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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그 많던 건물들은 다 어디에?

그 많던 건물들은 다 어디에? 서울 경복궁을 거닐 때면 의아한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한 때 건물들로 빽빽했다는 경복궁이지만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복궁이 처음 대대적으로 망가진 것은 지난 16세기말 임진왜란 때였다. 선조가 의주로 도망을 간 직후 백성들에 의해선지 왜군에 의해선지 주체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홀랑 불에 타버린 것이다. 이후 270여 년 동안 방치돼 있던 경복궁이 다시 지어진 것은 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서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또 수난의 시대가 찾아 온다. 조선을 강제병합한 일본이 경복궁에서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라는 일종의 '엑스포'를 연 탓이다. 엑스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1923년 조선부업품공진회, 1925년 조선가금공진회, 1926년과 29년에는 조선박람회가 연거푸 개최됐고 1935년에는 조선산업박람회까지 열렸다. 문제는 이런 행사를 위한 전시장을 마련한다는 이유로 원래 있던 전각들 가운데 상당수를 헐어버리거나 외부에 팔아버렸다는 데 있다. 실제로 구한말 당시 경복궁의 건물 수는 모두 509동에 달했으나 엑스포를 구실로 90% 이상이 헐리고 말았다. 해체한 뒤에도 재조립이 가능하다는 목조건물의 특성상 헐린 전각들은 요정이나 사찰, 개인집으로 팔려나갔다. 집현전의 후신이랄 수 있는 '홍문관'은 남산으로 팔려가 '화월별장'이라는 요정으로, '비현각'은 장충동으로 옮겨져 '남산장'이라는 요정으로 이용되는 식이었다. 세자와 세자비의 생활공간인 '자선당'의 운명은 더 처연하다. 1915년 일본 도쿄로 옮겨졌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불타버리고 말았다. 지금 현재 경복궁 동북쪽 귀퉁이에 놓여있는 돌무더기가 바로 1996년 일본에서 환수해온 자선당 석축이다. 2014년 5월 현재 경복궁에선 수라간 등 일제 때 헐려나간 시설들을 다시 짓는 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과연 헐린 궁을 다시 짓는다고 비운의 역사가 극복되고 옛 영화가 되살아날까? '문화재 복원'이란 미명 아래 사라진 건물을 재건하려 서두르기에 앞서, 지도자들이 무능할 때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 곱씹어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5-22 13:17:43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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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돼지족발이 특별한 이유…

