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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70) 맥주공장 떠난 자리에 생긴 녹색 쉼터 '영등포공원'

잿빛 도시 서울에 푸른 빛 생기가 돌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 매연을 내뿜던 공장 굴뚝이 하나둘 사라지면서다. 도시에 있던 공장들은 땅값이 싼 지방으로 떠났다. 서울시는 공장이적지가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부지를 사들여 공원으로 가꿨다. 성동구 성수동 삼익악기 공장, 강서구 등촌동 성진유리 공장, 강동구 천호동 파이롯트 공장이 각각 성수공원, 매화공원, 천호공원으로 바뀌었다. OB맥주 공장 이전터엔 1만8600여평 규모의 영등포공원이 생겼다. 시는 당시 공장이적지에 있던 건물 42개동을 철거하고 산책로와 전시관, 잔디마당과 함께 500여명이 모일 수 있는 야외무대를 갖춘 공원을 만들어 1998년 7월 시민에게 개방했다. ◆우범지대서 주민 쉼터로 변신 지난 6일 공장부지에서 녹색 쉼터로 되살아난 영등포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1번 출구에서 올림픽대로 쪽으로 303m(4분)를 걸으면 공원 입구에 조성된 삼각형 모양의 광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각광장 옆엔 원형광장이 있고 이 자리에서 시계방향으로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분수대, 문화마당, 풋살경기장, 자연학습체험장, 무궁화동산이 차례로 들어섰다. 시계가 오후 5시 정각을 가리키자 사람들이 분수대로 몰려들었다. 분수의 물줄기가 '쏴아아'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고 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비처럼 내리는 물방울을 맞으며 즐거워했다. 영등포본동에 사는 설모(56) 씨는 "맨 처음에 이사 왔을 때 우리 아이들이 학생이었는데 영등포공원에 노숙하는 아저씨들이 너무 많아 무섭다고 학교 갈 때 공원을 가로질러 가지 못하고 신길역쪽으로 먼 길을 돌아갔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공원을 깨끗하게 잘 다듬어 놔서 사람들도 많이 오고 양지화가 돼서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영등포구는 낙후 시설에 대한 민원을 해소하고자 2015년부터 매년 공원 개·보수 공사를 실시해왔다. 첫해에는 장미원을 확대 조성했고 낡은 놀이시설과 운동기구를 새 걸로 바꿨다. 2016년에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해 대형시계를 설치하고 풋살장의 인조잔디를 교체했다. 이듬해에는 미관을 저해하는 담장 외관을 새단장하고 수목 생육환경 개선을 위한 보호판을 두는 등 공원경관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고 구는 덧붙였다. 이날 공원을 방문한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신선놀음을 즐겼다. 너른 잔디밭 위에 누워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젊은이들, 동년배들과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 배드민턴이나 조깅 등 운동을 하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양천구에서 온 김원식(80) 씨는 "서울시내 한복판, 역세권에 이런 쉼터가 있어서 행복하다"면서 "예전에는 이 동네가 굉장히 시끄러운 동네였는데 10년 만에 와보니 천지개벽 수준으로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영등포역 뒤편 외진 곳이라 대낮부터 술 먹고 싸우는 사람들, 부랑자가 많은 범죄소굴이었다"면서 "주먹이 센 왕초들이 천막을 치고 이곳을 점령하다시피 해 올 곳이 못 됐는데 전부 싹 사라졌다"며 놀라워했다. 구는 공원에 CCTV를 추가로 달고 기존에 단순 경광등 역할을 하던 화장실 비상벨을 경찰서와 연계해 설치하는 등 범죄 발생으로부터 주민 안전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비맥주 공장터에서 나오는 물은 약숫물? 공원 한복판에 놓인 담금솥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담금솥은 맥주 제조의 가장 첫 과정인 맥아와 홉을 끓이는데 사용되는 대형 솥으로, 코끼리 얼굴에서 양쪽 귀를 떼 엎어놓은 것처럼 생겼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흙빛 담금솥은 영등포공원이 옛날에 오비맥주 공장이 있었던 자리라는 사실을 시민들에게 상기시켰다. 안내푯말엔 "이 장소는 1933년부터 맥주를 생산한 우리나라 최대 맥주회사인 오비맥주 공장터로 1997년 공장이 이천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시가 영등포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과거 맥주공장이 있던 자리라는 역사적 사실로 인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공원 한켠 수돗가에서 주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중년 여성이 어르신에게 "여기에서 페트병에 물을 담아가지 말고 집에 있는 수돗물이랑 똑같으니 그거 받아서 마시라"고 조언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몸에 좋은 물이라 떠가는 것이니 상관 말라"고 쏘아붙였다. 영등포구 주민 이모(54) 씨는 "어르신들이 아리수가 수돗물인지 모르시고 큰 물통에다 물을 받아다가 공원에서부터 힘들게 낑낑대며 집으로 다시 가져가시는데 참으로 안타깝고 딱하다"며 혀를 끌끌 찼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공원이 오비맥주 공장이 있던 자리라 여기에서 나오는 지하수가 약숫물처럼 건강에 좋고 깨끗하다는 속설이 있어 어르신들이 물을 많이 떠 가신다"며 "음수대에 '아리수 수돗물'이라고 붙여놔도 잘 믿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2020-07-07 15: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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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여는사람들] 노유미 NH證 과장 "일상의 마케팅"

서울 압구정에 위치한 한 카페를 방문하면 커피와 디저트를 무료로 먹을 수 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유명한 '망원동내커피'와 유명한 빵집 '브레드랩'에서 제공받은 디저트다. 이 모든 걸 공짜로 제공하는 곳은 NH투자증권의 팝업스토어(짧은 기간 일시적으로 운영하는 상점) '문화다방'이다. 문화다방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넉넉한 좌석배치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2층으로 올라가면 한 벽면 가득 전신거울이 있다. 잔잔한 조명과 네온사인이 더해져 이른바 '사진 스팟'이 될 만 하다. 고급스러우면서도 트렌디하다는 생각이 드는 카페다. 문화다방을 기획한 노유미 NH투자증권 전략기획실 과장을 만났다. 보통 기업에서 운영하는 팝업스토어를 이용하기 위해선 일정한 조건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계좌 개설 시 커피와 디저트 무료' 같은 것. 하지만 NH투자증권의 문화다방은 아무런 조건이 없다. 휴대폰 번호로 본인인증만 하면 커피와 디저트 쿠폰, 그리고 굿즈(기획 상품) 교환권을 받을 수 있다. 노유미 과장은 "문화다방은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전해주는 게 목표다. 투자를 먼저 생각하게 만드는 건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주면서 계좌를 개설하라는 건 오히려 고객에게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방적인 의도를 처음부터 내비치는 게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높은 수준의 커피와 빵을 주면서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앞으로 팝업스토어의 운영기간은 한 달 반 정도 남았다. 남은 기간 동안 회사의 목표에 대해 그는 "더 다양한 안내와 혜택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라고 했다. 증권사의 이름으로 카페가 운영되는 것은 업계 최초다. '투자'와 '커피'라는 이질적인 두 명사의 결합은 NH투자증권의 '투자, 문화가 되다'라는 브랜드 슬로건에서 비롯됐다. 투자와 문화 역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조합이다. 