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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와칭] '전략가' 홍범식의 LG유플러스, 군살 빼고 'AX 컴퍼니'로 승부수

LG유플러스는 '전략가'의 지휘 아래 체질 개선과 인공지능(AI) 전환(AX)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LG그룹 내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꼽히는 홍범식 사장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LG유플러스는 기존의 방만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과감히 정리하고 AI 중심의 'AX 컴퍼니'로 거듭나기 위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4년 만에 교체된 수장으로서 홍 대표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영의 정석을 그대로 보여준다. 홍 대표는 베인&컴퍼니, 올리버와이만 등 글로벌 컨설팅 기업을 거친 경영 전략 전문가다. 2019년 LG에 합류해 경영전략부문장으로서 그룹의 성장 동력 발굴과 M&A 등을 총괄했으며, 2022년부터는 LG유플러스의 기타비상무이사를 맡아 통신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왔다. LG그룹은 그를 변화하는 통신 시장 환경 속에서 LG유플러스의 새로운 도약을 이끌어낼 적임자로 평가하며 CEO로 낙점했다. 현재 홍 대표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단연 AI다. 취임 후 그는 '그로쓰 리딩 AX 컴퍼니(Growth Leading AX Company)'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조직 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특히 최근 단행된 2026년 조직개편에서 CEO 직속으로 '전략·AX 담당'을 신설해 의사결정의 민첩성을 높였다. 이는 그룹 차원의 AI 전환 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실행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AX 전환 전략의 일환으로 출시된 AI 통화 에이전트 '익시오(ixi-O)'는 출시 1년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하며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또한, AI 데이터센터(AIDC) 매출 역시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리며 기업 간 거래(B2B) 부문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수익성이 불투명한 신사업 부문에는 과감한 메스를 댔다. 전임 황현식 대표 시절 추진했던 '유플러스 3.0' 전략 산하의 다수 사업들이 정리 수순을 밟고 있다. 대표적으로 도심항공교통(UAM) 컨소시엄 해체, 스포츠 플랫폼 '스포키' 서비스 종료, 그리고 자체 제작 스튜디오 'STUDIO X+U'의 철수 계획 등이 꼽힌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와의 경쟁에서 밀린 키즈 콘텐츠 사업 역시 투자를 철회했다. 문어발식 확장보다는 AI 등 확실한 미래 먹거리에 '올인'하겠다는 홍 대표의 실용주의적 경영 철학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재무적 성과 측면에서는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3분기까지 연결 기준 매출은 4조 원대를 돌파하며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3분기 영업이익이 희망퇴직에 따른 일회성 비용(약 1500억 원) 반영으로 주춤했으나, 이를 제외하면 펀더멘털은 견조하다는 평가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러한 성장세를 반영해 LG유플러스의 장기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2026년 다시 영업이익 1조 원 시대를 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홍 대표의 앞길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경쟁사들 사이에서 불거진 해킹 사고 및 보안 리스크는 홍 대표가 넘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과거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아픔이 있는 LG유플러스인 만큼, 강화된 보안 체계 구축과 리스크 관리는 홍 대표의 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또한, 정부 조사 결과와 이에 따른 파장은 향후 그의 입지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플랫폼 기업'에서 'AX 컴퍼니'로의 대전환을 선언한 LG유플러스는 이제 '홍범식 호(號)'의 전략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증명해야 하는 시점에 섰다.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고 AI라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려는 그의 '전략적 결단'이 LG유플러스의 10년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약력 홍 대표는 1968년생으로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경영학 학사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모니터그룹 파트너, SK텔레콤 신규사업개발그룹장(상무), 올리버와이만 대표, 베인&컴퍼니코리아 대표 등을 역임하며 글로벌 통신 및 IT 전략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2019년 LG 경영전략부문장(사장)으로 영입되어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주도했으며, LG유플러스와 LG헬로비전의 기타비상무이사를 겸임했다. 현재 LG유플러스의 대표이사 사장으로서 회사의 AI 전환과 체질 개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2025-12-01 15:17:38 김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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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와칭] 38년 '정통 증권맨' 황성엽 신영증권 대표

신영증권은 보수적인 경영 전략으로 안정적인 성과를 이어가고 있는 '알짜배기 증권사'로 꼽힌다. 국내 자본시장 내 다양한 경제 위기 속에서도 1971년 이후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증권가 내 대형사 쏠림이 심화되면서 다수의 중소형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지만, 신영증권은 54년 연속 흑자를 이어가며 오히려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리고 여의도의 '숨은 강자' 신영증권을 묵묵히 지켜낸 것은 '38년 정통 신영맨' 황성엽 대표다. 황 대표는 1987년 신영증권에 입사한 이후 38년 동안 근속해 온 '원클럽맨'이다. 자본시장 최전선에서 변화와 성장을 목격한 실무형 최고경영자(CEO)로 평가된다. 2연임에 성공하면서 2020년 6월부터 신영증권의 수장으로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재 임기는 2026년 6월까지로 1년이 채 안 남았지만, 지난 6월 책무구조조 도입에 따라 금정호 신임 대표와 각자 대표체제를 출범시키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황 대표는 자산관리(WM)와 세일즈·트레이딩(S&T) 부문 등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신영증권은 선제적으로 '패밀리 오피스' 서비스를 시도하면서 적극성을 보인 증권사 중 하나다. 신영증권의 대표 WM 브랜드인 'APEX 패밀리 오피스'는 2012년 론칭한 것으로 '자산관리 명가'에 오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Apex'는 '정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점도 이와 같다. 이후 신영증권은 초고액자산가 자산관리 특화 점포인 'APEX 프라이빗클럽'을 선보였으며, 현재 서울 청담과 명동, 부산 해운대 등 3곳이 운영되고 있다. 투자은행(IB), 법률, 세무, 파생, 채권 등에서 전문적인 자산관리 지원을 제공받을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대형사들이 초고액자산가(UHNW) 시장 진입에 집중하면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신영증권은 APEX프라이빗클럽 3곳의 전체 운용자산이나 구체적인 고객 수는 밝히지 않고 있다. 기업금융(IB)도 신영증권의 선방이 기대되고 있는 분야다. 금 대표가 IB를 총괄하고 있지만, 황 대표도 'IB통'으로 알려졌던 만큼 시너지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IB 부문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면서 커버리지본부를 기업금융본부로, 대체투자본부를 PE본부로 변경했다. IB 강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신영증권의 지난해 IB 부문 영업이익은 211억원으로 전년 동기 111억원 대비 약 2배 증가했다. 