돼지족발은 이슬람 문화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즐겨 먹는다. 우리는 물론 중국에도 다양한 돼지족발 요리가 있고 태국도 카오카무라는 족발덮밥이 유명하다.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독일에는 구운 족발 학세와 맥주에 삶은 아이스바인이 있다. 프랑스는 달콤한 족발 조림, 피에 드 코숑이 인기 고 이탈리아에는 잠포네가 있다. 대부분 나라는 족발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먹는다. 이탈리아는 새해에 잠포네를 먹으면 일 년 내내 지갑에 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중국 당나라 때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가 족발을 먹으며 장원급제의 소원을 빌었고 우리 역시 산후 조리로 족발을 먹으면 산모의 젖이 잘 나온다고 말한다. 족발에 왜 이렇게 특별한 의미를 담았을까? 네발로 걷는 동물은 발바닥에 정기가 몰리는데 특히 돼지는 짧은 다리로 육중한 몸을 버티고 서 있으니 족발이 그만큼 튼튼하고 강하며 몸에도 좋다고 여겼다. 옛날, 좋은 음식이 생기면 먼저 하늘에 제사부터 지냈으니 족발도 예외가 아니다. 돼지족발과 한 잔 술이라는 뜻의 돈제우주(豚蹄盂酒)의 고사가 그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대군이 제나라를 침범했다. 놀란 제왕이 이웃 조나라에 원군을 요청하며 예물로 황금 100근과 마차 10대를 준비했다. 이를 본 재상 순우곤이 웃다가 갓끈이 끊어졌는데 왕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에 어떤 백성이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제단에 올려놓고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았는데, 풍년을 기원하고 자녀의 출세와 부부 백년해로를 빌면서 제물로 달랑 돼지족발 하나를 놓았으면서 원하는 것은 너무 많았던 것이 떠올라 웃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제왕이 황급히 예물을 늘려 황금 1,000근과 마차 100대를 보내 원군을 청했다. 조나라에서 정병 10만과 전차 1,000대를 파견하니 소식을 들은 초나라가 서둘러 군사를 물렸다. 사기 골계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그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5-21 10:26:3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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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해체 되면 여수 해양경찰교육원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최근 전남 여수로 이전한 해양경찰교육원의 활용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19일 여수시에 따르면 해양경찰교육원은 27523억원의 비용을 들여 여수시 오천동 122번지 일대 230만5000㎡에 지난 2009년 착공, 지난해 완공했다. 이 해양경찰교육원은 지하 1층, 지상 9층 규모의 본관동을 비롯, 연구동·도서관 등의 교육시설과 1200명을 수용 가능한 350실 규모의 생활관, 기초체력훈련장, 학생회관 등을 구비하고 있다. 당초 지난달 18일 준공식을 열 예정이었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무기한 연기해 준공식도 하지 못한 채 이름이 바뀌게 될 처지에 놓였다. 여수시는 해양경찰교육원 유치 과정에서 토지 제공, 진입도로 개설 등의 혜택을 주었으며, 이 시설을 활용해 신설되는 '국가안전처'의 교육원으로 활용할 것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여수시장에 출마한 한창진 후보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국가안전처 신설에 따른 안전교육 기관으로 여수에 있는 해양경찰교육원만큼 적합한 곳을 찾기 어렵다"며 "따라서 해양경찰교육원을 국가안전처의 안전·구조·구난 교육원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2014-05-19 16:30:5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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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먼저 인간이 되지 않고서는

"인문학 공부가 정말 절실하더라구요. 먼저 인간이 되지 않고 뭘 하겠어요." 평생교육의 현장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다. 탐욕스러운 정치인, 야비한 검사, 노동자들을 짓밟는 경영자 등은 모두 인간이 되기를 포기한 전문가들이다. 이들의 전문지식과 능력은 오로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집중되어 있다. 이런 전문가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고통이 확산되고 병이 깊어간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에서 인문학이 결코 빼놓으면 안 되는 교육항목으로 "노동의 역사"를 꼽고 있다. 인문학과 노동의 역사가 웬 관계냐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다. 인문학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 존엄을 지켜내는 성찰이라고 한다면, 노동을 통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온 존재의 가치를 깨우치는 것은 핵심적인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는 불온시 된다. 마사 누스바움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멸시하는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는다.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의 원제목은 『이익을 앞세우지 말라(Not for Profit)』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파악된다. 세월호 참사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가운데 중심에는, 사람보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모신 사회의 비극이라는 점이다. 자본의 탐욕과 지배가 인간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고 희생시키는 논리와 현실의 끝에는 죽음이 자리 잡고 있음을 우리는 이번에 더더욱 절감하고 있다. 돈으로 환산되는 이익이 모든 가치와 판단의 본질이 되어버리는 순간, 어떤 처참한 사태가 벌어지는지 이제 더는 달리 이론(異論)을 제기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이토록 고통을 겪고 있는 이유 대부분은 인간의 생명과 권리에 대한 멸시와 노동의 착취, 무한경쟁으로 몰아가는 생산력 주의와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너무도 많은 희생을 치룬 뒤에 다시 절감하게 되는 진실이지만,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나지 않았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사회의 행복을 위한 첫 조건이다. 더는 누구도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절실한 마음이 그로써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인간으로 등장한 지 무려 250만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아직 인간으로 진화하는 일이 멀고도 멀었나 보다. /성공회대 교수

