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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전국에서 제일 맛있는 오이지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최고의 밥반찬은 오이지였다. 지금은 어느 음식이고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으니 계절음식의 소중함이 예전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지만 냉장고가 귀했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장마와 삼복더위에 대비해 오이지를 담갔다. 오이지와 관련해 몇 가지 의외의 사실이 있는데 우리 조상들이 먹었던 최초의 김치는 바로 오이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뿐만 아니라 인류가 처음으로 먹었던 저장채소는 소금에 절인 오이지 또는 식초에 절인 오이 피클이다. 일반적으로 최초의 채소 절임은 고대 시집인 시경에 보이는 것을 최초로 본다. "밭두렁에 오이가 있는데 깎아서 절인 후 조상님께 바치자"라는 구절이다. 절인다는 표현으로 김치 저(菹)라는 한자를 썼고 절이는 채소가 오이 과(瓜)였으니 바로 오이지다. 물론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경에 나오는 오이는 지금의 오이와는 다르다. 지금의 오이는 기원전 2세기에 동양에 전해졌으니 시경의 오이는 동아시아에서 토종으로 자라는 참외 종류였을 것이다. 과일인 참외로 오이지를 담갔다니까 지금은 낯설고 이상하게 들리지만 사실 옛날 참외는 과일이자 채소이며 양식이었다. 어쨌든 오이지의 역사는 이렇게 뿌리 깊은데 그중에서도 전통적으로 맛있다고 소문난 오이지가 있었다. 용인 오이지로 해동죽지)에서 조선의 음식명물로 꼽았다. 용인에서 나는 오이와 마늘, 파로 오이지를 담그면 부드럽고 맛이 깊을 뿐만 아니라 국물은 시원하고 단 것이 사탕수수 즙보다도 뒤지지 않는다며 극찬을 했다. 용인 오이지가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18세기 중반, 증보산림경제에는 담그는 법을 별도로 적어 놓았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소금을 묽게 탄 다는 것, 오이를 반복해 뒤집는다는 것 외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용인 오이지가 별미로 소문이 났으니 해동죽지에서는 맛의 비밀을 용인에서 재배한 오이에서 찾았다. 지금은 명맥이 끊겼다는 용인 오이지의 맛이 궁금해진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7-02 10:34:4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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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정치의 위기, 삶의 위기

"강자의 지배가 곧 정의다"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고대 사상가는 플라톤이다. 그는 국가와 정치의 정당성에 대해 질문했다. 정의가 힘에 의한 지배로 받아들여질 경우, 약자들의 목소리는 짓밟히게 되어 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말한다. 선은 정치의 목표이자 그런 정치가 인간의 행복이라는 걸 일깨운 것이다. 정치와 국가는 정의로운 세상과 좋은 삶을 보장해나가는 역할을 해나가지 못할 때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930년대 영국의 지식인 사회를 대표한 정치학자 해롤르 라스키는 민주주의가 위협받으면서 파시즘의 도래가 내다보이자, 치열하게 논전을 펼친다. 그는 "부당한 질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지식인들이 이에 대하여 침묵한다면, 그것은 도덕적 마비와 지적 황폐에 기여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의 위기는 인간과 그 공동체에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 암살당했으나, 스웨덴이 여전히 사랑하는 정치가 올로프 팔메 총리는 자신의 신념을 정치의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관철시켜나간 인물이다. 그는 현실을 내세워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철학과 가치를 희생시키지 않았다. 정의로운 세상, 좋은 삶에 대한 의지를 굳건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베트남 전쟁, 남아공의 인종차별 체제 아파르트헤이트 등에 대한 국제적 사안에도 용기 있게 발언했다. 스웨덴이 중립국가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의 이러한 태도는 예상을 넘는 것이었다. 그러나 팔메는 이렇게 말했다. "작은 나라인 우리의 영향력은 미약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의 평화와 중재,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위한 노력까지 작은 것은 아닙니다. 중립은 침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는 스웨덴의 교육은 "비판적인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이라며, "완벽한 체제는 없기 때문에 비판적 시민이 끊임없이 정치를 감시하고 새로운 의견을 제시해야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지 않은 채 신뢰를 상실해가고 있고, 민주주의와 교육에 대한 철학이 없는 곳에서는 정치가 무너지고 인간의 삶도 흔들린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간다. 시민이 주체가 된 "정치의 복원"이 절박해지고 있다. /성공회대 교수