이는 기업공개(IPO) 시장에서의 존재감이 확대된 영향으로 보여진다. 신영증권은 지난해 M83, 에어레인, 제닉스, 한켐 등 4건의 딜을 성사시켰다. 올해도 9월 말 기준 5597억원의 공모총액을 기록하며 기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국내 증권사 중 3번째로 높은 규모다. 신영증권은 황 대표의 손길을 거치면서 2021년 386억원 수준이었던 IPO 공모총액을 2022년 948억원, 2023년 1071억원으로 성장시켰다. 주관 건수도 2021년 1건에서 2022년 4건, 2023년 5건으로 늘었다. 황 사장은 IB부문장을 지내던 시절에도 대유위니아, 두산밥캣 등 다수의 딜을 따내면서 신영증권의 저력을 입증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두산건설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딜, 동부건설 인수금융 등을 성사시키면서 부동산 프로젝트금융(PF), 건설사 매출채권 유동화 등 다양한 IB 실적을 이뤄냈다. 단단할 것만 같았던 신영증권의 장벽에도 금은 갔다. 홈플러스 카드대금 기초 유동화증권(ABSTB·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 사태를 마주하면서 보수적인 경영으로 쌓아 온 안정적인 이미지가 손상됐기 때문이다. 신영증권은 홈플러스 단기채권의 발행 주관을 맡았으며, 하나증권, 현대차증권, 유진투자증권 등 4개사와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강등 직전까지 ABSTB를 팔았다는 것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3차 상법 개정안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도 악재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신영증권의 자기주식은 872만9975주, 보유비율은 53.10% 수준이다. 황 대표가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추가 증인 채택 가능성이 높은 인물로 거론되는 이유다. 대내외 혼란 속에 지난달 5일 황 대표는 제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출마의 변'을 통해 자신이 "대형사와 중소형사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회원사의 목소리를 담고 조율할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황 대표는 여의도에서 가장 오래된 23개사 사장단의 정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연속 흑자와 보수적 경영으로 상징되던 신영증권은 이제 과거의 실적보다 '다음 선택'으로 평가받는 국면에 섰다. 황 대표가 협회장 도전을 선언하며 새로운 면모를 드러낸 만큼, 54년 신뢰의 무게를 다시 증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약력 황 대표는 1963년생으로 1982년에 서울 강남구 소재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1986년에 서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한 뒤 2005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재무학 석사(MSF)를 마쳤다. 사회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것은 1986년으로 대우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1987년 신영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기획조사부, 법인영업부, 채권부, 자산운용부 등을 두루 거쳤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경영지원부 리스크관리팀 담당 임원,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자산운용본부장 전무·상무를 맡았으며, 2012년부터 20214년까지는 신영증권 법인사업본부장 전무를 역임했다. 2014년에는 IB 사업부문장을 지내며 부사장으로 승진했으며,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총괄 부사장을 거쳐 2020년 6월부터 대표이사로 신영증권을 이끌게 됐다. 1987년부터 현재까지 38년째 신영증권에서 일하고 있다.

2025-10-17 07:00:17 신하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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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 안성우 직방 대표, 디지털 전환 이끈 1세대 프롭테크 개척자

안성우 직방 대표이사는 스마트폰으로 집을 구하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원룸이나 아파트를 찾으려면 발품을 팔아 부동산중개업소를 직접 돌아다녀야 했다. 허위 매물에 속아 헛걸음을 하거나 중복 매물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정보 비대칭이 구조적으로 고착된 시장에서 임차인·매수자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안 대표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를 포착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고시생 시절, 원하는 방을 찾기 위해 수많은 부동산을 전전하며 허위 매물과 엉터리 정보에 시달렸던 경험이 그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모든 것은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그의 철학은 이후 창업과 경영 전반을 관통하는 원칙이 됐다. 직방은 바로 그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 불편함을 기회로 2010년 안 대표는 정보기술(IT)을 통해 부동산 시장의 오래된 병폐를 해결하겠다는 구상으로 직방을 창업했다. 서비스 이름은 '직접 찍은 방 사진'에서 따왔다. 초기부터 허위 매물을 뿌리 뽑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다. 창업 초기에 직방이 내세운 차별화 포인트는 '신뢰'였다. 앱을 통해 매물을 올릴 때 사진을 직접 촬영해야만 등록이 가능하도록 하고 허위 매물이나 중복 매물을 올리는 중개사는 제재했다. 이용자가 헛걸음을 했을 경우 보상해 주는 '헛걸음 보상제'는 업계 최초의 제도였다. 이용자 보호 장치도 강화됐다. 매물을 문의한 사용자에게 광고 정보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안심피드백', 공인중개사와 플랫폼이 함께 거짓 광고를 검증하는 '안심광고위원회' 같은 시스템은 신뢰를 핵심 자산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당시만 해도 부동산 시장에서 신뢰를 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직방은 허위 매물 근절을 앞세워 단기간에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앱으로 집을 구한다'는 새로운 경험이 빠르게 자리 잡았다. ◆ 데이터로 시장을 바꾸다 직방의 진짜 힘은 데이터에 있었다. 단순한 매물 나열 플랫폼을 넘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시장의 기준을 만들어갔다. 대표적인 서비스가 '직방 시세'다. 이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기반으로 머신러닝 모델이 분석해 산출한 가격 추정치다. 기존에는 호가가 곧 시장 가격처럼 여겨졌지만, 직방은 실제 거래 정보를 기반으로 객관적인 시세를 제공했다. 층수, 방향, 타입별 특성, 인근 단지 거래 이력까지 종합적으로 반영해 가격을 추정하는 방식이었다. 거래가 없는 단지도 인근 시세와 비교 분석해 가치를 산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데이터 기반 서비스는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고 사용자들의 의사결정을 돕는 중요한 도구가 됐다. 직방이 단순 매물 중개 플랫폼이 아니라 프롭테크 기업으로 불리게 된 계기였다. ◆ 프롭테크 유니콘으로 성장 2021년 직방의 기업가치는 2조5000억원에 달했다. 국내 12번째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했다. 부동산·건설 분야에서 최초의 유니콘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투자에는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글로벌 주요 투자사들이 참여했다.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직방이 보유한 데이터 자산과 기술력, 그리고 시장 지배력이었다. 수년간 축적한 매물 정보와 사용자 패턴, 자회사 호갱노노와의 시너지 등은 직방만의 강점이었다. 업계는 직방이 단순한 중개 플랫폼을 넘어 '주거 데이터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에 주목했다. 2025년 5월에도 VIG파트너스 계열 투자사로부터 6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직방은 지금도 투자자들의 신뢰를 받는 기업이다. ◆ 3D 단지 투어와 디지털 트윈 안 대표가 강조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주거 경험의 디지털 전환'이다. 직방은 3D 단지 투어 기능을 선보이며 모바일에서 현장 임장을 가능하게 했다. 사용자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단지 전경과 세대 내부를 3차원으로 둘러볼 수 있다. 