2014-05-18 14:28:0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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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이제는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4.16 비극'이 일어난 지 이제 한 달이 넘었다. 지난 4월의 절반을 그야말로 잔인하게 보냈다. 또한 가장 훈훈해야할 5월 가정의 달도 온 국민이 비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대형 참사를 수없이 겪었지만 지금처럼 우리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아직도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미스터리에 쌓여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사고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일련의 과정이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내용을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자명해진다. 우선 사고 책임자에 대한 추상같은 엄벌이 이뤄져야 마땅하고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안전장치는 물론 사회안전망을 빈틈없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인사정책에서 오는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할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 국민사이에 안주해 있는 '설마'나 '괜찮아'하는 안일한 안전의식 개조운동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 먼저 이러한 과제를 풀어나갈 개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사후수습에 새로운 선례를 남길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깊은 쇼크에서 깨어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망연자실 상태가 지속된다면 예기치 못할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경제가 걱정이다. 이미 세월호 참사이후 각종행사와 모임이 취소되면서 소비가 얼어붙었다. 실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올 성장률을 0.1~0.2%포인트를 하향조정해야 할 판이다. 이는 모처럼 불씨를 지폈던 경기회복에 찬물이 되고 특히 서민들이 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차분한 마음으로 평상심을 되찾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자세가 희생자나 유가족에 대한 예의이다. 미국이 끔직한 9.11테러 직후 '일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 같은 선례를 기억해야한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한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세월호 수습에 역량을 결집해야할 것이다. 특히 좌편향 불순세력들의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감성보다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성숙사회의 길목에 들어설 수 있다. /언론인

2014-05-18 10:25: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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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박정희 공원'의 부활을 접하며

강원도 철원에 가면 '군탄공원'이라 불리는 공원이 있다. 군탄리라는 지명에 걸맞게 군탄공원이라 불리는 공원이다. 그런데 최근 공원의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바꾸고자 하는 이름은 다름 아닌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이다. 물론 공원 한쪽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가 서 있는 건 사실이다. 원래 이 공원의 이름이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공원'이었던 것도 역시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난 1961년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지 2년 3개월여 만인 1963년 8월, 공원 근처의 육군 제5군단 비행장에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운 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는 말을 남기며 전역할 때 기념비를 세우고 공원을 만들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정은 바뀌었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을 희석하기 위해 박 정권 스스로 공원 이름에서 '육군대장 박정희'를 빼버렸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는 그나마의 '전역지공원'이란 이름도 버려져 지금의 이름에 이르고 있다. 공원 명칭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소멸 과정 자체가 군사독재정권의 그것과 맥을 함께 해온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첫 이름으로 되돌리려 하는 걸까? 정작 철원군이 지난 2012년말 3개월 동안 공원 명칭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5만여 명의 군민 가운데 설문조사에 응한 인원은 고작 6백 명 수준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공개 토론회나 설명회 등은 열리지도 않았다. 알고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한 사업은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다양화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예컨대 경북 문경에 가면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가기 전 머물렀다는 하숙집 '청운각'에서 즐겨 먹었다는 칼국수와 국밥을 먹을 수 있다. 경북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KTX 김천구미역을 '박정희역'으로 바꾸자는 주장들도 난무하고 있다. 인물이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와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오늘은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감행해 헌법 질서를 유린하고 이후 스스로 대통령에 오른지 꼭 53년이 되는 날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5-15 10:36: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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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정도전과 참외밭 정사

