려도 된다고 믿게 했을 것이다. 필자의 이런 어리석은 생각은 안타깝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 작동한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자신의 공격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법을 배운다. 동생을 때리고 그 이유를 댈 때 "애가 먼저 그랬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런 아이의 정당성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정당성이 논리적으로 보이면 우리는 더 잔인하게 행동 해도 되는 것처럼 그런 행동을 인정한다. 약한 아이를 괴롭혔던 필자나, 폭력배들이 약한 상인들을 괴롭히는 것이나, 직원들을 혹사시키는 고용주, 배우자를 학대하는 부부, 저항을 포기한 용의자를 구타하는 경찰관이나 소수 민족 사람들을 고문하는 폭군, 민간인들에게 잔혹행위를 하는 군인들 모두 행동의 구조는 같다. 트래비스라는 진화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공격이 자기 정당화를 낳고, 자기정당화가 더 많은 공격을 낳는다"라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상당히 긍정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이 유능하고, 도덕적이며, 똑똑하다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그런 자기 이미지를 벗어나는 행동을 할 때 자신의 긍정적인 자아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정당화하는 본능이 있다. 이러한 자기 정당화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예수나 부처님 정도이다. 그래서 자기 확신이 강하고 유명한 사람일수록 과오를 인정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하는 작은 거짓말이 거짓말인지 잘 모르게 진화했다. 이러한 작은 거짓말은 생활과 연관된 모든 영역에 있다.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을 피웠다거나, 부인이 자기 관리를 못해서 살이 쪄서 바람을 피웠다거나, 빨갱이는 나쁘기 때문에 죽여야 한다거나, 동성애자는 교리를 벗어나기 때문에 벌주어야 한다거나, 낙태는 종교적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거나, 아이가 너무 산만해서 매로 다스려야 한다거나, 내가 갑이니 내말을 따라야 한다거나 등등의 많은 이유로 상대 입장이라면 하지 않을 그 많은 잔인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아무 죄책감 없이 행한다. 하지만, 그 어떤 합리화도 논리에 타당성이 없고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인간은 그냥 내가 틀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라는 본능으로 인해 어떤 논리라도 가져오는 것이고, 그리고 원인도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동물이다. 적어도 자기 정당화를 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볼 때 말이다. 늦은 사죄는 없다고 자기 합리화하면서 5학년 때 친구가 혹시 이 글을 보면 진정 미안하고 내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싶다. 그냥 필자가 잘못한 행동을 했었던 것이고 내가 잘못된 아이였던 것이라고….

2019-08-07 11:35:36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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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도대체, 여자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에 대한 우스개 같은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매우 진실된 이야기로 생각하는 이야기이다. 평생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던 프로이트가 죽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여자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 우리는 보통 에로스를 말할 때 '남자는 동물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남자의 정신은 생식기에 있다' 던가 '시각에 성적인 욕구가 있다' 던가 같은 말을 한다. 진화 심리학에서는 남자라고 불리는 동물은 나이가 적던 많던 엉덩이둘레와 허리둘레의 비율이 10대 7 비율의 소위 S라인이라면 무조건 짐승처럼 침을 흐린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뭐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에는 이제는 너무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이라 따로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면 반면, 여성은 어떤가? 여성들은 짐승이 아니라 현모양처로서의 소양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욕망을 남성보다 잘 다스리고 또 여성은 남자들처럼 성적인 욕망을 마음대로 펼치게 되면 임신이라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쉽게 성적 관계를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등등의 설명들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여성에 대한 시각은 어떤 면에서는 남성들의 '희망사항'일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다는 진실을 알려주는 연구들이 소위 말하는 성 심리학 혹은 성학에서 나오고 있다. 남자인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 외면하고 싶은 진실이지만 여성의 욕망은 남성의 욕망보다 복잡하고 더 격렬하고 또 폭발적이어서 남성들이 감당하지 못하는 두려운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매우 실질적인 여성의 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들을 통해 볼 때 우리가 문화적으로 끊임없이 개념을 주입하고 있음에도 여성의 성욕이라는 힘은 대개 감정적 친밀감과 안정함만으로 촉발되지 않거니와, 지속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에서는 더욱 프로이트의 질문이 다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더 충격적인 것은 남성들의 마음에 더 위안이 되겠지만 여성들도 위안이라고 믿는 또 하나의 억측인 여성의 에로스는 남성의 리비도에 비해 일부일처에 훨씬 더 적합하다는 믿음이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강의 때 하면 많은 여성들은 호기심 반 신기함 반의 반응을 보인다. 반면, 남성들은 웃으면서 애써 외면하는 듯 하나 필자와 같은 남자 모두에게서 느껴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이 눈에 보인다. 어떻게 보면 남성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여성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어떤 생각과 관련된 불안감 말이다. 이러한 불안감은 우리가 문화의 신조로 여기는 일부일처제의 신념에 관련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남성들이 여성의 욕망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대처는 억압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이러한 억압과 폭력적인 통제 방식의 문화적 역사적 예는 어디서는 찾을 수도 있다. 임상장면에서는 이런 여성의 욕망과 관련된 남녀 관계의 갈등을 자주 접하게 된다. 사실 여성들의 욕망을 보는 것은 남성 치료자인 필자에게도 매우 두려운 영역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성들이 이러한 여성의 욕망을 더 정확히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의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좋은 관계를 이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일처제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규범이자 또 가장 확고하게 자리 잡은 이상적인 문화로 간주된다. 아마 많은 독자들도 일부일처제를 우리가 사랑의 목표로 삼아야할 대상을 정해주는 것뿐 아니라 이뤄야 할 가족의 형태, 적어도 꿈이라도 꾸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도 정해준다고 믿을 것이다. 또 좋은 부모란 어떠해야 한다는 우리의 신념도 사실 일부일처제가 만들어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여자들은 선천적으로 일부일처제라는 규범에 더 협조적인 지지자이며 생물학적으로도 이 충실함에 더 적합한 성적 자아를 가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어왔다. 그러나 특히 남성에게는 충격적이거나 더욱 내적 불안감을 가져다 줄 진실은 이러한 믿음이 일종의 동화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 남성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슬람 문화처럼 배신을 하는 여성을 돌로 치는 문화를 더욱 가혹하게 구축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진실을 통해 더 여성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더 굳건한 사랑을 만들어 낼 것일까? 아마도 그 선택은 남성 본인에게 있을 것이다. 필자가 경험한 여자에 대해 확실한 것은 남성이 만나는 여자는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직 한 남자를 끝까지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그 남자의 어머니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니 여자를 만나는 남성들은 자신이 만나는 대상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자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둘 관계를 현실적이며 성숙되게 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싫던 좋던. 그래서 필자도 궁금했고 궁금하고 앞으로도 궁금할 것 질문은 "도대체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이다.

