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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이제는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는 차분하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4.16 비극'이 일어난 지 이제 한 달이 넘었다. 지난 4월의 절반을 그야말로 잔인하게 보냈다. 또한 가장 훈훈해야할 5월 가정의 달도 온 국민이 비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대형 참사를 수없이 겪었지만 지금처럼 우리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아직도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미스터리에 쌓여 있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사고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일련의 과정이 분통이 터질 지경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내용을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자명해진다. 우선 사고 책임자에 대한 추상같은 엄벌이 이뤄져야 마땅하고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안전장치는 물론 사회안전망을 빈틈없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인사정책에서 오는 난맥상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할 것이다. 여기에다 우리 국민사이에 안주해 있는 '설마'나 '괜찮아'하는 안일한 안전의식 개조운동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 먼저 이러한 과제를 풀어나갈 개각이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다 유가족을 중심으로 사후수습에 새로운 선례를 남길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국민이 깊은 쇼크에서 깨어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지금처럼 망연자실 상태가 지속된다면 예기치 못할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경제가 걱정이다. 이미 세월호 참사이후 각종행사와 모임이 취소되면서 소비가 얼어붙었다. 실제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되어 올 성장률을 0.1~0.2%포인트를 하향조정해야 할 판이다. 이는 모처럼 불씨를 지폈던 경기회복에 찬물이 되고 특히 서민들이 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차분한 마음으로 평상심을 되찾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자세가 희생자나 유가족에 대한 예의이다. 미국이 끔직한 9.11테러 직후 '일상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나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 같은 선례를 기억해야한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한마음으로 머리를 맞대고 세월호 수습에 역량을 결집해야할 것이다. 특히 좌편향 불순세력들의 선동을 경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감성보다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각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만 성숙사회의 길목에 들어설 수 있다. /언론인

2014-05-18 10:25: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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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박정희 공원'의 부활을 접하며

강원도 철원에 가면 '군탄공원'이라 불리는 공원이 있다. 군탄리라는 지명에 걸맞게 군탄공원이라 불리는 공원이다. 그런데 최근 공원의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바꾸고자 하는 이름은 다름 아닌 '육군대장 박정희 장군 전역지공원'이다. 물론 공원 한쪽에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기념비'가 서 있는 건 사실이다. 원래 이 공원의 이름이 '육군대장 박정희 전역지공원'이었던 것도 역시 사실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난 1961년 군사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지 2년 3개월여 만인 1963년 8월, 공원 근처의 육군 제5군단 비행장에서 "다시는 나와 같은 불운 한 군인이 없도록 하자"는 말을 남기며 전역할 때 기념비를 세우고 공원을 만들면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정은 바뀌었다.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을 희석하기 위해 박 정권 스스로 공원 이름에서 '육군대장 박정희'를 빼버렸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에는 그나마의 '전역지공원'이란 이름도 버려져 지금의 이름에 이르고 있다. 공원 명칭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소멸 과정 자체가 군사독재정권의 그것과 맥을 함께 해온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첫 이름으로 되돌리려 하는 걸까? 정작 철원군이 지난 2012년말 3개월 동안 공원 명칭 변경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5만여 명의 군민 가운데 설문조사에 응한 인원은 고작 6백 명 수준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공개 토론회나 설명회 등은 열리지도 않았다. 알고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한 사업은 이 뿐만이 아니다.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다양화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예컨대 경북 문경에 가면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 가기 전 머물렀다는 하숙집 '청운각'에서 즐겨 먹었다는 칼국수와 국밥을 먹을 수 있다. 경북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KTX 김천구미역을 '박정희역'으로 바꾸자는 주장들도 난무하고 있다. 인물이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합당한 이유와 과정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오늘은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감행해 헌법 질서를 유린하고 이후 스스로 대통령에 오른지 꼭 53년이 되는 날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5-15 10:36: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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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정도전과 참외밭 정사