데이트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옛날, 참외밭 원두막은 청춘남녀가 은밀히 사랑을 속삭이던 밀회 장소였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바로 부모가 참외밭에서 나눈 사랑의 결실이다. 그것도 신분을 초월한 양반과 노비 사이의 사랑이었다. 정도전 어머니는 우이동이라는 양반집의 노비였다. 어느 날, 주인집 심부름을 가던 중 소나기가 쏟아져 비를 피하려고 근처 참외밭 원두막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곳에는 젊은 선비 한 명이 먼저 와 소나기를 피하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한적한 오두막에서 젊은 남녀 단둘이 비에 젖은 옷을 입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기야 사랑도 나누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 정도전이다. 정도천의 부친, 정운경은 나중에는 형부상서에 직제학까지 올랐지만 젊었을 때는 집안이 몇 대째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몰락한 시골양반집 청년이었다. 정도전 어머니와 만났을 때만 해도 별 볼일 없는 한량에 지나지 않았다. 집안의 여자 노비가 밖에서 몰락한 양반 청년과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는데도 주인은 정도전이 태어나자 노비문서에서 어미의 이름을 빼주었고, 어린 정도전 역시 무척 귀여워하며 나중에 커서 큰 인물이 될 것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야사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1928년에 발행된 근대잡지인 별건곤에 실려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도전의 모친이 노비 출신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인물정보에도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서자 출신으로 특히 모계에는 노비의 피가 섞여 있다고 나온다. 때문에 혁신적일 정도였던 정도전의 개혁성향도 그의 출신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또 정도전이 탄핵을 받을 때면 정적들로부터 비천한 출신이 높은 자리에 오르더니 못된 짓은 다하고 다닌다는 인신공격을 당했다. 요즘 참외가 제철인데다 드라마도 인기가 높다니 떠오른 이야기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5-14 10:38:0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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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19세기 런던과 파리 경시청은 당대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스치기 쉬운 것들을 포착해서, 범행당시의 현장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되살리는 거다. 탐정 셜록 홈즈와 괴도(怪盜)신사 아르센 뤼팽은 바로 이 공식기구의 권위를 무력화시키는 인물들이다. 홈즈는 런던 경시청이 쩔쩔매는 사건을 풀어내고, 뤼팽은 파리 경시청의 추적을 유유히 따돌린다. 이들은 수사당국의 무능을 마음껏 비웃으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독자들에게 슬쩍슬쩍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아마 이랬을 거야"라는 가설은 수없이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서는 외딴 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러는 중에 이들이 죽을 때 마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 하나씩 사라진다. 알고 보니 이 사건은 공식수사기관이 잡지 못한 살인자들을 "누군가"가 응징한 결과였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중이다. 국면은 진상규명 쪽으로 넘어가고 있고, 의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장은 주변에 누구라도 있으면 달려오는 전 방위 구조요청 16번 채널은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가까운 진도에 먼저 알려야지, 어째서 구조선 도착에 적어도 서너 시간은 걸릴 제주 쪽과 먼저 통신했을까? 이건 어떤 변명을 해도, 선박 침몰시 자기들이 먼저 구조되기 위해서라도 도저히 취할 수없는 행동이다. 어디 그뿐인가? 침몰시 함께 빨려 들어갈 수 있어서 구명보트만 보냈다고 한 해경 구조선은, 유독 선장과 승무원들이 기다리고 있던 선수에는 직접 다가가 이들을 구해냈다. 해경은 이들이 일반 승객들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조타실은 선수에 있고, 일반승객에겐 접근 통제구역이다. 그러기에 구조에 나선 민간 어선들은 모두 선미 쪽으로 갔는데? 해경이 이걸 모를 턱이 없었을 테니, 속히 그리로 가서 다른 승객구출에 나서는 게 당연하지 않았던가? 해경의 임무가 애초에 선수에만 집중되어 있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왜 그런 걸까? 설명의 아귀가 어긋난다. 가장 이상한 것 가운데 하나는, 선장을 왜 수사관 집에서 재웠을까? 피의자의 신변보호를 위해서라는데, 이러는 경우가 언제 있었던가? 그 아파트의 감시 티비는 왜 두 시간 정도 분량이 사라졌을까? 누가 왔다갔나? 무엇 때문에? 셜록 홈즈가 다시 돌아와야 할 판인가 보다.

2014-05-11 16:06:5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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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새 국무총리 인선은 국민추대형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로 최대 시련을 겪고 있으나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수많은 젊은 생명을 잃은 세월호가 침몰된 지 한 달이다 되어도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이 패닉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한지 10여일이 지나 이제는 민생안정과 함께 개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거론되는 새 국무총리 후보의 조건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함은 물론 앞으로 개혁을 선창할 인물로 압축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세월호 이후 국가개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요구되는 자질이나 조건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박대통령이 강조하는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개혁의 화두로 삼아온 박대통령은 이제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박혀 있는 부조리의 적폐를 바로 잡고 올바른 정의를 세워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개혁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있다. 이러한 점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부신뢰도가 바닥수준이다.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4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발표한 결과 정부신뢰도가 36개 나라 가운데 29위이다. 전체 평균 39%에도 훨씬 낮은 23%이다. 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 역시 25위로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판에 세월호 참사를 빚어 이제는 더욱 '부끄러운 나라'가 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번 총리 인선과 개각은 국가개조의 차원에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함은 물론 침체된 국민정서를 되살릴 수 있을 만큼 신선해야한다. 바로 국민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폭제가 돼야한다. 그러자면 정파나 지역을 떠나 국민여론을 수렴해 최선의 인선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는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될 도덕성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복수의 인물을 압축해 야당과 사전 조율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여야 합의로 국민추대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과 같은 국가재난을 겪고도 여야 사이에 정쟁을 일삼아 갈등을 재현한다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또한 대통령은 총리가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실질적으로 부여해줘야 정부의 기능이 살아난다.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받아쓰기 해바라기 관료조직'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인

