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CEO와칭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메트로신문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김장철 풍경

벌써 김장시즌인가? 집근처 난전에 벌여놓은 채소가 그렇다고 손짓한다. 보자기 좌판 위에 무청이 줄느런히 포개져 있다. 무청과 촌수가 어슷비슷한 배추 겉대도 후줄근히 늘어져 있다. 그 좌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무청을 다듬는 할머니의 굼뜬 손길. 이 셋은 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한가롭고, 그러나 안쓰럽게 보이는 그 풍경을 따사롭게 쬐여주는 햇볕이 너무도 반갑고 고맙다. 그 다소곳한 난전에 장보러 나온 아주머니들이 빼꼼히 끼어들면 장터는 복닥거린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는 허허하게 웃고 있었다. 잘 팔리느냐고 여쭙자 돌아오는 대답이 엉뚱하다. 그렁저렁 팔리긴 하는데 사람 보는 게 더 재미있다고 하신다. 그 정겨운 말이 왜 이리 슬프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사람을 만나 말문을 여는 게 즐거울 만큼 정녕 외로웠던 걸까? 그래서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온 걸까? 누군가 무청으로 요리하는 비책을 물어올 양이면 그렇게 표정이 밝을 수가 없다. 할머니에겐 난전이란 삶의 얘기꽃을 파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김장대목을 맞은 장터엔 그러나 정작 있어야 할 배추와 무가 없다. 휑하다. 어지간해선 온라인 장터에서 절인 배추를 배달 주문해 김장을 담그는 세태니 당연한 귀결의 풍경일 것이다. 그 공허함이 무색했는지 할머니는 무청과 배추 겉대를 가리키며 이게 요즘 상전 대접을 받는다고 추켜세운다. 어릴 적 장터에선 공짜로 얻곤 했는데 지금은 팔고 있다며 할머니는 멋쩍어하신다. 오랜 세월 무청과 배추 겉대와 함께 했을 할머니의 모습에서 어느 옛 김장 장터를 보았다. 내 어릴 적 김장철엔 장터마다 배추와 무가 산더미같이 쌓였다. 층층이 포개 수북수북했다. 집집마다 김장을 적게는 수십 포기씩, 식솔이 많은 댁네는 백 수십 포기까지 담갔으니 그랬을 것이다. 담벼락 같은 배추더미에 사다리가 걸쳐지면 금세 동났다. 장정들이 배추를 주고받으며 손수레에 실었다. 배추와 무는 하늘을 날아다녔다. 바닥을 드러내면 배추에서 떨어져나간 겉대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다듬고 남은 무청이 나뒹굴었다. 줍는 게 임자였지만 남아돌았다. 사람들은 무청과 배추 겉대를 주웠다는 말끝에 붙이는 수식어엔 슬픔이 스며있었다. 거친 흙바람과 거센 비를 견뎌온 흔적. 푸르죽죽한 무청과 배추 겉대에는 아픔이 보인다. 허연 무와 노란 배추 속살을 보호하려 안간힘을 썼으니 거죽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무와 배추 속살은 달고 부드러웠지만 겉대들은 늘 쓰고 거칠었다. 사람들은 질기다고 온갖 투정을 부렸지만 막장 메뉴로 식탁을 지켜왔다. 겉대들은 흙바람이었고, 배고픔이었으며, 모진 세월이었다. 김장을 마치고 나오면 늘 천덕꾸러기 처지였던 겉대들. 이제 그 푸석거리고 시들하던 겉대들이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웰빙 라이프 메뉴가 되고, 그래서 구하기 힘든 품귀 상품이 되고, 돈이 됐다. TV 화면을 보니 강원도 어느 농가에선 주객이 전도됐다. 무청을 사면 무가 덤으로 얹어진다는 게 이 농가의 마케팅 전략이란다. 무청을 겨우내 말리면 시래기. 누렇게 변신할 즈음 상품의 부가가치가 깡충 뛴단다. 그 농가에선 무청이 상품이고 무가 부속물이다. 그러고 보면 김장 겉대들은 참 겸손하다. 삶이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고, 몸값이 뛰었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토속적인 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다. 은근하고 웅숭깊다. 늘 한결같다. 주린 배를 채워주던 구황음식 시절이나, 웰빙식품으로 등극한 지금이나 찬물에 몸을 풀어 따스한 국과 탕이 되어준다. 모나지도 않다. 모든 음식에 어울린다. 된장을 풀면 기막히게 구수한 맛을 낸다. 겉대들은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걸 이렇게 가르침으로 보여준다.

2017-11-1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동심의 세계

그건 단순한 삽화가 아니었다. 파란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강바람이 불자 더 높이 오르려 연실을 팽팽하게 당겼다. 그 연실을 풍성하게 감은 얼레를 풀자 가오리연은 긴 꼬리를 흔들며 춤췄다. 일전에 봤던 한강변의 연날리기 풍경이다. 얼마나 사무치던 한 폭의 삽화이던가. 내 어릴 적 추억의 삽화에도 강변은 등장한다. 길게 뻗은 강둑은 연을 띄우는 활주로였다. 강둑의 동네 아이들은 바람길을 꿰차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음박질해 연을 하늘 높이 잘도 띄웠다. 그런 내 추억의 삽화 속에는 그러나 얼레가 없다. 둘둘 말은 종이가 그것을 대신했다. 물레방아처럼 돌아가는 나무얼레! 연실을 광폭으로 감고 풀며 연을 띄우는 광경이 무척 부러웠다. 당겨 감으면 연은 솟았고, 상승 기류를 탈 즈음 따르르 풀면 더욱 높이 날았다. 곧 한 점이 됐다. 그 가물거리는 점이 되돌아오면 마치 미지의 세계를 다녀온 것처럼 기특했다. 새들과도 정답게 얘기를 나누었을 거라는 상상도 했다. 얼레를 몹시도 갖고 싶어 했던 예닐곱 살 때의 삽화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지금에 와서 왜 이리 설레고 가슴이 뛰는 걸까. 그것은 어쩌면 내 추억의 삽화 속에 비워뒀던 여백에 얼레를 꼭 그려 넣고 싶었던, 그 잠자는 동심이 불쑥 깨어난 까닭일 것이다. 하늘 속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연. 왜 사람들은 연을 띄울 때 사연을 실어 보내는지? 그 이유를 그날 절절이 느꼈다. 저물녘에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스치듯 들렸다. 비둘기 떼가 자우룩이 스쳐 갔지만, 나는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저 아득한 연에 넋을 놓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춤추는 가오리연. 시간의 자유란 이런 것일까. 연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얼굴 그대로 시간 밖에서 날고 있었다. 연을 응시하며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내 어린 시절 못다 채운 그 사무침을 하늘 도화지에 그려본다. 얼레를 자유자재로 돌리며 연을 날리는 강둑 위의 내 모습을. 연실은 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풀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얼레를 당기자 연은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 오랜 숙원이 이제야 이루게 됐다는 듯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연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은 세월이 흘려도 세태가 변해도 결코 새롭게 재해석할 수 없다고. 덧셈과 뺄셈 논리가 난무하는 세상 셈법이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맑은 영혼의 영역이기에 그럴 것이다. 시간이 멎은 삽화! 그 시간 속에 웅크리고 잠자는 동심을 언제부터 깨우고 있었던 걸까. 아련함만 켜켜이 쌓여가는 가슴 한 켠을 얼마 동안 애타게 노크하고 있었던 걸까. 동심은 그러나 늘 바쁜 일상에 떼밀려 잃어버린 시간 속을 배회해야 했다. 세월의 뒤안길로 밀려난 동심! 요즘 그 동심의 세계를 찾아 나선 어른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어린이의 전유물이던 장난감과 캐릭터용품을 수집하는가 하면 그림, 피아노, 태권도, 무용을 배우고 더러는 학습지까지 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른들을 가리켜 키덜트(Kidult)라고 부른다.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다. 이 신조어는 관련 마케팅이 나올 만큼 고전이 된 지 오래고, 키덜트문화가 신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니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사람들이 이따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건 어린 시절의 미완성된 삽화를 완성하려는 자유 영혼의 회귀본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과 희망이 꿈틀거리고 있음이다. 그 본능이 살아 약동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부풀 일이다. 팍팍한 일상에 지친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는 동심의 향수. 그 동심이 오감을 거쳐 가슴까지 벅차오르면 넉넉하고 따스한 삶의 향기로 변할 것이다. 세상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 말이다.

