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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진성오의 심리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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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불안 탈출?!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안과 같이 살아갈 운명임을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알았던 것 같다. 어딘가 읽은 글에서 불안의 대가인 키에르케고르는 좋은 아버지를 만나 평생 놀고먹으면서 철학을 논했다고 한다. 그런데 맘 편하게는 살지 못한 듯하다. 항상 자신이 굶어죽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살았다하는데 실제인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남긴 재산의 마지막 은행 잔고가 떨어졌을 때 사망했다고 한다. 사람이 어찌 그럴까 하지만 더 심한 경우를 임상 장면에서는 많이 보기도 한다. 불안감 때문에 아예 밖을 안 나가거나 파산을 걱정해서 자린고비는 저리 가라는 수준의 행동을 한다. 몇 백억의 돈을 모아 놓고도 말이다. 인간이란 이런 면에서는 모순을 모아놓고 조합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은 오로지 인간만이 불안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고양이에 의해 궁지에 몰린 개나, 뱀에 화들짝 놀라는 원숭이가 보이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쥐가 불안하고 공포에 빠졌다고 말하지만 쥐와 원숭이는 불안한 것이 아니라 공포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라는 주장이다. 동물들이 아무리 우리 인간이 느끼는 경험을 하는 듯 보여도 실제 그것이 인간이 경험하는 것과 동일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만일, 궁지에 몰리 쥐나 뭔가 불안해 보이는 개가 그런 감정을 느끼려면 '제가 지금 불안합니다'라고 말해야만 불안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입장에서는 오직 인간만이 불안을 경험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불안은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하는데 조지프 루드라는 신경학자는 인간의 불안을 4가지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가 실제 존재하는 위협이나 임박한 외부 위협이 있을 때 가질 수 있는 불안, 두 번째가 신체적 감각을 알아채고 그것이 자신의 심리 혹은 물리적인 위협으로 걱정할 때 생기는 불안, 세 번째가 생각이나 기억이 물리적 혹은 심리적 안정을 위협할 때 나타나는 불안이다. 마지막은 생각과 기억이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을 위협하는 죽음과 같은 것을 인식할 때 느끼는 실존적인 불안이다. 아마 앞의 2개의 불안은 사실 생존에는 필연적이면서 타당한 불안이고 이로 인해 우리를 생존을 하게 만드는 것이라 긍정적인(?) 불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불행은 이러한 경험 이후에 가지는 불안에 있다. 우리 뇌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거창한 이유에 답을 찾기 전에 살아남기를 선택했기 때문에-또 그래서 나의 조상도 이런 뇌의 영특함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렇게 내가 태어나 글을 끄적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 위협임에도 죽기 전까지 항상 그러한 위협이 다시 있을 것임을 일깨우도록 세팅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고 공포에 휩싸인 상태로 지내는 것을 뭔지도 모르게 삶을 즐기고 무모하게 도전하게 하는 것보다 목숨을 연명하는 생존 방식으로 선택하게 된 것이다. 생존은 삶의 질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불안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도움 되는 방법들이 있지만 그 중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요령을 하나 말해보겠다. 바로 현재를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산다는 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불안한 감정과 생각이 밀려 올 때 이를 맞서지도 피하지도 않고 그냥 흘려보내면서 오로지 지금에 머무는 것이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관조'라고도 하고 이를 하는 전체 방법을 '명상'이라고도 했다. 독자들 중에는 이 설명에 분노감을 느끼고 본질적인 대책을 알려주지는 않고 말장난을 한다고 필자를 불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싶은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게 불안을 야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해결책이 없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해결책을 못 찾는 불안은 이미 그 사람의 역량을 넘어서 있는 영역의 것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에 가장 현명한 대처는 그냥 불안을 두고 주의를 주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래도, 자꾸 불안이 나에게 해결책을 달라고 말을 건넨다고 느낀다면 필자도 사용하는 위의 방법을 진정 써보기 바란다. 불안이 우리에게 짖는 이유는 마치 답을 요구하는 듯 보이나 그냥 관심을 받기 위한 것이다. 아무 의미 없다. 그래서 티베트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이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없다."

2019-02-27 13:52:55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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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SKY 케슬 지옥

최근 대학을 가기 위한 부자들의 교육열을 다룬 드라마가 화제였다. 필자는 임상 현장에 20년 넘게 있다 보니 한국 사회의 양끝을 다 보는 기회가 많다. 유명 연예인의 자녀부터 두 부모가 모두 지적 장애여서 조부모에게 어렵게 성장하여 한 끼 밥만 먹어도 행복한 여자 아이까지. 삶의 양끝을 볼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하기는 어려운 경험일 것이다. 직업의 특성 때문인지 혹은 개인적 호기심인지 모르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학벌에 높은 신분과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부터 사회적으로 계층을 나눌 때 진정 바닥이라고 생각되는 위치의 사람들까지 만나본 것이다. 그 양끝을 가져야 할 일종의 척도로 놓고 본다면 나도 어딘가에 위치 지어져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할 때 위로 올려다 보아도 나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그 끝과 한이 없으며 아래로 내려다 봐도 나보다 비참하고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살아가나 하는 듯해 그 바닥의 끝이 없어 보인 사람들도 있다. 1등부터 꼴등까지 등수를 나누거나,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하나지만 그 조차 썩어 들어가는 사람까지 만나봤다고도 할 수 있다. 그 한없는 척도의 긴 줄을 보게 되면 더 가지고 더 배우고 더 올라가는 것의 정도나 도달해야 할 곳에 대한 목표가 진정 우리에게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사다리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한 발짝이라도 더 올라가려는 것은 그 끝에 남겨져 있을 공허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사실 드라마에 나오는 sky는 하늘이 아니라는 것을 한국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 하늘이 아닌 하늘에 오르기 위해 자식에게 모든 자원을 쏟아 붓는 모습을 보고 혀를 찰 수도 있고 질투 아닌 질투에 자식에게 그러한 교육을 하지 못하는 투정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필자도 약 10년 전부터 이미 하늘을 넘어서서 담쟁이 넝쿨 케슬을 행해서 노력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기는 하였다. 물론, 그 담쟁이 넝쿨을 아이비리그 라고도 혹자는 부른다. 이런 면에서는 TV 드라마의 '하늘'은 그들에게 깜도 안 되고 어떤 축에도 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 분들은 이건 마치 영어를 잘 하면 끝인 줄 알고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돈 많은 재벌 집에 시집 간 여성이 시부모와 시누이들이 모여서 영어는 기본이고 불어로 서로만 알아듣게 대화할 때 느껴지는 열등감과 자괴감 같은 감정을 유발할 만한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자괴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분들에게 그냥 운이 좋아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본 필자가 희망찬 이야기를 하나 해드린다면, 스카이 케슬이던 아이비리그이던 인간은 모두 자신들 만의 '마음의 지옥'이 있었다는 것이다. 필자와 상담했던 내담자들 중에는 그렇게 원하는 담쟁 넝쿨의 미국 대학을 가도 이후에 접해야할 나보다 더 '인싸(in group이라는 의미인 걸 혹시 모르는 분을 위해)'에 속하면서 자신이 한국에서 얼마나 잘 나가던 거기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간접적으로 유추해서 보면 우리가 볼 때 아무리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보여도 그 조차 또 다른 자신 만의 지옥이 여전히 있다는 점이다.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래서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집의 자녀가 망가지고 혹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뭐 없는 분들에게 희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통은 타인과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에 존재하는 것이고 그건 당사자 말고는 절대로 나눌 수 없고, 타인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필자는 더럽고 덜 떨어져 보이고 그리고 무능해 보이는 지적 장애 아동이 손위 쥔 사탕 하나로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 부러움과 슬픔을 같이 느낀다. 아마도 그 부러움은 작은 사탕 하나에 그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이고, 슬픔은 그 작은 행복마저 어쩌면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어떤 생각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방식으로 행복하길 바란다.