2019-07-24 14:30:1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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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주술과 세뇌

리처드 도킨슨이라는 학자는 아주 전투적인 무신론자이다. 유신론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가진 듯, 신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정도이다. 오죽하면 무신론을 알리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정도이니 말하지 않아도 독자들은 그의 신에 대한 혐오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가 한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책이라며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초판본을 들고 말했다고 한다. 즉, 이 책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이제 더 이상 초자연적인 어떤 것도 믿을 필요가 없어졌다고. 그런데 독자들이 잘 생각하면 곧 필자가 왜 아리러니하다고 했는지 이해할 것이다. '종의 기원'이 무슨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책인가? 어디 마력을 가진 출판사에서 특별히 출판했기 때문에 그 책 하나로 유신론자들이 무신론자들로 바뀌가? 철두철미한 이성주의적 과학자라는 리처드 도킨슨도 '종의 기원'을 무슨 신주단지 모시듯이 일종의 주술과 미신을 믿는 아이러니를 자신도 모르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뭐 이에 대해 리처드 도킨슨이 반론을 제기 할만도 하지만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사실 우리는 모두 주술적인 사고를 은연중에 하고 있으며 이러한 주술적 사고가 매우 잘 작동하여 자신의 이성적인 판단이 왜곡되는 상태에 빠지는 세뇌라는 경험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학자이면서 민속학자인 제임스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에서 주술을 '유감주술'과 '접촉 주술'로 나누었다. 유감 주술은 어떠한 대상과 유사한 형상이나 속성을 지닌 것은 그 대상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 그 원혼들 때문에 강을 건너지 못하자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빚은 만두를 인신공양 대신 제물로 사용하는데서 만두가 만들어 졌다고 하는데 유감 주술의 한 예로 들 수 있다. 유감 주술은 설명처럼 형태나 기능 등의 유사성으로 인해 그렇지 않은 사물도 유사한 속성을 갖는 것처럼 느끼는 주술과 연관된다. '접촉 주술'은 특정한 속성을 가진 대상과 접촉하면 그 속성이 접촉자에게 전염이 되어 그 특성이나 속성을 가진다는 생각이다. 하루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가질 수 있다거나 연예인의 옷이나 머리카락 등 신체 일부분을 가지면 어떤 기운도 물려받는 사고와도 연관된다. 아마 리처드 도킨슨은 자신도 모르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그렇게 생각한 듯 하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기본적으로 주술적인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으며 더불어 타인의 의지에도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주술적 사고를 하는 것도, 세뇌를 당하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그러한 '주술이나 세뇌가 쉬운 사람이 따로 있는가?' 라고 궁금해 하는 독자가 있다면 필자는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설명들이 많겠지만 우리 인간은 어떤 경우에 정신적으로 취약해지면서 이러한 주술이나 세뇌가 쉽게 작동할까? 독자 분들 중 직관적으로 답을 찾았다면 아마 필자가 말하는 것을 이미 경험했을 가능성이 있다. 바로 불안이 작동할 때 인간은 주술과 세뇌가 쉽게 작동하게 되는 상태가 된다. 특히 불안 중 미래에 대한 무기력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주술적인 사고나 종교에 빠져들게 하고, 그러한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해 황당한 논리로 희생양을 찾거나 외부의 힘에 맡겨 버리는 행위를 통해 주술이나 행운 혹은 종교적인 형태의 세뇌에 쉽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안이 인간의 삶에 필연적이듯 주술과 세뇌는 필연적인가?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우주선을 하늘에 날려도 근본적인 인간의 한계 때문에 우리는 항상 타로나 사주 같은 점을 보고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 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점 말이다. 참 답하기 힘든 질문일 것이다. 필자라면 이런 질문에 답을 찾는 방법으로 아마 기도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뭔가 큰 지혜를 가진 존재가 있다면 답을 알려달라고 말이다.