이는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현실의 부동산 정보를 가상 세계로 그대로 옮겨놓아 전국 아파트 단지의 99% 이상을 커버할 수 있게 했다. 이용자들은 굳이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충분히 임장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3D 단지 투어는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라, 부동산 거래 문화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었다. '집을 선택하는 경험'을 데이터와 기술로 재구성해, 실수요자의 부담을 줄이고 투자자에게는 더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 스마트홈 기업으로의 확장 직방은 더 이상 원룸·아파트 매물을 소개하는 앱에 머물지 않는다. 2022년 삼성SDS의 홈 IoT 사업부를 인수하며 스마트홈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했다.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도어록 '헤이븐'과 AI 로비폰은 국내 최초로 비밀번호 없는 패스워드리스 출입 방식을 적용했다. 얼굴 인식과 모바일 키 태그 기능을 탑재해 보안성과 편리성을 동시에 강화했다. 이 기기들은 '직방 스마트홈 앱'과 연동된다. 단지 커뮤니티 시설 예약, 자녀 귀가 알림, 택배 알림 등 생활 전반을 앱 하나로 관리할 수 있다. 안 대표는 "스마트폰이 업데이트되듯, 주거 공간도 업데이트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철학이 스마트홈으로 확장된 것이다. ◆ 산업 생태계와 가교 역할 안 대표는 직방이라는 한 기업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2018년에는 한국프롭테크포럼을 출범시켜 초대 의장을 맡았다. 프롭테크 기업, 건설사, 디벨로퍼, 기술기업들을 연결해 교류와 협력을 이끌었다. 초기 26개 회원사로 시작한 포럼은 현재 320여 개 회원사 규모로 성장했다. 2020년에는 김슬아 컬리 대표, 이승건 토스 대표와 함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공동의장을 맡았다. 그는 스타트업 업계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며, 규제 완화와 정책 지원을 요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1세대 창업가로서 경험을 공유하고 후배 창업가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업계 안팎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문제 해결은 곧 혁신 안 대표는 경영 철학을 묻는 질문에 "모든 것은 문제 해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다. 직방 창업이 허위 매물 문제 해결에서 출발했듯, 지금도 그는 주거 경험 속 불편함을 찾아내 이를 기술로 해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이 진화하듯, 집도 진화해야 한다. 사람들의 생활이 변화하면 주거공간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 대표의 철학은 단순히 중개 플랫폼 운영자가 아니라, '주거 경험 혁신가'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전지원기자 jjw13@metroseoul.co.kr ◆출생 및 학력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통계학과에 진학해 학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경력 2022.08 ~ 2024.08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 규제심판위원 2021.05 ~ 2021.12제3회 컴업(COMEUP) 조직위원장 2020.02 ~ 2022.02코리아스타트업포럼, 공동의장 2018.11 ~ 2023.04한국프롭테크포럼, 의장 2010.11 ~ 현재직방, 대표이사 2009 ~ 2010블루런벤처스, 투자심사 팀장 2005 ~ 2008삼일회계법인, CPA

2025-10-16 08:53:37 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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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불가능을 모르는 '닭의 사나이'

병아리 10마리에서 출발해 재계 27위, 자산 17조 원 규모의 글로벌 종합식품기업을 일궈낸 인물이 있다.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은 선대의 기반을 물려받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창업해 성장시킨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11살 때 외할머니가 선물해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 판 경험은 사업가로서 첫걸음이었다. 김 회장은 닭 한 마리의 생애주기와 농가 경제의 흐름을 몸으로 배웠다. 1978년,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황등농장'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양계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 양계업은 영세한 규모가 대부분이었고 병아리 값과 사료 값, 출하 가격이 들쭉날쭉해 안정적인 수익을 내기 어려웠다. 닭 전염병이 돌면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사라지기도 했다. 김 회장 역시 여러 차례 쓰라린 실패를 맛봤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위기에서 배움을 얻었다. 단순히 닭을 키워 파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결국 '닭 한 마리'를 둘러싼 모든 과정을 통합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병아리·사료·사육·도축·가공·유통을 아우르는 '가치사슬'을 구축하면 농가와 기업 모두가 살 수 있다는 발상이다. 1986년, 김 회장은 '코리아데리카후드'를 창업하며 산업화된 축산업의 문을 열었다. 작은 도계장에서 출발한 이 회사는 1990년 사명을 '하림'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육계 계열화 모델을 도입했다. 하림의 위탁사육 시스템은 혁신적이었다. 농가에 병아리와 사료를 공급하고, 일정 기간 사육한 닭을 다시 사들이는 방식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가격 변동 위험을 줄이고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었고, 기업은 원료 조달과 품질 관리의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이 구조는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신뢰를 높였고, 1988년 정부로부터 육계계열화업체로 지정되며 하림은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1990년대 들어 하림은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갔다. 동양 최대 규모의 도계공장과 사료공장을 잇따라 세우며 업계 선두로 올라섰다. 당시 '닭 하면 하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김홍국 회장은 '닭의 사나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입지전적 기업가로 주목받았다. 그의 경영 철학은 늘 '불가능을 모르는 도전'이었다. 김 회장은 나폴레옹을 인생의 멘토로 꼽는다. 젊은 시절부터 나폴레옹 전기를 탐독하며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 실제로 그는 숱한 위기를 맞았다. IMF 외환위기 시절 금융권이 흔들리던 때에도 하림은 설비투자를 이어갔고, 닭값 폭락으로 업계 전반이 휘청거릴 때도 오히려 확장을 선택했다. 하림의 성장사는 곧 M&A의 역사이기도 하다. 하림은 2007년 사료·양돈·육가공을 아우르는 종합 축산기업 선진을 계열사로 편입하며 돈육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어 사료업체 천하제일사료까지 품어 원료 경쟁력을 강화했다. 2011년에는 미국 5위권 닭고기 회사였던 '앨런 패밀리 푸드(Allan Family Foods)'를 인수하며 글로벌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2015년, 법정관리 중이던 해운사 팬오션을 인수한 사건은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곡물·사료 물류망까지 손에 넣은 하림은 축산업을 넘어 '종합식품기업'으로 도약할 토대를 마련했다. 팬오션은 당시 부실기업으로 누구도 선뜻 인수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김 회장은 "식량 자급률을 높이려면 원료 수입 물류망을 직접 확보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결단을 내렸다. 당시 재계 일각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현재 팬오션은 하림그룹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잡았다. 식량·축산·사료·물류를 아우르는 밸류체인이 완성된 순간이다. 