2019-02-20 11:01:25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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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사랑의 블랙홀-두더지의 날"

십여 전에 나온 미국 영화 한 편이 있다. 한국 제목은 창의적인 기획자의 참신한 아이디어 덕분에 물리학과 인문학적 소양이 결합된 '사랑의 블랙홀'이라고 지어졌다. 원제는 '그라운드호그 데이-Groundhog day'다. 직역하면 '두더지의 날' 뭐 이런 제목이 된다. 최근 영화들에서 자주 나오는 소위 '타임 워프'의 옛날 영화로 생각되지만 영화가 주는 교훈은 필자가 읽은 어떤 불경보다 불교적이다. 혹시 감독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아닌가 할 정도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영화이다. 한 방송사의 기상 캐스터가 봄을 알린다고 하는 두더지의 예언을 듣기 위해 축제가 열리는 시골로 찾아간다. 거기서 참신한 느낌으로 일기 예보도 하며 마을 행사를 알리는 방송을 한다. 그러나 기상 캐스터는 삶의 일상이 무의미하고 허무함하고 모든 것이 지겹고 무기력한 남자 주인공으로 죽지 못해 사는 매일의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다. 그렇게 지루한 삶을 저주하며 잠이 든다. 다음날이 되었지만 지루한 삶을 한탄한 죄에 대한 벌을 받는다. 그 벌은 하루가 무한대로 반복되는 시간워프였다. 끝없이 매일이 영원히 반복된다. 하루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모든 것이 정확하게 똑같이 벌어지고 당사자만 이 사실을 안다. 이것은 마치 한 부분의 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보는 것이고 니체의 말대로 '영원회귀'인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인 아침 6시에 같은 라디오 방송을 알리는 알람이 켜진다. 주인공은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억겁의 시간을 무한 회귀되는 하루를 맞이하는 것이다. 아마 사람들도 역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주인공처럼 행동할 것이다. 온갖 짓을 다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필자라도 매일이 어김없이 같은 일상이 한 번도 빠짐없이 무한 반복됨을 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다. 주인공도 필자와 같은 생각인 듯 별별 행동을 다한다. 정확하게 같은 물웅덩이에 발을 밟게 되고 길을 건거 가던 중 노숙자가 심장마비로 죽는 것을 매일 본다. 그리고 똑 같은 방송 촬영을 하고 그렇게 지겨운 일상은 무한 반복된다. 매일이 똑같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완전히 반복되는 하루이다. 다만, 주인공만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딱 하루만으로 다시 모든 것이 새로 다시 세팅된다. 지긋한 반복에 지쳐서 은행을 털고, 동네의 미인들을 유혹하여 하룻밤을 자고-말 그대로 하룻밤이다. 심지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해 차를 몰고 절벽으로 돌진한다. 하지만 그래도 잔인하게 어김없이 다음날 6시에 같은 라디오로 같은 시간대에 같은 날을 시작하는 것이다. 죽음도 이 삶의 무한 반복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자포자기도 시간 안에 있는 것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무한 반복이니 무엇을 하던지 정확하게 같은 날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는다. 영원의 회귀다. 그러던 주인공은 자신이 이 영원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듯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작은 선행을 행하기 시작한다. 죽을 줄 알지만 심장 마비를 일으킨 노숙자를 살리기 위해 인공호흡을 하고 식당에서 떨어뜨려 깨질 수 있는 컵을 미리 알고 막아주며 자신을 수억 번을 봤을 것 같은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가서 매번 첫 수업을 등록하고 피아노를 배운다. 결국, 피아노 선생님은 본인만 모를 뿐 이미 뛰어나 실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을 매번 처음 신입생으로 맞이하여 레슨을 하기도 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영화에 있다. 나머지 내용은 독자들이 직접 보기를 권하고 필자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것 같은데 하지만 뭔가 더 현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네? 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따져보았다. 곧 깨달은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주인공의 경험이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윤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윤회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윤회라는 것이 같은 시간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우리가 영원히 같은 경험을 마치 새 것인 것처럼 하는 것이고, 그래서 영원히 고통 받는 것이라면 이 영화는 정확하게 그 사실을 오마쥬한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불교에서의 깨달음은 어딘가에 앉아서 도를 닦거나 눈을 감고 명상을 해야 하는 어려운 것으로 설명하는 듯 하지만 영화는 무한 영겁의 시간을 벗어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허무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타인을 위한 사랑과 봉사의 행동을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궁극적인 부처님의 말씀 아닐까? 그나저나, 봄을 알려주는 두더지가 한국에도 있으면 묻고 싶다. 여기는 언제쯤 봄이 오는지.

2019-02-06 11:35:17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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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나를 속이는 나의 뇌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을 한번 자세히 보시라. 현재 보이는 것들이 원래 사실 자체로 존재하는 글자로 믿어지는가?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글은 원래 존재하는 그대로의 것들은 아니다. 자세히 눈으로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있지 않는가?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고요? 여러분이 보는 이 글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그대로가 아니다. 이 말이 참으로 이상한 말로 들릴 분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읽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 글은 물리적으로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러한 점은 사실 오래 전에 밝혀져 있었지만 많은 일반인들은 최근에 알기 시작했다. 이러한 예는 많다. 우리의 눈으로부터 들어오는 시각적인 자극들도 사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은 우리의 망막에 위치하는 혈관을 통과해서 시각 세포에 들어온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가 외부를 볼 때 혈관을 보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눈과 뇌의 시신경이 혈관을 편집해서 처리하는 은밀한 작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종의 뇌의 속임은 지각심리학에서는 오래 전에 착시로 알려져 있다.착시현상들이나 착각도 모두 뇌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연관된 요소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우리가 눈치도 채지 못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맹점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맹점이 존재한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의 마음과 판단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다. 약 10여 년 전 태평양의 한 중국배가 조난을 당해 떠돌고 있었다. 그 배의 선원들은 배와 통신 장비가 고장 나서 망망대해를 방황하며 지나가는 배를 만나기를 바라고 운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그때 하늘이 도와 한 여객선이 지나가면서 배를 발견하여 모든 선원을 급하게 구조하게 되었다. 구조 이후 여객선이 배를 두고 출발하면서 한 여객선의 관광객이 표류하던 배에서 개가 짖는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다. 승객은 배의 승무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조류 하던 배의 선원들에게 확인해 보니 실제 개가 한 마리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정신없어 개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미 많은 거리가 벌어져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만일 당신이 개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아마 배와 함께 버려진 개를 무책임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 승객도 개를 좋아하는 당신처럼 태평양에 떠도는 버려진 배에 탄 개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그는 이 사실을 인터넷에 올려서 잃어버린 배를 찾아 개를 구조하다는 일종의 개를 찾기 위한 구조 모금을 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개에 대한 동정심과 정의감으로 수십억 원의 모금이 모였고 그 돈으로 태평양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배와 그 안의 개를 찾기 위한 구조 비행기를 띄웠다. 마침내 그 배를 발견하여 개는 안전하게 구조되었고 이 이야기는 행복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이 모금에는 많은 어른들과 아이들이 참여하여 많게는 한국 돈으로 몇 백만 원을 적게는 몇 천원의 돈을 수만 명의 사람들이 기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한 심리학자가 이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몇 가지를 조사하여 알아내었다. 한 가지는 모금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이 평생 한 번도 기부를 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본 태평양 한 가운데 떠도는 개 한 마리를 위한 감동적인 이야기에 선뜻 기부운동에 동참한 것이다. 이를 연구한 심리학자가 내린 결론은 사람은 확대된 어떤 이야기에 대해 주목하면 더 깊이 공감하고 선의를 행하면서 자신이 도덕적이기를 바라고,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 흔하게 보이는 일들에 대해서는 무감각하고 덜 감동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아동들이 굶는 것을 돕는 모금에는 몇 천원의 돈도 기부하지 않으면서 태평양의 한 배에서 떠도는 개를 찾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양심적 행동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에 필자는 여전히 가슴이 뜨끔하고 다양한 변명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한 때 오래된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필자도 그 방송을 보면서 거기 나온 주인공들이 행복해 하며 우는 장면에서 '참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래도 살만하구나'라는 마음에 가슴이 벅차 곤 했다. 그러나 그리고 거기까지였다. 누구를 돕기 위해 몇 천원의 기부보다는 뭔가 따끔하면서 다른 이유로 남을 돕는 것을 외면한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타인보다 좀 더 도덕적이고 좀 더 잘 생겼고 좀 더 성실하고 좀 더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착각을 갖도록 진화했다고 한다. 자기기만은 인간의 본성이다. 다만, 이걸 알고 덜 기만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사후 약처방의 자유의지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진성오 당신의마음연구소장

2019-01-23 14:37:41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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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별 볼일 없는 하버드 출신?

