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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 스토리]불도장,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

불도장,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 불도장은 중국의 여름 보양식이다. 길 가던 스님이 집 건너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담장을 뛰어넘고 파계했다는 음식이다. 부처 불(佛)·뛸 도(跳)·담장 장(墻)자를 써서 '스님이 담장을 넘었다'는 희한한 요리 이름이 여기서 비롯됐다. 불도장은 어떤 음식일까? 제대로 만들면 모두 서른 가지의 재료가 들어간다. 샥스핀·전복·해삼·사슴꼬리·생선입술·자라 등의 고대 산해진미와 버섯· 죽순·구기자 등 각종 약재를 전통 명주인 소흥주 항아리에 담아 연잎으로 밀봉한 후 다섯 시간 넘게 고아 만든다. 불도장은 왜 유명해졌을까? 부자들의 값비싼 음식 때문도 아니고, 스님이 파계할 만큼 맛있기 때문도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음식 때문에 담장을 넘은 스님은 없었다. '항아리 뚜껑 여니 음식향기 사방에 진동하고/길 가던 스님, 참선도 포기하고 담장을 넘었다네.' 맛에 반한 손님이 지었다는 시로 불도장이라는 이름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문학적 창작의 결과다. 널리 알려진 중국 요리 치고는 역사도 짧다. 기껏 백년을 조금 넘었을 뿐이다. 청나라 말기 푸젠성의 금융기관 책임자가 상급 감독관청 관리를 접대하려고 만든 것이 효시다. 지방요리에 불과한 불도장이 세계적 명품 요리가 된 직접적 계기는 중국 외교 덕분이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만찬음식으로 불도장을 준비했다. 여기에 스님이 담을 넘었다는 허구의 스토리까지 더해져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됐다. 불도장 이야기에서 중국의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 내는 소프트파워가 느껴진다. 앞으로 다가 올 차이나 쇼크는 중국의 경제력이 아니라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2013-08-01 11:34:22 허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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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장어는 세계인의 여름 보양식

몸도 마음도 쉽게 지치는 여름철, 기운을 차릴 수 있는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는다. 힘이 세고 생명력이 강한 물고기여서인지 사람들은 장어를 먹으며 힘이 고스란히 자신의 몸속으로 전해지기를 빌었는지, 한국·중국·일본 등 동양은 물론 바다 건너 유럽에서도 여름 장어는 특별하게 취급했다. 우리한테 여름 장어는 어떤 음식보다 좋은 영양식이었다. 오죽하면 '숙주, 고사리 넣고 끓인 장어탕을 먹고 난 후에 다른 국을 먹으면 맹물에 조약돌 삶은 맛이 난다'고 했을까. 장어는 더위에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는 식욕 촉진제였다. 고려 왕실에서도 여름이면 보양식으로 장어를 먹었는데 옛날에는 임진강 장어가 유명해 여름에 잡히는 장어는 우선적으로 송도 왕궁으로 보냈다. 일본은 우리보다 더 장어를 사랑했다. '여름에 장어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설까지 있으니 특히 복날이면 우리가 삼계탕 먹는 것처럼 일본인은 장어덮밥을 먹으며 여름을 보낸다. 중국 역시 전통적으로 장어를 보양식으로 여겼다. 송나라 때 '태평광기'에는 영양이 풍부한 여름 장어를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보양식으로 보았다. 사실 한·중·일 3국에서 추어탕이 여름철 농민들의 보신 음식이었다면 장어는 중산층의 하절기 보양식이었다. 유럽도 여름철에 장어를 먹는다. 동양과는 보신의 개념이 다르지만 독일 북부에서도 여름 별식으로 '알 주페'를 즐겨 먹는데 독일어로 알(Aal)은 장어, 주페(Suppe)는 수프이니 바로 장어탕에 다름 아니다. 유럽에는 독일 말고도 여름 별식이나 해장 음식으로 장어를 먹는 나라가 여럿 있으니 동서양이 모두 장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하다. 장어의 힘이 필요한 계절이 됐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7-24 18:56:33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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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별이 만든 열매, 블루베리