하림은 이제 단순한 육류 공급 기업을 넘어 종합식품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 회장은 HMR(가정간편식)과 펫푸드 등 미래 먹거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더 미식' 브랜드를 앞세운 프리미엄 즉석식품, 어린이 전용 '푸디버디', 그리고 펫푸드 '더 리얼' 등은 '축산 기반 식품기업'에서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식품 기업'으로의 진화를 보여준다. 최근에는 ESG 경영 기조에 맞춰 친환경 포장재 도입, 동물복지 인증 확대 등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 회장은 늘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한다"고 말한다. 병아리 10마리에서 시작한 하림그룹은 축산, 사료, 식품, 유통, 해운까지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글로벌 식량 경쟁이 치열해진 현재도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김 회장이 강조하는 "내 사전엔 불가능이 없다"는 철학은 여전히 그룹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다. ◆ 약력 생년월일 : 1957년생 출생지 : 전라북도 익산시 학력 : 호원대학교 경영학 학사 / 전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박사 수료) 현 직함 : 하림그룹 회장(2001년~), 생명사랑하림재단 이사장(2006년~) ◆ 주요경력 1986년 : 하림식품 대표이사 취임 1993~2003년 : 한국육계협회 회장 2001년 : 하림그룹 회장 취임 2005년 : 남북농업협력추진협의회 정책위원 2006년 : 생명사랑하림재단 이사장 2015년 : 팬오션 인수, 그룹 물류사업 확장

2025-10-13 09:26:11 신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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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 위기에 강한 리더

"이대로 멈춰 절벽 끝에 계속 서 있을 수는 없다. 신뢰가 훼손된 우리금융을 더 단단한 신뢰의 기반 위에 바로 세우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2025년 1월,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우리금융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신년사에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우리금융의 내부통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2024년 6월 우리은행에서 임직원의 횡령 사고가 적발된 데 이어, 같은 해 8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부당 대출 의혹까지 적발되면서다. 연이은 금융사고에 소비자의 신뢰는 하락했고, 우리금융이 추진 중이었던 동양·ABL생명의 자회사 편입도 금융감독원의 경영실태평가 등급 하향을 이유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임종룡 회장은 고객 신뢰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하고, 내부통제 강화를 위한 투자와 노력를 아끼지 않았다. 계열사인 우리은행에서는 기존의 내부통제 관리역·지점장 체제를 재편해 내부통제 담당자를 대폭 충원했으며,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이상징후 검사 시스템(FDS)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임기를 마친 사외이사도 대대적으로 교체해 경영 투명성도 확보했다. 업계의 우려 속에서 임종룡 회장과 우리금융그룹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지속적인 내부통제 강화를 전제로 2025년 5월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자회사 편입을 조건부 승인받았고, 우리금융은 숙원과제였던 '종합금융그룹 완성'을 달성했다. 시장의 신뢰도 회복됐다. 연이은 금융사고로 1만5000원 전후로 정체됐던 주가는 지난 5월 보험사 합병을 기점으로 빠르게 상승해 올해 9월에는 주당 2만6000원 수준까지 급등했다. ◆ 민·관 두루 경험…위기에 강한 '리더' 임 회장의 삶은 항상 앞서나가는 '리더'의 삶이었다. 지난 1981년 대학 3학년때 이른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임 회장은 이듬해 재정경제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99년에는 '최연소'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 타이틀을 얻었고, '닮고 싶은 상사'에도 여러 번 이름을 올렸다. 그의 강점으로는 '화합'과 '소통', 그리고 '겸손한 리더십'이 꼽혔다. 기재부 제1차관과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낸 그의 능력은 민간에서도 빛을 발했다. 2013년 임종룡 회장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부임 당시 NH농협금융지주는 사측과 노조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으며 내홍을 겪었다. 전임 회장인 신동규 NH금융 회장은 사퇴 당시 "농협금융은 제갈량을 데려와도 안 된다"라는 평가를 남겼지만, 임 회장은 노사 갈등을 성공적으로 중재하며 NH금융의 위기를 극복했다. 2015년 NH금융 회장으로의 임기를 마치고 관으로 복귀한 임 회장은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고, 이듬해에는 금융과 거시경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후보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정치권 지형이 급변하면서 금융위원장에서 물러난 임 회장은 이후 대학 교수와 기업 사외이사를 지내며 일선에서 물러나는 듯 했다. 그러나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이유로 금융당국의 중징계를 받으면서 민·관을 두루 경험한 임종룡 회장이 우리금융그룹을 이끌 최적임자로 낙점됐고, 다시 한 번 '구원투수'로 일선에 복귀했다. ◆ AI·정책금융에 앞장…'재도약' 목표 임 회장의 이번 임기는 내년 3월까지다. 임 회장과 우리금융은 끊임없는 도전을 지속하고 있다. 임 회장은 지난 7월 하반기 경영전력회의에서 우리금융의 '디지털 전환(AX) 원년'을 선포했다. 계속되는 기술 발전과 규제 완화로 금융권의 주요한 화두로 떠오른 인공지능(AI) 기술을 영업 현장에 적극 도입 및 활용하고, 모든 임직원이 AI를 친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당시 임 회장은 "인공지능(AI)은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파트너"라며 "AI를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이 미래의 핵심 인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금융은 은행권 최초로 '국민성장펀드'에 동참하며 정부의 정책 목표인 '생산적 금융 전환'에도 발맞추고 있다. '생산적 금융 전환'은 부동산에 집중된 금융권 자금이 첨단·벤처기업과 지역경제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 및 규제하는 방안이다. 우리금융은 지난달 말 정부의 정책펀드 조성 사업인 '국민성장펀드'에 대한 10조원 규모의 직접출자를 포함해 80조원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 '미래 동반 성장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미래 동반 성장 프로젝트는 7조원 규모의 사회적 금융을 포함하는 한편, AI·바이오 등 정부가 주요 목표로 설정한 '첨단전략사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도 포함했다. 우리금융이 제시한 투자금액은 총 73조원으로, 국민성장펀드의 금융권 기금 목표인 75조원에 맞먹는다. 임 회장은 이날 "은행권이 이자 장사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 저성장 국면을 전환해야 하는 시점에서 기업·산업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범금융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면서 이번 프로그램의 취지를 밝혔다. ◆ 약력 1981년 행정고시 24회 합격(재경직) 1993년 재무부 국제관세과 사무관 1995년 재무부 산업경제과 서기관 1998년 재정경제부 금융기업구조개혁반장 1999년 1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 1999년 10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증권제도과장 2001년 9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증권제도과장(부이사관) 2002년 3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과장 2002년 9월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장 2004년 3월 주 영국 대사관 참사관(재경관) 2006년 11월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금융정책심의관(고위공무원 나급) 2007년 4월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2008년 3월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 