2014-06-29 18:25:3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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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지하철 '두줄서기' 이젠 결론내자

"에스컬레이터는 빨리가기 위한 시설이 아닙니다. 두 줄로 서서 안전하게 이용하세요" 지하철 이용자들에게는 10년 가까이 매일 마주치는 익숙한 안내문구다. 그러나 '두 줄 서기'의 호응도가 높아지기는커녕 영 신통치 않다는 것을 누구나 느낀다. 아무리 동참을 호소해도 외면받기 일쑤다. 특히 출퇴근시간의 경우 '두 줄 서기'보다는 '외 줄 서기'가 지하철 문화의 대세임을 부인할 길이 없다. '두줄서기'가 버림받는 이유는 뭘까? 불편하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서울메트로등은 시민들이 안전하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라는 취지에서 '두줄서기 운동'을 펴고 있다. 켐페인을 벌이고 홍보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나 반응은 언제나 시큰둥하다. 에스컬레이터 한줄은 서고 한줄은 이동하도록 공간을 확보해놓아야하는데 두 줄 모두 봉쇄(?)돼 있으면 빨리 갈수없어 시간지체가 불가피하다는 것. 두줄서기의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려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총이 따가워 엉거주춤 한줄서기 행렬로 옮겨간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있다. 한쪽 공간을 막고 버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지말자는 배려에 우선권이 주어진 결과다. 그렇다면 안전보다는 남에 대한 배려를 우선하는 '한 줄 서기'를 그냥 방관해야만하는가. 더 이상 이런 엉거주춤한 상태로 유지되는 것보다는 결론을 냈으면 한다.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을 도모하기위해 '두 줄 서기'가 필요하다면 대대적인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해 정착되도록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한 줄 서기'로 인한 역주행이라든지 급정지등의 대형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설득하고 불가피성을 알려야한다. 특히 세월호 사건이후 안전에 관한한은 예외없이 대응책이 마련되고 있는 마당에 하루 700만명이상이 이용한다는 서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위험운행을 강행하고 있다면 말이 안된다고 본다. 안전이 보장되려면 불편은 감수해야만 한다. 서울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서 있으면 평균 약 40초,올라가면 약 20초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과거 강원도 오지 커브길에서 자주 보았던 "5분 빨리가려다 50년 빨리간다"는 교통 표지판이 생각난다. '20초의 빠름'에 집착하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길지 않은가. 이충건 (편집위원)

2014-06-29 14:23:41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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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규제개혁 시계 왜 멈추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혁신 핵심과제로 삼은 규제개혁의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20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을 위해 민관 합동 '끝장 토론'까지 벌였으나 3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4.16 세월호 참사'에 가려진채 추진력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주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기자 간담회를 갖고 "정부는 연말까지 규제 10%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1만 5308개였던 규제 건수가 규제개혁 끝장 토론 후 오히려 2건이 더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규제개혁, 창조경제, 공공혁신 등 경제 살리기 위한 핵심 이슈를 국민들에게 잘 알렸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집행하는지는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예정대로 규제개혁을 순조롭게 추진했다면 최소한 전체의 2~3%에 해당되는 300~400건 정도는 줄였어야 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오히려 역주행 할지도 모른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국가개조의 핵심인 '관 피아'척결도 인적청산과 함께 규제개혁이 뒷받침 돼야 보다 효과적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규제가 곳곳에 도사리면서 '관 피아'를 키워 왔기 때문이다. 지금 각국은 규제개혁을 경쟁이나 하듯 혈안이 되어 있다. 영국은 '규제 총량제'를 도입해 'One-in, Two-out'로 하나를 늘리면 두 개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펴고 있다. 늘어나는 정부의 규제가 기업부담이 커지고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보고 지난 2006년부터 규제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오다 2011년부터는 아예 규제 총량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규제여부가 불투명한 사항을 확인해주는 '그레이스 존 해소제도'까지 만들어 기업을 돕고 있다. 이는 "애매할 경우 허용해준다"는 정책이다. 호주의 경우, 지난 3월 26일 불필요한 1000여개 법안과 관련된 행정규제 9500개를 없앴다. 더욱이 연간 의회회기 이틀을 '규제폐지의 날'로 정해 하반기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로 안전 분야는 규제가 더욱 강화될 전망이지만 환경을 제외한 다른 분야는 특단의 혁파가 요구된다. 지금 정홍원 국무총리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사의를 표명한지 60일 만에 유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가개조를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하고 그 가운데 경제혁신의 핵심과제인 규제개혁을 조금도 늦춰서는 안 된다. /언론인