몇 년 전 필자는 친구가 CEO로 있는 회사의 연구 담당 책임자로 2여년 정도 일을 했다. 일종의 유전자 분석회사였는데 의대를 졸업하였으나 의사 생활을 접고 의료 관련 사업을 하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 관련 업무로 일을 했다. 그 때 지인의 회사에서는 두 명의 외국 명문 대학 출신의 직원이 있었다. 한 명은 하버드 대학 MBA출신이었고, 또 한 명은 코넬대 MBA 출신이었다. 한 친구는 우수한 성적 때문인지 대학원까지 조기 졸업한 뒤 취직하였으며 한 친구는 외국 회사에서 주식 거래를 하는 애널리스트 일을 하다가 어떤 인연으로 지인 회사에서 일을 한 것이다. 필자 주위에도 외국 유학한 후배들이 몇몇 있어 대략의 외국 분위기는 알고 있었지만 세계에서 톱 수준에 들어간다는 미국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들의 인재들과 일을 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나름 호기심이 많았다. 그들에 대한 첫 일을 한 느낌은 '뭐 별거 없군….'이였다. 외국대학에서 졸업을 했으니 영어 같은 언어 능력 말고는 그냥 한국의 일반적인 대학 출신 직원들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이 직원들을 내가 너무 높게 평가한 부분도 있다. 그러다가 직접 부딪혀 경험해보니 '대단한 인재들은 아니네'라는, 실망감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달 쯤 지나면서 같이 일했던 한국 대학을 나온 직원들과 몇 가지 차이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그 친구들은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내적인 열등감이 없어 보였다. 특히 회의나 비스니스 논의 중에 보이는 모습들은 자신이 가지는 프라이드가 어떻든 간에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타인의 의견과 비판을 잘 구분하고 거기에 감정적인 반응을 구분하여 처리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어떤 대학 어떤 과 출신인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모르면 배우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 하면서 타인의 말도 감정적이나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일을 하기 매우 편한 느낌을 받았다. 다시 말해, 자신이 모르면 물어보고 힘들면 해결책을 같이 논의하면서 방법을 찾는 것이고, 간혹 열등감을 느낄 만한 사항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면서 사소한 것 때문에 본질을 흐리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라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들을 대하는 주변의 태도도 매너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인성적인 요소가 작동하는 듯하였다. 지나치게 개별적이며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심리학적으로 보면 일을 하는데 있어 인성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런 면에서 함의하는 바가 크다. 성숙된 사회성을 가진 어른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측면이지만 이러한 어른스러움은 실제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들도 갖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론 젊음이 가지는 유연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모습이 그 친구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개인적으로도 궁금하기는 하다. AI와 로봇이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과 관련되어서 해야할 일들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그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제일 중요한 요소는 인성과 인간성이 아닐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다./진성오 당신의마음연구소 소장

2019-01-16 10:35:06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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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영원한 생명-코쿤

최근 필자는 치매나 나이 드신 분들의 신경심리검사를 많이 하고 있다. 역시 늙는 건 좋은 게 아니다. 아니 늙는 게 좋지 않다기보다는 병들고 기력이 약해지는 게 좋지 않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노화의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기억의 망각이다. 자신이 알고 있던 삶의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좀 아이러니 한 것은, 망각하면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노화로 인한 기억 상실은 현재의 시간부터 가까운 것들을 먼저 잊게 만든다. 현재의 기억부터 사라지는 것은 마치 바다의 생물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마라고 불리는 기관이 기억의 관문 역할을 잘 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새로운 기억들을 저장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 관문의 노화로 새로운 것이 저장되지 못하면서 점점 과거의 기억들이 사라져 지금 시간이 언제인지, 현재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증상이 심한 분들은 기억력에 관련된 검사를 할 때 남은 기억이 20대 초반이여서 자신이 78세인 나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어렴풋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것은 알지만 남은 기억의 한 조각은 20대 초반의 어떤 시간에 남겨져 있게 된다. 그래서 검사 도중에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서 기다리니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님이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가 여쭤보면 58세라 말한다. 이미 돌아가신지 50여년이 넘었는데 할머니는 그 시간에 사는 것이다. 노화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원한 젊음과 삶을 꿈꾸기도 한다. 1985년에 나온 '코쿤'이라는 영화가 있다. 알처럼 생긴 큰 캡술안에 동료 우주인을 150만 년 전쯤 과거에 어쩔 수 없이 잠시 집어놓고 태평양 심해에 안전하게 두었다가 다시 데려가기 위해 온 외계인들의 이야기이다. 지구인 형상의 껍데기 안에 영혼의 형태로 빛이 나는 진화한 안드로메다 어딘가에서 온 우주인들. 그들의 동료를 담은 코쿤을 잠시 임대한 수영장에 두었는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양로원의 장난꾸러기 할아버지 세 명이 몰래 침입하여 마음껏 개구쟁이처럼 수영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할아버지들은 회춘하고,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부인과 애인까지 수영장에 데려와 회춘시킨 뒤 만끽한다. 할아버지들은 이러 저러한 우여 곡절 끝에 우주인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도와준다. 우주인이 우주로 떠나기 바로 전, 할아버지들은 영원한 삶을 살 수 있는 우주인의 고향으로 같이 갈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받는다. 그 중 한 할아버지는 암으로 죽어가는 자신의 부인을 두고 갈 수 없다고 담담히 친구들에게 떠나라고 말하고, 나머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그렇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우주로 떠난다. 우리 모두가 바라는 그런 불로장생의 해피엔딩 이야기이다. 그런데 몇 년 후에 코쿤 2편이 나온다. 2편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는 안드로메다에서 자신들의 아들과 어린 손자가 그리워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다시 우주인과 지구를 방문한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또 우여곡절이 있는 그저 그런 내용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동은 아주 짧은 몇 분에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인 할아버지는 자신이 늙지 않는 사이에 커버린 손자를 보면서 자신이 다시 우주인의 행성으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자신이 영원히 살게 된다면 자신보다 먼저 자식과 손자가 늙어서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다시 돌아가자는 외계인의 제안을 거부하고 자식들이 있는 지구에서 남는 선택을 한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받아드린 것이다. 혼자 사는 영원한 삶이란 어쩌면 죽음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이 보이는 삶 안에서 같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삶을 사는 것이 어쩌면 영원한 삶을 얻는 것임을 할아버지는 깨달은 것 아닐까? 가끔 정신이 돌아와 혼자 죽을까봐 걱정하시는 치매 할머니에게 20대의 기억만이 남는 망각은 생명이 주는 짧은 축복일 것이다. 그 시간 만큼은 돌아갈 집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2019-01-09 17:32:0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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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더러운 B형 성격 남자?

필자를 만나는 사람들에게 필자의 혈액형이 무엇인지 추측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필자를 B형이나 AB형으로 말한다. 필자는 부모님의 친자가 맞는다면 O형에 해당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소위 혈액형 성격학에서 말하는 행동을 B형이나 AB형으로 하니 이를 보고 B형이나 AB로 추측하는 듯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O이다. 이처럼 사람을 어떤 집단으로 분류하여 형으로 구분하는 것을 성격 심리학에서는 유형론이라고 한다. 유형론은 혈액형처럼 한 집단으로 분류되면 절대로 다른 집단에 속해서는 안 된다는 원리가 있다. 스트레스가 많아서 혹은 오래 살다보니 O형이었는데 A형으로 바뀌었네? 라는 말은 흡혈귀에게 혈액을 다 빨려서 몸에 혈액이 없어서 빈혈이네? 라는 말과 같은 수준의 의미다. 이렇게 하나의 집단에 해당되면 다른 집단에 해당되지 않는 다는 사고방식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히포크라테스의 체액론이 있고 이를 이어 받아 클라디우스 게이린이 있다. 물론 독자들은 히포크레테스는 들어 보았어도 게이린은 잘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게이린이라는 학자의 이론을 이어 받아 인간을 분류한 유명한 철학자가 칸트였다. 칸트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간학'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성격을 4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이 4가지 유형은 결코 한 집단에 해당되면 다른 집단의 성질을 가지지 않아야 하는 특징이 있어서 이러한 성격 유형론을 유목적 혹은 범주형 유형론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론을 이어 받아서 현대에 나름 꽃을 피운 것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MBTI이다. 여기서 조금만 전문적으로 들어가서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난 성격이론이 있다. 심리학을 창시한 분트는 차원적 유형론을 주장하였다. 차원적 유형론은 범주적 유형론처럼 사람이 어떤 집단으로 분류되어 딱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축을 중심으로 그 정도에 의해서 유형이 분류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차원적인 유형론으로 가면 인간은 누구나 공통된 몇 개의 축을 가지고 있어 이 축의 정도에 따라서 다양한 유형의 성격으로 분류되게 되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측면의 성격이론이 '빅(Big) 5'다. 여기서 최근의 연구를 근거로 보면 일종의 범주적 유형론은 그 과학적인 타당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조그만 생각해도 사람의 유형 몇 개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사실 난센스인 것이다. 이런 점을 모르고 처음에는 내향성이었는데 살다보니 외향성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차원적인 유형론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다양한 연구를 근거로 최근의 성격이론은 차원적 유형론을 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은 공통적으로 5개의 차원을 가지고 그 정도로 분류하려고 하는 이론인 빅 5에 의해 성격을 분류한다. 그 5개는 개방성, 일관성, 친밀성, 외향성, 신경성으로 영어의 앞 글자를 따서 'OCEAN'이라고 정리한다. 개방성은 일종의 종교적 경험이나 일상의 경험을 벗어난 철학적 사고 등 다소 독특하면서 창의적인 성향을 의미하며, 일관성은 무엇을 할 때 매우 일관되게 꾸준하게 하는 성향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관성의 극단의 장애를 강박증으로 보기도 한다. 반대로 일관성이 매우 떨어지는 경향의 병리적 끝으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적인 행동으로 보기도 한다. 친밀성은 일종의 사교성으로, 사람과 잘 사귀고 사회적 친목을 하려는 성향을 의미한다. 외향성은 활동성이 높고 에너지를 펼치고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추구하는 것이다. 보통 외향성이 낮은 사람을 우리는 내향성의 사람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신경성은 매우 예민하면서 민감한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자극을 받는 성향을 의미한다. 이렇게 5개의 차원을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면 납득하기 힘든 많은 사람들을 성격적인 측면에서 좀 더 쉽게 이해할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혈액형이 B형이라고 까칠하고 까다롭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혈액형이 B형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신경성이 높고 일관성이 낮아 예민하고 민감하면서도 변덕이 심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여기에 개방성까지 높으면 아마 필자 같은 성향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O형인 나를 B형으로 보는 것이다. /진성오 당신의마음연구소장