노 과장은 "기본적으로 증권사 마케팅이면 수익률이나 수수료, 상품과 서비스 위주로만 홍보하는 게 일반적인데 진부한 마케팅 방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투자 문화가 되다는 슬로건과 함께 친숙한 마케팅 방법이면서 트렌디한 기법 중 하나인 '경험 마케팅'을 선택했다. 상품과 서비스를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컨셉이 슬로건과 매치가 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작년에는 다이닝 레스토랑과 협업을 하면서 1차적인 경험 마케팅을 했다. 이후 두 번째 마케팅은 좀 더 고객들에게 확산시킬 수 있는 컨셉트의 체험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문화다방의 운영 목표는 일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증권사 고객을 만나는 오프라인 영업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과정이다"라고 설명했다. 노유미 과장의 말처럼 문화다방은 단순히 커피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고객에게 일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체험 프로그램들을 만들었다. 문화다방은 '카페'가 아닌 '살롱'이라고 그는 정의했다. 그는 "대규모 강연이 아니라 소규모로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 문화를 발전시켜가는 공간을 제공하려고 한다. 기본적으로 주식투자 강연부터 와인 수업, 도장만들기 등 다양한 클래스를 통해 좋은 기억을 제공해드리는 공간이다"라고 말했다. 문화다방은 기존 공간을 임차한 것이 아니다. 바닥재부터 천장의 조명, 커피가 담겨져 나오는 컵까지 어느 하나 새로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문화다방의 오픈 예정일이 생각보다 길어진 이유다. 노 과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준비기간이 길었다. 지난해 팝업 식당을 6, 7월에 열었고, 작년 말에 2차 문화마케팅을 시도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화다방과 같은 시도를 해본 회사가 없었고, 회사 내부에서도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보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이 늦어졌다. 브랜드 파트너사를 선정하고, 사이트를 만들고, 공간을 찾는 것 까지 모두 처음부터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 "NH투자증권만이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힘들게 얻었고, 이후 포크 하나, 트레이 하나 모두 목수에게 제작을 맡겼다. 고객에게 굿즈로 제공하는 농산물 역시 쌀부터 티(tea)까지 수십 개를 시켜보고, 컨셉트에 맞는 상품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로 얻는 보람은 "고객의 인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특별한 스케쥴이 없는 이상 문화다방에서 실시하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노유미 과장은 "고객들이 오셔서 좋아해주시고 클래스를 더 듣고 싶다면서 만족하며 돌아서는 모습에서 많은 힘을 얻는다. 고객에게 우리 회사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때문에 그는 "고객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는 "6월에는 라이브 페인팅 등 아트 작가가 와서 같이 에코백을 디자인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앉아서 듣는 강연보다 체험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이런 점을 반영해 7월에는 체험 프로그램을 늘릴 예정이다. 아울러 마이크 음량, 펜, 물, 온도 등 작은 거 하나에서 고객이 불만을 가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의 문화마케팅은 계속된다. 이번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짓고 지방 고객들에게도 문화적 경험을 선물하는 기회를 만드는 게 또 다른 목표다. 노유미 과장은 "항상 무에서 유가 만들어졌다. 방향이 결정된 바는 없지만 경영진의 의지가 기반이 된다면 문화다방처럼 투자를 앞세운 마케팅보다는 문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의 마케팅을 이어나갈 생각이다"고 했다. 이어 그는 "또 지방이 소외된다는 일부 우려도 있다. 이번 문화다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효과를 증명한다면 지방에도 새로운 컨셉의 팝업스토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좋은 음악이 귀를 행복하게 하고, 좋은 음식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듯 투자는 고객의 삶을 채워주는 문화가 되길 바란다"면서 "고객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NH투자증권만의 마케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0-06-30 11:33:54 손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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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69) 마라톤 성지로 재탄생한 만리동 '손기정체육공원'

"레이스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혼자 올림픽에라도 갈 것처럼 질풍같이 선두를 달렸다. 시오아꾸와 스즈끼는 나를 놓칠세라 허겁지겁 뒤쫓아 왔다. 이런 수법으로 몇 번 당겼다 늦췄다 하는 사이 남승룡 선배는 선두로 치고 나갔다. 작전이 들어맞아 남 선배가 1위, 내가 2위, 시오아꾸가 3위, 스즈끼가 4위가 됐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남승룡 선수와 함께 출전하기 위해 대표 선발전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자처했던 손기정이 쓴 자서전의 일부다. 서울시는 국내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모교가 있던 자리에 공원을 만들어 1990년 12월 개원했다. 당시 시는 8979평 부지에 도서관 2동, 테니스장 2곳, 체력 단련 시설, 잔디구장, 마을회관, 올림픽 금메달 기념시설, 어린이 놀이터, 손기정 기념광장을 설치했다. 총 66억7000만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다녔던 양정고등보통학교는 중구 만리동에서 양천구 목동으로 이전됐다. 시는 손기정 체육공원의 정체성을 되살리고자 이곳을 마라톤 특화 공간으로 재조성해 지난달 27일 시민에게 개방했다. ◆공원 산책하며 코로나 버티는 주민들 지난 15일 러너들의 성지로 다시 태어난 손기정 체육공원을 방문했다. 공원은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5번 출구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8분(534m) 정도 걸으면 나온다. 입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건 2층짜리 통유리 건물로 지어진 어린이 도서관이다. 5살쯤 돼 보이는 꼬마가 아빠의 손을 잡고 도서관 근처를 서성였다. 아이의 아버지는 "어이쿠, 오늘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서 못 들어간대. 저기 친구들 있는 곳으로 가볼까?"라며 공원에서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린이도서관 출입문 앞엔 '코로나19의 지역 감염이 확산됨에 따라 수도권 지역 대상 강화된 방역조치에 의거 주민의 안전을 확보하고자 임시 휴관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목이 긴 장화처럼 생긴 손기정공원에는 어린이도서관과 함께 반시계 방향으로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체력단련장 ▲다목적운동장 ▲남승룡러닝센터 ▲실버체육센터 ▲월계관수 ▲손기정동상 ▲손기정기념관 ▲손기정체육센터 ▲손기정문화센터 ▲어린이놀이터가 위치해 있다. 어린이도서관 외에도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등이 코로나 여파로 폐쇄됐다. 