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범 입시 토크] 2022 개정 교육과정 시행, 학생부 기재에 관해
대한민국 교육 현장은 지금 거대한 지각 변동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도입, 2025년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 그리고 내신 5등급제를 골자로 한 2028 대입 개편안은 학교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특히 내신 1등급 비율이 기존 4%에서 10%로 확대됨에 따라 정량적 변별력은 필연적으로 약화됐고, 이에 학생의 학업 역량을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그중에서도 교사가 기록하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의 무게감은 전례 없이 막중해졌다. 바야흐로 숫자로 줄 세우던 '성적표의 시대'가 저물고,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기록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적 이상과 학교 현장의 행정적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위태로운 괴리가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학생부는 학생의 배움과 성장을 담는 교육적 기록이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스펙 나열장'이자, 교사의 주관적 재량권이 무소불위로 휘두러지는 '불공정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작성 주체인 교사의 역량과 태도 차이에 따른 '기재 불평등'이다. 어떤 교사는 최신 학술 동향과 학생의 탐구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완성해 주지만, 어떤 교사는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기계적으로 복사해 붙여넣는 이른바 '복붙'으로 일관한다. 학생의 잠재력이 아니라, '누구를 담임과 교과 교사로 만나느냐'에 따라 입시의 유불리가 결정되는 '교사 복불복' 현상은 공교육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실제 교육청 감사 결과 서울 지역 고교의 약 14%에서 수상 실적 등 특정 학생에 대한 몰아주기 정황이 포착된 바 있으며, 이러한 관행은 성적 상위권 학생에게 세특 기재 분량과 질적 내용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행정적 절차의 모순 또한 심각하다. 학사 일정은 엄연히 2월까지 이어지지만, 교원 인사 이동과 새 학년 준비라는 행정 편의주의 때문에 대다수 일선 고교는 겨울방학 전인 12월 말에 학생부 작성을 사실상 마감한다. 이로 인해 1월과 2월의 교육 활동은 기록에서 증발하고, 교사들은 방학 직전 시간에 쫓기며 수백 명의 기록을 졸속으로 채워 넣는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학생은 철저히 배제된다. 학생부는 학생 본인의 삶을 기록한 공문서임에도, 학년이 마감되고 나이스(NEIS)를 통해 통보받기 전까지는 그 내용을 알 수도, 수정할 수도 없다. 평가의 핵심인 피드백과 성찰 과정이 생략된 채, 오직 결과론적인 텍스트만 남는 셈이다. 더욱이 2028 대입 개편안에서 절대평가(성취도)만 기재하기로 한 사회·과학 융합선택과목(9개)의 운영은 새로운 뇌관이다. 이 과목들이 내신 부담을 던 학생들의 진정한 심화 탐구의 장이 될지, 아니면 변별력을 상실한 '쉬어가기 과목'이나 사교육 컨설팅으로 점철된 '스펙 쌓기용 과목'으로 전락할지는 오롯이 학교의 운영 의지에 달려 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인 '학생 주도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록 시스템의 행정적 혁신이 필수적이다. 교사 개인의 문장력에 의존하는 방식을 넘어, AI 기반 기재 지원 시스템을 도입해 행정 업무를 경감하고 기재 격차를 줄여야 한다. 단, AI가 만들어낸 천편일률적인 기록이 학생의 개성을 지우지 않도록 교사의 검수(Human-in-the-loop) 과정을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할 것이다. 또한,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평가 역량 강화가 절실하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잘 쓰인 소설'과 투박하더라도 학생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진실된 다큐멘터리'를 구분해낼 수 있는 고도화된 평가 안목 없이는 고교 현장의 변화를 견인할 수 없다. 행정적 투명성과 평가의 전문성이 담보될 때, 비로소 학교생활기록부는 입시의 도구를 넘어 진정한 교육의 기록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