2019-07-10 10:14:01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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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기질과 자유의지

인간은 자기 행동에 대해 본능적으로 항상 자신의 자유의지로 스스로 합리적인 판단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린다고 믿는다. 하지만 뇌 과학에서 발견한 충격적인 사실 하나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모순되게도 우리의 유전자, 몸 그리고 뇌 심지어 주변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 의지는 사실 마치 나란 존재가 내 몸의 주인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계속 설명하는 말하는 나 즉 '자아'의 착각인 것이다. 이 말하는 나는 항상 '내가…'라는 말을 하면서 마치 자신이 행동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의지로 무엇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먼저 행한 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선택했다'라는 설명을 가져다 붙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장이 모든 사업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딱 그런 말을 하는 일 뿐임을 자신만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신의 판단이 전혀 없이 가느다란 줄에 연결되어 조정당하는 마리오네트 인형이기만 할 뿐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자유의지는 없지만 피드백에 대한 의지는 있다.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우리가 판단하는 많은 이성적 사고도 사실 그 이면에는 유전적인 요소에서 근원하는 생물학적인 기질의 누적된 경험의 결과일 가능성이 많다. 기본적으로 동양인들은 세로토닌 촉진자와 연관된 유전자가 코카서스계의 유전자에 비해 25%가 다르며 이런 대립유전자의 차이는 시냅스 간의 세로토닌 흡수 분자의 수위에 영향을 주게 되어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에 비해 정서표현을 낮게 하며, 관련하여 도파민의 분비도 저하시킨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이 문화적으로 동양인들이 좀 더 명상적이며 차분한 성향을 가져오게 하며 투쟁적인 성취보다는 도가적이 분위가 더 건강한 인간의 성향과 연관되는 것으로 가치를 형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서구 철학이 성취를 강조하는 반면, 동양철학은 고요와 명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멀리 떨어진 기질적인 측면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이런 면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지와 건강과 정상이 무엇인지가 윤리적 규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매우 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는 다양한 형태의 법적 혹은 문화적 판단도 우리의 유전적인 성향으로 인한 결과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어떤 행동이나 생각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의 이면에는 이렇게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하는 영역이 관련되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자폐아 연구들에서 보면 장내 세균이 치료적 돌파구로 이야기가 되고 있는 것도 한 예일 것이다. 눈을 맞추지 못하며 정서적 교류를 하지 못하여 마치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어 보이는 아이들이 사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크기인 대장 내의 작은 세포 영향일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필자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가 갖는 어떤 가치나 근거가 사실은 전혀 엉뚱한 것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킨다. 이런 면에서 인간이 어떤 행동이나 가치 판단을 할 때 항상 염두 해 두어야 할 점은, 절대로 어떤 주장이 사실 자신이 알고 있듯이 확고한 타당성에 근거하지 않으며 때로는 상상도 못하는 영역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통해 그럴 듯 하게 설명하는 자기 합리화의 존재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신은 절대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니다. 우라는 절대로 자기 스스로 자신을 알 수 없다. 그냥, 우리는 그렇게 믿기로 했기 때문에 그렇게 설명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아빠가 일요일에 운동을 가려고 하는데 너가 볼 때 아빠가 갈거 같아?" 라고 일요일에 운동을 갈지 말지를 항상 딸에게 묻는다. 그러면 항상 내 마음의 의지와 반대되는 다음과 같은 대답이 온다. "뻥 치시네~"

2019-07-02 09:16:29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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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파충류男, 포유류男, 전두엽男