이날 공원을 찾은 시민들은 1~2m의 간격을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산책을 즐겼다. 할머니들은 바람이 잘 드는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담소를 나눴다. 중림동에서 60년을 산 심영숙(89) 씨는 "공원이 없었으면 코로나를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100점 만점에 백점"이라며 밝게 웃었다. 이어 "바닥이 아스팔트가 아니라 푹신푹신하다"면서 "오래 걸어도 다리가 안 아프고 피곤하지가 않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동네주민 최모(76) 씨는 "공사한다고 몇 달을 공원에 못 들어오게 해서 처음엔 화가 났다"면서 "근데 막상 완성해놓은 걸 보니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났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축구장 옆에 사람들이 산책할 수 있는 길이 1개였는데 이걸 2개로 만들어놔서 걷기 편해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는 공원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던 축구장을 남쪽으로 옮겨 운동장 북측 비좁은 보행로를 대폭 넓혔다고 설명했다. ◆러너들의 천국 공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는 다목적운동장이었다. 네모 반듯한 축구장에서는 초록빛 잔디가 싱그러움을 뽐냈다. 운동장 바깥은 대왕참나무를 중심으로 진홍색 트랙 두개가 둘러졌다. 한쪽은 천천히 걷는 보행자용 길이었고 다른쪽은 달리기를 즐기는 러너들을 위한 트랙이었다. 강서구에서 온 주부 윤모(42) 씨는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 들렀다가 커피 마시러 나왔다"면서 "손기정 체육공원은 오늘 처음 와봤는데 조경을 정말 잘해놨다"고 했다. 그러면서 "같은 서울인데 차별받는 기분이다. 이렇게 도심에만 돈을 쏟아 부으니까 집값이 계속 오르는 것"이라며 "변두리도 신경 써달라"고 당부했다. 시는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시상식에서 손기정 선수가 수여받은 대왕참나무를 마라톤과 보행 트랙 사이에 심어 동선을 분리함과 동시에 손기정 체육공원의 상징을 부각시켰다고 덧붙였다. 남편과 산책을 나온 김모(35) 씨는 "공원에서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 중에 마스크 낀 사람을 못 봤다"며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들은 출입을 못하게 막아놨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때문에 화장실을 못 가게 막아놓은 것도 불편하다"며 "애들 데리고 나왔으면 근처에 볼일 볼 곳이 없어 정말 큰일날 뻔 했다"고 말했다. 시는 러닝트랙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높이기 위해 공원 후문을 정비, 마라톤 부대시설인 남승룡러닝센터를 짓고 있다. 연면적 660㎡, 2층 규모의 이 시설엔 락커룸, 샤워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시는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올림픽에서 메달을 받은 남승룡 선수와 그 외 마라톤 영웅들을 기념하는 곳으로, 러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2020-06-16 15:09:57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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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CJ제일제당 햇반 저단백밥 정효영 연구원

새벽을 열어주는 쌀(밥) 최고 전문가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으로 만들어 낸 저단백밥 "건강한 밥으로 삶의 질을 더 높여줄 것" 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200여 명의 희귀질환자에게 아침밥을 선물해준 이들이 있다. 페닐케톤뇨증(이하 PKU) 등 선천성 대사질환을 앓는 이들을 위해 '햇반 저단백밥'을 개발한 CJ제일제당 식품연구소 Processed rice&grain팀이다. 햇반 저단백밥은 단백질 함유량을 일반 햇반의 10% 수준으로 낮춘 식품이다. PKU 등 선천성 대사질환을 앓는 이들을 위해 CJ제일제당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감으로 2009년 내놓은 이른바 '재능기부형' 제품이다. ◆최고 전문가들이 만들어낸 당신의 아침밥 정효영 식품연구소 Processed rice&grain팀 수석연구원(44)은 팀원 16명을 '쌀(밥)에 관한 한 최고 전문가들'이라고 소개했다. 2000년 6월 졸업하자마자 CJ제일제당에 입사한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전분 화학을 연구했다. 입사 초기에는 밀가루를 베이스로 한 부침 가루, 튀김 가루 등 프리믹스 제품군을 개발했고, 프리믹스 제품군 중에서도 쌀가루를 활용한 프리믹스를 개발하면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당시 쌀가공센터로 합류했다. 쌀가공센터는 Processed rice&grain팀으로 팀 명이 바뀌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5년째 햇반을 중심으로 한 쌀가공품을 개발 담당하고 있다. 현재는 햇반 흰밥, 햇반 잡곡밥, 기능성 햇반 등 다양한 '햇반' 제품과 밥을 중심으로 한 HMR 제품인 '햇반컵반', 그리고 18년도 말에 출시된 '비비고 죽' 등 쌀을 활용한 모든 제품을 개발하고 쌀에 대한 기초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시간은 10배, 대상은 200명…그런데 왜? 햇반 저단백밥은 일반 햇반과 비교해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이 10배 이상 걸린다. 쌀 도정 후 단백질 분해에 걸리는 시간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등 추가로 특수 공정 과정들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데다가 200여 명을 위한 제품이라 이윤만을 생각한다면 판매를 고려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단백밥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임직원 중에 PKU 질환을 앓고 있는 자녀가 있는 분이 있었다. 그분이 당시 대표에게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1등 하는 즉석밥 업체인데 환우들이 일본에서 만든 밥을 먹고 있다'면서 저단백밥 개발에 대해 건의를 했다. 대표는 그 이야기를 듣는 즉시 연구소에 개발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2009년 3월 연구개발에 착수, 총 8억 원 투자와 7개월간의 연구 끝에 독자적 기술과 제조 시설을 구축했다. 부산공장과 함께 숱한 연구와 테스트로 밤을 새워갔다. 그 결과 같은 해 10월 말, 햇반 저단백밥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10년간 생산된 햇반 저단백밥은 약 150만 개에 달한다. 환우 200명 식탁에 햇반 저단백밥이 하루 두 끼 이상 꾸준히 오른 셈이다.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연구·개발을 하면서 '기준'과 '맛'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PKU를 앓고 있는 환자들은 단백질을 제한해서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백질 분해 산물들이 뇌에 쌓여 장애가 오기 때문"이라며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의 양이 제한되기 때문에 그 기준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밥에서의 단백질은 줄이되, 밥 품질은 일반 밥과 별 차이가 나지 않게 하는 것 또한 각별히 신경 썼던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보람 20년간 수많은 제품을 연구·개발해온 그이지만 제품 품질 유지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다른 가공식품과 달리 Processed rice&grain팀의 원재료는 쌀 뿐이다. 쌀의 품질이 바로 밥의 품질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만큼 연구원들이 밥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맨밥을 엄청나게 시식한다. 반찬과 함께 먹으면 제대로 판단할 수 없으므로 맨밥을 하루 수십 개 먹을 때도 있다.