2014-05-11 11:01:4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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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잊혀진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오늘로부터 약 44년 전인 지난 1970년 4월 8일, 잘 서있던 5층짜리 아파트가 입주가 시작된 지 채 한 달도 안 돼 갑자기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서울시가 시내 곳곳에 건립한 시민아파트 406개동 가운데 하나였던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와우아파트'다. 사고 30분 만에 경찰과 소방대원 그리고 예비군과 미8군 공병대원 등이 출동해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했지만 대형건물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 사고로 16가구 주민 73명 가운데 3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나마 입주 예정이던 30가구 가운데 절반만 입주한 상태에서 붕괴됐으니 망정이지 만약 모든 가구가 입주한 상태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면 피해 규모는 훨씬 컸을 것이다. 도시 서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건설된 와우아파트는 박정희 대통령이 준공식에 친히 참석해 테이프를 끊었을 정도로 대내외의 관심을 받던 아파트였다. 그러나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채 3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4백 개 동이 넘는 시민아파트를 지었으니 부실공사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와우아파트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시민아파트들은 급경사 위에 지어졌는데 그 이유는 한 가지였다.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한 마디가 이를 대변한다. "야 이 새끼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와우아파트와 같은 시민아파트 건설사업은 사실상 도시 서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전형적인 전시행정, 졸속행정에 다름 아니었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44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으며 삼풍백화점 역시 붕괴됐다. 과연 와우아파트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그저 흘러간 옛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한국 사회가 와우아파트로부터 얻은 교훈은 없어 보인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5-08 14:02:1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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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우리나라 최초의 만두는 효도만두

삼국지를 읽어 보면 만두는 제갈공명이 만들었다고 나온다.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야 하는데, 차마 산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대신 사람머리 모양으로 만두를 빚어 하늘을 속이고 제사를 지낸 것이 효시라는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실제로 만두라는 이름이 처음 문헌에 나오는 시기는 제갈공명이 살았던 삼국시대다. 그렇다고 진짜 제갈공명이 만두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만두는 뿌리가 중국인지 서역인지도 확실치 않다. 중국은 그렇다고 치고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두를 먹게 됐을까? 흔히 중국에서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문헌에 처음 보이는 만두는 거란을 통해서 들어왔다. 중국이 아닌 서역에서 직접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두 이야기는 고려사(高麗史)에 보인다. 12세기 말, 고려 명종 때 거란에서 귀화한 고려인 위초(尉貂)가 만두를 만들었다고 나온다. 위초의 부친이 몹쓸 병에 걸렸다. 의원이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위초가 스스로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만두를 빚어 부친께 공양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위초의 효심이 고금에 없을 정도로 갸륵하다며 상을 내렸다. 고려사 중에서도 효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효우열전(孝友列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옛날 효자들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아픈 부모를 치료했다. 지극한 효심의 상징으로 할고료친(割股療親)이라고 한다. 제갈공명의 만두가 생사람의 목숨을 살렸다면 고려인 위초의 만두는 부모님의 생명을 구했다. 만두 이야기는 모두 속이 꽉 찬 만두처럼 인간미가 넘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과 달리 옛날에는 만두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만큼 귀하고 좋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는 만두는 제사를 지낼 때나 특별히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오늘 어버이 날이다. 카네이션과 함께 옛날의 만두에 버금가는 맛난 음식이라도 대접해 드려야겠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5-07 10:42:2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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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세월호 참사, 국민정서 바로잡는 계기로 삼자