2019-01-02 10:59:4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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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

과거의 상처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아니, 모든 인간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만들어진 어떤 습관으로 인해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마음의 상처를 외상 혹은 트라우마(trauma)라고 한다. 트라우마라는 말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고 있는데 '뚫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간이 경험하는 트라우마는 아주 다양하다. 천재지변이나 교통사고 등도 우리의 영혼을 뚫는다. 이러한 트라우마 중 단연코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트라우마는 영혼을 뚫어버려, 그 상처가 그 사람의 존재 자체인 것처럼 만든다. 마치 상처에 그 사람이 기생하는 듯한 고통을 주는 것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성폭력, 타인으로부터의 멸시와 학대, 배신과 버림받음 등은 사람으로 하여금 인생의 가치를 마치 쓰레기로 버려지는 포장지보다도 못하게 느끼게 만들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산산 조각내도록 한다. 그런 고통으로 영혼에 구멍이 존재하는 사람을 지켜본다는 것은 지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시 트라우마의 고통을 경험하도록 한다. 이렇게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경험하는 고통의 증상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적절하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망가져가서 정신과 환자로 분류되어 이해 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 월남이라는 전쟁터에서의 참전 경험이 있는 군인들이라는 공통점을 궁금해한 연구자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매일 밤 전우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껴야 했고, 고통스러운 전쟁의 경험이 주는 신체적 긴장과 정신적 압박감으로 무사히 살아 남아 돌아온 일상의 사소한 곳에서는 어떤 좋은 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경험을 하도록 하고, 그래서 작은 행복이나 사소한 감각이 주는 안정감을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영혼의 공허가 생겨 변해 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인류의 역사에서 항상 반복되어 되풀이 되었던 죽음과 살육의 상처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어두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들을 언제든 삼켜 버릴 것처럼 웅크리고 있는 트라우마라는 악마와 싸워야 하는 다른 전쟁이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월남의 전쟁 영웅들이 트라우마라는 괴물과 싸우며 고통 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트라우마라는 악마를 이길 수 없는 것일까?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아동이었을 때 성폭력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넬슨 만델라는 평생을 감옥에서 지냈던 사람이다. 교통사고로 얼굴의 피부 이식을 몇 번 씩 한 이지선씨도 있다. 그들이 경험한 고통은 어쩌면 월남에 참전한 군인들의 고통 못지 않는 고통이다. 또, 월남에서 포로로 생활하다 돌아와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참전의 고통을 삶의 성숙으로 변화시킨 참전 용사도 있다. 물론, 모두가 이러한 트라우마를 견대낸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수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지옥 같은 경험 이후에 오히려 더 성장하는 놀라운 기적같은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독일군의 포로 수용소에서 몇 년을 버티고 살아남은 빅터 플랭크 같은 심리학자도 있다. 세상이 자신의 육신의 자유를 빼앗아가고, 굴욕을 주고 고통을 주어도 마음에 존재하는 '자기'라는 자유 만큼은 뺏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트라우마와의 싸움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은 싸움을 승리로 이끈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삶을 성취적으로 살아간다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타인으로부터의 폭력과 자연이 주는 좌절 속에서도 패배자가 아닌 희망의 생존자로 남아 있는 것일 게다.

2018-12-12 14:29:24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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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센터링(Centering)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에게 사랑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 학생을 상담하고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쏙 빠져드는 순진한 마음 때문인 듯 오빠 마음에 들기 위해 노심초사이다. 심지어는 필자에게 카톡을 다 보여주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자주 묻는다.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는 짐작할 수 있다. 여학생이 그 오빠를 사귀게 되던 사귀지 않게 되던 결국은 여학생은 매력 없는 여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하나가 채워지지 않으면 항상 매력 없는 여자로 남게 될 것이다. 쇠똥구리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쇠똥구리는 뭔지 모르지만 쇠똥을 둥글게 만들어 굴리는 일을 했다. 그런데 다른 곤충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다들 냄새가 나고 더러 우니 꺼지라며 쇠똥구리를 놀렸다. 쇠똥구리를 슬펐다. 다른 곤충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쇠똥구리는 다른 곤충들이 나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 나비를 칭송하고 나비와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쇠똥구리는 부러움반 질투반의 마음으로 자신도 나비와 같이 다른 곤충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여러 꽃들의 즙으로 자신을 화장했다. 나뭇잎으로 날개도 붙이고 알록달록한 문양을 자신의 몸에 그려 놓기도 하였다. 그렇게 화장을 한 쇠똥구리는 곤충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자신을 자랑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곤충들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모두 쇠똥구리를 더 심하게 놀렸다. 그리고 심지어는 무슨 전염병을 가진 존재처럼 돌을 던지면서 꺼지라고까지 했다. 당황한 쇠똥구리는 황급히 피해서 산 깊은 곳에 숨듯 도망가서 어느 바위틈에서 엉엉 울었다.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너무 슬펐다. 자신이 너무 하찮고 가치 없음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정신을 높고 엉엉 울다가 쇠똥구리는 잠이 들었다. 쇠똥구리는 아주 예뻐진 모습의 자신이 모든 곤충들이 칭찬하고 좋아하고 사귀고 싶어 하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행복한 꿈을 꾸다가 깨었을 때 깊은 밤이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컴컴한 숲 바위틈에서 쇠똥구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별들이 초롱초롱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서는 무수한 별들이 각자의 빛깔과 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별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듯 했다. 너무나 아름다워 넋을 잃고 잠시 바라보았다. 한 순간 쇠똥구리의 두 눈에는 방금 전 엉엉 울었을 때의 눈물과는 뭔가 다른 따뜻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인 듯 했다. 다음날 다시 곤충들이 있는 곳으로 온 쇠똥구리는 아침 일찍부터 소가 싼 똥을 가지고 더 둥글고 아주 예뻐 보이도록 둥글게 열심히 쇠똥을 굴리기 시작했다. 다른 곤충들이 역시 쇠똥구리를 놀렸다. 그러나 쇠똥구리는 그다지 마음 아파하지 않은 듯하였다.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열심히 열심히 자신이 만들 수 있는 둥근 예쁜 쇠똥을 만들었다. 모든 곤충들이 냄새나고 더럽다고 하는 그 쇠똥으로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쇠똥구리는 자신의 쇠똥구리임을 알았다. 그리고 더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언더그라운드 심리학에는 'Center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맞다. 축구에서 말하는 외각에서 중앙으로 공을 찰 때의 그 '센터링'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센터링은 자신이 자신의 중심에 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자신 마음의 중심에 도달하게 되면 사실 그 사람은 우주의 중심에 도달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중심은 딱 자신을 위한 유일한 자리이다. 중심에 도달하면 이제 모든 것들은 변방이 되는 것이다. 마치 집에 온 것이라 어디로 갈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자기가 자신이 된 순간 그냥 자기 자신으로 거짓 없이 살아가게 된다. 물론, 그것이 칭찬과 사랑을 보답으로 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때 누구에게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지 않고 자기 자신을 화장하고 눈에 띄게 하기 위해 거짓된 자기를 만들지 않는다. 자신이 되고 싶은 자신과 비교해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슬프고 비난하고 상처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과 씨는 자라서 사과나무가 되지 배가 되지는 않는다. 여학생이 바로 이것을 아는 지점에 도달한다면 오빠로부터 사랑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오빠와 사귀는지 사귀지 않는지와는 상관없는 종류의 것이다. 왜냐하면, 누굴 사귀든 혹은 사귀지 못하던 바로 그 사람이 자기 자신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쇠똥구리는 자신의 마음에 중심에 '센터링'될 때 진짜 쇠똥구리가 되는 것이다.