2017-11-08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아침에 만나는 원두커피의 설렘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며칠 후면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는 입동(立冬). 베란다 통유리창 너머로 흩날리는 담갈색 낙엽이 그 색온도를 표현하고 있다. 까치 한 마리가 추위를 체감했는지 잔뜩 목을 움츠린 채 종종걸음을 친다. 나무둥치에 구르는 마른 낙엽 위로 기다랗게 비쳐 드는 아침 햇살이 무척 반갑다. 이런 풍경엔 김이 모락거리는 원두커피가 제격이다. 햇살과 커피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공통점은 금방 나온 신선함과 따사로움일 것이다. 출근하기 전 내 즐거운 일과 중 하나가 원두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수동식 핸드밀로 커피콩을 가는 것이 퍽 원시적이어서 좋다. 서걱서걱 맷돌로 가는듯한 소리와 쪼개진 알갱이 속살에서 묻어나는 깊고 은은한 향이 태고의 자연으로 데려가게 한다. 고깔모양의 드리퍼에 꽂은 종이필터. 거기에 분쇄된 커피를 소복이 담고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으면 구워지는 빵처럼 부풀어 오른다. 가슴 설레듯 부푼 커피 알갱이들. 물의 무게로 그것을 내린 게 원두커피의 맛이랬다. 이즈음 온기를 머금은 커피향이 온 집안에 기분 좋게 맴돈다, 맛은 어떨까? 아침마다 이런 기대 섞인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커피를 내리는 수고로움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하루를 산뜻하게 시작하는 그 첫 실마리를 원두커피가 풀어주는 것이다. 원두커피의 맛은 원두의 품종, 생두의 볶음 정도, 물의 온도, 물 내리는 속도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여기에 날씨, 분위기, 기분, 감성까지 더해지면 커피 맛의 범위는 방대해진다. 눈금이 각기 다른 미각은 또 어떤가. 종이필터로 내린 커피는 그래서 매번 첫 느낌의 설렘으로 다가온다. 맛은 크게 쓴맛, 신맛, 단맛. 이 맛 속성이 어쩜 우리네 삶과 많이 닮았을까 싶다. 혹자는 쓴맛이 커피 본연의 맛을 좌우한다고 했더랬다. 커피도 사람처럼 쓴맛을 봐야 감동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얘기로 읽힌다. 내 추억의 커피는 맛만 쓴 게 아니었다. 새내기 기자 시절이었다. 다방커피가 호황을 누리던 시절, 한국계 미국 군의관을 이색 인물로 선정해 인터뷰하러 갔다가 커피로부터 쓴맛을 봤다. 거실의 탁자 위에 대형 머그잔이 올라왔다. 그렇게 큰 찻잔은 처음 봤다. 지금의 대형 테이크아웃 종이컵 정도는 될 것이다. 갈색 빛이 도는 커피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양은 엄청났다. 내 눈엔 한 바가지쯤 돼 보였다. 찔끔 담긴 다방커피 찻잔에 익숙했으니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가 대뜸 갓 볶아 구수할 거라고 했다. 대관절 뭘 볶았다는 건가? 그 말을 해석하는 그 짧은 순간, 내 눈은 크림과 설탕을 찾아 탁자 위를 헤매고 있었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때 아메리카노를 처음 맛봤다. 크림을 달라고 하지 않았던 게 천만다행이다 싶다. 모르긴 해도 지금 그 커피를 맛봤더라면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을 것이다. 생두를 갓 볶아 내린 커피였으니 향과 맛이 얼마나 신선하고 그윽했을까. 그 커피는 생활철학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선입관을 갖지 말라는 것. 다방커피에 길들여진 선입관은 그 신선한 원두커피 앞에서 미각과 후각을 무디게 했던 거다. 선입관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 추억이 아련하게 밀려와서일까. 커피향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빡빡한 일상에 여유와 재충전을 얻게 해주는 향기. 눈을 지그시 감으면 마음은 작은 호수가 되고 소담한 숲이 된다. 커피에는 사랑과 위로가 담겨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사람과 자연에 대한 시선이 따스해진 까닭일 것이다. 이런 커피의 고부가가치를 높이는 건 향기와 맛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다. 바스락거리는 낙엽과 맑은 햇살, 그리고 향긋한 커피의 앙상블이 아침을 상큼 발랄하게 한다.

2017-11-01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눈물겨운 도시락

저녁식사를 할 무렵, TV의 광고 한 장면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내레이션이 그런다. '밥이 답이다'라고. 쌀소비촉진캠페인 카피인데, 그 말이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이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북이 담긴 고봉밥이 등장하니 옛 정취가 묻어난다. 까마득히 잊고 지내다가도 고봉밥이나 도시락 장면이 스치면 불쑥 눈가를 적시게 하는 추억! 그러고 보니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쌀 소비를 위해 피부에 좋다고 어필하는 화면 속 밥과 내 유년시절의 밥 풍속도가 딴판이어서다. 유년시절, 밥은 이 세상 최고의 보약이었다. 추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제부터인가 점심때가 되면 교실 밖을 나가는 친구가 있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서다. 왜 도시락을 싸오지 않느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늘 '배부르다'였다. 불룩한 배를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젓가락을 건네기도 했지만 그는 힘없이 손을 가로저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무슨 변고라도 있는 걸까? 먹을 게 없던 시절, 아이들은 그 본질적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 진실을 알려준 건 운동장 한 모퉁이에 설치된 수돗가였다.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는 동안 친구는 고개를 모로 젖힌 채 콸콸거리는 맹물을 마시고 있었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기 위해 입을 오물거리며 밥처럼 먹고 있었던 거다. 마디숨을 몰아쉬면서. 아이들은 교실 창밖 너머로 그것을 목도하고 있었다. 친구는 며칠 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아, 어쩌다 그 장면이 떠오르면 우울해지기에 가슴 바닥으로 밀어 넣지만 눈시울에 뜨거움이 배어나오곤 한다. 얼마나 배를 곯았던 걸까. 내가 철이 들었을 땐 수돗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곳이었다. 동네 공원 수돗가에서 손 씻는 아이들을 보면 그 친구가 오버랩 되곤 한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 때 그 시절을 되짚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밥은 먹었니? 가 인사였던 그 시절, 물힘으로 한나절을 버텨온 친구. 뛰놀다가 배고프면 수돗물로 힘을 충전하는 건 흔한 풍경이었다지만, 친구의 도시락 허기증은 눈물 나는 역사 그 자체였을 것이다. 쌀이 귀하던 시절, 밥 짓는 풍경은 색달랐다. 솥의 맨 아래층에 꽁보리를 앉히고 그 위에 쌀을 얹어 밥을 지었다. 가부장적인 집안에서는 어른 밥과 아이들 밥 색깔이 달랐다. 어른 밥은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새하얀 쌀밥이었다. 쌀밥은 부의 상징이었기에 집안의 대표주자인 가장만큼은 그랬는지 모른다. 아이들 밥은 거무스레했다. 쌀밥은 드넓은 꽁보리 밭에 잔설처럼 희끗거렸다. 아이들의 시선은 늘 어른 밥에 꽂혔다. 그렇게 윤기가 자르르 흐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입안은 더욱 자르르 윤기나게 침이 괴였다. 어른들은 알아차리고 있었다. 어른들은 늘 밥을 남겼다. 밥상을 물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아이들의 그 여분까지 고려했는지 쌀밥은 산더미처럼 높아가는 것만 같았다. 찬도 거의 남아 있었다. 조기며, 고등어며, 갈치며 노릇노릇한 생선구이는 아이들 몫이 됐다. 가시가 잘 발라진 채 고스란히 있곤 했다. 어른들은 헛기침을 밥상너머로 퍼내며,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보곤 흐뭇해했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될 즈음 더러는 한동안 밥을 먹을 때 무심결에 몇 숟가락을 남기곤 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네 어른들의 밥 남김에서 알게 된 깊은 헤아림을, 애틋한 흔적을 그리워함일 것이다. 밥에는 장마와 태풍, 땡볕을 견뎌온 쌀 생성 과정의 인고(忍苦)가 살아 있다. 밥에는 물결치는 세파를 이겨낼 천연 보약이 들어 있는 것이다. 먹을 게 넘쳐나는 요즘이지만 밥은 여전히 몸의 보약이자, 삶에 보약이다. 저녁밥을 먹으며 새삼 밥의 소중함을 느껴본다.