데이트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옛날, 참외밭 원두막은 청춘남녀가 은밀히 사랑을 속삭이던 밀회 장소였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바로 부모가 참외밭에서 나눈 사랑의 결실이다. 그것도 신분을 초월한 양반과 노비 사이의 사랑이었다. 정도전 어머니는 우이동이라는 양반집의 노비였다. 어느 날, 주인집 심부름을 가던 중 소나기가 쏟아져 비를 피하려고 근처 참외밭 원두막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곳에는 젊은 선비 한 명이 먼저 와 소나기를 피하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 한적한 오두막에서 젊은 남녀 단둘이 비에 젖은 옷을 입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기야 사랑도 나누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태어난 인물이 정도전이다. 정도천의 부친, 정운경은 나중에는 형부상서에 직제학까지 올랐지만 젊었을 때는 집안이 몇 대째 관직에 오르지 못했던 몰락한 시골양반집 청년이었다. 정도전 어머니와 만났을 때만 해도 별 볼일 없는 한량에 지나지 않았다. 집안의 여자 노비가 밖에서 몰락한 양반 청년과 눈이 맞아 아이를 낳았는데도 주인은 정도전이 태어나자 노비문서에서 어미의 이름을 빼주었고, 어린 정도전 역시 무척 귀여워하며 나중에 커서 큰 인물이 될 것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야사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1928년에 발행된 근대잡지인 별건곤에 실려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도전의 모친이 노비 출신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인물정보에도 어머니와 아내가 모두 서자 출신으로 특히 모계에는 노비의 피가 섞여 있다고 나온다. 때문에 혁신적일 정도였던 정도전의 개혁성향도 그의 출신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또 정도전이 탄핵을 받을 때면 정적들로부터 비천한 출신이 높은 자리에 오르더니 못된 짓은 다하고 다닌다는 인신공격을 당했다. 요즘 참외가 제철인데다 드라마도 인기가 높다니 떠오른 이야기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5-14 10:38:0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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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19세기 런던과 파리 경시청은 당대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보통사람들의 눈에는 스치기 쉬운 것들을 포착해서, 범행당시의 현장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되살리는 거다. 탐정 셜록 홈즈와 괴도(怪盜)신사 아르센 뤼팽은 바로 이 공식기구의 권위를 무력화시키는 인물들이다. 홈즈는 런던 경시청이 쩔쩔매는 사건을 풀어내고, 뤼팽은 파리 경시청의 추적을 유유히 따돌린다. 이들은 수사당국의 무능을 마음껏 비웃으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독자들에게 슬쩍슬쩍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아마 이랬을 거야"라는 가설은 수없이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추리소설을 읽는 재미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에서는 외딴 섬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러는 중에 이들이 죽을 때 마다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이 하나씩 사라진다. 알고 보니 이 사건은 공식수사기관이 잡지 못한 살인자들을 "누군가"가 응징한 결과였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중이다. 국면은 진상규명 쪽으로 넘어가고 있고, 의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장은 주변에 누구라도 있으면 달려오는 전 방위 구조요청 16번 채널은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가까운 진도에 먼저 알려야지, 어째서 구조선 도착에 적어도 서너 시간은 걸릴 제주 쪽과 먼저 통신했을까? 이건 어떤 변명을 해도, 선박 침몰시 자기들이 먼저 구조되기 위해서라도 도저히 취할 수없는 행동이다. 어디 그뿐인가? 침몰시 함께 빨려 들어갈 수 있어서 구명보트만 보냈다고 한 해경 구조선은, 유독 선장과 승무원들이 기다리고 있던 선수에는 직접 다가가 이들을 구해냈다. 해경은 이들이 일반 승객들인 줄 알았다고 했지만, 조타실은 선수에 있고, 일반승객에겐 접근 통제구역이다. 그러기에 구조에 나선 민간 어선들은 모두 선미 쪽으로 갔는데? 해경이 이걸 모를 턱이 없었을 테니, 속히 그리로 가서 다른 승객구출에 나서는 게 당연하지 않았던가? 해경의 임무가 애초에 선수에만 집중되어 있도록 한 것은 아니었을 텐데, 왜 그런 걸까? 설명의 아귀가 어긋난다. 가장 이상한 것 가운데 하나는, 선장을 왜 수사관 집에서 재웠을까? 피의자의 신변보호를 위해서라는데, 이러는 경우가 언제 있었던가? 그 아파트의 감시 티비는 왜 두 시간 정도 분량이 사라졌을까? 누가 왔다갔나? 무엇 때문에? 셜록 홈즈가 다시 돌아와야 할 판인가 보다.