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힘든 부분이긴 하지만 결국 보람을 얻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또 가을 햅곡 수확 철이 되면 햇반에 사용하는 쌀이 많다 보니, 산지별로 쌀을 샘플링하고, 샘플링 한 쌀을 연구소에서 테스트하고 공장에 새로운 제조조건 등을 세팅해 주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다. 테스트할 쌀들도 많고 연구소 파일럿에서 만들어야 하는 제품의 양도 엄청나서 매년 10월~11월 사이에는 정말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파일럿에서 계속 테스트를 하게 되면 스팀 때문에 땀에 흠뻑 젖어서 다이어트가 절로 될 정도"라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국내 즉석밥 시장 독보적 1위 업체의 연구원으로서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국내 대표 즉석밥 제조업체로서 국내에서 쌓은 핵심기술을 바탕으로 향후에 글로벌까지 확장해 전 세계인들에게 맛있고 편리한 밥 제품을 제공해 한국의 기술력을 널리 알리고 싶다는 큰 비전과 목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저단백밥을 개발하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을 털어놓았다. 그는 "PKU 환우 부모님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PKU 환우 중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보았을 때, SIAL이라는 국제식품박람회에서 혁신제품으로 수상했을 때, 저단백밥이 사회공헌(착한 소비)의 사례로 교과서에 실렸을 때 등" 많은 순간을 나열했다. 특히 "기업 재능기부 사례나 제품으로 언급될 때 햇반 담당연구원으로서 작지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벅찬 뿌듯함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더 건강한 밥을 선물하기 위해 정효영 수석연구원은 "저단백밥은 PKU이나 단백질 식이를 제한해야 하는 신장질환자분들에게 밥에서 단백질을 줄여줌으로써 삶의 질을 더 높여주는 제품이다. 앞으로도 햇반은 편리하고 맛있게 먹는 일반제품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햇반으로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잡곡밥이나 다양한 밥들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햇반 저단백밥처럼 끊임없는 연구개발을 통해 햇반이 소비자들에게 더욱더 사랑받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소비자들이 역시 햇반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차별화되고 의미 있는 제품들을 개발하고 싶다"며 포부를 전했다.

2020-06-09 15:48:07 조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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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68) 국내 최대 화훼 도매시장 서초구 '양재꽃시장'

서울 서초구에는 동쪽으로는 구룡산, 서쪽으로는 우면산으로 둘러싸인 양재동이 있다. '양재'라는 지명은 어질고 재주 있는 사람이 많이 산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에는 경기도 과천군 동면 양재리였다가 1914년 시흥군 신동면 양재리로 바뀌었다. 이후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양재동이 됐고, 1975년엔 강남구에 속했다가 1988년부터 서초구 관할로 변경됐다. 양재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양재천과 동서로 나누는 여의천이 만나는 자리에 전국 최대 화훼 법정 도매시장인 '양재꽃시장'이 있다. 정식 명칭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화훼공판장'이다. aT 화훼공판장은 1991년 6월 절화류 경매를 시작으로 문을 열었다. 양재꽃시장은 1997년 4월부터 난류, 1998년 3월부터 관엽류, 2014년 6월부터 춘란류를 취급하고 있다. aT 사옥과 전시장을 포함한 대지 면적은 8만7923.40㎡이다. 시설 규모는 부지 6만9585㎡(2만1049평), 건물 3만8331㎡(1만1594평)이다. 양재꽃시장은 전시교육장이 있는 본관과 분화온실 가·나동, 생화·소재·자재를 파는 중도매인점포, 지하 화환점포 등으로 구성됐다. ◆코로나19로 휘청이는 꽃시장 지난달 23일 국내에서 가장 큰 꽃시장인 aT 화훼공판장을 방문했다. 양재꽃시장은 신분당선 양재시민의숲역 4번 출구에서 염곡사거리 쪽으로 7분(481m)을 걸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문지로 무심하게 포장한 꽃다발을 옆구리에 한, 두개씩 끼고 시장을 누비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꽃시장 가장 안쪽에 있는 절화중도매인 점포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입구에는 '마스크 미착용시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꽃들이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날 절화매장에서 만난 박수경(29) 씨는 "요새 집콕만 하다보니 방꾸미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자연스럽게 플랜테리어에 꽂히게 됐다"면서 "동네에서 혼자 들기 벅찬 크기의 꽃다발을 만들려면 5만원은 우습게 드는데 여기서는 그 절반 가격에 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한시간 정도 거리여서 큰 맘 먹고 왔다"며 "토요일인데도 생각보다 사람이 없어 구경하기는 편한데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꽃시장에서 생화를 파는 한 상인은 "코로나 터지고 매상이 80~90%가 줄어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달에 아주 약간 숨통이 트였다"면서도 "그래도 예년만 못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삼산꽃농원을 운영하는 최인원 씨는 "관엽류는 생화보다는 상황이 약간 나은 편인데도 매상은 작년 반 수준이다"며 "그나마 aT에서 임대료를 깎아줘서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최 씨는 "'죽겄다, 죽겄다' 하면 될 일도 안 된다"면서 "우리 식구 안 아픈 것만 해도 나는 행복으로 안다. 두 발로 걸어다니고 밥 잘 먹고 그런 게 행복"이라며 활짝 웃었다. 양재꽃시장을 관리하는 aT 화훼사업센터는 코로나19로 침체된 공판장의 영업환경 활성화와 입주사의 피해 회복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임대료의 50%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우울할 땐 반려식물 지난 5월 23일 초여름향기가 물씬 나는 양재꽃시장을 찾은 직장인 강정은(34) 씨는 "예쁜 식물이 너무 많아서 뭘 살지 고민된다"면서 "꽃을 좋아해 공원에 산책을 자주 가는데 마스크를 써서 향기를 맡을 수 없어 슬펐는데 여기서 원을 풀고 간다"며 씨익 웃었다. 젊은층들은 잎이 넓고 시원해 보이는 여인초나 요즘 카페에서 많이 들여놓는 올리브 등을 많이 사가고 나이 든 어르신들은 고목, 사철나무를 좋아한다고 꽃시장 상인들은 귀띔했다. 분화온실에서 만난 한 상인은 "양재꽃시장 초창기 멤버들이 여기를 살리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면서 "옛날에는 버스정류소 이름이 '동사무소 앞'이었다. 우리가 버스회사 임원들 따라다니면서 밥도 사주고 해서 정류장 이름을 '양재꽃시장'으로 바꿨다"며 뿌듯해했다. 그는 "주차비도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주변 시세에 맞게 2000원으로 올린다는 거 우리가 쫓아가서 데모도 많이 해서 못 올리게 했다"며 "주차비를 비싸게 받으면 손님들이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T 화훼공판장의 최근 3년 절화류 경매실적을 보면 2017년 598억8200만원, 2018년 646억2000만원, 2019년 699억1400만원으로 100억3200만원 늘었다. 같은 기간 분화류 경매실적은 475억7300만원, 541억4400만원, 522억3600만원으로 46억6300만원 증가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4월 중순까지 절화류, 관엽류, 난류의 경매물량과 금액이 작년에 비해 7~17% 감소했다.