2017-10-25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걷는다는 것은

산의 표정이 생기발랄해졌다. 계절 변화에 수줍음을 타던 산들이 설렌 마음을 기어이 색깔로 표출했다. 나보란 듯이 산봉우리마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염색했다. 더러는 계곡을 타고 내려와 아래 마을의 길섶까지 단풍 물감을 뿌려놓았다. 서울 도심의 동네 산들도 점점 엷어지는 연초록색 바탕의 큰 화폭에 형형색색 단풍으로 수북수북 수놓을 태세다. 며칠 후면 물색 좋은 색동옷을 차려입고 나와 절정에 오른 자태를 한껏 뽐내며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먼동이 틀 무렵, 왜 그렇게 그날은 가슴 설렜는지 모르겠다. 그건 아무도 호흡하지 않은 숲 공기를 마시며 거니는 호사를 누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장엄하게, 그러나 조용히 날개를 펴는 가을의 향연을 직접 보고, 맡고, 들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날 동네 산속은 단풍의 역사가 이제 막 이뤄지려 하고 있었다. 나무 둥치에 누운 낙엽들은 그 예고편이었다. 얼마나 가을앓이를 한 것일까. 갈색으로 바싹 마른 모습. 낙엽들은 마치 오랜 이야기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여명의 산속은 아늑했다. 바람도 쉬는 것 같았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흙길. 아득한 것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파스텔 풍경이다. 나무숲 사이로 고운 색깔이 언뜻언뜻 보인다. 단풍 빛이다. 간밤에 몰래 물들였을 것이다. 숲속에 맑은 햇살이 퍼지자 푸른 잎 가운에 핀 꽃송이처럼 그렇게 화사할 수가 없다. 풀벌레도 감탄했는지 찌륵찌륵 목청을 돋우며 정적을 깬다. 저 멀리에서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중의 쓸쓸함과 정겨움이 동시에 와락 밀려온다. 언제 이런 풍경을 또 볼 수 있을까 싶어, 숲길은 길었지만 아껴가며 걸었다. 따로 정해놓은 목적지가 없으니 걸음이 이렇게 방만할 수가 없다. 발길 닿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걸었다. 걷다가 나도 모르게 낙엽 하나를 줍고 있었다. 마음도 어느덧 정처 없는 낙엽처럼 가을앓이를 한 탓일 게다. 메마른 걸 보니 여름날 그 지독한 장맛비에 잔가지와 함께 산화한 낙엽일 것이다. 마른 입살 안에 힘줄처럼 갈래갈래 뻗은 관다발의 잎맥이 어쩜 숲길을 빼닮았을까 싶다. 한 가운데 잎맥을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수 개의 관다발이 뻗은 숲길 모양. 낙엽은 이런 길의 원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샛길을 빠졌더라도 종내 한 가운데 길에서 만나는 것을. 사람의 만남이라는 것도 이런 궤적을 그리려는 본능이 꿈틀거린다. 만남 하나하나가 그래서 소중하다. 허투루 할 일이 아니다. 만남의 길에서 사랑이 묻어오고, 사연이 묻어오고, 희로애락이 묻어오고, 추억이 묻어오는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순간들을 만들고, 가꾸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낙엽에는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뒤안길만 있는 게 아니다. 희망이라는 언어가 숨 쉰다. 잎을 떨군 그 가지에 따스한 봄날 새싹을 틔울 것이라는 기약이랄까. 낙엽이 앙탈을 부리지 않고 내려오는 까닭일 것이다. 앙상한 가지들이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는 것도 그런 언덕이 있음이다. 사람들이 사색하며 걷는 것도 따분한 굴레와 번뇌를 떨궈내고 새로운 동력을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울긋불긋한 단풍 길을 걷는 것은 그 변화하는 색감을 느끼고자 함일 것이다. 길은 희한하게도 지루하거나 싫증나지 않는다. 코스모스길이든, 억새풀길이든, 가로수길이든, 숲길이든 계절따라 풍경이 다르거니와 걸을 때마다 매번 다른 생각의 지도를 그리게 하기 때문이다. 걸어온 길만큼 아기자기한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것이다. 길은 한 번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지만 걷는 의미를 깨우쳐주었다. 소슬한 바람결에 낙엽이 흩날리는 가을의 숲길. 햇살이 저만치에서 그림자 하나씩을 이끌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따사롭게 덮어주고 있었다.

2017-10-18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모래밭의 가을편지

해는 크게 둥글어가고 있었다. 받아 안을 듯 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았던 때가 또 있었던가. 가을이 깊어가는 해질녘의 고즈넉한 서해안 대천해변. 그 모래밭 한복판에 오도카니 앉아 바다 위에 떠 있는 해를 바라보다가 탄성을 질렀다. 벌거벗은 마음은 벌써 풍덩! 수평선 끝자락에 달려가 있었다. 물결치자 그 이글거리던 황금빛 노을이 해변 가장자리까지 밀려와서는 황홀하게, 아늑하게 가슴을 적신다. 낙조가 왜 위로가 되고 휴식이 되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다. 호젓한 가을바다! 그 황혼의 무대에서 동화 속 주인공마냥 모래밭을 거닐다 또 하나의 감탄사를 만났다. 석양빛에 요철이 도드라져 보이는 황금 낙엽들. 잎사귀처럼 생긴 발자국, 알고 보니 갈매기들의 맨발 자국이다. 드넓은 모래밭이 온통 황금 낙엽을 수놓은 카펫 같다. 놀랍다. 언제 그 많은 발자국을 남긴 것인가. 저만치 갈매기 떼가 뒤뚱뒤뚱 낙엽을 연신 찍어내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모래밭과 그 주변의 바다 자연을 지키려는 원초적 몸짓인지도 모른다. 원시의 모래밭. 그곳을 스쳐갔을 발자국들을 떠올려본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저 아득한 태고적 해변을 사박사박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더듬어본다. 조상들이 남긴 발자국 위로 숱하게 겹쳐졌을 후손들의 발자국들을. 오래된 발자국은 들숨날숨 날름거리는 파도에 의해 지워졌고, 사람들은 그 때마다 새 발자국을 새겼다. 바다는 그 상흔을 고운 모래로 살포시 감싸주기도 했지만, 때론 모래톱을 휩쓸고 갔다. 그랬다. 사람들에겐 바다는 세파의 흔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팍팍한 마음의 발자국을 지우려 바다로 달려가곤 했다. 청춘들은 그랬다. 하얀 모래 종이에 발자국을 꾹꾹 눌러 편지를 썼고, 파도가 읽고 지웠다. 그럴 때마다 갈매기들이 힐긋 쳐다보곤 했다. 청춘들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바다를 통해 흘려보냈다. 더러는 수평선 너머 섬마을에 있을지도 모를 짝에 대한 막연한 설렘으로 바다를 향해 온몸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면 건너 섬마을 누군가의 애끓는 사연이 바다를 통해 밀물져왔다. 청춘남녀가 유독 해변 가장자리 물길을 따라 거니는 건 발자국을 찍고 지우면서 자신의 마음을 투영하고 싶어 함인지도 모른다. 섬마을 청춘들은 저 바다가 육지로 변신하는 신통력을 부려줄 것을 학수고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더라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이란 노랫말이 공전의 히트를 친 시절이었다. 청춘의 바다는 마음의 바다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 이후 꿈결 같은 오작교들이 속속 세워졌고, 청춘남녀의 사랑이 꽃폈다. 석양만 감상하겠노라고 바닷가에 앉았지만, 애초에 가슴 밑바닥에는 그런 생각이 없었는지 모른다. 그저 오랫동안 시간 모르게 앉아 있고 싶었다. 바다는 그러나 몸 색깔을 표출해 밤이 깊어 감을 알려주고 있었다. 검푸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선이 어떤 곳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된다. 하늘이 가깝게 느껴질 뿐이다. 물바람이 코를 스친다. 확 밀려오는 소금냄새를 맡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과 별 그리고 자우룩이 나는 갈매기가 추억 한 장을 담아낸다. 물바람에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이다. 기다란 호흡으로 넘실거리는 파도. 밤바다는 잠잠하고 고요했다. 허연 잔물결이 조신하게 다가와 모래를 적신다. 고단한 발자국들을 지운다. 찌든 감정의 찌꺼기들이 조각조각 부서진다. 모래알을 만지작거리는 물결소리가 웅숭깊고 보드랍다. 물결마다 호흡이 묻어 있는 것이다. 시월의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가을바다는 그렇게 농익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주는 진정한 행복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2017-10-11 08:00:37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덤의 행복