진화 심리학에서 바라보는 좋은 남자의 발전 단계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우선, 첫째, 외모가 예쁜 여성을 스크리닝하는 단계이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으나 남성의 본능적인 측면과 과학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니 너무 잘못을 지적하지 않기를 미리 사죄드린다. 남자는 우선 무의식중에 미인에게 눈이 간다. 그리고 그 미인을 얻게 되면 그녀가 자존감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여성인지 스크리닝한다. 이후 관계를 지속하면서 섹스 시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여성을 골라낸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거의 본증적인 영역이다. 일종의 파충류의 뇌가 작동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고, 또 한편으론 많은 남성들을 여기 즉, 파충류 남성으로 발전이 멈춘다고 한다. 이후 단계로 넘어가는 남성은 점점 여성에 대한 평가가 심리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것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남성은 관계가 지속되면 자신의 분노와 격노를 다스리는데 도움을 주는 여성인지를 확인하고 이후 두려움과 슬픔을 해방시켜주는 여성인지를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뇌로 치면 포유류의 뇌에 해당되고 포유류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서로 공유하고 자신의 약점인 감정 처리를 도와줄 여성을 찾는 단계이다. 이때 남자들은 여성에 대한 정조나 순결 등의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하는데 그 이유 중 가장 큰 요인은 내가 사랑하는 여성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지는 것은 남자에게는 지옥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직관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이후 설명하겠지만 좀 냉정하게 말하면 남자는 '선 섹스 후 책임'의 프로세스를 가게 되며 쓰레기 같은 남자들은 후 책임을 버려버리는 남자들이다. 여성들은 그래서 이런 남성을 걸러내는 작업을 아무 지속적이며 집요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의 여자에 대한 관계 발전 과정은 미래를 공유할 여성을 스크리닝하는 것이고, 이후 나의 관계성의 한계와 제한을 둘 수 있는 여성을 원하고, 마지막으로 성숙한 인간으로의 성장을 함께 할 여성인지를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같은 뇌 영역으로 구분하면 전두엽의 영역에 해당되고 전두엽남이 되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준비하고 계획하고 자녀를 길러서 세상으로 내보는데 관련된 일을 하는데 내조 혹은 동료를 찾게 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많은 남자들이 이러한 단계를 밟지 못한다. 그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미인의 숫자가 제한된다는 점에도 있다. 다시 좀 여성이 듣기 힘든 부분을 설명하자면 모든 여성이 다 미인이라면 남자들은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남성이 원하는 미인들은 상대적으로 혹은 통계적으로 제한된 비율을 가지기 때문에 미인을 스크리닝하기 위한 1단계 작업조차도 어떤 남자에게는 버거운 일이 된다. 그러니 그 이후 단계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있겠는가. 과학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9단계를 가기 위해 남자는 다른 남성과 경쟁을 하기 때문에 약 20%만이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80%는 여성과 손 한번 잡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고, 또 여성의 특성상 아무 남자에게 자신의 손을 내주지 않기 때문에 남성들은 일상에서 10명중 8은 '섹스할 기회가 오면 일단 하고 본다'와 '여자는 섹스만 가능하면 일단 사귈 수 있다'의 두 가지 전략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남자는 다 늑대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 한편, 이런 면에서 어떤 남자를 만날지는 사실 여성의 성숙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남성들이 가지는 섹스에 대한 진실에 대해 정면으로 성찰하는 여성은 진정 남자의 실체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쁜 남자는 자신이 볼 때 성적대상으로 끌리지 않는 여자와도 섹스를 하는 남자라고 볼 수 있고 이런 단계는 성적인 욕망만의 파충류 수준의 관계에 만족하는 것이다. 최근 모 클럽 VIP룸에서 벌어진 일들은 남자 입장에서도 봐도 쓰레기 짓인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파충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인간의 뇌를 쓴 것이고 이를 우리는 '소시오 패시' 혹은 '사이코 패시'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돈주앙이 그 많은 여성과 잠자리를 해도 공허를 채울 수 없는 건 3단계 이상을 넘어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좋은 남녀관계란 이런 면에서 서로의 꿈과 목표를 나눌 수 있는 관계까지 도달하는 것이고 이는 매우 어렵지만 진정한 남성과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가야만 할 길이 아닐까 한다. -진성오 당신의마음 연구소장