2020-06-02 10:57:50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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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플랫폼-운수업 상생해야"…서울시 택시행정과장에서 택시기사로 변신

"만성화된 택시 문화를 바꾸는 기회가 플랫폼 택시입니다." 문제 많던 서울시 택시 정책을 바꾸기 위해 힘쓰다가 직접 택시 운전대를 잡은 행정가가 있다. 지난해 퇴직을 한 이후 택시기사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 양완수(60)씨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시에 운전대를 잡고, 오후 2시까지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빼고는 쉬지 않고 근무한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항상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거의 열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있다. 양씨는 택시 기사로 전직하기 전에는 서울시 택시물류과장을 3년 6개월 간 재직했다. 역대 택시물류과장 중 가장 오래 일한 기간이다. 이전에는 시내버스 교통 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9년 동안 근무해 서울시 교통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최근 택시 업계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여객자동차법 개정안 통과 여파로 논란의 '타다' 베이직 서비스 사태가 지나가자 택시 중계 플랫폼과의 갈등이 재점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플랫폼사의 콜 배정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접목된 플랫폼 택시 등을 무작정 배제하고 기득권과 관성에 머무르다가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 국내 모빌리티 산업이 침체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양씨는 플랫폼과 운수사업 업계가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고 서로 협업해 상생을 하는 것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행정과 현장을 모두 경험하며 느낀 깨달음이다. 양씨는 플랫폼 택시인 '카카오T블루'를 몰고 있다. 공무원 시절에 법인택시 자격을 얻고, 가맹택시를 운행하게 됐다. 양씨가 일하는 법인택시 회사 흥덕기업은 케이엠솔루션스와 가맹계약을 맺고 카카오T블루 서비스를 하고 있다. 양씨는 행정직 재임 당시 현장을 뛴 이유에 대해 "택시의 전반적인 문제점은 현장을 모르고서는 피상적으로밖에 알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양씨는 택시업계에 애정어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플랫폼이 도입되지 않고 택시를 운행했을 때는 택시기사가 주도권을 잡았던 것이 현실이다. 손님을 골라서 태우는 일도 흔했고, 경로로 인한 갈등도 비일비재했다. 서울시에서 근무할 때도 승객을 골라받는 기사들에 대한 민원이 빗발쳤다. 하지만 플랫폼 앱을 이용하면 자동배차로 쉽게 승객을 태울 수 있고, 앱에 목적지가 뜨고 정해진 경로를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경로 갈등이 줄어들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양 씨는 택시기사 입장에서 카카오T블루는 매월 지급되는 월급이 보장된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했다. 일반택시는 자율성이 보장되는 반면 손님을 찾기 힘들다. 플랫폼택시의 경우 자율성은 덜하지만, 효율성이 보장된다. 정해진 근무시간이 지나면 여가를 누릴 시간도 있다. 양씨는 오후 근무 시간이 끝난 후 택시를 반납하고, 남은 시간에는 시니어 모델로 활동하며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모델 학교를 다니며 강습도 받는다. 최근에는 '더 룩 오브 더 이어 클래식'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플랫폼 택시의 한계도 있다. 특히 플랫폼의 콘셉트가 예약 문화이고, 하나의 약속인데도 일부 승객들이 콜 취소를 난발할 때마다 허탈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양씨는 "하루에 7~8건 정도 콜이 취소되는데 그럴 때마다 사기가 떨어지고 허비하는 시간도 많다"며 "플랫폼사들이 손해를 본 만큼 '노쇼(No-Show)' 고객을 방지하는 대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운수사업자들도 새로운 서비스나 기술 개발에 앞장서 플랫폼사의 독과점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나 서울시에서 내려오는 톱다운(Top-down) 규제 정책만을 따르기 보다는 현장에서 느끼고 필요로 하는 정책이나 서비스를 규제 기관이나 정부에 제안을 하는 보텀-업(Bottom-up)을 해야 하는 주장이다. 가령 가맹사업으로 여성안심택시, 병원택시, 심부름택시, 펫택시 등 택시 서비스 품목을 다양화 하는 방안도 있다. 양씨는 "플랫폼에 택시기사들이 의존하는 현실에서 운수사업자들이 기존의 기득권 마인드를 버리고, 새로운 서비스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직접 발벗고 새로운 서비스나 변화를 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씨는 앞으로 3년 간의 계획을 미리 세웠다. 자격증을 받아 고급택시 교육 강사로도 직접 발로 뛸 예정이다. 그는 "개인택시 사업조합 쪽에서도 난맥이 있다"며 "개인택시 기사 분들의 권익 문제를 발굴해 개선하는데 남은 여생을 보내려고 한다. 택시가 외면받지 않고 택시가 미워서 떠난 사람들이 다시 찾도록 만들고 싶은 게 소망"이라고 힘줘 말했다.