2014-06-29 10:28:5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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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파헤쳐진 내시 묘역

2년 전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에서 북한산 의상봉을 오를 때 약 3만 제곱미터의 땅이 파헤쳐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문제는 그곳이 단순한 산자락이 아니라 국내 최대 규모이자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내시'들의 집단묘역이 있던 곳이었다는 점이다. 파헤쳐지기 전까지 모두 45기의 묘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광해군 시절인 지난 1621년에 처음 묘비가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 김충영의 묘로, 그는 왕과 왕비의 명령을 출납하는 승전관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것만도 14기가 있었으며 내시부의 최고 관직인 종2품 상선의 묘가 5기, 종1품 승록대부의 묘도 2기나 됐다. 그러나 후손들이 한 조경업자에게 4억8000만 원을 받고 땅을 넘기면서 그렇게 갈아엎어지고 만 것이다. 내시의 양자로 이어진 후손들이 자신들의 선조가 내시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이 큰 이유였고, 이 집단묘지자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매각이 어렵지 않았던 점도 사태를 부추겼다. 당시 사건은 한 집안의 집단묘지가 없어진 것 이상의 안타까움을 몰고 왔다. 그곳에 안장된 이들 가운데 김성휘나 박민채, 오준겸 등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에 활동 기록이 남아 있는 인물도 있던 데다 내시들의 부인도 사대부의 부인이 받는 정경부인에 봉작됐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비문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시들의 인물사 연구는 물론 당대의 풍속사 연구에도 귀중한 사료가 되는 것들이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파헤쳐지면서 모두 흘러간 옛 일이 되고 말았다. 현재 남아 있는 내시의 묘는 은평구 이말산에 있는 4기를 비롯해 도봉구 초안산과 쌍문동, 강남구 신사동, 경기도 고양과 남양주, 양주, 용인, 그리고 경북 청도에 남아있는 것 등 극히 소수다. 그마저도 언제까지 남아 있을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사대부의 경우와 달리 내시의 묘와 관련해서는 후손들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쉬쉬하거나 없애버리는 통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시라는 존재가 단순히 거세를 해 남성성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왕조 경영에 필수불가결한 전문가 집단이었다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후손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벽을 깨기란 쉽지 않아 보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몇 기의 내시 묘지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걱정되는 이유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6-26 15:24:04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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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진보 교육감들 정치적 중립부터 선언해야

'6.4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전국 시도광역단체교육감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석권해 교육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전국 17곳 가운데 절대다수인 13곳이 전교조 출신을 비롯해 진보성향의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서울을 비롯해 전체의 84%에 해당되는 초중고 학생들의 교육환경이 진보세력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이러한 가운데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이 탄원서까지 내면서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취소'를 제기했으나 지난주 19일에 열린 서울행정법원에서 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교육계가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질 것은 불을 보듯 환하다. 패소 판결 후 전교조 지도부는 단식농성 등 총력 투쟁을 이미 선언했다. 이제부터 진보세력의 교육감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만일 이들의 손을 계속 잡아준다면 교육현장은 유례없는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의 리더십은 지난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만일 계속해서 소수의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면 지지해준 유권자에 대한 배신이 된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은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갈라진 점도 있지만 현재의 교육환경에 대해 불만도 표심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득표율은 33.5%에 불과하다. 결국 전체의 3분의 2에 해당되는 유권자는 전교조를 미덥지 않게 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전교조 출범 25년만의 대승이라고 자축에만 젖을 일이 아니다. 진보성향의 교육감들은 먼저 이념투쟁을 종식하고 정치적 중립을 선언해야 한다. 좌편향에 따라 '이명박 정권'때는 '쥐박이'라고 폄하하면서 조롱하고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도 기회만 있으면 흔들고 있다. 여기에 더해 진보성향의 교육감은 전교조=진보=좌편향?종북과 같은 등식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김일성 추모제'는 고사하고 '빨치산 교육'에 이르기 까지 전교조의 종북 활동은 이제 거의 고착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 바람에 학부모는 물론 대다수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점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노선이 정리돼야 '참 교육' 실천에 믿음이 간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내세우는 참교육 내용도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전면 수정해야 옳다. 특히 학생들의 인권을 지나치게 내세워 교권이 무너지고 인성교육이 퇴보하고 있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다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올바른 역사교육의 길도 열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등장이 신선해진다. /언론인