2014-05-11 16:06:5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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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새 국무총리 인선은 국민추대형식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로 최대 시련을 겪고 있으나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수많은 젊은 생명을 잃은 세월호가 침몰된 지 한 달이다 되어도 유가족은 물론 국민들이 패닉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한지 10여일이 지나 이제는 민생안정과 함께 개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거론되는 새 국무총리 후보의 조건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함은 물론 앞으로 개혁을 선창할 인물로 압축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세월호 이후 국가개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 앞에 요구되는 자질이나 조건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박대통령이 강조하는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전에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개혁의 화두로 삼아온 박대통령은 이제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박혀 있는 부조리의 적폐를 바로 잡고 올바른 정의를 세워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개혁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있다. 이러한 점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부신뢰도가 바닥수준이다.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4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를 발표한 결과 정부신뢰도가 36개 나라 가운데 29위이다. 전체 평균 39%에도 훨씬 낮은 23%이다. 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 역시 25위로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이러한 판에 세월호 참사를 빚어 이제는 더욱 '부끄러운 나라'가 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번 총리 인선과 개각은 국가개조의 차원에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함은 물론 침체된 국민정서를 되살릴 수 있을 만큼 신선해야한다. 바로 국민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폭제가 돼야한다. 그러자면 정파나 지역을 떠나 국민여론을 수렴해 최선의 인선이 이뤄져야 한다. 여기에는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될 도덕성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복수의 인물을 압축해 야당과 사전 조율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여야 합의로 국민추대형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과 같은 국가재난을 겪고도 여야 사이에 정쟁을 일삼아 갈등을 재현한다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또한 대통령은 총리가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실질적으로 부여해줘야 정부의 기능이 살아난다. 지금까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던 '받아쓰기 해바라기 관료조직'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인

2014-05-11 11:01:47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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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 잊혀진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오늘로부터 약 44년 전인 지난 1970년 4월 8일, 잘 서있던 5층짜리 아파트가 입주가 시작된 지 채 한 달도 안 돼 갑자기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서울시가 시내 곳곳에 건립한 시민아파트 406개동 가운데 하나였던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와우아파트'다. 사고 30분 만에 경찰과 소방대원 그리고 예비군과 미8군 공병대원 등이 출동해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했지만 대형건물 붕괴 현장에서 생존자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이 사고로 16가구 주민 73명 가운데 33명이 사망하고 4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나마 입주 예정이던 30가구 가운데 절반만 입주한 상태에서 붕괴됐으니 망정이지 만약 모든 가구가 입주한 상태에서 이런 사고가 났다면 피해 규모는 훨씬 컸을 것이다. 도시 서민들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건설된 와우아파트는 박정희 대통령이 준공식에 친히 참석해 테이프를 끊었을 정도로 대내외의 관심을 받던 아파트였다. 그러나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채 3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4백 개 동이 넘는 시민아파트를 지었으니 부실공사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와우아파트를 비롯한 당시 대부분의 시민아파트들은 급경사 위에 지어졌는데 그 이유는 한 가지였다.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한 마디가 이를 대변한다. "야 이 새끼들아, 높은 곳에 지어야 청와대에서 잘 보일 것 아냐!" 와우아파트와 같은 시민아파트 건설사업은 사실상 도시 서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 전형적인 전시행정, 졸속행정에 다름 아니었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44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으며 삼풍백화점 역시 붕괴됐다. 과연 와우아파트와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그저 흘러간 옛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한국 사회가 와우아파트로부터 얻은 교훈은 없어 보인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5-08 14:02:1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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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우리나라 최초의 만두는 효도만두