2020-05-26 17:12:14 김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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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마리나베이서울 이성욱 FM 운영팀장 "고객 안전·편안함이 최우선"

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FM 운영팀 이성욱 팀장(오른쪽)이 방역 소독을 진행하고 있다./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제공 [새벽을 여는 사람들] 마리나베이서울 이성욱 FM 운영팀장 "고객 안전·편안함이 최우선" 코로나19 대비 철저한 방역 소독 건물시설관리, 안전과 직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호텔업계가 침체된 상황에서도 방문객에게 안전한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밤낮으로 고군분투하는 이가 있다. 호텔 마리나베이서울 FM 운영팀 이성욱 팀장이다. 그가 올해들어 가장 신경쓰고 있는 부분은 방역 소독이다. 엘리베이터와 주차장은 상시 방역 소톡하고 있으며, 매주 2회 직원 동선과 고객 동선으로 나눠 살균분사식 방역 소독을 진행하고 있다. 건물종합관리만 15년째, 이 팀장은 하나로텔레콤, 에스텍시스템, 지앤비시스템 등 다양한 회사를 거쳐 현재 호텔 마리나베이서울에서 전기, 기계, 소방, 건축 설비 등 건물 유지 보수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장마, 폭설 등 악천후를 비롯해 호텔에서 발생하는 여러 긴급상황 때마다 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든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관리는 필수다. 이 팀장이 시설 관리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전기 수급 안정이다. 24시간 운영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전력 과부하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전류를 분산해주어야 한다고. 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FM 운영팀 이성욱 팀장/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제공 또한, 건축물의 동력을 책임지는 각종 기계 설비 관리도 중요하다. 냉난방을 위한 에어컨과 보일러 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문제 발생 시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맡은 업무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여름 성수기에는 당직도 많고, 끊임없이 보수할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죠. 그래도 고객이 방문했을 때 편안하고 안전한 호텔로 인식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관리에 신경을 써요." 그가 한가지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팀장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쾌적함을 느낄 때 보람을 느낀다"며 "호텔은 그 어떤 공간보다 편안함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하기에 맡은 역할에 대한 책임감도 크다"고 말했다. 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FM 운영팀 이성욱 팀장/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제공 이어 건물시설관리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면서 부분보다는 전체를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과거에는 특정 부분에 대한 일을 완벽하게 끝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현재는 건물의 연속성 측면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건물을)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화재관리도 맡은 업무 중 하나다. 상주인원이 많은 대형 건물은 문제 발생 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소방 관리를 보다 철저하게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은 생각보다 사소한 보수 건도 많이 발생해요. 자동문 오작동, 파손된 타일교체, 객실 수선 부위 체크 등 매일 확인하고 손봐야 하는 곳이 다수죠. 용역업체도 있긴 하지만, 오히려 사소한 일일수록 직접 처리하는 편이에요." 이 팀장이 한 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고객 뿐만 아니라 호텔 직원들 모두 건물 내 시설물을 내 집처럼 사용했으면 하는 것이다. 또, 건물종합관리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개선되는 것이다. 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FM 운영팀 이성욱 팀장/호텔 마리나베이 서울 제공 "많은 분이 건물종합관리를 시설물 하자 보수 정도로 여기는데, 안전과 직결되는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에 대한 보람도 크고요. 젊은 친구들이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으면 좋겠어요."

2020-05-12 11:58:36 신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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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67) 세상에서 가장 큰 놀이터 '서울어린이대공원'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곳은 서울 광진구 능동에 있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비인 순명황후 민씨가 1904년 승하한 후 이곳에 안장됐다. 민씨의 능은 1926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져 순종의 능 옆에 합장됐다. 일제강점기였던 1929년 경성골프구락부에 의해 일본인 관리와 사업가들을 위한 골프장으로 조성, 해방 이후에도 소수의 이용자에게 개방돼 왔다. 당시 골프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지 않은 데다가 사치스러운 운동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골프장을 한적한 곳으로 옮기고 이곳을 어린이를 위한 대공원으로 조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서울시는 서울컨트리클럽 골프장 땅 39만6694㎡(12만평)을 무상으로 기증받고 사유지 32만3967㎡(9만8000평)을 매입해 부지를 확보, 1972년 11월 착공해 이듬해 어린이날 '서울어린이대공원'을 개원했다. ◆코로나 때문에 고생하는 어린이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서울어린이대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7호선 서울어린이대공원역 1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1분(108m)을 걸으면 정문이 나오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쓴 현판이 걸려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공원 입구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달라는 안내문과 함께 손소독제가 비치됐다. 공원 관리자는 출입문에 설치된 열화상 카메라로 방문객들의 발열 상태를 점검했다. 공원 안은 알록달록한 캐릭터 마스크를 낀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어린이들로 활력이 넘쳤다. 서울어린이대공원은 동물원과 식물원, 놀이공원을 모두 갖춘 총면적 53만6088㎡의 대규모 가족테마 공원이다. 야외음악당인 능동숲속의무대와 백곰, 바다표범의 수중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바다동물관, 음악 선율에 맞춰 하늘로 물을 쏘는 음악분수, 교통안전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교육공간 어린이교통안전체험관, 골프장 편의공간을 개조해 만든 문화전시공간 꿈마루 등으로 구성됐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온 김모(67) 씨는 "어린이날에는 차도 막히고 복잡할 것 같아서 애들 부모 대신 손주들을 데리고 나왔다"며 "오늘 밖에서 실컷 놀고 사람 많은 내일은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원이 넓긴 한데 저기 놀이터도 그렇고 연못도 다 코로나 때문에 막아놔서 갈 곳이 없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음악분수 앞 생태연못에는 "코로나19 감염 위기경보 심각 단계 및 광진구 확진자 추가발생으로 어린이 감염예방을 위해 임시휴장 한다"는 양해의 글과 함께 출입금지선이 처져 있었다. 분수 옆에 있는 꿈틀꿈틀 놀이터에도 '위험! 출입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었다. 지난 4일 공원에서는 마스크를 벗으려는 어린이들과 이를 제지하는 어른들의 실랑이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마스크를 안 쓰면 바로 집으로 가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아빠도 있었고 아이들과 협상에서 실패해 둘 곳 없는 어린이용 마스크를 팔꿈치에 끼고 돌아다니는 엄마도 보였다. 