우리나라는 지금 세월호 참사로 열흘이 넘게 패닉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희생된 수많은 인명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내면서 온 나라가 망연자실이다. 유례없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이후 총체적 부조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졌다.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민낯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끔찍한 대형 참사를 수 차례 겪고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1990년 서해 페리호 사고 이후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겪은 우리는 안전 불감증을 조금도 치유하지 못했다. 이번 참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당주의, 무책임의식으로 빚어진 인재(人災)의 극치다.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을 자랑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만년 후진국'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위로는 정치권과 재계, 그리고 교육계 등 사회 지도층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서민에 이르기 까지 기본윤리의식이 잡혀 있지 않다. 빠른 시간에 경제성장은 이뤘지만 모두가 천민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이번 참사에서 보여주듯이 고위 공직자가 희생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옷을 벗기도 했고 어느 지방자치단체선거 후보자는 유족대표로 둔갑하다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또 어느 장관은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다 인터넷상에는 근거 없는 악성 괴담 유언비어와 모욕적인 내용이 수두룩하다. 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소름끼칠 악성 글이 판을 치고 있다. "수능 경쟁자가 줄었다" "유족들은 보상금으로 해외여행갈 생각을 하니 좋겠다"는 것은 고사하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내용도 있다. "정부가 선거 때문에 시신을 방치하고 있다" "사고는 국정원이 사주한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사고는 미군 잠수함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까지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6천 달러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보고 있는 우리 국민이 이 정도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성인 노벨 문학 수상자 가오싱젠이 "한국은 분명 역동적인 나라이지만 정서적인 빈곤을 이겨내지 못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충고한 말이 새삼 실감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마음가짐 하나만이라도 반듯해진다면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인

2014-04-27 10:42:5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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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안식처 '낙선재'

조선의 궁궐에는 언제까지 사람이 살았을까? 놀랍게도 불과 25년 전인 지난 1989년 4월 말일까지다.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주인공으로, 그가 살았던 곳은 창덕궁 안에 있는 '낙선재'였다. 낙선재란 이름은 군자의 덕목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선(善)'을 즐긴다는 데에서 왔다. '임금이 선행을 베풀면 세상이 즐거워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특히 창덕궁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이 없어 수수한 멋을 풍긴다. 그런 낙선재가 세워진 것이 지난 1847년의 일이니,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의 정궁으로 기능했던 창덕궁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서도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남달랐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창덕궁에 큰불이 나자 순종이 낙선재로 이어해온 것이다. 이후 낙선재는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을 전하는 건축물로 역할을 이어갔다. 순종의 비였던 순정효황후를 비롯해 순종의 이복동생이자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그의 비 이방자 여사, 그리고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 등이 모두 낙선재를 비롯한 그 부속 건물에서 숨을 거뒀다. 한 마디로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안식처였다고 할 수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궁궐 전각들이 헐려 나갈 때에도, 그리고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낙선재는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다. 그래선지 낙선재 주변에는 순종이 탄생한 관물헌을 비롯해 순정효황후가 머물던 석복헌, 덕혜옹주가 기거했던 수강재, 그리고 궐내를 굽어볼 수 있는 취운정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 낙선재 주변을 걷다 보면 매화에 이어 살구꽃과 앵두꽃 등이 만말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운의 역사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그 화려함에 망국의 비애감이 더 처절하게 느껴지곤 한다. 최근에는 매월 음력 보름마다 보름달과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달빛기행'이란 이름의 야간 개방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방문해볼 만하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4-24 11:23:2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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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내일을 기약하며 먹었던 미국식 콩밥, 호핑존

