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MK신화] 부품과장 MK, 20년 기름밥 먹고 '갤로퍼 신화'…제네시스 EQ900 까지
[메트로신문 양성운 기자] 2015년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국산 자동차가 선보인 지 40주년을 맞는 해다. 1976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체 개발 모델인 '포니'를 생산함으로써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인 포니로 '마이카 시대'를 열었다. 그 바통을 이어받아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갤로퍼'를 출시하며 국산 자동차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켰다. 특히 포니와 같은 세단형이 아니라 스포츠유틸리티자동차(SUV)란 새로운 국산차 장르를 개척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자동차 산업에 다양화와 혁신을 불러왔다. 미래 자동차 시장의 트렌드를 미리 직감하고 '뚝심경영'으로 국내는 물론 미국 시장에서 국내 자동차 기술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든 것이다. 정주영·정몽구의 DNA를 물려받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40주년을 맞은 올해 현대자동차 프리미엄 브랜드로 '제네시스'를 정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예고했다. 국내 자체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을 인정받은 갤로퍼에서부터 현대차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제네시스까지 대한민국 자동차의 역사를 조명해 본다. ①현대차 성장의 발판 '갤로퍼'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시장에서 40년 만에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강력한 '뚝심경영'이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롭고 발전된 것을 원했던 정 회장은 "더 잘 만들 수 없나?"를 입버릇처럼 하며 몸소 실천했다. 정 회장은 1970년 현대차 서울사무소 부품과장으로 취업해 자동차 정비에 대한 것을 접했다. 그렇게 현대차 서울사무소에서 시작된 정 회장의 자동차에 대한 애정은 1987년 시작된 '갤로퍼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대외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지금의 현대차그룹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은 쌍용차의 '코란도'가 득세하며 사륜구동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존 디어사의 도움을 받아 골프 카트를 생산하며 자신감을 얻은 정 회장은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지급하고 엔진과 변속기, 섀시 등의 기술을 받아 미쓰비시의 파제로를 국산화하기 위해 힘썼다. 이 과정에서 정 회장은 손수 갤로퍼 시제 차를 주행해본 뒤 대형 핸들을 새롭게 개발해 적용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정 회장의 노력을 거쳐 탄생한 '갤로퍼'는 1991년 10월 출시돼 첫 해에만 1만6000대, 이듬해에는 2만5000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특히 출시 4개월 만에 쌍용차 코란도의 장기집권 체제를 무너뜨렸다. 당시 업계에선 '혜성처럼 등장한 차가 기적을 만들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정 회장의 '뚝심'과 품질에 대한 '믿음' 덕분이다. 당시 정 회장은 갤로퍼의 우수한 내구성을 알리기 위해 '갤로퍼 대장정'을 추진했다. '갤로퍼 대장정'은 7만㎞의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이벤트였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했던 이벤트였다. 당시 갤로퍼의 디젤 4기통 2476㏄ 엔진은 73마력이었고, 이후 터보 차저를 얹어 81마력, 인터쿨러를 탑재해 101마력까지 끌어 올리면서 성능을 개선시켰다. 이후 갤로퍼는 1994년 12월 19일 누적 생산 10만대를 돌파하고 1997년 7월에는 20만대 판매를 기록한다. 기존 4륜 구동 차량의 투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급화된 이미지를 적용한 것도 소비 상승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갤로퍼는 지난 2003년 역사속으로 사라졌지만 기아차와 쌍용차가 갤로퍼를 견제하기 위해 스포티지와 무쏘를 출시하는 등 SUV 전성시대를 여는 촉매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는 갤로퍼 신화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레저용차량(RV) 붐을 이끈 싼타모를 출시하고 아반떼, 티뷰론, EF쏘나타, 그랜저XG, 싼타페 등 연이은 히트작을 출시했다. 또 정 회장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BMW,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품질 경쟁을 위해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그 결과 경기도 화성시에 '남양연구소'를 탄생시켰다. 특히 정 회장의 품질경영으로 '한국자동차=싸구려'라는 외국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한국차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를 막강한 브랜드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기아차는 2012년 713만대를 팔아 처음으로 700만대를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800만대를 넘어섰다. 올해도 800만대는 판매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 정 회장의 '뚝심·믿음·도전 정신'이 현대·기아차를 미래로 도약할 수 있는 바탕을 그린 것이다. ◆현대자동차 기술 자립의 역사 ▶창업기 / 선진기술도입 단계 - 1967년 창립 후 포드와 기술 제휴. 1968년 코티나 양산 개시 ▶고유모델개발/라인업구축 단계 - 1976년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인 포니 시판. 국내시장 석권 및 해외시장 진출 시작 - 1981년 포니 개발 당시부터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던 미쓰비시와 기술제휴 체결. 외국사의 경영권 관여는 허락할 수 없다는 일관된 입장 아래 부분적 자본참여만 허용하고 최대한 기술 협조를 이끌어 냄 ▶독자기술 개발/수출기반 확립 단계 - 1984년 수출전략차종 엑셀 시판. 1986~88년 미국 베스트 판매 소형차, 88년 전차종 수출누계 100만대 돌파, 89년 엑셀 단일차종 수출 100만대 돌파 - 1986년 미쓰비시와 공동개발한 그랜저 시판. 선진국의 일방적인 기술제공에 그쳤던 초기단계가 협업단계로 발전 - 1988년 디자인, 설계 등을 독자적으로 완성한 쏘나타(실질적 최초의 독자모델) 시판 ▶기술선진화/글로벌 기업 도약 단계 - 1991년 국내 최초로 α엔진 및 T/M의 자체 개발 성공, 기술자립의 원년 갤로퍼 출시 - 1998년 세계 수준의 경량 고성능 V6 δ-Eng & T/M 개발, EF쏘나타/그랜저XG 시판 - 2000년 국내최초 승용디젤엔진 개발, 싼타페 출시,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전략적 제휴 (자본참여, 월드카 공동개발, 상용차 합작법인 설립 등) - 2002년 현대차, 다임러크라이슬러, 미쓰비스 합동으로 GEA(Global Engine Alliance LLC) 설립 - GEA 통해 올해 출시된 5세대 쏘나타에 장착된 쎄타엔진을 5700만달러의 로열티를 받고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 양사에 기술 이전 예정 - 2005년 세계최고수준 3000cc급 V6승용디젤엔진 독자개발, 베라크루즈와 모하비에 탑재 - 2007년 순수독자기술 상용 중소형·중형·대형급 디젤엔진, F(4ℓ)·G(6ℓ)·H(10ℓ)엔진 3종 개발로 세계적 수준의 상용부문 핵심 원천기술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