2018-12-06 09:18:0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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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바담 풍(風)

최근 한 중학생의 죽음과 연관하여 석사 때 지도 교수님이셨던 은사님이 당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박정희 대통령 정부시절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은 많은 산업화가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는 수많은 부모들로 하여금 자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도록 하여 소외된 청소년들이 많았다. 그리고 이런 청소년들은 음주나 흡연 특히 본드 흡입 같은 일탈행동을 심하게 하여 사회문제가 심각하던 시대였다. 필자 개인적으로 기억나는 당시 일 중 하나는 동네 형들이 귀가 중이던 초등 저학년이었던 나를 어느 구석인가로 불러 문방구에 가서 본드를 사오라고 시켰던 것이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이런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면 뭔가 이상한 것을 시켰다는 것은 알았던 것 같다. 아마 당시 그 형들은 내가 사다준 본드를 접착용이 아닌 흡입용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초등학교 당시로 말하면 국민학교에서는 본드를 흡입하면 어떻게 큰 일이 나는지를 교육하는 교육용 영화를 시청각 실에서 단체로 상영하였고 그것을 단체로 시청하기도 하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래서였는지는 모르지만, 왜 청소년들이 이렇게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 당시 안기부, 즉 지금의 국정원에서는 심리학자의 말을 듣고 싶었는지 교수님을 초정하여 안기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한 강의를 요청하였다고 하셨다. 직접 고급 차를 대학 연구실까지 보내와서 교수님을 모시고 어디론 가로 데려 가셨다고도 하셨다. 그렇게 초청 강의를 하시던 중 교수님은 안기부 직원을 대상으로 청소년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하시던 중 다음과 같은 우화를 이야기 하셨다고 했다. 옛날 어떤 서당의 훈장님은 혀가 짧았다. 그래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는데, 이 서당의 제자들에게 한자를 교육시키던 중 마침 가르칠 글자가 '바람 풍'이었다. 발음이 부정확했던 훈장님은 '바람 풍(風)'을 적어 놓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 이 글자는 '바담 풍'이다. 따라해 해 봐라 '바담 풍' 그러자 서당의 모든 아이들이 '바담 풍'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훈장님이 "아니 '바담 풍'이 아니라 '바담 풍' 이라고 .자 자시 따라 해봐 바담 풍!" 그러자 다시 아이들이 따라 했다. "바담 풍." 훈장님은 화가 나서 다시 말씀하셨다. "아니 '바담 풍'이 아니라 '바담 풍'이라고 '바담 풍!'. 자 다시 따라 해봐라 바담 풍." 그러자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아이들은 따라 했다고 한다. "바담 풍." 결국, 훈장님은 화가 나서 모든 제자들의 종아리를 때렸다. 교수님이 이 이야기를 예를 들어 말하자 강의를 듣던 당시 안기부 직원들의 표정이 바뀌는 듯 했다고 한다. 초청 강의가 끝나고 나서 교수님말 그대로 하면 혼자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청소년의 뇌는 불안정하다.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은 40대의 성인에 비해 10배 많다. 그런 애들에게 그 호르몬의 충동질을 어떻게 겉으로 드러낼지 알려주는 모델은 그 사회의 어른들이다. 비행사회가 비행 청소년을 만든다. 다문화 아이를 집단으로 괴롭히고 죽게한 것은 그 동네 질 나쁜 청소년들이 아니라 그래도 된다고 모델이 되어준 우리 한국의 어른들이다.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바담 풍'이라고 말하고 '바람 풍'이라고 제대로 읽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않을까?

2018-11-29 10:34:03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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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신앙과 군대

'뉴로피드백'이란 기계가 있다. NASA에서 우주인의 인지 기능과 집중력 등을 높이기 위해 개발된 뇌 개발 기계이다. 원리는 바이오피드백을 뇌의 뇌파와 연결하여 일종의 심리적 의도를 이용해 집중력이나 신체 정보를 임의로 조절하는 것에 있다. 이 기계는 한국에서도 일부 정신과에서 비침투적이고 비화학적인 치료 기법으로 각광받고 주의력 증진이나 주의력 손상이 이는 성인·아동에게 치료용으로 많이 활용되기도 했다. 아마 지금도 활용되고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그램 옵션 중에 영성 체험 루틴이 있다. 뇌신경신학에서 밝혀 낸 것처럼 좌뇌측두엽의 기능을 훈련하여 우주와 일체가 되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인데 명상 중 경험하는 초월 경험도 뇌의 이 부분과 연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복적인 주의 집중과 호흡 훈련을 통해 뇌의 매우 색다른 의식상태가 발생하고 이 경험은 종교적 체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일종의 우주와 합일하는 경험을 이끌어낸다고 한다. 명상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다소 인위적인 접근이 종교적 체험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고 싶지 않다. 영성이나 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부정하기 보다는 모르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싶다. 재미있는 현상은, 이런 경험이 신념이 되어 역사적인 변혁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잔 다르크도 종교적인 색채를 제외하고 이성적으로 보면 이러한 과학적 설명으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고 제7안식교회의 토대를 닦은 화이트 부인도 비정상적인 경험을 통해 영적 경험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적 환상을 경험하는 경우 측두엽의 종양이 종교적 예언이나 환영 경험, 몰입감과도 연관되는 듯 하다. 심지어는 마법사나 샤먼이 되기 위해서는 자연 마약의 일종인 독성강한 버섯을 흡입하거나 섭취하여 변형된 의식을 경험한다는 인류학적인 연구도 잘 알려진 사실들이다. 공통점은 모두 개인적 경험이고 그것에 대한 막강한 믿음이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거기에 우연으로 이뤄지는 기적적인 요소가 작동하면 그 경험을 한 주인공은 영웅이나 살아있는 예수님이 된다. 불확실한 삶을 넘어서는 강력한 통제와 초월의 믿음은 우리가 우주 행성으로 나가는 미래에 오히려 더 강해질 것 같다. 진화론의 대가이며 철저한 이성주의자에 회의주의자인 리처드 도킨슨도 다윈이 저술한 책을 마치 성경을 모시듯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손을 대면 다윈의 위대함으로부터 영향을 물려받는 듯 행동한다고 하니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술적 사고를 한 조상의 자손인 건 맞는 듯하다. 삶에 왜 이리 많은 신념과 믿음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아마 프로이트 말대로 이 우주가 허무하고 죽어가는 현실이라는 것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환상과 망상에 기댈 수밖에 없어서 인 듯하기도 하다. 한 종교단체의 신자분들과 관련된 군복무 기사를 보고 이러 저런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신앙은 군대보다 강한 듯 하다….

2018-11-14 18:01:22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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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재수가 없어지는 비결?

인생을 살면 살수록 세상 모든 것은 운에 좌우된다는 의미로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운(運)'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주변이나 필자가 만난 사람들 중 성공하기 싫고 돈 많이 벌기 싫고 혹은 사랑 받기 싫은 사람은 없었다. 간혹 싫다고 말하는 사람의 마음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신념(?) 같은 것 때문일 뿐, 성공이 정말 싫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운 좋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연구하다가, 운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운 또는 재수가 없어지는 방법아닌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역설적이지만 재수가 좋아지기 위해 없어지는 방법을 알아보자. 우선, 재수나 운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다. 그들은 어떤 것에 대해 일종의 욕심이 생긴다. 이런 욕심은 자아의 특성 중의 하나이며 자아는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진화시킨 중요한 생존 기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아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상이 생기면 자아는 그 대상을 중요한 어떤 것으로 분류한다. 그 순간 그 중요한 대상에 대해 꼭 갖거나 혹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 소유욕이 발생한다. 이 소유욕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 소유욕으로 인해 그 대상의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면서 그 대상에 대한 집착이 발생한다. 그래서 재수 없는 사람들은 집착이 발생하면 그 대상에 대해 일종의 너무 많은신경을 쓰고 애를 쓰는 단계로 들어간다. 애를 쓴다는 것은 어떤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힘을 쓰는 것과 같다. 힘을 쓴다는 것은 경직되는 것이고 경직은 단단함을 만들고 단단함은 주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게 한다. 그 순간 더 경직되고 더 힘을 주고 그래서 바로 가장 두려워하는 부러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눈밭에 미끄러졌을 때 다치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몸에 힘을 빼고 모든 것을 흐름에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재수없는 사람들은 살아보기 위해 팔을 내딛거나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힘을 준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 순간만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신이 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일들을 경험하게 되고 이 경험은 더 경직되고 융통성이 떨어지게하여 주변도 재수없게 만들게 된다. 이런 흐르을 한발 뒤에서 보면 결국 재수가 없어지는 것은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연관됨을 알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삶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희극이며 가까이서 보면 하나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은 그대로 우리에게 운을 부르고 재수 없는 상태에서 재수가 있는 상태로 바꾸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에 대하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비극처럼 보이면 멀어지는 현명함이 너무 멀어져서 삶이 희극으로만 진지함을 잃을 때는 다가가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공자님은 그것을 중용 혹은 시중이라고 하셨던 듯하다. 삶의 중용이란 우리가 너무 귀하고 중하다고 여겨 집착을 할 때는 멀리 떠나서 봐야하며 너무 멀어 공염불을 하고 초탈한 듯 하여 무관한 듯 허무할 때 다시 다가가서 작은 것에 집중하고 애착하는 능력이 아닐까? 결국 재수가 없어지는 비결이란 집착과 경직됨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운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운에 너무 매달리면 재수가 없어지게 된다. 그러니 우리 모두 릴렉스 하자!