2014-06-22 10:59:12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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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한국 철도의 시발지 쇠뿔고개에서

인천시 창영동에는 우각현, 우리 말로 '쇠뿔고개'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이 하나 있다.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지금으로부터 한반도 최초의 철도, 바로 '경인선' 기공식이 열린 곳이다. 공사를 시작한 것은 1897년 미국인 제임스 모스에 의해서였으나 자금난으로 철도 부설권이 일본인에게 넘어가면서 경인선은 결국 1899년 일본인의 손으로 완성됐다. 철도와 기차는 근대성의 상징이었다. 그 전까지 다소 불명확했던 시간 관념이 시와 분 단위까지 명확해지는 계기가 됐고 국제적으로는 '세계 표준시'도 만들어졌다. 사람과 물자의 대량 수송도 가능해졌으며 정보 교류의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 땅에 놓여진 철도는 근대성을 실어나르기보다는 '침략과 수탈의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크다. 그들은 철도 용지를 거의 무상으로 이용했고 철도 용품이나 영업이익에 대해서는 세금 한 푼 내지 않았다. 건설 과정에서 논과 밭의 곡물을 마음대로 베어내는 등 수많은 횡포를 부리기도 했다. 임금 부분에서도 일본인 노동자가 하루 60~100전을 받은 반면 같은 일을 한 조선인 노동자가 받은 임금은 그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1904년 경기도 시흥 주민 만여 명이 당시 군수와 그의 아들을 살해하기까지 한 이유도 그런 횡포에 있었다. 일본은 그렇게 놓은 철도를 이용해 이 땅에서 생산된 쌀과 목재, 석탄 등 농수산품에서부터 지하자원까지 각종 자원을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예컨대 철도를 이용해 약탈해 간 쌀의 양이 1911년 7만6천여 톤에서 27년 뒤인 1938년에는 약 14배인 108만7천여 톤으로 증가하는 등 수탈량은 해가 갈수록 늘어만 갔다. 대륙 침략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된 것도 물론이다. 그런 아픔을 안고 탄생한 한국의 철도…. 그러나 지금은 국토가 그렇듯 철도 역시 남북으로 단절된 상태다. 끊겼던 경의선과 동해선이 지난 2009년 연결되기는 했지만 다시 쓸모 없는 철도마냥 버려져 있는 게 현실이다. 애초 수탈과 침략을 목적으로 놓여진 철도였지만 남북을 오가며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메신저가 될 가망은 없는 것일까. 쇠뿔고개에서의 잡감은 그래서 더 쓸쓸한지도 모르겠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6-19 14:30:46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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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

상추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장 한국적인 정서의 음식이다. 예전부터 농부의 밥상에서부터 구중궁궐 대왕대비의 수랏상에도 올랐다. 신분의 높낮음을 떠나서 누구나 상추쌈을 즐겨 먹었는데, 우리가 얼마나 상추쌈을 좋아했는지 고려 때는 원나라에까지 소문이 났다. 지금은 퇴색한 용어가 됐지만 가히 한식 세계화의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쌈 싸먹기를 좋아한다. 영조 때의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조선 사람은 커다란 잎사귀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쌈을 싸먹는다고 했을 정도다. 상추를 비롯해 호박잎, 배춧잎, 깻잎과 곰취는 물론 미나리, 쑥갓, 콩잎으로도 쌈을 싸 먹는다. 김과 미역, 다시마 같은 해초 역시 쌈 싸먹는 재료로 빠지지 않았으니 우리는 유별나게 쌈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상추쌈이다. 성호 이익은 집집마다 상추를 심는 까닭은 쌈을 먹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조선시대에 벌써 상추쌈은 국민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상추쌈은 한입 가득 싸서 볼이 메어져라 먹어야 제 맛이다. 때문에 점잖은 체면에는 먹기 어려웠을 것 같지만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도 상추쌈을 즐겼다. 승정원일기에 숙종 때 대왕대비인 장렬왕후 수라상에 상추가 올랐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조리를 하지 않았으니 쌈을 싸먹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어지는 내용은 실수로 상추에 담배 잎이 섞여 들어갔으니 담당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숙종은 그럴 것까지 없겠다며 용서를 했다. 순조의 장인으로 세도정치를 시작한 김조순 역시 상추쌈을 즐겼다. 여름날 불암천에 천렵을 가서 갓 잡은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 한 잔 기울이며 상추쌈에 밥을 싸먹었다는 글을 남겼다. 이렇게 왕실 최고 어른부터 막강한 세도가는 물론 농부에 이르기까지 모두 상추쌈을 즐겼던 것인데 우리의 상추쌈 사랑은 속담에서도 확인된다. "눈칫밥 먹는 주제에 상추쌈까지 먹는다"는 말이 그 말이다. 상추쌈이 맛있는 계절이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6-18 10:31:3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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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승 거둔 류현진, "한국-러시아전 라커에서 TV 보면서 응원하겠다"