2008년 8월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 2009년 1월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2010년 4월 기획재정부 제1차관 2011년 9월 ~ 2013년 3월 국무총리실 실장 2013년 4월 ~ 2013년 6월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2013년 6월 ~ 2015년 2월 NH농협금융지주 회장 2015년 2월 ~ 2017년 7월 금융위원회 위원장 2018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20년 7월 ~ 법무법인(유) 율촌 고문 2021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겸임교수 2021년 2월 ~ 2021년 11월 국회 국민통합위원회 경제분과위원 2021년 3월 ~ 2023년 3월 삼성증권 사외이사 (役) 삼성증권 감사위원회 위원장 (役) 삼성증권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役) 삼성증권 내부거래위원회 위원 (役) 삼성증권 ESG위원회 위원 2021년3월 ~ 2023년3월 CJ대한통운 사외이사 (役) CJ대한통운 내부거래위원회 위원장 (役) CJ대한통운 감사위원회 위원 (役) CJ대한통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 (役) CJ대한통운 보상위원회 위원 2021년 4월 ~ 2023년 3월 CJ대한통운 ESG위원회 위원장 2023년 3월 ~ 우리금융지주 회장 (現) 2023년 3월 ~ 우리금융미래재단 이사장 (現)

2025-10-13 08:07:12 안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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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 박현철 롯데건설 부회장, 40년 '롯데맨' PF 위기 넘다

2022년 말 대표이사로 선임된 박현철 롯데건설 부회장. 그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경색으로 건설업계 전반이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유동성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롯데건설의 소방수로 투입됐다. 그룹 내 '재무통'으로 꼽힌다. 꼼꼼한 기획·관리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빠른 자금 조달과 재무구조 개선으로 위기 탈출의 해법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5년 현재, 안정적 기반 위에 스마트건설·도심항공교통(UAM) 등 미래 성장동력까지 더하며 롯데건설의 체질 전환을 이끌고 있다. 1960년 10월 16일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대구 영남고와 경북대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1985년 롯데건설 기획조정실에서 출발해 경영관리·회계·감사 업무를 두루 거쳤고 1999년 롯데그룹 정책본부로 자리를 옮긴 뒤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주요 사업 조율을 맡았다. 2006년 상무보, 2011년 상무, 2014년 전무로 승진하며 경영관리 역량을 쌓았다. 2015년 롯데물산 사업총괄본부장으로 발탁돼 롯데월드타워 프로젝트를 총괄했다. 롯데월드타워는 30년에 걸친 그룹 숙원사업이자 수많은 논란의 중심이었다. 싱크홀, 수족관 누수, 영화관 진동 문제까지 불거지며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제2롯데월드 안전관리위원회를 꾸려 원인과 대책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현장을 직접 지휘하며 문제를 풀었다. 2016년 준공, 2017년 개장으로 결실을 맺으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입증했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2017년 롯데물산 대표이사로, 2019년 롯데지주 경영개선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과 재무개선을 진두지휘했다. 2022년 12월 롯데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르며 다시 한 번 그룹의 구원투수로 호출됐다. 입사 이래 40년 가까이 '롯데맨'으로만 걸어온 그는 그룹 내부 사정과 건설업의 속성을 동시에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란 평가다. ◆ PF 위기 넘은 자금 조달 능력 취임 직후 그가 맞닥뜨린 현실은 PF 보증 부담과 자금시장 경색이었다. 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채권시장 불안이 극심했고 롯데건설은 수조원대 PF 차환이 막히며 유동성 압박에 시달렸다. 박 부회장은 그룹 계열사 지원을 바탕으로 회사채 2500억원 발행에 성공했고 메리츠증권과 1조5000억원 규모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롯데홈쇼핑·롯데정밀화학·롯데케미칼 등 계열사로부터 빌린 9000억원 운영자금을 조기 상환하며 재무 불신을 씻어냈다. 그 결과 2023년 말 부채비율 264.8%였던 회사는 2025년 6월 말 198%로 개선됐다. 부채총계는 5조6420억원, 자본총계는 2조8528억원으로 재무 안정성이 회복 단계에 들어섰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33% 수준으로 낮아졌다. 2023년 롯데건설은 매출 5조9448억원, 영업이익 3608억원을 기록했다. PF 비용 증가로 영업이익률은 줄었지만 분양·착공 호조로 매출을 늘리며 선방했다. 구리·시흥·청량리·부산 문현지 등에서 1만6503세대를 공급했고 대부분 단지가 분양 마감됐다. 2024년 상반기에는 매출 4조원대, 영업이익 700억원대를 기록하며 수익성이 개선됐다. 특히 서울 전농8구역(7058억원)을 포함해 천호우성, 신반포12차, 안양 종합운동장 북측 재개발 등 도시정비 수주에 성공하며 1조6000억원대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2025년 상반기에도 매출 3조7485억원, 영업이익 408억원을 기록했고 2분기 매출만 1조9551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률은 1%대지만 2022~2023년 위기 상황과 비교하면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해외사업은 여전히 부진하다. 2022년 인니 석화단지 등 그룹 계열사 물량에 힘입어 15억달러대 수주를 기록했으나, 2023년에는 1억 달러대로 급감했고 2025년에도 회복 속도가 더딘 상태다. ◆ 현장 체질 개선 다음은 미래 먹거리 준비 박 부회장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스마트건설과 안전 혁신을 체질 개선의 축으로 삼았다. 2023년 AI 기반 시방서 질의응답 플랫폼 'ConGPT', 흙막이 배면부 균열 추적 시스템을 개발했고 스타트업 솔루션 '팀뷰'를 도입해 도면 협업 효율성을 높였다. 2023년 10월에는 본사에 AI 기반 통합 영상관제 '안전상황센터'를 개관해 전 현장 CCTV를 본사에서 실시간 모니터링하도록 했다. 그는 현장소장과 협력사 CEO까지 참여하는 '세이프티 온 리더십' 교육에 직접 나서며 "모든 안전은 기본과 원칙 준수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안전관리 전담 조직과 콘텐츠 제작,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다국어 교육까지 시스템을 고도화하며 안전이 경영의 1순위라는 기조를 확실히 했다. 2024년 말 롯데건설은 연구개발 인력을 모아 AI 전담조직 'AGI 태스크포스(TFT)'를 출범시켰다. 2025년 2월에는 롯데정보통신·한국MS·오토데스크코리아·PwC컨설팅과 업무협약을 맺고 AGI 기술 발굴과 건설 현장 적용을 위한 실증에 착수했다. 도심항공교통(UAM)도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성남시와 협약을 맺고 버티포트 설치 후보지를 검토했으며 롯데그룹이 참여하는 'K-UAM 그랜드챌린지'에도 컨소시엄 일원으로 참여 중이다. 롯데몰·마트·백화점 상부 등 그룹 인프라와 연계한 도심 모빌리티 허브 구축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업구조로 바꿔나가야 한다"며 운영사업·기술 연계 신사업을 통한 고정수익 기반 마련을 강조했다. ◆ 기업시민으로서의 소임 박 부회장은 공식 인사말에서 "고객에게는 보다 나은 가치를, 지역사회에는 지속가능한 성장에 기여하는 기업시민이 되겠다"고 밝혔다. 주택·건축·토목·플랜트 4개 사업 분야를 아우르는 롯데건설은 '롯데캐슬', '르엘' 브랜드로 주거문화를 선도해왔고 초고층·복합시설·플랜트·교량·터널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그는 기업시민으로서 안전·환경·동반성장을 경영원칙으로 삼으며 임직원 교육·복지 제도(남성 의무 육아휴직 등)를 확대해 '즐겁게 일하는 조직문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편 박 부회장은 2025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유임이 확정되며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위기 극복 경험과 리스크 관리 능력은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PF 보증 규모(2025년 상반기 기준 4조원대), 해외사업 부진, 분양시장 변동성은 여전히 불안요인이다. 40년간 그룹에 헌신한 정통 롯데맨이자 '위기관리 전문가'. 그는 재무개선을 넘어 스마트건설·신사업으로 회사 체질을 바꾸려 하고 있다.