2018-11-07 15:27:11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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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로봇과의 상담

AI가 사람을 대신해서 상담을 할 수 있는지요? 라고 묻는 분들이 강의 중에 간혹 있다. 때로는 직접적인 질문은 아니지만 인간 대부분의 직업이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말하면서 그렇지 않은 직업으로 많은 분들이 사람을 상대하는 상담사나 심리치료사 혹은 정신과 의사가 아닌지 묻기도 한다. 전문가마다 혹은 사람마다 다른 예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필자는 단연코 가장 빠르게 AI로 대체될 수 있는 영역이 상담분야나 심리치료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사람 앞에 로봇이 앉아서 사람처럼 하는 그런 방식은 아니다. 독자 분들 중에는 '엘리자'라는 상담 봇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엘리자는 MIT의 바이젠바움(Weizenbaum, J.)이라는 학자가 1966년에 발표한, 가장 초기 무렵의 자연언어에 의한 대화 시스템을 만든 일종의 단순한 기구 이름이다. 원리는 단순하다. 인간이 작성한 입력문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일견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어 보이게 구성되었다. 당시 정신과적인 면담이나 지지 치료적 상담에서 사용되는 언어 표현 방식을 활용하여 사람이 묻는 질문에 대해 반응하는 수준의 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내담자: 안녕하세요? 엘리자: 안녕하세요! 어떻게 들어오시게 되셨어요? 내담자: 내가 요즘 고민이 좀 있어서 많이 힘든데…. 엘리자: 아 고민이 있으시군요. 어떤 고민이 있으신지 말씀해주시면 들어드릴게요. 내담자: 아이가 말썽을 피워서 큰 일입니다. 엘리자: 아이가 말썽을 피우는군요. 아이가 피우는 말썽에 대해 한번 말해보세요. 내담자: 예, 그게 어떤 거냐면요…. 혹시, 상담사 분들과 상담을 해본 분들은 바로 느낌을 알 수 있을 듯한 대화 방식이다. 필자의 칼럼에도 언급된, 상대방의 말을 따라서 하는 '미러링'이라는 기법이 그대로 적용된 대화를 엘리자가 진행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의 말 내용에 대한 언급보다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서 반응하고 거울처럼 반영해주는 것이다. 더 진행을 하게 되면 내담자는 엘리자에서 다양한 내용의 경험들을 표현하게 되고 엘리자는 그 내용에 대해 묻기보다는 마치 말한 내용을 알고 있는 듯 반응하는 답을 해준다. 당연히 아직은 조악한 수준으로, 어떤 경우에는 앵무새처럼 한 말을 되풀이 하는 대답을 하기도 한다. 엘리자를 보면 많은 분들은 아직 로봇이 사람을 대신하여 상담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엘리자는 많은 팬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여느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는 평가를 받기고 한다. 일종의 팬클럽이 있는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자신의 비밀을 사람에게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고 느끼는 내담자들이 '엘리자는 로봇이기 때문에 절대로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고, 또 엘리자가 로봇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겉과 속이 다르게 느끼거나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속으로 자신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사람과 대화하는 것보다 더 안심된다고 한다. 엘리자가 태어난 게 1966년쯤 되니 지금으로부터 거의 50년 전이다. 지금은 인공지능(AI)이 바둑에서 인간을 이기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곧 인간의 마음을 좀 더 세밀하고 이해하고 반응하는 로봇 '상담 대가'가 곧 나오지 않을까? 섬뜩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기대도 된다. 필자는 이제 로봇과 경쟁하게 될까? 어떤 미래가 올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여러 이유로 분명이 상담이 가능한 로봇을 볼 날이 머지 않은 듯 하다. 이래저래 AI가 이제 경쟁 상대가 되는 시대다.

2018-10-31 17:28:25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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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피카페] 자의식을 가진 물고기? -자기의식의 비밀

인간은 자기가 자기 자신인 것을 어떻게 아는가? 다시 말해 내가 나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여러분이 거울을 봤을 때 거울에 비춰지는 팔을 올리고 머리를 빗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이러한 자기가 자신임을 아는 의식을 심리학이나 신경과학에서는 '자의식' 혹은 '자기각성(self awareness)'이라고 한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 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 명제는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자기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표현이라고 바꿔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바꿔서 설명하면 바로 위에서 말한 자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거울에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생물체는 현재 이론적으로 뇌의 정보처리 용량과 속도에 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자기의식을 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이러한 자의식이 발생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로 '마음이론' 이라는 심리학적 가설을 주장한다. 마음이론이란 믿음, 의도, 욕구, 거짓, 지식 등의 정신 상태를 통해 자신 혹은 타인에게 적용해 타인과 자신의 믿음, 욕구, 의도와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이나 고등생명체들은 다른 존재가 각자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인간 각자는 이러한 마음이론을 가질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자녀와 남편, 우리가 관찰하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유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이론에 근거하여 자신의 마음도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능력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심지어는 우리가 키우는 개와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 조차 어떤 마음이 있다고 보는 인간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학자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들을 고안하는데 보통 거울실험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의식이 존재하는지 알아본다. 예를 들어, 이마에 점을 찍고 거울을 보여주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통해 파악한다. 영장류 중 소수만이 이러한 거울 실험을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의 홍콩연구진의 한 실험서 거울 테스트를 통과하는 물고기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물고기는 자신으로 인식하고 일련의 테스트를 통과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연구가 의미하는 것 중 하나는 소위 진화상으로 고등한 진화를 한 영장류 정도만이 자기의식을 가지는 것이 아니며 특히 자의식은 아주 많은 뇌의 용량이나 고도의 복잡한 과정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더 보강된 연구들이 필요함을 제언하고 있지만 나를 나로 아는 능력이 인간만의 혹은 고등 영장류만의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도 가능성으로 제기되는 것이다. 만일, 위에서 말한 물고기가 진짜 자기의식을 가졌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욕을 할 날이 나올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뭐 이미 이런 욕을 사용하고 있는 인간도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이런 물고기만도 못한 인간아…." 라는.

2018-10-17 16:18:49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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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마음의 세뇌

목숨을 위협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경험하면 사람의 마인드는 포맷이 된다. 파블로프의 연구소에서 조건화된 학습을 한 개들이 있었다. 뭐 종치면 침 흘리는 그런 잘 알려진. 그런데 어느 날 러시아에 최근 쏟아진 외국의 태풍과 같은 홍수로 연구소까지 물이 들이차 연구원조차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불쌍한 개들을 두고 황급하게 도망을 나오는 사단이 났다. 아뿔싸! 연구원들은 개들을 두고 나온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뭐 누군가 개들을 챙겼겠지 했다가 서로 정신 없이 나오다 보니 모두 죽었겠구나 하며 자책을 하고 모든 상황이 정리된 후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수습하기 위해 돌아 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개들은 어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었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조건화를 열심히 학습한 개들이 모두 살아있었던 것이다. 연구원들은 천만 다행으로 여기고 개들과 연구소를 다시 정비하고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은 개들을 데리고 다시 이전의 조건화 연구를 이어서 하려고 했는데 '오마 갓~!' 개들이 이전의 조건화 학습을 깡그리 잊어버린 것이다. 이걸 자칭 전문가들은 소거라고 한다. 아, 이게 무슨 일인가? 어찌 된 것일까? 그렇게 오랜 훈련된 학습을 단 며칠 만에 다 까먹었단 말인가? 조건화는 몸에 저장되는 일종의 암묵기억의 일종에 가까워서 저절로 소거되는데도 시간이 걸리는데 말이다. 연구원들은 차분하게 그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결론은 바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그 경험이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극심한 상황에서 유기체들은 이전의 학습을 다 포맷해버리고 기본적인 세팅으로 다시 돌아가는 생존본능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끗하게 머리가 정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세뇌(Brain Wash)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은 파블로프에게 보고되었고 이 현상의 의미는 스탈린의 통치 기술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 악마의 현상은 이후 미국에서는 인간의 세뇌나 정신을 조작하는 마인드 컨트롤 연구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전쟁경험을 한 세대들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은 동일 수준의 극단적인 경험을 하기 전에는 그 마인드가 바뀌기 힘들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비논리적이며 정서적으로 사악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극단적인 경험을 하면 정신이 포맷이 되어 버린다. 더 사악한 점은,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는 사이코페시가 어디든 존재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거나 극도의 직업적 학업적 스트레스가 존재할 때 인간의 정신은 방어막을 잃어버리고 생존 모드로 돌아가고, 그 때 생존을 보장해주는 누군가에게 맹신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이런 프로세스로 다단계, 사이비 종교, 정치세력, 팬덤이 만들어진다. 인간은 보기보다 많이 정신적으론 약하면서도 생명적으론 질긴 존재이다. 그래서 문명이란 신기루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2018-10-03 14:44:28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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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무의식에 작동하는 설득의 기술