내일을 기약하며 먹었던 미국식 콩밥, 호핑존 미국에서도 콩밥을 먹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호핑 존(Hopping John)이라는 음식이다. 물론 미국인 전체가 모두 먹는 것은 아니고 주로 남부지방에서 발달했다. 쌀밥에 콩과 양파, 베이컨, 채소를 넣고 소금이나 향신료와 함께 볶아 먹는다. 쉽게 말해 콩밥으로 만든 볶음밥이다. 우리처럼 쌀밥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가 아닌데 왜 미국에 콩밥이 다 있을까? 미국 콩밥에는 어두운 역사가 있다. 옛날 우리도 감옥에서 콩밥을 먹었던 것처럼 미국식 콩밥, 호핑 존은 아프리카에서 끌려 온 흑인 노예들이 먹었던 음식이다. 물론 지금은 남부에서 고루 먹는데 남북전쟁이 그 계기가 됐다. 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옛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북군이 남부 조지아에서 도시를 불태우고 민가를 약탈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실제 남부에서 다반사로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북군이 농지와 식량을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불태웠던 북군이 유일하게 남겨 놓은 것이 동부 콩과 순무 잎사귀였다. 완두콩과 강낭콩은 모두 빼앗아가고 동부 콩만 남긴 이유는 당시 미국에서 동부 콩은 사람이 먹는 곡식이 아니라 동물이 먹는 사료였기 때문이다. 순무 잎사귀 역시 우거지로도 만들지 못하니 굳이 빼앗아갈 이유가 없었다. 철저하게 파괴된 폐허 속에서 목숨만 건진 남부 주민들은 흑인 백인 가릴 것 없이 가축 사료인 콩과 밭에 버려진 순무 이파리를 먹고 버티며 살아남았다. 미국식 콩밥인 호핑 존이 발달한 배경이다. 덕분에 호핑 존은 지금 행운을 부르는 음식이 됐다. 특히 미국 남부에서는 새해에 미국식 콩밥을 먹으며 행운을 기원하는 풍습이 생겼다. 당시 미국 남부 사람들은 비비안 리가 분장한 영화 속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처럼 중얼거리며 눈물 콧물을 섞어 미국식 콩밥을 먹었을 것이다. "내일 생각해야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테니까..."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 그래도 참고 견디며 내일을 맞아야 한다.

2014-04-23 10:46:07 메트로신문 기자
[김민웅의 인문학산책]사라진 정부, 통곡하는 국민

"이마에 진땀이 나고, 곁눈질로 보기는 하나 차마 바로 보지는 못하였다." 에 나오는 대목이다. 골짜기에 버려진 누군가의 주검이 당하는 비참한 모습 앞에서, 마음이 깊은 통증을 앓고 있는 상태에 대한 증언이다. 그는 이런 심정이 정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토로한다. 생명이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폭력과 반복되는 희생이다. 예수는 어떤 아이가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서로 논박에만 몰두하자, "그 아이를 데려오라"라고 일갈한다. 어떻게든 먼저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의지나 능력은 없으면서, 딴 짓이나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묵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세상에 대한 예수의 슬픔이 또한 여기에 배어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난의 바다, 고해(苦海)에 잠긴 중생의 아픔에 공명한 부처의 깨우침도, "자비(慈悲)"라는 말로 연결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줄을 놓지 말고 굳게 잡으라는 뜻이다. "자(慈)"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비(悲)"는 누군가 아파하는 것을 자기의 고통처럼 눈물 흘리는 마음이다. 맹자나 예수, 그리고 부처의 말씀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가르침의 핵심은 "생명의 존귀함을 지켜내는 마음"이다. 근대국가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정치철학적 기초를 만들어낸 홉스의 은, 자연 상태에서의 폭력을 막고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한 합의를 주목한다. 이걸 근거로 국가권력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지만, 홉스가 말한 중심에는 그 구성원의 생명을 지켜낼 수없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는 역설적 논리가 서 있는 것이다. 진도 앞바다 침몰참사의 실종학생 부모 가운데 누군가가, 현장을 찾아온 단상 위의 대통령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그때 대통령은 황급히 단하로 내려와 그 부모를 껴안고 울며 이윽고 상대를 부축해 함께 일어섰다.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어버린 다섯 살짜리 소녀를 만난 대통령은, 그 아이를 보자마자 품에 꽉 끌어안고 눈물을 쏟으며 한참이나 통곡했다. 현장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둘 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무릎 꿇고 하소연 했던 엄마와 부모가 실종된 아이는 현실이었지만. 그야말로, "생명의 정치"가 절실해진다. /성공회대 교수

2014-04-20 16:32:01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