자녀 두 명과 공원에 나들이를 온 정승권(36) 씨는 "아이들이 덥다고 마스크를 잘 안 끼려고 해서 걱정이다"면서 "나도 답답한데 오죽하겠나 싶어 그냥 내버려두고 있다"고 털어놨다. 공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동물원이었다. 어린이대공원은 코끼리, 침팬지, 작은발톱수달, 사막여우, 하이에나, 사자, 캥거루, 자카스펭귄 등 93종 680여마리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날 오후 4시 55분쯤에 동물원에 도착한 직장인 최모(34) 씨는 "아이들이 동물원에 가고 싶어해서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나와 힘들게 뛰어왔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다"며 "어린이날 전날인데 좀 늦게까지 열면 안 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동물원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지만 입장 마감 시간이 오후 4시 30분이어서 약간 늦게 도착한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화에 난감해했다. 굳게 닫힌 동물원 문을 붙잡고 하염없이 서 있는 어린이와 "동물들도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오면 안 된대"라며 침착하게 아이를 달래는 부모들의 모습도 보였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키고 싶지만··· 동물원을 지나 "꺄악~"하는 즐거운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놀이동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전목마와 패밀리코스타(청룡열차), 바이킹 등을 타려는 시민들은 놀이동산 입구에서 안내원들에게 손목을 보여준 후 비접촉식 체온계로 발열 체크를 한번 더 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패밀리코스타나 회전목마 등 인기가 많은 일부 놀이기구들의 대기줄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관악구에서 온 이진아(가명·34) 씨는 "줄 서는 장소에 1m 간격으로 하얀색 선을 표시해 놓은 곳도 있지만 부모들이 애들을 데리고 있어야 하고 가족들이 함께 줄을 서다 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기 어려운 것 같다"며 "대신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지 못하게 주의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에 사는 장모(44) 씨는 "애들이 하도 졸라서 오늘 처음 와봤는데 놀이동산 이용료가 너무 비싸다"며 "공공에서 하는 건데 가격을 좀 낮춰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서울시는 시민들이 어린이대공원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2006년 10월부터 동물원과 식물원 등을 무료로 개방했지만 놀이동산은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이용 요금은 자유이용권 기준 어른 2만7000원, 청소년 2만3000원, 어린이 2만3000원이다. 한편 이날 어린이대공원에서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자유롭게 뛰노는 곳은 'UN평화동산'이 유일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유엔평화유지군(PKO) 활동참여를 기념하기 위해 어린이대공원 내에 유엔평화동산을 조성했다.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 유엔평화동산에서는 시민들이 2~3m 간격을 두고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겼다. 서울시설공단은 매년 5월 어린이대공원에서 개최했던 행사와 축제, 체험프로그램을 전면 취소하고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야외시설 일부를 통제 가능한 수준에서 제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2020-05-05 15:14:45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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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의류제작업체 뚜또모 정태순 대표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40년 경력의 '봉제 마스터' 밤이면 가장 환해지는 동대문 시장. 그곳에 새벽만 되면 40여년 째 불을 밝히는 이가 있다. 현실에 안주할 수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며 '위기를 기회로' 삼고 있다는 그는 바로 의류제작업체 뚜또모 정태순 대표다. 그는 지난 2018년 서울시로부터 인정받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의 1기 '봉제마스터'다. 봉제산업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서울시가 국내 최초 도시재생 사업으로 개관한 역사문화공간으로, 봉제 산업의 역사를 알리고 있다. 봉제뿐 아니라 그는 직접 옷도 디자인하며 뚜또모 자체 의류를 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처음 봉제업에 들어서던 순간…지금 뚜또모가 있기까지 서울 중구 신당동의 한 의류 제작 공장에서 만난 정태순 대표는 마스크 봉제 작업에 한창이었다.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보여주듯, 공장 내에는 마스크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는 처음 봉제업에 들어서던 순간이 생생하다고 말을 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들어가게 된 한남직업전문학교 내 양재과가 첫 봉제사로서의 발걸음이 됐다. 이후 한 의상실에 다니며 기술을 배웠고, 동시에 학업도 놓지 않으며 경기여자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다. 정태순 대표는 "17살 때 상업고등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등록금 낼 돈이 없어 가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동네 통장님께서 추천서를 적어주셨고 덕분에 전문학교에 갈 수 있었다"며 "당시 '주 의상실'에 첫 출근을 했다. 그 때는 막내였기 때문에 단춧구멍을 기계로 뚫어오거나 실을 사오고, 풀을 쑤는 등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다"고 말했다. 잔심부름만 하던 그가 현재 뚜또모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기까지 4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정 대표는 지금껏 수많은 의류제작업체를 거치며 옷의 이모저모에 대해 배웠고, 자체 공장도 몇 번이나 여닫기를 반복했다. 2015년 장인 브랜드 '뚜또모'라는 상표를 등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그러나 최근 봉제산업에도 코로나19의 여파가 미치며 수주량이 대폭 줄었고, 이에 지금은 마스크를 주력 제품으로 생산 및 판매 중이다. 정 대표는 "처음엔 주 의상실에서 기술을 배웠고, 이후 노라노 패션, 논노 개발실, 트로아조 샘플실 등 의류가 판매되기 전 디자인하거나 샘플 만드는 법들을 배웠다. 이후 2015년 첫 자체 공장을 오픈하게 됐다"며 "그 때는 한 공장을 다른 사장님과 함께 나눠 사용했다. 이후 2018년 12월 두 번째 공장을 열었고,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공장은 지난해 11월 말 오픈했다"고 설명했다. ◆"위기를 기회로"…항암 투병 중에도 국가기술 자격증 취득 오랜 기간 봉제업에 종사하며 일해 온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첫 공장을 오픈한 지 1년여 만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기 때문. 정태순 대표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큰 수술을 받으며 죽을 고비를 넘겼다. 지금도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실제 정 대표는 지난 2017년 6월 물조차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국가기술자격증 '양장기능사'를 취득했다. 정태순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 브랜드 중 외국인들이 쉽게 접하고 있는 브랜드가 전무하다. 그래서 뚜또모를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로 키우고 싶다. 공장만 잘 이끄는 게 아니고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투병 중에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생각했다. 몸도 제대로 못 가눴지만, 물은 못 마셔도 공부는 했다. 물론 한번 떨어졌지만 심기일전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 두 번째에 합격했다. 그 때가 1차 수술 직후였다"고 설명했다. 장인 브랜드 '뚜또모'는 당신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뚜또모의 시작은 의류업체지만, 향후에는 토털패션업체로 거듭나고자 하는 정 대표의 포부가 담겼다. 