2019-06-12 14:39:05 윤휘종 기자
[진성오의 심리카페] 20분의 심리 치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는 그 순간까지 근심과 걱정을 한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살기 위해 구조화되어 있다. 우리의 자아나 의식은 삶이 고통스럽고 싫던 좋던 생존하도록 세팅되어 있다. 임상 장면에서는 특히 이러한 생존 욕구가 너무 강한 분들이 오히려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삶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과 근심 때문에 찾아온다. 살고 싶은 본능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살기 힘들게 되는 것이다. 최근 뇌 과학에서 이런 모순된 인간의 불안과 공포에 대한 이유를 찾아냈다. 우리의 불안과 공포를 야기하는 편도체라는 뇌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은 희로애락 등의 감정을 다루는 변연계라는 집단적인 뇌 영역의 한 해부학적 구성요소다. 편도체의 역할 중에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예상한 것과 같은지 다른지 계속 확인하는 기능이 있다고 한다. 만일 예측과 다른 일이 벌어지게 되면 이 편도체는 바로 위로 판단기능을 하는 뇌기관인 전두엽에게 정보를 보내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게 하고 아래로는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도망가거나 싸우던가 하는 신체적 준비를 시키는 알람을 울린다고 한다. 전두엽에서 상황 판단을 하고 아무 일이 아니라는 억제 정보가 오면 이 알람은 종료가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타고 나기를 이러한 알람이 너무 쉽게 켜지고 또 너무 오래 유지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며 또 안타깝게 예측이 빗나가 나쁜 경험을 한 사람의 편도체는 더 쉽게 흥분하고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하여 비슷한 사건에서도 바로 반응을 보이고, 도망가던 싸우던 신체적 전쟁 준비 상태를 지속적으로 만들게 한다. 이러한 상태가 우리에게는 불안, 공포, 스트레스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상태를 평온하고 안정된 상태로 만들 수 있을까? 그 답은 등잔 밑에 있다. 편도체가 나쁜 기억, 스트레스 혹은 외상이라고 불리는 경험이 끝났음에도 왜 계속 긴장하고 예민해지는지에 대한 원인이 사실 실마리이다. 독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할 테니 따라 보기 바란다. 눈을 감고 한번 '레몬'을 떠올려 보라. 대부분의 독자들은 바로 입에서 침이 고이는 경험을 할 것이다. 물론 평생 레몬을 구경도 못해본 분들에게는 나타날 수 없는 반응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은 레몬 맛을 봤을 것이다. 침이 고인 독자들은 어떤가? 편도체가 왜 사건이 끝난 후에도 계속 긴장하는 알람을 끄지 않는지 알겠는가? 그렇다. 바로 내적인 이미지가 지속되는 한 계속적으로 우리 신체는 불안감과 연관된 상태에 빠져있게 되고,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반응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정확하게 공포증, 사회불안, 예민감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일어났던 나쁜 기억 혹은 일어나지 않은 나쁜 상상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해서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그려진 이미지들은 바로 신체의 감각을 활성화 시켜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자, 혹시 불안함, 걱정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은 딱 20분만 필자가 말하는 것을 해보라. 눈을 감고 8번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 마음속에 걱정되는 장면을 하나 떠올린다. 그 장면을 아주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듯이 경험한다. 아마 벌써 몸은 긴장되고 기분은 불안해지고 불쾌해 질 것이다. 그럼 더 좋다. 그렇게 떠올린 다면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치면서 박수를 치고 그 장면을 마치 유체이탈 한 상태에서 바라보듯이 머리 위에서 바라보라.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그 모습을 바라보라. 마치 남의 일인 듯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바라보면서 위로 올라가보라. 밑을 보면 자신의 머리와 장면이 조감도처럼 보일 것이고 건물을 뚫고 나와 비행기 높이에서 밑을 바라보라 더, 더 위로 올라가는 상상을 해보라 그리고 달 정도 거리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라. 저 밑에 본인이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깊이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눈을 떠보라. 어떤가? 뭔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한 번에 되지 않는다면 20분이라도 반복해서 해보기를 권한다. 우리의 뇌는 없는 일을 상상해 고통 받는 것처럼 없던 좋은 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

2019-05-22 14:12:2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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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아이 어른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

우리는 아이들 중에 산만하며 집중하지 못하고 말도 잘 듣지 않는 경우 주의력결핍 혹은 ADHD라고 표현한다. 예전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주의력결핍이 사춘기를 지나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의결핍증상에 대한 관찰과 연구가 쌓여가면서 모습은 달라지지만 어쩌면 평생 지속되는 상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대두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많은 전문가들이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성인 주의력 결핍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성인들이 보이는 주의력 결핍은 체구가 작은 아이들이 보이는 주의결핍 증상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 몇 가지 특징에는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업무, 약속을 지키지 못함, 머리는 좋아 보이는데 끈기가 없어 나타나는 반복적인 실패, 충동과 감정 조절의 어려움으로 인한 잦은 분노, 사회적 규칙을 잘 지키지 못하거나 무시하는 행동, 술이나 약물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있다. 특히 여성은 주의결핍의 어려움이 겉으로는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남에게는 쉽게 표현하지 못하거나 엉뚱한 원인을 돌려서 고통을 경험한다. 예를 들어, 감정 조절 실패의 일종인 과도한 소비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건강하지 못한 사랑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심리적 나약함, 지나치게 예민하고 소심하면서 민감한 모습 등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비계회적인 생활,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과거의 아픈 경험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통제하는 모습, 이런 자신의 모습에 눈치를 보거나 반항하여 견디지 못하고 아이를 심하게 학대하는 등 어머니로서의 낮은 자존감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필자도 성인 주의력 결핍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는-사실 필자도 성인 주의력 결핍을 가지고 있음에도-이러한 문제들이 성격, 의지, 혹은 불우한 성장기 등등의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성인주의력 결핍에 대한 증상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단순히 일이나 가정생활을 잘 못하고 그래서 생기는 불안이나 우울에 고통 받을 뿐이다. 그 이면에 주의 결핍 증상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상상도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임상 장면에서 드물지 않게 어린 시절의 주의 결핍 증상이 부분적으론 개선되어 정확하게 이해하기 전에는 알지 못하는 숨겨진 주의력 결핍 증상을 앓고 있는 어른들을 만나게 되고 그 증상들을 잘 짚어드리면 깜작 놀라는 모습도 공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모든 부조화는 우리의 뇌에서 계획하고 감정을 조절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기능 등을 하는 전두엽의 문제로 설명된다. 전두엽은 인간의 가장 고급스러운 기능이며 그래서 전두엽을 '마음의 ceo'라고도 한다. 성인주의력 결핍인 분들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주의결핍 증상은 마치 회사 사장이 사표를 내고 나가서 직원들만이 일하는 대기업 같은 상태라고 설명한다. 각 부서는 다들 사장이 되고 싶어 하지만 소비자들은 충동적이며 엉뚱한 회사를 볼 뿐인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가정과 직장 일의 두 가지 역할을 해야 하는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힘든 경험을 할 수 밖에 없게 되고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감정에 쉽게 휩싸이게 된다. 어려움은 결혼을 하지 않는 젊은 여성분들에게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뛰어난 능력이 있음에도 부주의한 점 때문에 정신없고 산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과소평가 받거나 지능이 높아 더 많은 성취를 하기도 하지만 주변에 인정을 받을수록 주어지는 더 많은 전두엽 기능의 요구로 예전 같지 않은 실수를 하면서 자신을 챙망하고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증상의 특성을 이해 못해서 핵심을 선택하고 집중해야 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을 더 벌려 난처해지고 실패를 경험하여 자신감만 더 떨어지기도 한다. 어떤가? 이제 자신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더 본질적인 이유 중 하나로 자신이 혹시 성인 주의력결핍이 아닌지 생각해 보는 것 말이다.