"새로 추가한 구종이 잘 통해 자주 던지겠다. 내일 우리 축구 대표팀 첫 경기는 라커에서 TV 중계를 보면서 응원하겠다." 16일(현지시간)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에서 시즌 8승을 거둔 류현진(27·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좌타자를 상대로 하드 슬라이더를 던져 효과를 봤고 마지막 타자를 잡아낸 것도 그 구종이었다"며 "최근 던지기 시작한 하드 슬라이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월드컵 축구 본선 조별리그 첫 경기에 나서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 대해 "다치지 않고 잘 하리라 믿는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은 연합뉴스와 가진 일문일답 내용이다. --오늘 경기 소감은. ▲구속 잘 나와 편했다. 상대 팀에서 나한테 강했던 1, 3번 타자를 잘 막아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콜로라도가 5연승에 팀 타율이 3할 이상 상승세였는데. ▲크게 신경 안 썼다. 상대 팀이 상승세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불리할 것 같아서 일부러 신경 안 썼다. --고비를 삼진으로 넘겼는데 삼진을 노린 승부였나. ▲1회 2사 2, 3루 때는 삼진으로 이닝을 마치려는 생각으로 승부했다. 1회에 인정 2루타가 나오는 바람에 실점없이 넘기는 행운도 따라줬다. --새롭게 구사하는 구종(커터성 슬라이더)은 효과적인지. ▲오늘도 좌타자 상대로 던져 효과를 봤고 마지막 타자 잡을 때도 그 공을 던졌다. 아무래도 구종 하나가 추가하면 타자들이 공략하기는 더 힘들지 않겠나. 새로 추가한 구종이 잘 들어가고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 던지겠다. --시즌 전에는 구종 추가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사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슬라이더인데 좀 더 구속이 빠른 것일 뿐이다. 나는 그냥 슬라이더라고 여긴다. --허니컷 투수 코치한테 배운 것 맞는지. ▲부상자 명단에 올랐을 때 그립, 던지는 방법 등을 허니컷 코치에게 배웠다. --신시내티에서 패전 투수가 된 뒤 등판인데 부담은 없었나. ▲그다지 부담은 없었다. 신시내티에서 패전 투수가 됐을 때도 그저 한번쯤 질 때가 됐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늘은 타자들이 점수도 많이 내줘서 더 편했다. --홈런 맞은 것은 실투였나. ▲바보같이 던졌다. 높은 공으로 스트라이크 많이 잡아서 그걸로 삼진 잡으러 던진 공이었는데 던지는 순간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아쉬움도 컸다. --내가 잘 던지면 내일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게 힘이 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했나. ▲내일 로커에서 열심히 응원하겠다. 로커에 응원용 빨간 티셔츠도 미리 준비해놨다. --축구 대표팀에게 응원의 말 해달라. ▲잘 하리라 믿는다. 좋은 성적 났으면 좋겠다. 좋은 성적 내려면 안 다치는 게 중요하니 몸 조심들 하시라고 당부드리고 싶다.