블루베리 열풍이 불고 있다. 시력 보호와 피부 미용에 좋고,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다. 역사적 증거도 있다고 주장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 조종사들이 블루베리를 듬뿍 먹고 야간 시력이 좋아져 기습 공격해 오는 독일 폭격기를 쉽게 찾아 격추시켰다는 것이다. 과연 블루베리 덕분이었을까? 전설처럼 전해지는 블루베리 효과는 영국 공군이 퍼뜨린 루머였다. 야간에 침투하는 적기를 정확하게 탐지한 비결은 새로 개발한 레이더였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레이더를 실전배치한 사실을 몰랐기에 영국은 갑자기 적기를 족집게처럼 찾게 된 이유를 감추려고 거짓 정보를 흘렸다. 블루베리를 일종의 약초로 여겼던 민간 속설을 이용한 것이다. 블루베리에는 비타민을 포함해 다양한 영양소가 들어있는데 특히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시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눈에 들어오는 빛의 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색소가 생성되는 것을 돕는 작용을 하기 때문인데 직접적으로 시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고 한다. 블루베리는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로 원주민들은 블루베리를 하늘이 내려 준 천상의 과일이라고 믿었다. 먼 옛날, 인디언 마을에 심각한 흉년이 들었다. 사람들이 굶주리자 하늘의 정령인 '위대한 영혼'이 하늘의 별을 땅으로 보내주었는데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자란 식물에서 열매를 맺었다. 원주민들이 그 열매를 따먹고 굶주림에서 벗어났다. 원주민들은 블루베리가 밤하늘의 별이 지상으로 떨어져 생겨난 열매였기 때문에 별의 열매, 즉 '스타베리'라고 불렀다. 꽃받침이 별처럼 생긴 것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인디언들의 환상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아 흥미롭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7-18 09:14:34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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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 푸드스토리] 감자와 고구마 이름이 바뀐 사연

감자와 고구마 이름이 바뀐 사연 동화 '왕자와 거지'는 쌍둥이처럼 닮은 왕자와 거지가 신분이 바뀌어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감자와 고구마 이야기다. 영어로 감자는 포테이토(potato), 고구마는 달콤한 감자라는 뜻에서 스위트 포테이토(sweet potato)다. 옛날에는 달랐다. 고구마가 포테이토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도착한 직후, 중남미 아이티에서 유럽으로 고구마가 전해졌다. 스페인에서는 낯선 작물을 원주민 발음대로 '파타타'라고 했다. 포테이토의 어원이다. 곧이어 비슷하게 생긴 감자가 전해졌고 포테이토와 구분해 하얀 고구마, 화이트 포테이토라고 했다. 그리고 운명이 엇갈렸다. 열대성 작물이며 보관이 어려운 고구마는 유럽에서 대량 재배에 성공하지 못했다. 반면 감자는 18세기부터 유럽 전역으로 퍼져 농민들의 주식이 됐다. 그러자 사람들은 고구마 대신 감자를 포테이토라고 부르게 됐고, 고구마는 스위트 포테이토가 됐다. 왕자와 거지처럼 이름이 뒤바뀐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 우리말에서도 벌어졌다. 1763년 고구마가 처음 조선에 전해지자 사람들은 '달콤한 마뿌리'라는 뜻에서 감저(甘藷)라고 불렀다. 감자의 어원이다. 약 60년 후인 1824년, 함경도 산간지방으로 감자가 들어왔는데, 이 때는 그저 북쪽에서 먹는 고구마 비슷한 작물이라는 뜻에서 북감저라고만 했다. 그런데 유럽과 같은 상황이 반복해 일어났다. 고구마보다 감자를 주로 재배하게 되면서 고구마가 감자에게 원래의 이름을 내준 것이다. 일부 지방에서 아직도 고구마를 감자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식과 간식의 차이가 감자와 고구마의 운명을 갈라놓았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7-11 09:16:33 안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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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누가 처음 팥빙수를 먹었을까

더위를 한방에 날려주는 팥빙수, 녹차빙수는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입 호사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도 여름에 빙수를 즐겼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현대식 빙수를 먹은 사람은 누구일까? 1876년 고종 때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김기수다. 일본 외무대신과의 만찬에서 디저트로 빙수를 먹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얼음 즙이 그릇에 산처럼 쌓였는데 오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먹으면 가슴까지 서늘하다고 했으니 시럽을 뿌린 빙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대식 빙수는 일본에서 만들었다. 1869년 요코하마에서 빙수 가게가 처음 문을 열었고 1887년에는 얼음 가는 기계인 빙수기가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 이렇게 19세기 후반에 지금과 같은 빙수가 등장했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빙수의 원조 국가로 보기는 어렵다. 11세기 무렵에 이미 여름이면 빙수와 비슷한 얼음 음료를 먹었기 때문이다. 중국 '송사(宋史)'에 복날이면 황제가 꿀과 팥을 섞은 얼음을 대신들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겨울에 저장한 얼음을 꺼내 꿀과 팥을 섞어 한여름에 먹었다는 것이니 현재의 팥빙수와 상당히 비슷하다. 팥빙수 이외에도 요구르트를 얼린 빙수 종류인 빙락(氷酪), 앵두 즙을 뿌린 얼음 등 다양한 얼음 음료가 있었다. 일본도 11세기 전후에 빙수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 얼음을 갈아 금속 그릇에 담은 후 칡즙을 뿌려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의 빙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우리 문헌에 빙수는 보이지 않지만 얼음 화채, 혹은 얼음 쟁반에 과일을 담아 차갑게 식혀 먹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무려 1000년 전에도 여름이면 지금의 팥빙수 비슷하게 얼음을 먹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음식문화평론가

2013-07-03 19:55:05 안용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