2025-10-13 08:00:06 전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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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실행력 발휘해야" 한화 김승연 회장

"우리의 주요 사업들은 이제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의 방산사업 수출은 처음으로 내수를 넘어섰고, 해양사업은 기존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내딛고 있습니다. 금융사업은 동남아에서 시작해 글로벌 자본의 중심인 미국시장까지 보폭을 넓히고 있으며, 기계 분야 역시 기술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습니다." 2025년 1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어떤 위기에도 흔들림 없는 실행력'을 강조하며 불확실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그룹의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같은해 한화그룹 계열사들은 2분기 실적 개선에 성공하며 성장세를 수치로 입증했다. 2분기 한화그룹 내 방산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86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6.3% 증가한 것으로 2분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6조273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8.7% 증가했으며 순이익은 2877억원으로 79.9% 늘었다. 이러한 실적 개선 배경에는 유럽과 중동 지역 중심의 대규모 방산 수주가 있다. 특히 폴란드로의 K9 자주포와 천무(다연장로켓) 수출이 본격화되며 수주 잔고가 크게 늘었다. 한화그룹 조선 계열사인 한화오션 또한 2분기 실적 개선에 성공하며 흑자 전환했다. 2분기 매출은 3조 2941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5%, 전년 동기 대비 30% 상승했다. 영업이익은 3717억원으로 43.7% 늘어났다. 고수익성 LNG선 매출 비중이 확대된 가운데 특수선과 상선 부문에서도 꾸준히 신규 일감을 확보해 수익성이 크게 개선 된 것이다. 한화그룹의 에너지 부문을 담당하는 한화솔루션도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3조1172억원 영업이익 1021억원을 기록했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이 실적을 견인했으며 해당 부문 매출은은 1조4464억원, 영업익 1562억원으로 집계돼 전분기 1362억원 대비 15% 증가했다. 미국 주택용 에너지 수요 증가와 함께 태양광 모듈의 판매량 및 단가가 동반 상승한 결과로 풀이된다. ◆29세에 총수 자리 올라...'30년 만에 매출 40배 성장' 김승연 회장은 1952년 충첨남도 천안에서 한화그룹 초대 회장 김종희의 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를 입학해 다니던 중 1968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난 1974년 멘로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6년 드폴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아버지 김종희가 지병인 당뇨병 합병증과 신부전증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김승연 회장은 29세의 나이로 한국화약그룹의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젊은 나이의 총수로서 그룹을 재계서열 6위의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며 주목받고 있다. 1996년에는 서강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6년 유엔한국협회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2009년 11월 한국경영사학회 제 16회 창업대상을 수상했다. 김승연 회장은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미교류협회 회장, UN한국협회 회장, 국제아마추어 복싱연맹 부회장, 국제복싱발전재단(FBB)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예술의 전당 교향악축제를 10년 넘게 후원하면서 2009년 3월 에술의 전당으로부터 종신 회원증을 받았다. 김승연 회장은 2011년 8월 초 취임 30년을 맞았다. 선대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회사를 물려받은 이후 1981년 기준 매출 1조원이었던 한화는 30년 만에 매출 40조원을 목표로 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김 회장 취임 후 한화는 30년간 금융, 전자, 유통, 레저, 사회복지 등 3차산업을 강화하며 성공적인 '제2 창업기'로 평가받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같은해 김승연 회장은 동남아 5개국을 돌며 비즈니스 가능성을 모색하는 등 활발한 글로벌 경영 행보도 이어갔다. ◆위기를 기회로...한화 새 성장동력 만들어 김승연 회장은 1981년 취임 1년만에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해 석유화학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이어 1983년 경인에너지 내국화를 단행하며 매출을 2배 이상 끌어올렸다. 1985년 장아그룹(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1986년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을 인수하면서 3차산업에 진출했다. 1986년에는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이글스)를 창단했고 1990년 경향신문사를 인수한 바 있다. 1990년 이후 해외진출에도 속도를 냈다. 1993년 아테네은행 인수, 1996년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현 헝가리 한화은행)을 인수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면서 한화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이 시기에는 한화 바스프우레탄, 한화에너지 , 한화자동차부품 등의 회사를 매각했으며 유화사업 맞교환 등의 창조적 구조조정으로 국내는 물론 일본 산께이 신문, 로이터통신 등에서 '구조조정의 마술사'란 별명을 얻게된다. 지금은 대전의 자랑이 된 대덕테크노밸리가 세워진 것도 김승연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1996년 홍선기 대전시장으로부터 '타기업의 포기로 10년이상 방치된 대전의 숙원 사업'인 대덕테크노밸리 사업 제안을 받았다. 김승연 회장은 그룹 실무진의 반대에도 "지역 발전을 위해 적극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대덕테크노밸리의 사업 추진에 나섰다. 대덕테크노밸리는 2001년부터 9년간의 사업기간을 거쳐 2009년 11월 5일 성공적인 준공식을 가졌다. 대덕테크노밸리는 기존의 도시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산업, 주거, 교육, 문화, 레저가 어우러진 신개념의 직주근접형 첨단복합단지로서 국내 최초의 도시개발 성공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02년 인수한 대한생명은 2010년 한국거래소에 상장됐으며 2010년 6월 푸르덴셜투자증권 및 푸르덴셜자산운용을 인수한다. 이후 중국 솔라펀파워 홀딩스 지분을 인수하며 한화솔라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태양광 산업에 진출했다. 2011년 중국 지역 사업확장을 위해 한화차이나를 설립하는 등 30년 동안 회장으로 재직하며 한화그룹의 매출을 27배, 총 자산115배, 당기순이익 223배 각각 성장시켰다. 2011년 10월 5일 '한화 공생발전 7대 종합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상생, 친환경, 복지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위한 구체적인 실행에 나섰다. 한화의 공생발전 모델의 핵심 테마를 상생, 친환경, 복지 분야로 나눠 추진 프로젝트를 선정, 중소기업형 사업 철수, 협력업체 지원, 친환경 사회공헌사업 확대, 사회복지재단 설립, 성과공유제, 친환경사업체제 구축 성공, 공생전략 시스템 도입 등을 시행하고 있다. ◆현장으로 달려간 김승연...R&D·기술혁신 직접 챙긴다 김승연 회장은 현장을 직접 찾으며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그는 지난 6월 17일 한화토탈에너지스 대산공장을 방문해 올해 첫 현장 경영에 나섰다. 김승연 회장은 석화업계의 장기 불황으로 분투 중인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R&D 경쟁력과 안전경영을 강조했다. 김승연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전세게적인 경기 둔화와 급격한 시장 패러다임의 변화로 소재·에너지 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경영환경에 직면해 있다"며 "원가절감과 공장 효율을 높 이기 위한 혼신의 노력과 동시에 끊임없는 혁신을 바탕으로 기술과 품질 경쟁력 강화에 더욱 집중해 달라"고 당부했다. 