2014-06-17 15:44:2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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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의 인문학산책] 하나님의 뜻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모세는 어느 날 떨기나무가 있는 곳에서 불길이 이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기이하게도, 떨기나무가 타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순간, 그곳에서부터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백성들이 비통하여 아우성을 치는 구나. 네가 가서 이들을 구하라." 신의 뜻은 히브리인들이 제국의 지배 아래 고통을 겪으며 사는 것에 있지 않았다. 이들에게 자유의 미래가 열리도록 일으켜 세우는 것에 있었다. 모세는 그 일을 감당하도록 부름 받은 하늘의 사제였다. 그가 이집트 제국으로 돌아가 나일 강에 지팡이를 담그자 강이 피가 되어 흐른다. 나일 강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젖줄로, 제왕의 권력과 부의 근원으로 떠받들려 졌던 대하(大河)다. 그러나 모세는 그 권력과 부의 밑바닥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 것이었다. 누구의 피였던가?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그들을 계속 희생시키는 현실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이 장면에 압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대탈출을 하게 되는 히브리인들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들을 저 압제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하나님 여호와다"라고 일깨우신다. 자유와 해방의 절대자에 대한 기억을 이들의 집단의식으로 형성하는 과정이었다. 이 기억과 뜻을 마음과 몸에 새기는 인간과 집단은 결국 떨기나무의 불꽃이 된다. 하나님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신앙의 결과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 떠 창조되었다는 믿음 대로다. 떨기나무는 미디야 광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키가 낮은 덤불숲 나무였다. 그건 힘이 없는 히브리 백성들의 처지 그대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에 하늘의 뜻이 타오르면, 광채와 불길이 일어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대로의 형상을 취하시기 때문이다. 떨기나무 불꽃은 예수시대에 성령의 불로 모습을 바꾼다. 인간은 신의 뜻을 받아 살면, 그런 빛과 뜨거움을 지닐 수 있는 존재다. 모세의 시대 이후 출현한 예수가 회당에서 읽은 성서 이사야서의 핵심은 "갇힌 자를 풀어주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다. 이사야서를 통해 하나님이 보여주신 세상은 사자와 양들이 함께 뛰놀며 누구도 다른 이를 해치지 않는 평화의 나라였다. 자유, 해방, 그리고 평화의 하나님은 압제, 속박, 전쟁의 현실과 맞서신다.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성공회대 교수

2014-06-15 13:52:05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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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필의 청론탁설]인사청문회 개선 없이 국정안정 어렵다

'4.16 세월호 참사'로 비롯된 개각이 단행됐다.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경제 교육 등 부총리를 포함해 7개 부처의 장관을 바꾸는 중폭개각이 이뤄졌다. 청와대 비서진도 실장은 유임됐지만 정무 경제 민정 교육 등 주요수석비서관이 교체됐다. 박근혜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최대의 개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넘어야할 산이 많다. 우선 국무총리 지명에서 '안대희 카드'가 전관예우 논란 속에 실패한데 이어 문창극 후보도 매우 불안하다. 8.15해방을 비롯한 남북분단, 위안부에 대한 시각이 오해받을 만큼 동떨어진 발언이 드러나면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소장파들조차도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국무총리 후보 지명에 유례없는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으나 무엇보다 청와대의 인사팀에 중대한 허점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전 검증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인선에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또 다른 원인은 국회의 인사청문회제도이다. 지금까지 인사청문회가 실시되면서 한 번도 순조로운 적이 없었다. 대부분 도덕성에 흠집 내기로 일관됐다. 상대적으로 정책수행능력 검증은 뒷전이었다. 따라서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인사들은 고사하기 일쑤였다. 마치 경제학에서 말하는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고 하는 그레샴의 법칙처럼……. 이제는 인사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유능한 인재를 수용할 수 있다. 여기에 인사권자인 대통령도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국회인준이 필요한 인사에 대해서는 빈틈없는 사전검증이 이뤄진다. 백악관 인사국에서 FBI(연방수사국)신원조회는 물론 IRS(국세청)세무조사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233가지에 달하는 조항을 검증해 결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은 청문회 개최에 앞서 의회 여야 지도자들과 사전협의를 거쳐 상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국회는 당리당략에 따라 원색적인 폭로전 속에 인신공격 흠집 내기로 일관하고 있다. 이제 국민들은 국회 인사청문회 자체에 회의적이다. 한비자(韓非子)의 "不吹毛而求小疵(불취모이구소자) 터럭을 불어 작은 흠집을 찾지 않고, 不洗垢而察難知(불세구이찰난지) 알기 어려운 것을 때를 씻어내면서 까지 살피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는 철학이 인사청문회에 반영되기를 바란다. /언론인

2014-06-15 10:58:19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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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봉의 도시산책]황룡사, 복원해야 하나?