동네 전통시장이 벌써부터 달떴다. 추석 대목! 점포들이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장터 안이 수런댄다. 매대에 앉은 성수품들은 나 어떠냐고 고개를 드민다. 비좁은 통로를 오가는 손들도 왁자하다. 그 북적거리는 이맘때면 내 오랜 기억의 아래층에 쟁여둔 삽화 한 장을 끄집어내곤 한다. 흥정이 있고, 덤이 풍성하고, 정이 꽃피는 시골장터. 그 따스한 장터의 갈피들이 세태 변화의 와류 속에 혹여 색 바랜 건 아닐까, 시장 한 복판을 지날 즈음 이런 조바심이 일었다. 그러나 콩나물 앞에선 쓸데없는 기우다. 세상 셈법이 냉정하게 다 바뀌어도 콩나물에는 그 때 그 시절의 인심이 물씬 묻어난다. 한 옴큼 집어서 덤으로 얹어주는 할머니의 손마디엔 여전히 그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던 거다. 차라리 콩나물이 손가락 틈새로 흘러내렸더라면, 그래서 따뜻한 마음만 덤으로 받았더라면 할머니의 손이 저토록 주름져 보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굴곡진 할머니의 손마디에서 계산속이 빠른 세파에 착하게 맞선 고단한 흔적이 읽힌다. 콩나물의 덤은 거저 조금 더 얹어주는 단순한 인심이 아니다. 고부가가치가 숨쉰다. 살맛나게 하는 이만한 동력이 또 있을까. 콩나물의 덤은 사람과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매개체며, 어릴 적 동화를 들려주는 이야기보따리며, 때론 장바구니 물가의 깊은 시름을 위로해주는 경제교과서다. 콩나물도 마음이 담기면 귀한 보석이 되는 걸까. 초라하지만, 콩나물은 세파에 닳아도 우리네 인심만큼은 든든하게 지켜온 버팀목이었다. 장터는 콩나물이 있어 늘 따스하다. 그러고 보니 콩나물은 타고난 본성이 착하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어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 인고가 갸륵하고, 포용이 기특하기까지 하다. 희망을 품고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요 이상의 물을 탐하진 않는다. 물욕이 없음일까. 경쟁이 치열한 지구촌의 축소판 같은 콩나물 군락은 언제 보아도 옹기종기 평화롭다. 아, 저 질긴 진통과 세월 속에 평온을 잃지 않는 콩나물이 또 하나의 덤을, 가르침을 얹어주는구나!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는 진정한 덤의 값어치를 간파하고 있었다. 덤을 얹어줌으로써 외려 얻게 되는 행복한 덤을. 손님들의 미소를, 기쁨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베풂의 뿌듯함을. 덤을 주고 덤으로 얻는 행복! 할머니는 그걸 깨닫고 있었다. 콩나물에는 이심전심의 유전자가 흐르고,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라 작고 조촐한 기쁨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정성이라는 덤을 얹힌 음식을 맛있게 먹는 아이를 쳐다보는 엄마의 표정을 보라.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를. 시루 안에서 꼬물거리는 콩나물을 보면 악보의 음표들이 춤을 춘다. 그 음표에는 삶의 애환을 담은 노랫말이 스며있을 것이다. 콩나물의 덤에서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덤은 화롯불처럼 따스한 온기를 은근히,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는 게 그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거죽만 뜨겁고, 따스함이 마음속까지 전해지지 않는 어설픈 덤은 감동적이지 않다. 왠지 모르게 세상엔 공짜란 없다는 뒤끝이 꿈틀댄다. 범속한 계산이 깔려 있음이다. 내 기억의 한가위 삽화에는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떠 있다. 달이라는 게 참 묘하다. 따스한 가슴으로 바라보면 달빛이 그렇게 온화할 수가 없다. 달빛에 무슨 무게가 있을까 마는, 분위기에 따라 달빛의 무게가 다르게 보인다. 달빛은 마음의 거울인 것이다. 나물의 감초격인 콩나물의 덤이 이번 한가위 달빛을 부드럽고 화사하게 해줄 것이다. 인심이 풋풋한 감동 이야기에 흐뭇해하는 달의 표정이 보이는가? 동산 위에 떠오른 내 기억의 달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2017-09-27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청년창업 37.5도] 창업 1번지, 판교의 스타트업들 (1)온라인에서 최신 IT기술을 배운다 '인프런'