삼국지를 읽어 보면 만두는 제갈공명이 만들었다고 나온다.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야 하는데, 차마 산 사람을 죽일 수 없어 대신 사람머리 모양으로 만두를 빚어 하늘을 속이고 제사를 지낸 것이 효시라는 것이다. 소설 속 이야기지만 실제로 만두라는 이름이 처음 문헌에 나오는 시기는 제갈공명이 살았던 삼국시대다. 그렇다고 진짜 제갈공명이 만두를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만두는 뿌리가 중국인지 서역인지도 확실치 않다. 중국은 그렇다고 치고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두를 먹게 됐을까? 흔히 중국에서 전해졌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 문헌에 처음 보이는 만두는 거란을 통해서 들어왔다. 중국이 아닌 서역에서 직접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만두 이야기는 고려사(高麗史)에 보인다. 12세기 말, 고려 명종 때 거란에서 귀화한 고려인 위초(尉貂)가 만두를 만들었다고 나온다. 위초의 부친이 몹쓸 병에 걸렸다. 의원이 아들의 고기를 먹으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위초가 스스로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만두를 빚어 부친께 공양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위초의 효심이 고금에 없을 정도로 갸륵하다며 상을 내렸다. 고려사 중에서도 효자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효우열전(孝友列傳)에 나오는 내용이다. 옛날 효자들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아픈 부모를 치료했다. 지극한 효심의 상징으로 할고료친(割股療親)이라고 한다. 제갈공명의 만두가 생사람의 목숨을 살렸다면 고려인 위초의 만두는 부모님의 생명을 구했다. 만두 이야기는 모두 속이 꽉 찬 만두처럼 인간미가 넘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과 달리 옛날에는 만두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 만큼 귀하고 좋은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에는 만두는 제사를 지낼 때나 특별히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오늘 어버이 날이다. 카네이션과 함께 옛날의 만두에 버금가는 맛난 음식이라도 대접해 드려야겠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5-07 10:42:2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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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세월호 참사, 국민정서 바로잡는 계기로 삼자

우리나라는 지금 세월호 참사로 열흘이 넘게 패닉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희생된 수많은 인명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보내면서 온 나라가 망연자실이다. 유례없는 대형 참사가 일어난 이후 총체적 부조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비탄에 빠졌다. 우리들의 서글픈 자화상이 민낯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끔찍한 대형 참사를 수 차례 겪고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 1990년 서해 페리호 사고 이후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가스 폭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겪은 우리는 안전 불감증을 조금도 치유하지 못했다. 이번 참사는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당주의, 무책임의식으로 빚어진 인재(人災)의 극치다. 우리는 '세계 속의 한국'을 자랑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만년 후진국'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해줬다. 위로는 정치권과 재계, 그리고 교육계 등 사회 지도층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서민에 이르기 까지 기본윤리의식이 잡혀 있지 않다. 빠른 시간에 경제성장은 이뤘지만 모두가 천민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이번 참사에서 보여주듯이 고위 공직자가 희생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가 옷을 벗기도 했고 어느 지방자치단체선거 후보자는 유족대표로 둔갑하다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또 어느 장관은 부적절한 처신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다 인터넷상에는 근거 없는 악성 괴담 유언비어와 모욕적인 내용이 수두룩하다. 카카오스토리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는 소름끼칠 악성 글이 판을 치고 있다. "수능 경쟁자가 줄었다" "유족들은 보상금으로 해외여행갈 생각을 하니 좋겠다"는 것은 고사하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내용도 있다. "정부가 선거 때문에 시신을 방치하고 있다" "사고는 국정원이 사주한 사고일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사고는 미군 잠수함 때문"이라는 유언비어까지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6천 달러로 선진국의 문턱을 넘보고 있는 우리 국민이 이 정도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지성인 노벨 문학 수상자 가오싱젠이 "한국은 분명 역동적인 나라이지만 정서적인 빈곤을 이겨내지 못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충고한 말이 새삼 실감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국민이 마음가짐 하나만이라도 반듯해진다면 조그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인

2014-04-27 10:42:5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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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안식처 '낙선재'