임직원에게 사명감을 가지고 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가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화토탈에너지스 연구소를 방문해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핵심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탄소 포집 파일럿 설비 'CCU'를 살펴보고 개발담당 직원의 설명을 들었다. 김승연 회장은 "탄소포집·활용과 같은 미래 소재·에너지 기술 개발은 우리 한화그룹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넘어 대한민국의 국격을 한 단계 높이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10월 연구개발 전진기지인 경기 '한화 판교 R&D 캠퍼스'를 찾아 현장을 살피고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화 판교 R&D 캠퍼스는 한화비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정밀기계, 한화파워시스템 등 제조 계열사의 각종 신기술이 탄생하는 곳으로 한화그룹 미래 기술 개발의 중추다. 김회장은 이날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 연구실 현장을 살피며 자체 개발 기술을 직접 체험하고 세계 기술 시장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등 연구진과 소통했다. 현장에선 ▲산업현장 모니터링 ▲독도 실시간 모니터링 ▲물류 현장 분석 솔루션 ▲사이버 보안기술 등 최신 AI 기술을 적용한 한화비전의 각종 영상 보안 기술을 확인했다. 또한 생산기지인 베트남 법인의 최근 성과를 직접 언급하며 격려했다. 북미, 유럽 등 전 세계 곳곳에 제품을 판매하는 베트남 법인은 지난 2023년 10월 공장 가동 5년만에 1000만번째 제품을 생산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당시 김승연 회장의 행보는 같은해 8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인적 분할한 한화비전과 한화정밀기계가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로 거듭난 직후 단행된 현장방문 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회장은 "반도체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첨단기술 혁신을 견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 산업"이라며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해 4월 경기 판교 한화로보틱스 본사를 방문해 로봇 기술 현황을 점검했다. 한화그룹 로봇 부문 계열사인 한화로보틱스는 로봇 분야 선점을 위하여 지난 2023년 10월 공식 출범했다. 이날 김 회장은 한화로보틱스 전략 기획 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김동선 부사장과 함께 신기술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연구 현장에 한참 머무르며 실무진과 기술현황, 미래로봇산업 전망 등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김승연 회장은 "사람과 로봇의 협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차별화된 혁신 기술을 지속 개발해달라"고 주문했다. ◆인적사항 성명 : 김승연 생년월일 : 1952.2.7 ◆학력 -서울장충국민학교 -장충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셔턱세인트메리국제학교 -멘로 대학교 경영학 학사 -드폴 대학교 대학원 국제정치학 석사 -서강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경력 -그리스 명예영사 -한화그룹 회장 -천악북일학원 이사장

2025-09-30 16:05:58 차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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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 "고객을 향한 혁신, 멈추지 않겠다" LG 구광모 회장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타입'으로 잘 알려진 구광모 회장은 4대 그룹 총수 중 가장 젊은 만 40세에 총수 자리에 오른 만큼 과감한 혁신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구 회장은 형식보다는 실용주의를 추구하며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구 회장은 특히 격식속에 진행됐던 그룹 회의도 실용에 집중하는 형태로 바꿨다. 회장 취임 후 가장 먼저 그룹 차원의 회의체나 모임을 형식보다는 실용에 집중하는 형태로 바꾸고 보고와 회의 문화를 개선했다. 실제 LG의 최고경영진 회의 풍경은 완전히 뒤바꼈다. 그간 임원들의 보고를 전달받는 방식에서 탈피해, 회의 때마다 상황에 맞는 주제를 정하고 토론 중심의 회의가 진행된다. 400명 이상의 임원이 분기마다 모였던 임원세미나도 없애고 필요에 따라서는 외부의 전문가 강연을 듣기도 한다. 특히 사내 분위기도 진취적인 분위기로 대폭 전환시켰다. 완전 자율 복장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2020년부터는 시무식도 디지털로 전환했다. 구 회장의 실용주의는 곧바로 혁신경영으로 거듭난다. 그는 '고객가치'를 강조하며 비핵심·부진 사업을 줄이고, 배터리·자동차 전장 등 성장동력을 강화했다. 실제 부진 사업인 모바일 사업을 종료하고 ▲LX 계열 분리 ▲LG에너지솔루션 기업공개(IPO) ▲LG 인공지능(AI) 연구원 설립 등을 추진하며 체질개선에 성공한다. 무엇보다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직후부터 LG의 핵심 미래 먹거리로 정한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5년간 100조원을 쏟아붓는 동시에 절반 이상을 경쟁력의 원천인 연구개발(R&D)에 투자해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뚝심 경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LG가 ABC 분야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평가다. 구 회장은 지난해 ㈜LG 주주총회에서 "AI, 바이오, 클린테크 등 새로운 성장축을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해 10년, 15년 뒤를 대비한 미래 기반 확보에 더욱 힘쓰겠다"며 사업 본격화의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그는 AI 분야는 2027년까지 AI·데이터 분야 연구개발(R&D)에 총 3조 6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등 주력하고 있다. 그룹의 'AI 연구 싱크탱크'인 LG AI연구원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자체 개발한 초대규모 인공지능 '엑사원'의 LLM(대형언어모델)을 1.0에서 최신 3.5 버전으로 진화시켰다. 올해 말에는 엔터프라이즈 AI 에이전트 '챗엑사원'을 임직원 대상 서비스로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구광모 회장은 젊은 연구 인력의 역량을 신뢰하며 1980년대생의 우수한 연구 역량을 갖춘 인재 3명을 임원으로 신규 선임하는 등 도전적 목표와 변화를 강조하는 경영 철학을 구현했다. 바이오(Bio) 분야는 오랜 기간 축적된 배터리 기술 노하우를 바이오 분야에 접목하며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했다. LG화학 생명과학본부는 2023년 연 매출 1조 2000억원을 돌파하며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또 미국 리듬파마슈티컬스와 희귀비만증 신약 기술을 약 4000억원 규모로 수출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확대했다. 이는 배터리 소재 기술이 신약 개발에 시너지를 내는 혁신적인 모델로 평가받았다. 클린테크 분야는 LG에너지솔루션을 중심으로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 분야에서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 신재생 에너지 소재 개발, AI 기반의 효율적인 공장 설비 구축 등 미래 친환경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며 친환경 산업을 선도했다. 구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재 발굴에도 진심이다. 지난해까지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급 인재만 110여명에 달할 정도다. 실제 2018년 3M의 해외사업을 이끌던 신학철 부회장을 LG화학의 CEO로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LG글로벌전략개발원장 윤창렬 부사장 등 15명이 LG에 합류했다. 또 구 회장은 잠재력과 전문성을 갖춘 젊은 인재를 파격적으로 기용하고 있다. 6년 동안 여성 임원도 두 배 이상으로 확대한 데 이어 지난 2023년에는 114명의 신임 상무를 발탁했으며 그중 1970년 이후 출생이 92%로 젊은 리더층을 두텁게 만들었다. 