2019-05-01 10:29:34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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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자살, 되돌릴 수 없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라는 작가가 있다. 한국에서는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바다출판사)'이라는 제목으로 그의 글들이 최근에 소개되기도 했다. 1962년에 태어나 2008년 46세로 짧은 인생을 살고 사망했다. 그의 글을 읽어보면 좀 과장되게 말해 한국에서 글을 잘 쓴다는 저자들의 명문(名文)들이 이 사람의 글을 사전 삼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재능은 단련이 되고 연마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나 같은 범인(凡人)과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 사이에는 아주 짧은 절벽이 있다. 하지만 짧아서 넘어설 수 있는 듯 보이나 넘어 설 수 없는 영원의 간극이다. 그 반대편에 서 있는 필자 같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참 훔치고 싶은 재능이지만 자기에게 주어져 있는 재능을 그는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그런 재능은 어쩌면 독이든 성배 같은 것 같기도 하다.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항상 가지고 다니는,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자신의 좋은 머리가 머리 나쁜 타인의 입장에 근거하여 스스로 좋아서 미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는다면 그 또한 정상적인 정신 상태의 인간은 아닐 듯 하기도 하다. 웰리스의 그런 재능도 우울함은 넘어서지 못했다. 그는 청소년기에 시작된 우울로 자살 충동을 겪은 후 평생 항우울제를 사용하였고 전기충격요법에 술, 마리화나, TV, 섹스, 설탕 중독으로 오랜 기간을 혼동 속에 보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애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미완성 장편 소설의 원고를 정리해둔 뒤 유서를 쓰고 목을 맸다고 한다. 자살이 주는 진정한 허무는 돌이킬 수 없는 그 행동이 있고 난 이후에는 자살 전에 있었던 일들의 행동과 의미가 다 이유가 있음을 알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더 큰 허무는, 그 이유가 정말 죽을 만한 어떤 것인지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많은 우울증 환자들을 심리치료하면서 진짜 자살을 시도해서 성공한 환자는 다행이 없었다. 하지만 그 입구까지 갔다가 온 환자들은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 동기를 물어보면 다 그럴만한 설명을 하지만, 필자는 그 이유를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필자가 오직 그 환자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죽음이란 어떤 설명이 단절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다양한 이유를 찾아서 자살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하지만 결코 이해할 수 없어 사유가 중단되는 영역이 자살, 즉 죽음의 영역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한국은 자살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청소년, 노인 등등 모든 연령대의 한국인을 통틀어 전 세계에서 어쩌면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도 필자는 말하고 싶다. 자살할 이유는 무수하고 또 필연적이라고 하여도 자살은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듯이 삶과 생명은 정말로 우리가 임의대로 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이다. 이것은 그냥 생명이 태어난 업(業)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게도 오직 삶을 행복하게 산 사람, 그리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만 완벽한 자유 의지 하에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 수 있는 성찰을 한 사람만이 죽음도 넘어서기 때문일 것이다. 월리스가 죽지 않고 살아서 계속 글을 썼다면 현재 그의 나이는 대략 57세쯤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글을 썼을까?