[청년창업 37.5도] 창업 1번지, 판교의 스타트업들 (1)온라인에서 최신 IT기술을 배운다 '인프런' "IT 분야에서는 새로운 기술이 계속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 종사자들이 일하면서 새 기술을 습득할 인프라가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판교 경기문화창조허브에 입주해 있는 인프랩(InfLab)의 이형주 대표는 '인프런(Inflearn)' 서비스를 내놓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인프런은 IT 분야에 특화된 온라인 지식공유 플랫폼으로 현업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만든 수준 높은 교육 콘텐츠들이 올라와 있다. 현재 6만여 명의 회원들이 비용을 내고 이 콘텐츠들을 이용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이 대표는 IT 분야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학원 교육비 부담에 4년 전에야 웹 개발자로 일하게 됐다. 꿈은 이뤘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늦은 나이에 출발한 까닭에 자신을 더욱 성장시킬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 자신을 이끌어 줄 선배나 좋은 프로젝트를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미국의 유데미(Udemy)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다. 유데미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IT 기술 교육 플랫폼이다. 이 대표는 유데미로 독학하면서 한국에도 비슷한 서비스가 있다면 자신처럼 배움에 목마른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프런의 목적은 누구나 원하면 IT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인터뷰를 간추린 것이다. -인프런 서비스란? "IT 기술에 특화된 온라인 지식공유 플랫폼이다. 인공지능, 머신러닝, 웹 제작, 앱 개발, 온라인 마케팅, 3D, 모바일게임 제작 등의 분야에서 실제 현업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제작한 양질의 교육 콘텐츠를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 10개월정도가 지났는데, 현재 6만여 명의 회원이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순도가 매우 높은 회원들이다. 실제 비용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들이 많다는 의미다. 콘텐츠 이용료는 콘텐츠 게시자가 정한다. 무료인 콘텐츠를 비롯해 이용료는 제각각이다." -다른 교육 서비스와의 차이점은? "4차산업혁명시대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 IT 신기술에 대한 수요는 무척 크다. 현재 우리나라의 IT 직업교육은 오프라인 교육이 대부분인데 사설학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한달에 몇백만 원씩이나 해서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반대로 수업료가 싼 곳은 수업의 질이 기대하는 수준에 너무 못미친다. 10년전 제가 비용 부담 때문에 IT 직업 교육을 포기한 때랑 나아진 게 없다. 저는 대학 시절, 다른 분야 전공자라 학원에서 배워 IT 분야에 취업하고 싶었는데 대학 등록금 수준의 학원비로 인해 포기했다. 4년전에야 웹개발자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에 온라인 지식공유 플랫폼이 있기는 한데 IT 기술에 특화돼 있지는 않아 이 분야 종사자들의 기대수준에 못미친다." -인프런 서비스를 시작한 계기는? "미국에는 유데미(Udemy)라는 서비스가 있어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저도 여기서 많이 배웠다. 유데미를 통해 배우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말로 된 콘텐츠가 있다면 누구나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1년 10개월 동안 서비스를 한 결과, 우리사회에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방에 있는 회원 한 분은 '앱 개발을 배우고 싶었는데 지방이라 기회가 없었다. 인프런을 통해 내 꿈을 이룰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IT회사 신입사원인 회원 한 분은 '새로운 지식을 얻고 싶어도 제대로 얻을 곳이 없었는데, 인프런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회사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했다. 인프런 서비스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경기문화창조허브에 입주한 이유는? "창업을 할 때 장소가 주는 이점이 있다.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규칙적으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허브에 입주하면 사무실 비용 부담이 없다. 여기에 더해 교육 프로그램, 네트워크 프로그램, 피칭행사가 많아서 큰 도움이 된다. 홍보나 사업 노하우 등에 대해 많이 배운다. 이곳에서 피칭행사가 있을 때면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서비스나 제품을 홍보하는지 보고, 벤치마킹하기도 한다. 저희 팀원들도 최신기술에 대한 교육프로그램을 자주 이용한다."

2017-09-24 17:07:06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들녘에도 흥은 있다

신명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잔치가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이웃 간 얇아진 정(情)을 잔치를 통해 두텁게 일궜고, 동구 밖 마을과의 골 깊은 갈등의 벽도 잔치를 통해 허물었다. 잔치는 들녘을 기름지게 하는 물꼬였으며,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소통의 장이었다. 건너 마을 사람들에겐 새로운 만남과 이벤트를 기약하는 갈망이었다. 삶이 버거울 때 사람들이 잔치마당을 기웃거리는 까닭은 그 질긴 질량을 들끓는 설렘의 용광로에 연소하고 싶음에서다. 먹고, 마시고, 춤추는 잔치! 사람들은 그랬다. 잔치에 자신을 투영해 세속의 더께에 접어뒀던 흥의 날개를 한껏 펼치고자 했다. 흥이란 그 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화수분이기에 잔치판이 벌어지는 마을마다 신명이 났다. 사람들은 거기에 스토리를 입혀 기적 같은 전설을 꽃피웠다. 크고 작은 잔치를 통해 마음을 텄고, 길을 텄으며, 장터를 열었던 것이다. 잔치는 사람을 구별하지 않았다. 모두를 껴안고 포용했기에 결집력은 강했고, 흩어졌던 마음들이 하나로 모아졌다. 그 마을잔치가 축제라는 이름으로 흥행하고 있다. 전국의 축제는 줄잡아 2천여 개. 엊그제 사람들은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펼치는 명인의 줄타기 구경에 푹 빠져 있었다. 마을은 축제 분위기에 들떴다. 허공의 외줄 위로 사뿐 올라 아슬아슬 묘기를 부리는 명인의 몸짓. 그는 파란 가을 하늘의 나비였다. 산들바람 한 점이 살랑거렸다. 가느다란 외줄은 흔들거렸다. 그도 흔들거렸다. 모두가 흔들거렸다. 이런 걸 두고 생각과 행동이 하나 되는 혼연일체라고 했더랬다. 축제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일까. 명인은 외줄에서 박차 올라 점프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번엔 양반다리로 앉은 자세에서 펄쩍 앞으로 나아간다. 묘기는 극적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관람객을 들었다 놨다 했다. 줄 위에서 무릎으로 빠르게 걷는 장면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풍물패의 장단에도 흥이 돋아났다. 축제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줄타기 공연에는 스릴 넘치는 곡예만 있는 게 아니다. 풍자와 유머, 해학도 곁들여진다.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만발했다. 외줄을 건너는 명인의 몸짓에서 소통하는 세상을 본다. 허공에서 한 발짝씩 걸음을 뗄 때마다 소통의 눈금이 점점 또렷해지고 촘촘해지는 신기루를 본다. 공자는 일찍이 이렇게 설파했더랬다. 가까운 곳의 사람들이 즐거우면 멀리서 사람들이 오게 돼 있다고. 그랬다. 흥이 넘치는 축제마당이라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달려왔다. 여행과 관광, 그리고 이벤트가 믹스된 퓨전축제!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 즐길거리 등의 흥행 요소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여서일까. 가을축제의 향연은 저 스스로를 설명하려 나서지 않아도 풍성한 이벤트를 말하고, 넉넉한 마음을 말하고 있다. 풍성하고 넉넉한 곳에는 사람들이 들썩거린다. 정감이 넘실거린다. 가을이라는 간판을 내건 축제가 유난히 많은 까닭일 것이다. 주제와 내용은 저마다 기발하고, 규모와 성격도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마음을 달뜨게 하는 본질은 똑같다. 비록 내용이 허접할지언정 한데 어우러져 흥을 돋우고 교감하려는 태생적 본능이 꿈틀거린다. 사람들은 그 본능적 흥을 발산하려 끊임없이 축제를 갈망하는지도 모른다. 이 축제의 계절, 마음속에 한 폭의 축제 풍경화를 그려본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녘. 화사한 햇살이 날개를 펼친다. 바람이 일렁이자 누렇게 수놓은 그 무대 위에서 벼 이삭들이 춤을 춘다. 그 춤추는 흥을 형형색색으로 입혀본다. 이 가을 이런 풍경화를 그려보는 건 저 신성한 자연의 흥과 호흡하고 싶음이다. 화폭에 큰 창문이 있다면 커튼을 걷어놓고 들녘을 가까이 불러놓겠다.