경북 경주 시내에 있는 황룡사지는 총면적이 거의 7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동양 최대급 사찰 터다. 다만 지금은 건물 한 채 남아 있는 것이 없고 그저 건물과 탑 등이 있던 자리를 알려주는 돌기단 뿐이다. 모든 건물을 짓는 데 거의 백 년이나 걸렸다는 대역사였지만 지난 13세기말 몽골군 침입 때 일순간에 모두 불 타버린 탓이다. 그래도 절 터 한복판의 기단 규모를 보면 황룡사의 옛 영화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 중 압권은 아파트 30층 높이에 해당하는 80미터짜리 '9층 목탑' 흔적이다. 탑을 9층으로 올린 이유는 1층부터 차례로 일본과 중국, 오월, 탁라, 응유, 말갈, 단국, 여적, 그리고 예맥 등 이웃하는 9개 나라로부터 시달림을 받지 않게끔 해달라는 염원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호국 의지'가 녹아 있는 황룡사가 조만간 다시 모습을 드러낼 지도 모른다. 오는 2016년 황룡사 담장과 회랑 재건을 시작으로 2018년에는 9층 목탑과 금당, 강당 등을 다시 짓겠다는 것이다. 복원하려는 것이 비단 황룡사만은 아니어서 경주 시내의 월성과 동궁, 월지, 월정교 등을 2025년까지 12년간 9,450억원을 들여 재건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는 9층 목탑은 물론 황룡사 복원의 모델이자 목표로 삼을 원래의 황룡사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모습을 드러낸 월정교 등도 마찬가지다. 당시 건물의 구조적 특성이나 재료에 대한 자료 등도 거의 없다시피 해 결국 '상상 속의 복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복원 그 자체의 당위성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불에 타 사라진 지 7백 년도 더 지난 사찰을 과연 오늘 이 시점에 복원해야 할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필요성이 있는가,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지은 황룡사는 문화재라기보다 일종의 관광상품에 불과하지 않느냐 하는 등의 의문들이다. 과연 '상상 속의 복원'일지언정 황룡사를 복원해야 할까? 아니면 마치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이나 폼페이 유적처럼 폐허 그 자체로서 지나간 시대를 증언하게 하는 것이 옳을까? 답은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은 문화재 복원과 관련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저자

2014-06-12 10:24:00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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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푸드스토리] 수박껍질은 세계의 반찬

수박껍질은 훌륭한 반찬이다. 고추장 양념과 참기름, 식초 등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수박 향기와 아삭아삭한 식감이 어울러져 여름철 입맛을 자극하는 수박나물이 된다. 수박 나물은 보통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껍질마저 버리기 아까워 나물로 무쳤을 것 같지만 사실 역사와 전통이 꽤 깊은 음식이다. 그것도 우리나라는 물론 동양과 서양에서 모두 즐겨 먹었다. 우리는 진작부터 수박껍질을 반찬으로 이용했는데 19세기 중반의 실학자 이규경은 사람들이 보통 수박껍질을 쓸모없다고 버리는데 항아리에 담아 장을 담그면 무김치처럼 좋은 반찬이 된다고 했다. 조선 후기에 수박 나물을 반찬으로 먹었다는 이야기다. 중국은 진작부터 수박껍질을 음식으로 활용했다. 명나라 때 의학서인 본초강목에는 수박껍질이 약재로 실려 있는데 껍질 역시 수박처럼 열을 식히고 갈증을 멎게 하며 소변을 돕는다고 나온다. 이렇게 약효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지 중국에는 수박껍질을 재료로 만드는 음식이 적지 않다. 돼지고기와 버섯, 수박껍질을 섞어서 볶기도 하고 우리처럼 무치기도 하며 때로는 김치처럼 절여서도 먹는다. 서양에서도 진작부터 수박껍질을 요리에 활용했다. 오이를 식초에 절인 오이 피클처럼 수박껍질로도 피클을 담는다. 예전 미국 남부에서 흑인 요리사들이 발달시킨 음식이라고 한다. 미국의 수박껍질 피클은 19세기 초반의 요리책에도 실려 있으니 문헌에 실린 시기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보다도 빠르다. 19세기 후반인 1881년 발간된 「남부의 옛날 요리」라는 책에도 수박껍질로 피클 만드는 법이 실려 있다. 노예출신인 피셔부인이 구술했다는 책으로 흑인이 쓴 최초 요리책으로 알려져 있다. 상큼한 수박나물이 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서양에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게다가 19세기 이전의 옛날부터 먹었다는 사실도 의외다. 요즘 과일가게에 수박이 많이 보인다. 먹고 난 껍질도 재활용하면 입맛을 북돋울 수 있다. /음식문화평론가

2014-06-11 10:22:02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