2019-04-17 10:38:44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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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최면과 Yes Set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몇 가지를 말해 보겠다. 우선 독자는 이 글을 보고 있다. 대답은? "Yes"일 것이다. 다음, 이 글을 읽기 위해 눈은 뜨고 있어야 할 것이다. 대답은 역시 이것도 "Yes"일 것이다. 그럼, 마지막 질문. 독자는 컴퓨터 모니터나 휴대폰 화면을 보고 이 글을 읽을 것이다. 이것도 당연히 그리고 아마 절대적으로 "Yes"일 것이다. 필자의 질문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럼, 한번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고 정면을 보기 바란다. 어떤가? 무엇이 보이는가? 아마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필자와 마주 하지 않아도 필자가 말한 일종의 제안-최면에서는 암시라고 한다―을 받아들여 고개를 들고 정면을 보았을 것이다. 만일 고개를 들고 정면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고개를 들고 앞을 보라! 보통 우리는 최면이란 것을 굉장히 신비하고 혹은 뭔가 무서운 어떤 것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최면 현상은 사실 일상에서 아주 다양하게, 그리고 거의 매 순간 일어난다. 필자와 같이 생각하는 최면에 대한 이해를 '4세대 최면이론'이라고 한다. 최면도 여려 세대가 있다는 말은 낯설게 들리겠지만 사실 최면도 매우 다양한 세대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 1세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최면으로 피최면자의 의식을 없애도 원하는 것을 암시하는 작용을 활용했다. 2세대 최면은 현재의식을 없애고 잠재의식에 맡기는 형태이며 3세대 최면은 현재의식은 최면을 경험하면서 잠재의식은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위에서 언급한 4세대 최면은 모든 것을 최면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최면을 걸고 최면을 당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모두 최면 상태에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이쯤 되면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 유심조'라는 말이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드는데 사실여부를 떠나서 최면가들은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이러한 설명은 SF적이거나 신비한 이야기가 아니라 뇌 과학자들도 동일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들은 인간 경험의 특성이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인 외부로부터 온 자극을 결국 뇌에서 프로세싱하고 있고 이러한 프로세싱은 화학과 전기적 흐름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 세상이라는 곳에 있는지 혹은 그냥 가상현실 안에서 경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물통속의 뇌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4세대 최면가들이 말하는 현실적인 의식이란 사실 거짓이고 우리는 최면 상태에 있는 것이며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최면 상태는 무수한 최면의 의식 상태중 하나에 해당된다고 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면이란 결국 하나의 최면 상태에서 또 다른 최면상태로 변화 시키는 작업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인간은 마치 자유의지가 있는 듯 행동하지만 일종의 프로그램된 사고와 행동을 통해 움직이는데 필자가 글 초반에 언급한 세 번의 Yes를 얻어내는 작업도 그러한 프로그램된 인간 사고의 특성을 보여준 것이다. 필자가 말한 3번의 설명은 절대로 No라고 말하기 어려운 혹은 할 수 없는 있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이렇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질문에 Yes를 세 번 이상 말하게 되면 사람들은 4번째의 지시나 권유에 No라고 대답하기 힘들다는 심리적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필자는 독자로 하여금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도 못한 상황에서 고개를 들게 한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트릭은 이 분야의 사람들은 'Yes Set'이라고 한다. 자, 그러니 필자가 다시 한 번 제안해본다. 이제 모니터나 폰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함 들어보라! 만일 고개를 든다면 필자의 암시가 작동한 것이다. 혹시 나는 눈을 떼지 않을 거야 하고 보고 있다면 역시 필자의 의도가 통한 것이다. 어떤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되는 장난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정확하게 필자가 독자의 마음을 또 한 번 읽은 것이다. 왜냐하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을 필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9-04-03 14:03:05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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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오다쿠

독자들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라는 일본 만화를 들어봤을 것이다. 그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들 중 하나다. 아니면 '세일러 문'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들? '일본 만화' 같은 단순한 답변을 하려 했다면 이 질문을 난센스 퀴즈로 생각하신 것이라 무시하겠다. 두 만화 영화의 공통점은 미소녀들이 전투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을 일종의 계보학적인 면으로 보면 '싸우는 소녀'라는 계보에 해당되는, 일본에만 존재하는 표현 장르다. 조금 생소한 단어 하나를 더 쓰면, 이런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아니메'라고 한다. 이 아니메에서 꼭 빠지지 않는 많은 내용이 위에서 말한 싸우는 미소녀다. 그런데 이 싸우는 미소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니메를 소비하는 소위 '오다쿠'의 이해가 기본이 된다. 왜냐하면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서구에서 미소녀들이 싸움을 하는, 다시 말해 전투를 하는 거대한 임무를 가지는 내용의 영화나 만화영화는 거의 볼 수 없다. 혹은 있다고 하여도 아니메의 모방 정도다. 미국의 코믹에서도 여성이 영웅으로 나올 수 있지만 그 연령대는 일본의 싸우는 미소녀들에 비하면 이모 급이다. 그럼, 이 싸우는 미소녀들을 소비하는 '오다쿠'라는 단어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오다쿠라는 말의 기원은 1983년 기고가인 나카모리 아키오라는 사람이 '망가 브릿코'라는 잡지에서 아니메 펜들이 서로를 부를 때 사용하는 2인칭을 따와서 야유 섞인 표현을 담아 그들을 '오타쿠'라고 부른 것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조금 차별적이면서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용어가 대중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소녀 연속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단번에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에서 퍼진 용어가 1990년대 해외에서 재패니메이션이 퍼져나가면서 'otaku'라는 용어로 수출이 되어 이제는 모두가 사용하는 용어가 되었다고 한다. 오다쿠 하면 사실 나이가 적지 않은 연령의 사람이 만화에 빠져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다. 그리고 순전히 일본적인 현상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오다쿠가 한국으로 넘어와서는 '덕후'라는 용어로 사용되면서 대중적이 되었다. 부정적인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덕후라는 말은 일면 영어의 '마니아'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본의 싸우는 미소녀에 대한 심리 분석을 저술한 정신과 의사 사이토 타마키는 오다쿠가 생겨나는 심층에 '페도필리아' 즉, '유아기호증'이란 변태적 요소가 있다고 설명한다. 유아기호증은 정신과 진단으로는 12세 이하의 여자아이에게 성인이 성적 욕구를 충족하려는 욕구를 가지거나 행동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으로 설명되는데 이러한 일종의 변태(헨타이)적 취향의 이면에는 일본에 건강한 아버지가 없기 때문으로 보는 분석가들도 있다. 즉, '마마보이'인 남성들이 건강하며 성숙한 여성을 유혹하지 못하고 겁을 내면서 자신이 만만하며 다룰 수 있는 여자 아이를 성적으로 바라보면서, 한편으론 그 여자아이가 성인의 성적매력까지 갖기를 바라는 모순된 욕망이 투영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러한 욕망이 그림이라는 상상력의 공간에서 싸우는 미소녀들을 만들어 낸다고 본 것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으로 글을 맺는다면, 어른이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의 성을 가지고 당당히 반대 성을 유혹할 수 있으며 거절당하더라도 깨끗하게 돌아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 이런 면에서 오다쿠는 현실의 여성이 아니라 만화속 여성을 찾아 사랑을 찾는 현대 사회의 마마보이라고 할 수 있다.