2017-09-20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느린 우체통의 경쟁력

하늘이 푸르게 저렇듯 높아졌다. 구불구불 오르는 길도 정겨워라. 모퉁이 숲을 굽이쳐 돌아 나가는 올망졸망한 길들이 리드미컬 경쾌하다. 서울 도심에 이런 한갓진 드라이브 코스가 있었나 싶다. 북악 스카이웨이. 산그늘이 짙게 내려서일까. 북악산 자락은 가을빛이 또렷했다. 연초록이 엷어져가는 숲마다 소슬하다. 나뭇잎들의 춤사위도 그 뜨겁게 작열하던 여름철 자태가 아니다. 슬로우 스텝으로 너울거리며 반짝거린다. 자동차들도 덩달아 느릿느릿 완보한다. 그렇게 들른 곳이 북악산 팔각정! 전망대에 올라서면 또 한 번 놀란다. 산 아래로 두 판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완만하게 뻗은 산 앞쪽으로는 첨단 파노라마. 회색빛 빌딩과 아파트들이 빼곡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는 넓혀지고 치솟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파른 뒤쪽 아래 마을은 초록색 숲속에 아기자기한 집들이 들어앉은 모자이크 같은 그림이다. 표정은 그래서 극적이다. 앞쪽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리는 반면 뒤쪽은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이다. 번잡하게 돌아가는 거대한 도심과 전형적인 작은 산골. 한 지붕 아래 서울이면서 어쩜 이렇게 풍경이 다를 수가 있을까? 팔각정 전망대에 동그마니 앉아 있는 '느린 우체통'이 속도 만능주의 시대에 느림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물음을 던진다. 애틋한 사연을 담은 편지를 행선지까지 느릿느릿 전달해준대서 붙여진 '느린 우체통'. 도착하는데 1년이 걸린다니, 촌각을 앞다퉈달라고 몹시도 보채는 첨단유행 입장에선 이런 미련 곰탱이가 없을 거다. 그 느림보 우체통은 나직이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느리게 산다는 건 빛의 속도로 질주하는 시대에 조바심과 성급함에서 놓칠 수 있는 모자람을 채우는 작업이라고. 열띤 경쟁 속에 앞만 보고 달리느라 허기증을 느꼈을 사람다움 삶을 얼마만큼 가꾸었는지? 그 길게 늘어난 세월의 뒤안길을 한번쯤 되돌아보라고 마음의 창을 노크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피드 시대에 노출되는 모자람은 어쩌면 펜을 꾹꾹 눌러가며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절로 채워지는 건 아닐까. 이 스산한 계절, 어딘가 응시하는 듯한 우체통이 처연하다. 젊은 날 각인된 우체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공연히 마음이 설렜다. 먼 데서 누군가가 보낸 사연을 품고 있을 것만 같았다.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래려 달을 쳐다보곤 하던 그 시절, 우체통은 마음의 고향 같은 것이었다. 어쩌다 거리의 우체통을 마주치면 막연한 기다림으로 서성거리곤 했다. 초를 다투며 전달되는 디지털 메모지가 없던 그 시절, 사람들은 편지를 쓰며 느림과 기다림의 정서를 배웠다. 속도가 곧 경쟁력으로 통하는 세상. 편지가 느림보라고 해서 구시대 유물이 아니다. 느림이 빚어내는 따스한 감성 가치가 살아 숨 쉰다. 꼭꼭 봉해진 편지를 뜯을 때의 설렘을 생각해보라.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써내려간 손 글씨는 또 어떤가. 글씨체가 비뚤배뚤해도 행간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표를 붙이고, 마음을 담아 우체통에 넣었을 편지. 단 몇 줄의 내용일지언정 울림은 크다. 굳게 닫힌 마음을 열게도 하고, 고단한 삶을 한 순간에 녹이기도 한다. 동네 우체통도 처연한가 싶어 눈길이 자주 간다. 그런데 뜻밖이다. 우두커니 선 채 빼꼼히 얼굴만 내미는가했더니 매일 편지 물량이 들어온단다. 하루 평균 열댓 통은 된다며 우체국 집배원이 환하게 미소 짓는다. 느림의 가치가 꿈틀거림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온통 빠름이 미덕인 시대에 반짝거리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노라고 다짐하는 어느 유행가 가사가 굳이 펜을 건네지 않더라도 고즈넉한 가을의 향기를 담은 편지를 꼭 써야겠다.

2017-09-13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나를 위로하는 시간

어디 목적지를 정하고 걸은 건 아니었다. 어스름이 내리던 시간, 나는 불빛을 적시며 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친구와의 약속이 미뤄지는 바람에 발길을 돌리려다, 기왕 나선 길이니 무작정 걷기로 작정했던 터다. 모처럼 배회하는 밤거리. 가로수들이 한가로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나도 그랬다. 바람은 차고 스산했다. 그런데 가슴이 설레는 건 왜 일까. 그럴 만도 했다. 학창 시절, 불빛을 그리워하며 정처 없이 떠돌던 거리였기에 가슴 벅찼을 것이다. 문득 어느 한 포장마차가 떠올랐다.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 때론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추억을 담아오자고 생각했던 곳이다. 마음이 허기증을 느끼던 내 젊은 날, 초가을의 삽화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포장마차다. 낱잔으로 팔던 대포 한 잔에 뜨끈뜨끈한 오뎅 하나면 마음이 넉넉해졌다. 어쩌다 국물 속에 큼직한 무 한 토막이 얹어지면 푸짐한 안주가 되곤 했다. 술이 한 순배 돌면 마차 안은 한 가족이 됐다. 나는 그곳에서 추억을 마실 참이었다. 그러나 그 포장마차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카바이드 등(燈)의 흔들리는 불빛을 따라 내 젊은 날의 희로애락이 물결치던 그 흔적은 없었다. 자우룩하게 피어올랐던 그 불빛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허전해지는 가슴을 감싸주는 체온과도 같았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그 따스했던 불빛을 찾을 수가 없다. 대신 길 저편에 실내 주점이 가을바람에도 끄떡없는 형광등 불을 훤히 밝히고 있었다. 그 눈부신 불빛 아래 나는 그 때 그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마셨다. 계절 탓인가. 어째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족이 눈에 띄게 많다. 그러고 보니 작은 탁자들이 여럿 있다. 요즘 흔한 풍경이라니 술 문화 패턴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모양이다. 그 당시 어지간해선 혼술하기가 힘들었다. 바라보는 시선이 유난했다. 뜸하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길손을 보면 무슨 큰 사연이 있는 양 색안경으로 봤다. 모두가 그런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멀쩡할 수야 없지 않은가. 마치 실연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소주잔을 비우고 또 비웠다. 내 추억의 포장마차는 혼술족의 아지트였다. 거기엔 외로움을 받아줄 정감이 넘실거렸다. 술보다 낭만을 마셨다. 지금은 그런 포근한 포장마차는 없다. 그래서일까. 홀로 기울이는 술잔마다 쓸쓸함이 묻어난다. 출렁거리는 술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누군가 잔을 비우면서 저 세렝게티 초원의 한복판에 홀로 서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들려줄 사람도, 받아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혼술이다. 혼술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다독거리고, 사투와 인내의 흔적이 보이는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더러는 허공을 응시하면서. 술잔에는 오늘과 어제만 있는 게 아니다. 차분히 내일을 설계하는 시간표도 담겨 있다. 미래의 시간표에는 마음껏 날 수 있는 날개가 있다. 설령 공상할지언정 이 번잡한 일상에서 그런 시간을 어디서 덜어줄까 싶다. 나를 위로 하는 시간! 그랬다. 나는 어제와 오늘, 내일을 넘나들며 나를 위로하고 있었던 거다. 번민을 지우고, 아린 가슴을 달래고, 삶의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혜를 하나하나 일군 시간들. 그래서 일상의 갈피마다 인내하고 최선을 다하도록 북돋운 거름의 시간들. 저 아련한 추억의 포장마차가 그리워지는 건 현재를 있게 한 그때의 시간들을 쓰다듬으며 포옹하고 싶음에서일 것이다. 나는 그 보석 같은 시간들을 되새기며 불빛 적신 거리를 걷고 있었다.