이제 본격적으로 무의식에 작동하는 설득의 기술들을 알아보자. 어떻게 하면 상대가 알지도 못하게 설득하게 하는가? 이를 위해 해야 할 작업이 있다. 바로 많은 상담에서 말하는 '라포'의 형성이다. 라포(Rapport)란 일반적으로 두 사람의 인간 사이에서 마음이 통하고, 따뜻한 공감이 있으며 감정교류가 잘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번 글에서는 라포의 중요성을 말해보겠다.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는 많은 글이나 책에서는 항상 공통적으로 공감을 매우 중요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공감을 적극적 경청이나 혼신의 힘을 다하여 듣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아주 타당하며 정확한 설명이다. 여기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듣는 다는 것, 혹은 적극적 경청을 무의식에 작동하는 공감의 기법으로 다시 설명하면 상대방이 말하고 있지 않은 것들까지 듣는 것이며 내가 무의식 중에 전달하는 것을 숨기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것을 듣는 다는 것은 상대방의 언어적 표현의 이면에 존재하는 미세하면서도 다양한 바디랭귀지를 통해 무의식적인 욕구와 욕망을 파악한다는 것이며, 내가 무의식 중에 전달하는 것을 숨기는 것은 섣부르게 이성적이면서 논리적으로만 판단해서 상대의 감정이나 이해의 폭을 벗어나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의식에 작동하는 설득의 기술 중 첫 번째는 라포를 어떻게 형성하는가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혹 어떤 사람은 글쓴이가 공감을 언급하다가 왜 뜬금없는 라포라는 말을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필자도 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공감을 꼽고 있다. 하지만 공감은 무의식에 작동하는 설득이나 대화의 측면에서 보면 라포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볼 수 있다. 그럼 라포는 왜 중요할까? 많은 사람들이 라포를 알고 있지만 다시 정리하면 라포는 두 사람 혹은 두 집단 간의 신뢰관계라고 표현할 수 있다. 불어로 '다리'라는 의미다. 프랑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신뢰관계를 다리라고 표현한 것은 참으로 명철한 설명이고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떨어진 장소 혹은 개인이 서로 무언가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 둘을 연결하는 어떤 연결고리인 다리가 있어야 하며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가 굳건할수록 한쪽에서 한쪽으로 어떤 것이든 전달되고 전달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다리가 튼튼하지 못하거나 부재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전달하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라포 없는 의사소통은 움직이는 주전자 입구에 물을 집어넣으려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타고 나기를 이러한 라포를 형성하는 본능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설득의 대가인 것이다. 다만, 여기에 당신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행동하게끔 원하는 제안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항상 명심할 것은 두 사람간의 다리가 얼마나 건설되어 있으며 굳건한지를 항상 점검해야 하며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면 좋던 싫던 이 라포라는 다리를 먼저 형성해야 한다. 그 대상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며 꼭 설득할 무엇이 있다면 그럴수록 더 라포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18-09-26 14:04:05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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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설득의 트릭(1)밝음의 설득과 어둠의 설득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 말은 알코올 중독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상담기법인 '동기강화 상담방법'의 대가인 윌리엄 밀러가 한 말이다. 그러나 그분은 여기에 한마디 더 한다. "사람은 누구도 타인에게 설득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은 예외이다. 바로 자기 자신…." 당신이 고객, 부하직원, 환자, 제자 또는 당신의 아이를 설득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또 자신의 설득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말하려는 사실을 상대방이 납득하지 못하는 좌절의 경험을 해봤다면 설득이란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때론 불가능한 것인지도 알 것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더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바로 이러한 원리를 거꾸로 적용해 보라고. '이 세상에 어떤 누구도 자기 자신 말고는 설득할 수 없다면 바로 그 자신이 스스로를 설득하게 하면 어떻겠는가?'라고. 만일 우리가 그 방법을 알고 활용할 수 있다면 어떤 누구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설득의 기본 원리는 바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설득하게 하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설득하려는 대상에게 논리적이며 합리적으로 근거를 제시하면서 말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위의 말에 따르면 어떤 면에서는 설득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오히려 상대방 자신이 자기에게 스스로를 설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 섬뜩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오래 전부터 스스로가 스스로를 설득하게 만드는 대화와 설득의 기법은 은밀하게 혹은 공개적이며 학문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또 이러한 방법이 실제 매우 효과적인 설득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고 현재도 되고 있다. 한편, 반대로 설마하며 믿지 못하겠다고 생각할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많은 최면적 방법이나 다양한 형태의 심리 치료 및 상담에서 알게 모르게 활용되는 매우 강력한 설득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방법을 밝은 설득 즉 윤리적이며 건강한 목적의 설득으로 활용한다면 그 효과와 장점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에 대해 스스로 부정적이며 비관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불건강한 생활방식을 유지하는 사람이 건강한 생활방식으로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 직장에서 강압적이거나 일방적인 방식이 아닌 일의 목적과 회사 구성원의 공통의 비전을 실천하도록 이해시키고 행동하게 하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우선 효과적인 설득의 2가지 요소를 나는 밝은 설득과 어둠의 설득으로 설명해 보겠다. 이 둘의 접근이 무엇인지는 천천히 설명하도록 하고 우선 이 설득 방법이 무의식에 접근하기 때문에 매우 강력하다는 점이 있다. 무의식은 다양한 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고 있는 인간에게 아직도 미지의 정신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자신을 설득하게 하는 기법의 밝고 어두운 접근 방법 모두 왜 무의식에 작동하도록 하는가는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생각이나 의견을 받아들이고 이것이 행동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마음 깊은 곳에서의 수용과 인정이 있어야 하며 여기서 말하는 마음 깊은 곳이란 곧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이 무의식의 영역이 어떤 사실들을 받아들인다면 그 대상은 쉽게 말해 자기 최면의 프로세스를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세스는 매우 강력한 형태의 자기 세뇌 혹은 자기 설득의 과정을 유지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어떤 생각이나 의견이 무의식에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생각이나 의미가 자신의 생각과 의미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는 곧 외부에서 들어온 생각과 의견이지만 마치 자신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의견이라는 착각과 왜곡과도 연관된다. 이를 어떤 사람들은 마인드 바이러스라고도 한다. 의도적이지 않겠지만 많은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훈련들이 바로 이러한 은밀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도 재해석이 가능하다.

2018-09-13 09:48:18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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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외계인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

고등학교 1학년 때 조현병(정신분열증)이 발병한 20대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아버지가 외계인이라고 하면서 삽으로 때렸다. 증세가 심각해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 환자는 조금 부족한 듯(보통 덜떨어져 보인다고 한다)한 얼굴에 오히려 방추형의 머리형을 가진 외계인의 외모에 가깝고 매우 순진했으며 정신병 때문에 지적 능력도 떨어졌다. 그나마 오랜 입원 치료로 증상이 좋아져 외박을 나갔다. 그런데 밭일을 하는 아버지가 또 다시 외계인으로 보인다며 압력 밥솥으로 뒤통수를 때려 하루 만에 다시 강제 입원을 했다. 당시 초보였던 나는 아버지를 왜 외계인으로 보는 것인지 깊은 병리의 이면까지 이해하지는 못했던 기억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기본적으로 마음 안에 있는 것이 밖에 출현한다고 본다. 억압된 것은 본인에게 다시 돌아오며, 돌아올 때 대부분은 우리를 파괴하는 두려운 존재로 돌아온다고 본다. 분석 심리학을 만든 정신과 의사인 칼 구스타프 융은 UFO가 우리 전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심리적 현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과학의 시대, 이성의 시대에 우리가 비과학적이며 비이성적이라고 여겼던 존재와 미신이라고 치부된 것들이 감각 상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것으로 본 것이다. 즉, 우리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체와 균형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외계인과 외계문명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모르는 낮선 것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은유하는 것이고 우리가 가지는 긍정적, 부정적 태도는 모두 낮선 것과 우리가 모르는 미지에 대한 우리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체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안에서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하여 차이를 두는 일종의 인종주의적 본성을 다윈은 '인간의 진화적 천성'이라고 보았다. 우리는 같은 편과 아닌 편을 구분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아닌 존재는 기본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해치려 한다고 불안해한다. 이것이 더 적응에 효과적인 측면이 있다고 다윈은 봤다. 그래서 우리는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면 그 이방인에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우리가 딛고 있는 이곳과 우리가 가진 것들을 훔쳐갈까 하는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경계한다. 그 두려움은 우리의 안에 있는 것으로 알 수 없는 외부 대상에 투사한다. 또 이러한 투사를 통해 우리 편이 아닌 존재에 대해 우리의 오류와 실수 등을 투사하여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대하고 스페인인들이 잉카인들을 대하듯이 지구 밖의 존재가 우리를 우수한 무기로 가만두지 않고 침략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심리학의 진실로 보면 우리는 정확히 우리의 행동을 외부로 투사하여 처리한다. 불행히도 외계인은 아직 만난 적이 없지만 우리는 다른 피부색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고 심지어는 같은 말을 쓰고 같은 피부를 같은 국적의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인처럼 대한다. 만일 우리가 외계인과 조우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현재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외계인이 있다면 우리를 피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아버지조차 외계인으로 보는 순간 인간은 그의 뒤통수를 압력밥솥 뚜껑으로 때릴 수 있는 존재다. 왜냐하면 외계인이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서….