2019-03-20 14:28:27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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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콤플렉스

많은 사람들이 콤플렉스(complex)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콤플렉스라는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또 정확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전문가가 아니면 잘 알지 못한다. 콤플렉스는 영어 단어로 보면 무엇인가에 대한 '복합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여기에 심리라는 것을 결합하면 '심적 복합체'라는 말로 번역이 가능하다. 이걸 말로 구분하면 마음에 있는 어떤 것이 뒤엉켜 있는 덩어리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콤플렉스하면 우리는 열등감이라고 하는데 사실 열등감과 콤플렉스는 많이 다르다. 콤플렉스라는 단어는 정신분석에서 사용된 용어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브 융이라는 분석가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하려고 할 때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혹은 전혀 화낼만한 것도 아니고 또 슬픈 것도 아닌데 이유도 모르게 화를 내고 눈물이 나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은 자신에 대해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데 자신은 자신도 모르게 왠지 얼굴이 빨개지거나 말을 더듬는 경우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성적으로는 자신이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없는데 마치 내가 나 아닌 것처럼 특정한 상황이나 장면에 그렇게 반응을 하는 것이다. 이럴 때 내 의지와는 완전히 상관없이 마치 내가 따로 있는 듯 분리되어서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위 말해 내 무의식 속에서 어떤 감정에 결합된 채 존재하는 심적 내용의 집합체를 콤플렉스라고 한다. 그래서 이러한 심적 내용의 집합을 '감정으로 물든 복합체(gefuhlsbetonter Komplex)'라고 융은 이름을 붙였고 나중에 이것이 콤플렉스가 되었다고 한다. 융은 이러한 콤플렉스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단어연상 검사라는 것을 개발하였다. 원래 100개의 단어로 테스트 하는데 지면상 10개만 가지고 예를 들어 보겠다. 독자 분들은 다음의 10개의 단어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단어를 한번 말해보는 것이다. 자 시작해보자! '머리, 물, 죽다, 어린이, 때리다, 행운, 거짓말, 형제, 어머니, 걱정' 위의 단어를 읽으면서 바로 바로 어떤 단어들이 떠올랐을 수 있다. 10개 단어라 정확성은 없어 확실히 콤플렉스를 경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만일 위의 단어 중 자신도 모르게 반응 시간이 늦거나, 다른 단어는 쉽게 단어가 떠오르는데 어떤 단어는 잘 떠오르지 않거나, 문장을 답하거나, 외국어로 말하거나 한다면 아마 그 단어가 독자의 어떤 감정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다. 또 한 시간 쯤 뒤에 단어를 다시 읽으면서 이전의 반응과 다른 반응을 하는 경우에도 위의 특정 단어가 독자의 어떤 감정을 자극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고 기억을 더듬어 보면 자신이 잊고 있거나 숨기고 싶은 어떤 감정적인 기억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바로 이러한 감정의 덩어리를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콤플렉스는 나쁘기만 한 것인가?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러한 콤플렉스가 자신의 발전에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키가 작은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위인이 된 것이나 말을 더듬는 사람이 노력을 통해 웅변가가 되는 것과 같이 콤플렉스는 무조건 눌러 누거나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어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한다면 자신에게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콤플렉스는 열등감이 아니라 나의 발전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는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2019-03-13 10:10:06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