2017-09-06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지하철의 가을 풍경화

벌써부터 가을을 타는 걸까.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면 까닭모를 공허함이 밀려든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바통 터치가 한창이던 저물녘, 나는 그 환절기를 피해 지하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지하철도 그 공허함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무성격(無性格) 계절이라는 환절기! 여름인지, 가을인지 헷갈린다. 당장 천장의 에어컨이 힘들 게 생겼다. 여름과 가을,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그 착한온도를 추적하며 연신 내뱉는 에어컨 바람이 허탈하다. 그 황금비 찾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거니와 같은 사람이라도 하루 일과를 연소하는 부피에 따라 그때그때 체감온도가 다른 것을. 오락가락하는 환절기의 몸짓. 차창 너머로 스치는 실루엣을 바라보며 이런 삽화를 그려본다. 지하철 속에는 사계절의 사연들이 다 있을 거라는, 그래서 맑고, 흐리고, 개고, 때론 비바람이 불고, 그 뒤에 찾아오는 화창한 삶의 무늬들이 그려진 삽화. 지하철에는 다양한 삶의 기상도(氣象圖)가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그래서다. 지하철에 오르면 삶이 실감난다. 저마다 짊어진 삶의 밀도가 앉아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거나, 스마트폰에 열중하거나, 책을 읽거나, 신문을 들여다보거나, 차창으로 보이는 자신을 응시하며 행선지를 향해 달려간다. 그 모습 이면에는 나름의 꿈과 희망이 배어 있다. 종점을 향해 내닫는 지하철의 모습은 삶의 궤적에 다름 아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 사이 지하철은 서너 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졌다. 왁자지껄도 잠잠해졌다. 침묵은 잠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천장의 스피커가 돌연 정적을 깨고 위안의 말을 건네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힘들지 않았느냐며 가라앉은 기류를 환기시키더니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비행기 기장의 말투! 순간 비행기에 탑승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뻔 했다. 사람들은 신기하다는 듯 귀를 쫑긋거렸고, 더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짧고 명료한 멘트였기에 여운은 길었다. 고단한 사람들에겐 따스함이 밀물져 왔을 것이다. 정말 뜻밖인 것은 이런 깜짝 친절들이 널렸는데도, 우리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는 점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범속한 일상에 묻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마운 친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호젓한 갈림길에서 만나는 안내 표지판, 대형마트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카트를 잡아주는 아르바이트생, 보도 위의 껌을 떼어내는 환경미화원, 문을 열어주고, 닫히려는 문 잡아주기 등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 수고로움의 가치를 부여할 틈조차 없이 부지불식간 스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래서 묻게 된다. 서비스를 받는 것에 너무 중독된 탓에, 혹여 친절에 대한 가치판단이 무뎌진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면 복원할 수 있을까? 혹자는 말한다. 친절을 베푸는 법부터 배우라고. 그 출발은 베풀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포착하는 것에 있다고 일러준다. 그런 눈과 가슴을 가지라는 것인데 안내 표지판으로 서 보고, 커트를 잡아주고, 껌을 떼는 마음이 되어 보라는 얘기일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친절이란 외투를 입으면 세상에 참 곱고 아름다운 시간이 찾아오리라 생각했다. 사랑이 담긴 친절들은 그런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역을 나와 동네로 들어가는 초입. 공원의 넓은 빈터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하나의 친절이 여름 봉사활동을 막 끝내고 철수하고 있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나절엔 그늘막이 돼주었고, 장마 땐 비가림막 역할을 해줬던 천막. 그 고마운 천막이 석양빛을 모로 받으며 하염없이 걷히고 있었다.

2017-08-30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옥수수가 삶을 말하다

그 많은 여름철 먹거리 중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름을 올리는 게 있다. 갓 쪄낸 옥수수! 탱글탱글한 누런 알맹이들이 쫄깃쫄깃 차진 식감이 여간 아니다.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배어난다. 먹는 방식도 변한 게 없다. 우두둑 뜯는가 하면, 한 알 한 알 톡톡 떼어 알알이 감칠맛을 느끼기도 하고, 더러는 알맹이들을 손바닥에 모아 한입 가득 털어 넣곤 한다. 찐 옥수수 하나로 이렇게 입맛 당기는 대로 원초적 별미를 즐길 수 있는 먹거리가 또 있을까 싶다. 계절은 벌써 입추(立秋)를 지나 초가을을 노크하고 있음일까. 여름 장마가 못다 한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비에 씻긴 산들바람이 스산하다. 이런 계절의 변주곡이 번지던 엊그제, 왜 옥수수가 그토록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장맛비 내리던 어느 여름날이었을 것이다. 처마 밑에서 뜨끈뜨끈한 옥수수를 후후 불어가며 먹던 추억이 자꾸 겹치니 말이다. 비 오는 여름 끝자락에서 맛보는 농익은 옥수수에는 이런 향수와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렇게 해서 아내와 함께 서성거린 곳이 동네 전통시장. 찰옥수수는 솥단지 위 쟁반에 앉아 허연 김을 모락거리며 추억의 냄새를 저만치서부터 풀고 있었다. 노릇노릇한 게 침이 절로 괴었다. 하지만 정작 손에 들린 것은 찐 옥수수가 아니라 껍질이 달린 생 옥수수였다. 그것도 한 자루씩이나 사게 된 건 좌판 위에 수북한 자루 더미의 일각을 처리해주고픈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다. 껍질을 까서 솥에 쪄내는 수고로움을 들여 옛 향수를 온전히 맛보기 위해서였다. 잘 익은 옥수수. 베란다 통유리 밖 빗줄기를 바라보며 뜯는 건 또 다른 별미다. 빗방울 구르는 처마 밑이었다면 더욱 낭만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추억의 옥수수는 늘 한 정물화로 남아 있다. 소쿠리에 담긴 옥수수! 이런 풍경을 담은 옥수수를 만나면 잊고 지내던 예전의 시간들이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학교 급식으로 옥수수 빵이 나온 시절이 있었다. 누런 옥수수 가루가 씹힐 정도로 식감은 거칠었지만 얼마나 고소하고 맛이 있었던지. 모양과 크기는 요즘의 식빵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다섯 개의 빵 덩어리가 붙은 구조였다. 그게 문제였다. 급식 시간 때마다 빵 한 줄에 다섯 명이 매달렸다. 교실은 들썩거렸다. 덩어리째 손대중으로 쪼개다보니 모양과 크기가 제멋대로 나왔다. 옆쪽 빵 귀퉁이가 딸려오는가 하면, 반대로 뜯겨나가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이 쪼개주기도 했지만 희비가 엇갈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청소 당번을 서면 하나가 더 얹어졌다. 교실 바닥은 마루였지만 늘 청결했다. 번쩍거렸다. 옥수수 빵이 그리워지는 건 그 거칠고 투박했던 추억의 맛도 맛이거니와, 오순도순 나눠먹던 정감어린 장면이 일렁거려서다. 빵이 많이 묻어 간 쪽에서 덜 간 쪽에 떼어주는 나눔! 7080세대의 시골 초등학교에선 옥수수 빵을 통해 나눔을, 아니 도덕을 배웠다. 나눔이 던져주는 부피는 컸다. 빵 한 조각엔 천상의 맛을 품고 있었다. 몇몇 친구들에겐 눈물 젖은 빵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하지만, 가슴 저변에 애잔함이 물결친다. 사람들은 그래서 맛있는 게 생기면 누구에게 주면 얼마나 행복해할까,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따금 몇몇 이웃과 간식거리를 서로 나눠 먹곤 한다. 시장에서 사온 옥수수며, 부침개며, 제철 채소가 대표 메뉴다. 일전에 이웃의 따스한 정이 가득 담긴 찐빵이 향수를 자극하며 삶의 무게와 속도를 잠시 내려놓게 해주었다. 소쿠리에 담긴 누런 옥수수는 살맛나는 삶을 향유하는 방법이 뜻밖에도 이렇게 단순하고 가까운 데 있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2017-08-23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종이지도가 말을 걸어오는 까닭은?