2018-08-30 14:03:08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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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는 법

1년의 어학연수를 떠날지 말지, 떠나면 자신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선택하지 못해 내원한 26세의 남학생이 있었다. 본인의 우유부단함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결정을 할지 필자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 어려운 걸음을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과 미래에 대한 답을 찾아서 세계를 헤매고 인터넷을 뒤진다. 자칫 잘못해서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미래에 대한 정답을 알고 싶어 하게 만든다. 이 청년은 미신같은 것보다는 그래도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어 상담을 택했다고 한다. 물론, 용하고 대단하다는 점쟁이도 찾아가 점도 보고 타로도 보고 심지어는 무당도 찾아보았다고 한다.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용하고 대단한 영능력자와 비슷한 급이니 고마워해야 할 거 같았다. 필자는 어떤 정답을 주어야 하는지 상담치료 경험을 통해 터득한 기법을 활용했다. 이런 접근 방법을 시간선 치료라고 한다. 상담자: 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세요….(5번 반복) 좋습니다. 이제 당신의 몸 주변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상상하면 과거가 어디 있는지 가리켜 보세요. 내담자:(공간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킨다) 상담자: 그럼 저와 있는 현재에 해당되는 시간이 있는 곳을 가리켜보세요. 내담자:(공간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킨다) 상담자: 이제 이 두 선이 흘러가는 미래의 한 공간을 가리켜보세요 내담자:(어느 한 공간을 가리키다) 상담자: 이 선을 이어 보시면 이제 당신의 시간의 선이 이어져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선을 따라 당신의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흐릅니다. 그 선들이 보이시나요? 내담자: 예…. 상담자: 자, 이제 제가 셋을 세고 박수를 치면 그 선을 떠나서 비행기 정도 높이에서 그 선들을 바라보는 상상을 합니다.( 심호흡을 시키고) 하나, 둘, 셋 (박수를 친다) 상담자: 자 뭐가 보이십니까? 시간의 선들이 쭉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이시나요? 내담자: 예, 보입니다. 상담자: 그 높이에서 바로 밑의 시간 선을 보면 저와 같이 상담을 하고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맞습니까? 내담자: 예. 저와 선생님의 머리와 연구실이 보입니다. 상담자: 자, 당신의 왼쪽이 과거입니까? 미래입니까? 내담다: 음…. 과거 같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이 미래 같습니다. 상담자: 그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함 보세요. 쭉 선이 이어져서 어디서인가 끝이 날 것입니다. 그렇죠? 내담자: 예. 그 다음은…. 검은색…. 상담자: 예 그렇습니다. 그 이후는 생이 끝나는 지점일 것입니다. 자 그럼 우리 바로 밑에가 현재이니 1년 후의 미래로 옮겨 가 보겠습니다. 그 높이와 위치에서 오른쪽으로 1년 후의 시간으로 옮겨 가보겠습니다. 느낌이 오시나요? 내담자: 예. 상담자: 자! 그럼 세가 셋을 세고 박수를 치면 오른쪽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약 1년 후에 저절로 멈추게 될 것입니다. 내담자: 예. 상담자: 하나, 둘, 셋(박수를 친다). 이제 당신의 1년 후의 미래에 와 있습니다. 아래를 보세요. 뭐가 보이나요? 내담자: 예, 작게…. 미국 같은 어딘가의... 잔디가 보입니다. 상담자: 이제 이 위치에서 제가 손바닥을 치면 밑으로 내려가서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좋습니까? 내담자: 예…. 상담자: (박수를 친다). 자 뭐가 보이시나요? 내담자: 제가 잔디에서 여름에 맥주를 마시고 외국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음…. 대화를 잘은 못하지만 외국인 친구를 사귄 거 같습니다. 같이 맥주를 마시고 잔디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상담자: 예, 좋습니다. ( 이후 그 상황을 충분히 경험한다) 이 내담자는 상담 이후 한 달쯤 지나 어학연수를 떠났다. 이후 소식은 모르겠다. 보통의 경우 몇 년 정도 지나면 연락이 오거나 방문을 한 번쯤 한다. 필자도 그렇게 이 내담자에 대해 예측한다. 여름에 잔디에서 맥주를 마실까? 라는 의문도 든다.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점술가의 신통한 능력도, 혹은 미래에 대한 빅데이터도 아닐 수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 가장 정확한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는 바로 자신의 마음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비록 그것이 영원의 회기라고 할 지라도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라면 어떤 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2018-08-22 15:54:20 윤휘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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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오의 심리카페] 외로움과 고독함-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많은 사람들이 외롭다고 느낀다. 특히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내담자나 환자분들 중에 외롭다는 느낌을 호소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혹은 사람과의 관계에 빠져들수록 혹은 정신없이 바쁜 틈의 짧은 휴식 동안에도 어떤 사람들은 외로움을 느낀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관계가 주는 어려움으로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하고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 자신을 무디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에게 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모험가는 1980년에 단독으로 에베레스트를 올랐다. 그가 혼자 어떻게 그 추위와 고통을 견디면서 에베레스트에 올랐을까? 조난을 당해 홀로 남겨진 사람들이 몇 주를 어떻게 견디는가? 어떻게 작은 배에 혼자 자신을 맡기도 몇 개월씨 단독으로 태평양을 항해하는가? 우선, 우리가 그들처럼 할 수 없다고 하여도 적어도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배울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선 우리는 '외로움'과 '홀로 있음'을 구분해야 한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것이 고통스럽고, 고립되어 있는 감정이며 부정적인 것이다. 과거에 빠져 안 좋은 기억이 머리에서 소용돌이 치고, 잠시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떠오를 수 있지만 이내 현재 경험되지 않는다는 괴리감 때문에 더 큰 고통을 이끌고 재경험하게 한다. 또한, 자신에 대해 욕하고 부정하고 깎아 내리고 그러한 일이 생긴 세상과 타인에 대해서 분노감을 경험하게 된다. 혼자 그런 경험을 하기 때문에 더 외로워진다. 그렇다면 '홀로 있음'은 무엇일까? '홀로 있음'이란 혼자 있지만 간섭받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있음으로 해서 뭔가 고립되지 않으며 오히려 여유 있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외로움과 혼자 있음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의식의 방향에 있다. 혼자 있음은 주의와 의식이 자신에게 향해 있다. 자신에게 향하는 많은 경우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 빠져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과거에 상처 받은 것들을 떠올리는 습성을 드러낸다. 이건 우리 조상들이 오래 살아남기 위해 생긴 생존의 진화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일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통찰을 주는 좋은 장점도 있다. 그리고 일상에서 번잡함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부정적인 과거의 경험을 되풀이 하면서 일종의 자기 최면 상태에 들어가서 과거에 사로 잡혀 고통을 재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홀로 있음은 의식이 밖으로 나간다. 주변의 사람들과 세상으로 의식이 확장되며 주변을 관찰하고 호기심과 관심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자연과 사람과 주변의 것들에게 시선을 보내게 된다. 이 때 우리는 자아라는 작은 방에서 벗어나서 세계와 연결된다. 이곳에 나 혼자만 있다는 좁은 의식에서 벗어나 자아의식의 밖에 따른 우주와 세상이 있다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혼자 며칠 혹은 몇 개월을 지내면서 모험하는 모험가나 산악인들 혹은 바다 한 가운데 별만을 의지해서 항해하는 탐험가들은 바라보는 해와 산과 별들로 의식을 확장시켜 절대적인 고독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외로움이 알고 보면 이 세상과 우주와 연결되는 비밀의 문임을 깨닫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이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광야에서 홀로 보낸 고독한 40일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때 사람의 아들은 사막과 밤의 별 속에서 자신이 신의 아들임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달았을 것이라 상상한다. 혹시, 지금 외롭다면 자신의 의식을 사람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물과 자연에 돌리고 확장시키는 연습을 진행해 보자. 고독함 자체를 피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혼자가 아님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진성오 당신의마음 연구소장 skeyzo@daum.net

2018-08-08 16:06:54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