조선의 궁궐에는 언제까지 사람이 살았을까? 놀랍게도 불과 25년 전인 지난 1989년 4월 말일까지다. 88세를 일기로 생을 마친 '영친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주인공으로, 그가 살았던 곳은 창덕궁 안에 있는 '낙선재'였다. 낙선재란 이름은 군자의 덕목 중에서도 으뜸이 되는 '선(善)'을 즐긴다는 데에서 왔다. '임금이 선행을 베풀면 세상이 즐거워진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특히 창덕궁의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단청이 없어 수수한 멋을 풍긴다. 그런 낙선재가 세워진 것이 지난 1847년의 일이니,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의 정궁으로 기능했던 창덕궁의 여러 건물들 가운데서도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사적 의미는 남달랐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창덕궁에 큰불이 나자 순종이 낙선재로 이어해온 것이다. 이후 낙선재는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을 전하는 건축물로 역할을 이어갔다. 순종의 비였던 순정효황후를 비롯해 순종의 이복동생이자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과 그의 비 이방자 여사, 그리고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 등이 모두 낙선재를 비롯한 그 부속 건물에서 숨을 거뒀다. 한 마디로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안식처였다고 할 수 있다. 행인지 불행인지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궁궐 전각들이 헐려 나갈 때에도, 그리고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낙선재는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다. 그래선지 낙선재 주변에는 순종이 탄생한 관물헌을 비롯해 순정효황후가 머물던 석복헌, 덕혜옹주가 기거했던 수강재, 그리고 궐내를 굽어볼 수 있는 취운정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 낙선재 주변을 걷다 보면 매화에 이어 살구꽃과 앵두꽃 등이 만말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비운의 역사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그 화려함에 망국의 비애감이 더 처절하게 느껴지곤 한다. 최근에는 매월 음력 보름마다 보름달과 창덕궁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달빛기행'이란 이름의 야간 개방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대한제국의 마지막 숨결을 느껴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방문해볼 만하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4-24 11:23:2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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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내일을 기약하며 먹었던 미국식 콩밥, 호핑존

내일을 기약하며 먹었던 미국식 콩밥, 호핑존 미국에서도 콩밥을 먹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호핑 존(Hopping John)이라는 음식이다. 물론 미국인 전체가 모두 먹는 것은 아니고 주로 남부지방에서 발달했다. 쌀밥에 콩과 양파, 베이컨, 채소를 넣고 소금이나 향신료와 함께 볶아 먹는다. 쉽게 말해 콩밥으로 만든 볶음밥이다. 우리처럼 쌀밥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가 아닌데 왜 미국에 콩밥이 다 있을까? 미국 콩밥에는 어두운 역사가 있다. 옛날 우리도 감옥에서 콩밥을 먹었던 것처럼 미국식 콩밥, 호핑 존은 아프리카에서 끌려 온 흑인 노예들이 먹었던 음식이다. 물론 지금은 남부에서 고루 먹는데 남북전쟁이 그 계기가 됐다. 혹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옛 영화를 기억하시는지? 북군이 남부 조지아에서 도시를 불태우고 민가를 약탈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 이야기지만 실제 남부에서 다반사로 일어났던 일이다. 당시 북군이 농지와 식량을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불태웠던 북군이 유일하게 남겨 놓은 것이 동부 콩과 순무 잎사귀였다. 완두콩과 강낭콩은 모두 빼앗아가고 동부 콩만 남긴 이유는 당시 미국에서 동부 콩은 사람이 먹는 곡식이 아니라 동물이 먹는 사료였기 때문이다. 순무 잎사귀 역시 우거지로도 만들지 못하니 굳이 빼앗아갈 이유가 없었다. 철저하게 파괴된 폐허 속에서 목숨만 건진 남부 주민들은 흑인 백인 가릴 것 없이 가축 사료인 콩과 밭에 버려진 순무 이파리를 먹고 버티며 살아남았다. 미국식 콩밥인 호핑 존이 발달한 배경이다. 덕분에 호핑 존은 지금 행운을 부르는 음식이 됐다. 특히 미국 남부에서는 새해에 미국식 콩밥을 먹으며 행운을 기원하는 풍습이 생겼다. 당시 미국 남부 사람들은 비비안 리가 분장한 영화 속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처럼 중얼거리며 눈물 콧물을 섞어 미국식 콩밥을 먹었을 것이다. "내일 생각해야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테니까..."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졌다. 그래도 참고 견디며 내일을 맞아야 한다.