길을 잘 못 들어서자 내비게이션이 냉큼 경로를 재탐색하겠다고 목청을 돋운다. 길을 나설 때마다 듣는 이런 잔소리도 이젠 이골이 나서 그러려니 하지만 때론 핀잔으로 들리곤 한다. 그 상냥하고 친절한 길 안내를 핀잔으로 느낀다는 건 어쩌면 편리함에 길들여진 내 의식에 가하는 죽비소리를 듣고 있음일 것이다. 생소한 그 어떤 낯선 곳도 용케 길목을 짚는 영리한 내비게이션도 늘 길 공부를 해야 한다. 새로 생긴 길들을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일전에 그랬다. 내비게이션이 그토록 추천하던 길을 가다 헤맨 적이 있다. 뜬금없이 어느 으슥한 골목 안으로 재촉하기에 지름길을 안내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웬걸 막다른 골목. 내비게이션도 헷갈릴 때가 있구나 싶어 되돌아 나오니, 세 갈래의 선택지가 답을 기다리고 있다. 이중 어디로 갈까? 애타게 묻고 있었지만 내비게이션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통밥 굴러 알아서 가라는 얘긴가. 개중 민틋한 길을 선택해 들어서는데 그제야 경로를 재탐색하겠단다. 이번엔 우회전하란다. 뭔가 큰 길이 있나 싶었는데, 꾸불꾸불 이어지는 논길이다.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뒤를 돌아보니 초입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집들도 저만치 아득하게 가물거린다. 그야말로 안개 속이다. 이 와중에 내비게이션은 구겨진 체면을 바로 세우겠다는 건지? 한 길만 고집한다. 번번이 엉뚱한 시뮬레이션 길 안내를 띄워놓고선 골목을 돌고 또 돌게 한다. 뒤늦게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가동하려니, 한나절 진땀을 뺀 배터리가 잠자고 있다. 논두렁 할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오지의 미로에 갇혔을 것이다. 꾸부정한 할아버지는 망망대해에서 깜빡거리는 키 작은 등대 같았다. 너무 반가웠다. 종이에 비뚤비뚤 길을 그려주셨다. 그 복잡다단한 고차원 방정식의 미로를 이해하기 쉽도록 간명한 길로 풀어놓은 종이지도! 감사의 절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석양에 타는 황홀한 저녁놀과 들녘, 바람 따라 물결치는 숲, 주름진 얼굴로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를 담아낸다. 할아버지의 손때 묻은 종이지도가 그토록 고마웠던 건 길 안내 때문만은 아니다. 종이지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첨단기기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이런 물음을 던져서다. 굽이굽이 삶의 길목에서 길을 잃고 배회할 때 인생좌표를 밝혀줄 내비게이션 하나씩을 갖고 있는가? 희망을 품고 달리는 인생행로에 올바른 이정표를 안내하고, 조언하는 내비게이션 말이다. 그 인생좌표 내비게이션은 부모가, 스승이, 지혜로운 책이 될 수 있다. 종이지도는 또 묻는다. 편리한 타성에 젖어 혹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도전적 야성이 퇴화되고 있지 않는가? 내비게이션이 없었던 시절, 낯선 여행길에 나설 땐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가슴 설렜다. 오지에선 도로지도책은 나침반이었다. 너덜거리는 지도책 한 권으로 보물찾기하듯 시골길을 누비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때론 물어물어 지도에 없는 새로운 길과 먹거리, 볼거리를 개척하곤 했다.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나름 내 의지대로 움직이는 길이 있었던 거다. 인생행로는 결국 방향이다. 그 기로에서 후회 없는 삶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더러는 착오를 줄일 때까지 길을 개척하는 이른바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그것은 저만의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가치를 발견하고도 갈고 닦는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는다면 골목길을 배회하며 경로 재탐색 타령만 하는 인생좌표에 다름 아니다. 인생좌표란 변화무쌍한 세상 삶에 설정돼 있기에 표류하지 않도록 열정을 다해 굳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2017-08-16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
기사사진
[김주식의 세태 만화경]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소금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녘, 동해안 해변은 고즈넉했다. 새벽 바다라고 해서 잠자는 건 아니다. 짙푸른 파도가 허연 거품을 물고 줄줄이 밀려온다. 하늘과 맞닿은 저 수평선 끄트머리에서 숨 가쁘게 달려왔을 파도. 그곳에서 무슨 기별이라도 갖고 온 걸까? 부서지는 파도가 찰랑찰랑 해변에 오래 머뭇거린다. 싸악 쓸고 지나간 모래밭엔 발자국 하나 없다. 얼마나 오랜만에 맨발로 거닐어보는 새벽 해변인가. 바닷물을 흠뻑 머금은 모래알들이 발을 감싸며 사박거린다. 일상을 훨훨 털어버리고 훌쩍 떠나온 여행! 아무도 밟지 않은 해변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다. 빈 백지의 모래 카펫에 발자국 잉크를 찍으면 속삭임이 되고, 시어(詩語)가 된다. 시선이 머문 곳은 하늘과 맞닿은 바다. 마중할 겨를도 없이, 찰나에 바다가 해를 불쑥 밀어 올린다. 이글거리는 해. 모래벌판이 해살 가득 저렇듯 반짝거린다. 바람이 살랑거린다. 그 한복판에 서서 공기를 들이켜 본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소금 내음이 신선하고 상쾌하다. 동해안 아침 해변은 언제 보아도 한 폭의 풍경화다. 해변 끝자락에 걸터앉아 갸웃거리는 고기잡이배며, 그 위로 춤추는 갈매기며, 해변을 거니는 다정스런 연인이며, 연초록 그늘이 아늑한 솔숲이며, 햇빛에 반짝거리는 희디흰 모래밭이며, 그 모래 언덕 너머 캠핑장에 똬리를 튼 올망졸망한 텐트들이 낭만적인 그림을 담아낸다. 푸른 바다 위로는 보트들이 물살을 가른다. 물보라가 시원하다. 이런 호사스런 풍경을 그냥 지나치는 건 바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여행에서 남는 건 역시 사진! 여행이란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랬다. 그러나 그냥 오는 게 아니다. 추억을 싣고 온다. 그 기록물이 사진이다. 순간순간 흘러가는 시간들을 찰칵! 멎게 한 장면들이다.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지만, 그것은 단순한 피사체가 아니다. 거기엔 애정, 그리움, 정겨움 같은 다양한 사연들이 담겨 있다. 스토리가 살아 꿈틀거리는 것이다. 여행의 시간들이 꿈결 같은 것도, 그 조각조각의 추억을 엮은 사진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일상이 팍팍할 땐 사진첩을 펼쳐 추억을 반추하곤 한다. 정지된 장면 속에는 무수한 언어들이 시간 밖으로 넘나든다. 낱장마다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 그 낱장의 필름들을 연결하면 한 편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여행 사진은 묘하다. 볼거리 없이 괜히 생고생을 했다며 후회했던 여행지가 세월 지나고 보면 보석처럼 빛난다. 리얼리티, 그러니까 고단했던 현장감이 사진 속에 배어 있는 까닭일 것이다. 여행 끝엔 피곤함이 기다린다지만 그만큼의 생생추억을 남긴다. 사진에도 복고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많아야 30장 밖에 못 찍고, 그것도 인화지에 사진을 띄울 때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 단점에 매료된 소비자층이 향수에 기댄 장년층이 아니라, 뜻밖에도 유행을 좇는 청춘남녀들이라니 관련 업계가 놀랄 지경이다. 디지털처럼 무한정으로 찍을 수 없으니 한 장 한 장 정성을 쏟아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해서 설렌다는 게 복고의 배경이다. 필름에는 정성과 설렘이 있는 것이다. 카메라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들며 영역다툼을 할지언정, 사진은 변하지 않는 모습 그대로다. 바래지 않는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진 겉 표면은 색 바래도, 그것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늘 현재형으로 숨 쉬는 것이다. 물리는 법이 없다. 저 활짝 핀 꽃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매번 색다르게 와 닿듯, 사진은 늘 새로운 읽을거리를 선사한다. 미소를 머금게도 하고, 울컥 복받치게도 한다. 해변의 일출 풍경을 담은 사진이 훗날 이야기꽃을 피워낼 것이다.

2017-08-09 08:00:00 메트로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