지금까지 그가 등록한 상표가 가방, 모자, 신발, 액세서리, 속옷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또한 정 대표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마스크를 선택하게 됐다고도 전했다. 뚜또모는 현재 필터를 쉽게 갈아끼울 수 있는 면 마스크를 개발해 판매 중이다. 정 대표는 "아직까지 뚜또모 브랜드 이름으로 입체 마스크만 판매 중에 있다. 부직포는 아무래도 숨쉬기가 힘들고 세탁할 수도 없어 면 마스크를 생각하게 됐다"며 "다만 대중들은 여전히 면 마스크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열심히 해서 해외 수출도 해보려 한다. 유튜브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마스크 만드는 법을 영상으로 올렸다"고 말했다. ◆침체된 봉제산업, "장인들 지원해줄 필요 있어" 최근 몇 년간 봉제산업으로 대표되는 동대문은 침체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정태순 대표는 다른 업종으로의 전환이 아닌, 봉제업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투병하고 있는 와중에도 밤새 일하며 공장에서 2~3시간가량 쪽잠을 청한다. 이미 의류가 넘쳐나 일감이 부족한 내수 시장의 상황으로 인해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정태순 대표는 "이번주에도 일주일동안 집에 한 번을 못 들어갔다. 밤새 일하다가 공장 내 작은 의자 4개를 모아놓고 쪽잠을 잔다. 거래처와의 시간 약속은 곧 신용이기 때문"이라며 "최근 봉제업계 전반이 힘들다. 질이 좋은 한국산 의류의 특징을 살려, 디자인을 개발하고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40여년 이상된 장인들을 따로 분류해 지원해주면 일감이 없는 업체들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 대표는 지금껏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힘들게 옷을 만들어 줬지만 거래처에서 수금을 해주지 않을 때 가장 힘들다. 그러나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되면 수입이 끊겨 직원들 급여도 줘야 하는데 난감하다"면서도 "그렇지만 제작한 옷에 대해 거래처에서 만족감을 표할 때 행복을 느낀다. 그 한 마디가 스스로를 키워주는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2020-04-28 13:34:06 김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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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66) 서울시민과 반세기 함께한 다리 '양화대교'

서울을 남북으로 가르는 한강에는 총 31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도시인의 삶에 천착한 작품을 만들어온 예술가들은 한강 다리를 소재로 한 음악을 세상에 내놓곤 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수 혜은이의 '제3 한강교'(1979)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 제3 한강교 밑을 / 당신과 나의 꿈을 싣고서 / 마음을 싣고서'로 시작하는 노랫말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 그가 목 놓아 부른 '제3 한강교'는 오늘날 '한남대교'다. 여기서 질문 하나. 제2 한강교는 어디일까? 양화대교다. '우리 집에는 / 매일 나 홀로 있었지 /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 양화대교' 이 한강 교량은 신곡을 냈다 하면 음원차트를 정복해 '음원 깡패'라는 별명이 붙은 자이언티의 노래에도 등장한다. 양화대교는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한강 교량이다. 서울에서 문산으로 물자수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1965년 제2 한강교인 구교가 세워졌다. 이후 도심에서 서부지역으로 교통량이 급격히 증가하자 신교를 만들어 1982년 4차로를 추가 개통, 왕복 8차로의 다리가 준공됐다. ◆음악인들의 뮤즈가 된 다리 지난 18일 제8극장, 자이언티, Gichii, 한강의기적, 태경, 9호선환승역 등 음악가들의 뮤즈가 된 양화대교를 찾았다. 지하철 9호선 당산역 13번 출구로 나와 합정동 쪽으로 약 20분(1.5km)을 걸으면 파란 하늘과 한강, 흰 구름이 한 폭의 수채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교량을 만나볼 수 있다. 양화대교는 일자로 쭉 뻗은 다리 한가운데에 아치형 교량 2개가 짝을 이루고 있는데,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 속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의 모습과 닮았다. 이날 양화대교를 찾은 직장인 이미연(33) 씨(이하 가명)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당산동에서 족발을 먹고 합정동에 있는 카페에 가는 중"이라며 "코로나 옮을까 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좀 꺼려져서 50분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데 이 길을 버스 타고 갔으면 좋은 풍경을 놓칠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처음엔 이 다리가 양화대교인지도 몰랐는데 네이버 지도보고 알게 됐다"면서 "코로나 때문에 차들이 쌩쌩 지나다니는 다리 위도 걸어보고 별 희한한 경험을 다 해본다"며 즐거워했다. 이날 양화대교에서 산책을 즐긴 시민들은 자전거족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동네주민 김석환(31) 씨는 "우리나라 문맹률이 이렇게 높은지 몰랐다"면서 "다리 위에서 자전거를 타지 말라는 경고문이 여기저기 붙어있는데 다들 글을 못 읽는건지… 자라니(자전거와 고라니의 합성어로, 고라니처럼 불쑥불쑥 나타나 공포의 대상이 되는 라이더들을 일컫는 말)들 때문에 지나다니기 불편하다"고 털어놨다. 양화대교 곳곳에는 "자전거는 법규상 차로 되어있어 보행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행자가 지나갈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서 끌고 다니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았다. ◆반세기 역사 지닌 다리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는 김대훈(47) 씨는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과 집에만 있다가 산책할 겸 해서 와봤다"며 "여기에 무슨 공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교량인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애들이 다리 이름이 왜 이런 건지, 언제 만들어졌는지 등을 궁금해하는데 그런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없어서 아쉬웠다"며 "다리가 지어진 지 50년이 넘었으면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책 한권 분량일 텐데 이런 걸 좀 소개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다리의 이름은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계획이 진행될 때 변경됐다. 서울시는 1984년 다리가 설치된 곳의 인근 지명과 무관한 이름을 가진 제1, 2, 3 한강교를 각각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로 개칭했는데 이 교량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양화나루로 인해 이같이 불리게 됐다. 양화대교의 교량 중간에 아치형 구조물이 생긴 건 8년 전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서해 뱃길 사업을 위해 한강에 6000t급 대형 선박이 운항할 수 있도록 교각 폭을 42m에서 112m로 약 3배 넓히는 공사를 2010년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가 전시행정이라며 예산을 대폭 삭감해 공사가 중단돼 양화대교 하류 부분은 'ㄷ'자 말발굽 형태를 갖게 됐다. 서울시는 기투입된 공사 비용을 날릴 수 없다며 반발했고 양화대교는 착공 2년 8개월만인 2012년 10월 직선 통행이 가능해졌다. 구조개선사업비로 총 490억원이 투입됐다. 대학생 손승희(21) 씨는 "양화대교에는 오늘 처음 와봤는데 생각보다 활기가 넘친다"며 "자살다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제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정인화 무소속 의원이 서울시 한강수난구조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9월 한강 교량에서는 총 376건의 투신시도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량별 투신건수는 마포대교가 116건(30.8%)으로 가장 많았고, 한강대교 44건(11.7%), 양화대교 22건(5.8%)이 뒤를 이었다. 2018년 이들 3개 교량의 투신시도자 255명 중 절반 이상(58%)이 20~30대였다. 시는 한강 다리에서 투신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난간 높이를 2m로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올해 19억원을 들여 한강대교와 양화대교의 난간을 높이고 2022년까지 자살 시도가 많은 원효·잠실·서강·한남대교 등 6개 교량부터 순차적으로 안전시설물을 설치할 계획이다.

2020-04-21 15:08:18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