2014-04-23 10:46:07 메트로신문 기자
[김민웅의 인문학산책]사라진 정부, 통곡하는 국민

"이마에 진땀이 나고, 곁눈질로 보기는 하나 차마 바로 보지는 못하였다." 에 나오는 대목이다. 골짜기에 버려진 누군가의 주검이 당하는 비참한 모습 앞에서, 마음이 깊은 통증을 앓고 있는 상태에 대한 증언이다. 그는 이런 심정이 정치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토로한다. 생명이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사라지면, 남는 것은 폭력과 반복되는 희생이다. 예수는 어떤 아이가 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서로 논박에만 몰두하자, "그 아이를 데려오라"라고 일갈한다. 어떻게든 먼저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의지나 능력은 없으면서, 딴 짓이나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묵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세상에 대한 예수의 슬픔이 또한 여기에 배어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난의 바다, 고해(苦海)에 잠긴 중생의 아픔에 공명한 부처의 깨우침도, "자비(慈悲)"라는 말로 연결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줄을 놓지 말고 굳게 잡으라는 뜻이다. "자(慈)"는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비(悲)"는 누군가 아파하는 것을 자기의 고통처럼 눈물 흘리는 마음이다. 맹자나 예수, 그리고 부처의 말씀 한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가르침의 핵심은 "생명의 존귀함을 지켜내는 마음"이다. 근대국가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정치철학적 기초를 만들어낸 홉스의 은, 자연 상태에서의 폭력을 막고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국가에 양도한 합의를 주목한다. 이걸 근거로 국가권력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있지만, 홉스가 말한 중심에는 그 구성원의 생명을 지켜낼 수없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는 역설적 논리가 서 있는 것이다. 진도 앞바다 침몰참사의 실종학생 부모 가운데 누군가가, 현장을 찾아온 단상 위의 대통령 아래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했다. 그때 대통령은 황급히 단하로 내려와 그 부모를 껴안고 울며 이윽고 상대를 부축해 함께 일어섰다.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어버린 다섯 살짜리 소녀를 만난 대통령은, 그 아이를 보자마자 품에 꽉 끌어안고 눈물을 쏟으며 한참이나 통곡했다. 현장은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둘 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무릎 꿇고 하소연 했던 엄마와 부모가 실종된 아이는 현실이었지만. 그야말로, "생명의 정치"가 절실해진다. /성공회대 교수

2014-04-20 16:32:0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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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공기업 노조, 자율개혁 용단이 필요하다

공기업 노조, 자율개혁 용단이 필요하다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공기업개혁이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11월 14일"공기업 파티는 끝났다"면서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온 지 5개월이 지났으나 커다란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핵심개혁 대상 공기업 38곳 가운데 불과 6곳만 합의를 보았고 21곳은 계속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16곳은 노조에서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봉과 복리후생비를 삭감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의 시한을 넘긴 곳도 적지 않다. 일부 노조에서는 상급단체인 산별노조에 협상권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개별노조가 나설 경우 정부나 사측에 열세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들은 공공기관 노조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 같은 곳은 아예 거래소는 원래 민간 기관이었다면서 정부가 공공기관 지정을 풀어준다는 약속을 해야 협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일부 공기업노조는 개혁에 실패할 경우 기관장이 해임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있다. 물론 무역보험공사를 비롯하여 그랜드 코리아 레저, 부산항만 공사, 한국투자공사, 마사회, 가스기술공사 등 6곳은 노사합의를 보아 경영개선의 길을 찾고 있기는 하다. 사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하산 인사가 관행처럼 이어 오면서 지금처럼 부실을 키웠다.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 국가부채는 1천조 원을 넘어서고 있다. 국가부채를 늘리는데 에는 공기업의 부실경영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공기업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은 그동안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 과도한 연봉과 복리후생비는 물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상식을 벗어난 사례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제 공기업노조는 국민통합차원에서 국민정서에 부합할 수 있는 자율개혁을 선언하고 화답해야 한다. 정부주도의 하향식 개혁 이전에 '더불어 사는 모럴'을 회복해야 마땅하다. 특히 비정규직 근로자나 저임금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빈곤층을 한번 쯤 마음으로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

2014-04-20 10:50:48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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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서촌'과 '이상의 집' 그 이면

'서촌'과 '이상의 집' 그 이면 최근 '서촌'이라 불리는 동네가 인기다. 이때 서촌은 서울 종로구 누상동과 누하동, 통인동 등 경복궁 서쪽지역을 가리키는데, 분위기 좋은 카페나 아기자기한 식당들이 그 좁은 골목을 비집고 여럿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서촌은 그 동네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었다. '북촌'이나 '남촌'과 같은 지명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나뉘는데, 마찬가지로 서촌은 청계천의 서쪽 즉 서울시립미술관이 위치한 중구 정동 일대를 가리켜왔다. 요즈음 서촌이라 불리는 지역의 명칭은 사실 오랜 기간 '상촌(上村)'이나 '웃대' 혹은 '웃마을'이었다. 또 역사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서촌이라 불리는 그 지역을 종로구청에선 '세종마을'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여하튼 그 지역에는 조선시대 때엔 서인 중에서도 소론이,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몰려 살았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 필운 이항복 등이 조선시대의 인물들이고, 화가 이중섭이나 이상범, 박노수, 시인 윤동주 등이 일제강점기 이래 이 지역에서 살았던 인물들이다. 거기에 한 명이 더 있으니 바로 시인 이상이다. 지난 2002년 김수근문화재단이 그가 살았다던 통인동 154-10번지(자하문로7길 18)의 한옥을 매입하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바로 어제는 지난 1937년 시인 이상이 27세의 나이로 동경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한 날이었다. 문제는 그 한옥 역시 이상이 살았던 집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보수공사를 하면서 1933년 집장수들이 지은 집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등록문화재로 등재됐다가 2008년 문화재 목록에서 말소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현재 '이상의 집' 혹은 '제비다방'이라 불리는 이곳은 그저 이상이 살았던 '집 터'라고 하는 게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빨리도 변해가지만 역사적 맥락과는 무관한 지명이 붙고 또 충분한 고증도 없이 문화재 등재가 결정되는 한국의 오늘... 서촌 혹은 세종마을 같은 지명이나 이상 집 터를 둘러싼 이 에피소드들은 우리사회의 가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서울을 걷다' 저자 .

2014-04-17 10:41:4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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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산책]사사키 아타루라는 젊은 철학자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이다." 무의식을 머리채처럼 어떻게 한다고? 독서를 이렇게 "과격하게" 표현하다니? 이 말은 책과 혁명에 대한 한 젊은 철학자의 선언이다. 그는 종교개혁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무엇인가? 성서를 읽는 운동이다. 루터는 무엇을 했는가? 성서를 읽었다.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다." 물론 성서를 읽어야만 혁명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읽는다는 것이 가지게 되는 역사변혁의 힘에 대한 강조다. 1973년생이니 이제 마흔 하나인 사사키 아타루라는 일본의 한 젊은 철학자요, 문학비평가다. 그는 푸코, 라캉 등을 논한 '야전과 영원'으로 일본 사상계에 선풍을 일으키더니, 이 땅에서도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으로 지난 2년 사이에 조용하게 그러면서도 파도처럼 하나의 문화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읽는 것 자체가 혁명이라는 이 주장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보를 검색하는 작업에 몰두하는 시대에 책을 읽는 일이 점점 낯선 것이 되고 있는 때라, 그의 선포는 강렬한 울림이 되었다. 19세기 중반, 유럽은 문학의 발흥기였다. 그러나 글자를 읽을 수 있는 경우는 많아봐야 30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그 가운데서도 책을 집요하게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절망적이다. 그런 조건에서 발자크, 찰스 디킨슨, 도스토예프스키가 나왔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책으로 내주겠다는 곳이 없어 자비로 40부를 찍고, 지인들에게 7부를 겨우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적은 수라도 "읽는 사람"들이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사사키 아타루는 니체의 다음과 같은 말에 주목한다. "언젠가 이 세계를 변혁시킬 인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도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밤 문득 펼쳐본 책 한 줄의 미미한 도움으로 변혁이 가능해 질 지 모른다." 독서는 바로 그런 존재의 충격적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문명의 최고 발명품이다. 문학과 철학이 현실에 대해 뭘 해줄게 있는가라는 물음은 이 발명품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한다. 혹 쥐어뜯을 머리카락이 없다고 해도, 쥐어뜯을 무의식은 다들 가지고 있지 않은가?

2014-04-13 17:24:46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