이같은 혁신경영은 양적·질적 성과로 이어졌다. LG전자는 2024년 2분기에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역대급 실적을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61.2% 올라 2분기 기준 1조 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 매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8.5% 올랐다. 또 계열사인 LG화학의 생명과학본부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연 매출이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를 통해 구 대표는 젊은 총수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해소시키고 리더십을 재평가받았다. 한편 구 회장은 해마다 신년사를 통해 혁신을 바탕으로 한 구체화된 고객가치 경영 철학을 구성원들에게 적극 알리고 있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LG만의 가치를 제공하는데 달려 있다는 믿음으로 올 한 해 '차별적 고객 가치'와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더욱 매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구광모의 '선택과 집중' 전략과 사업 재편 ◆'스마트폰 사업 철수' 그룹의 대전환을 알린 상징적 결단 LG전자의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본부는 2015년부터 5조 원이 넘는 누적 적자를 기록하며 그룹 전체의 수익성을 저해하는 '만년 적자 덩어리'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구광모 회장은 이러한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2021년 4월 5일 이사회에서 휴대폰 사업 종료를 결정하는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1995년 첫 출시 이후 26년간 이어져 온 LG의 휴대폰 사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 결정은 기술 혁신 정점에 있던 스마트폰이 상향 평준화되며 부가가치가 감소하는 시장 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선제적으로 대응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구 회장은 확보된 자원을 전기차 부품(전장), 로봇 등 미래 핵심 성장 동력에 재투자함으로써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미래 지향적으로 전환했다. 흥미롭게도, 휴대폰 사업 철수 이후에도 LG전자는 기존 휴대폰 기술 특허를 활용하여 무선 이어폰 '톤프리' 신제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수천억 원 규모의 기술 특허 수익을 창출하며 '뜻밖의 효자'로 재탄생하는 아이러니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구광모 회장의 전략적 판단이 장기적으로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체계적인 비핵심 사업 정리 과정 -2019년: LG디스플레이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정리하고, LG유플러스 전자결제 사업을 매각했다. -2020년: LG화학 편광판 사업을 정리 매각했다. -LG전자: 연료전지 회사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하고, 수처리 자회사인 하이엔텍과 LG히타치워터솔루션도 매각하며 비핵심 사업을 정리했다. -LG화학: 2019년 3월 말 LCD(액정 디스플레이) 소재 사업을 정리했다. -LG이노텍: 2019년 9월, 적자에 허덕이던 스마트폰용 메인기판(HDI) 사업을 정리하며 효율성을 높였다. -LG유플러스: 2019년 12월 전자결제 사업을 토스에 매각하여 핵심 통신 사업에 집중했다. -해외 자산 효율화: 2020년 2월에는 LG전자, LG화학, LG상사 등이 중국 베이징 트윈타워 지분을 매각하는 등 해외 자산 포트폴리오도 재정비했다. ■구광모의 ESG 경영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동반 성장 구광모 회장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했으며, 이를 LG의 핵심 경영 원칙으로 삼았다. LG는 2023년 6월, 계열사별 ESG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LG ESG 인텔리전스' 플랫폼을 구축하며 ESG 경영에 대한 그룹 차원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룹 차원의 ESG 보고서 및 전략 LG는 2022년 첫 ESG 보고서 'Responsible Business, Sustainable Future'를 발간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와 '책임 있는 사업'을 지향점으로 선언했다. 이 보고서는 재무·비재무 성과의 균형, 이해관계자 협력, 기후 대응 전략 수립 등 LG의 ESG 경영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했다. ◆사회 공헌 세부 활동 LG그룹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지원 및 유족 후손 장학사업 등 꾸준한 사회 공헌 활동으로 '1위 그룹 사회 공헌 관심도'를 기록했다. 협력회사 상생 펀드를 9801억 원 규모로 운영하고, 중소 협력사의 스마트 공장 전환 및 지원을 확대하며 상생 생태계 구축에 기여했다. 또한, LG CNS의 친환경 데이터센터, LG화학의 탄소 촉매기술, LG에너지솔루션의 폐배터리 재활용 등 실제 사업 역량을 활용한 친환경 기업 활동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창출했다. ◆ 약력 -생년월일 : 1978.1.23 (양력) -출생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현 직함 : LG 대표이사 회장(2018년~), LG 트윈스 구단주(2019년~) -혼인 : 정효정 (중소기업 보락 장녀, 2009년 결혼) -자녀 : 1남 1녀 -영동고등학교 -로체스터 공과대학교 컴퓨터과학 학사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경영대학원 MBA 수학 중퇴 ◆ 주요경력 -2004년: 구본무 전 회장에게 양자로 입적 -2006년: LG전자 재경부 금융팀 대리 입사 -2007~2009년: 재경부 과장, 뉴저지법인 과장 -2011년: 차장 -2013년: HE사업본부 부장, 2014년 HA사업본부 부장 -2014~2015년: LG 시너지팀 부장 -2015년 : LG 시너지팀 상무 -2017년: 경영전략팀 상무 -2018년 1월: LG전자 B2B사업본부 ID사업부장 상무 -2018년 7월 : ㈜LG 대표이사 회장 취임 -2019년 1월 : LG 트윈스 구단주 취임

2025-09-30 15:32:15 양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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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박정원 회장, 수소 경제와 차세대 기술로 두산그룹의 미래를 열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의 4세 경영을 열며 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을 재편성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두산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박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에너지, 기계, 반도체 등 차세대 산업에 대한 투자와 글로벌 시장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를 통해 두산그룹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구성했으며 특히 소형모듈원전(SMR), 가스터빈, 수소연료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에 집중 투자했다. 박 회장의 글로벌 경영 전략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지난 2023년 두산그룹은 매출 19조1301억원, 영업이익 1조4363억 원을 기록하면서 실적을 개선했고 주요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이 그룹 실적을 견인했다. 박 회장은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에너지 산업 협력을 논의하며 두산그룹의 국제적 입지를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박정원 회장은 배터리와 반도체 산업에도 진출해 두산그룹의 산업 영역을 다각화했다. 지난 2022년에는 반도체 테스트 기업 '두산테스나'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성장을 대비해 배터리소재부품 사업에도 투자하고 있다. 이는 두산그룹이 미래 성장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두산그룹의 경영 구조 개편도 박정원 회장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지난 2020년 경영 위기 이후 박정원 회장은 비주력 사업 매각과 핵심 자산 확보를 통해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했다. 특히 두산건설을 두산중공업의 완전 자회사로 전환하면서 경영 효율성을 높였고, 그 외에도 3조원 이상의 자금 확보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박 회장은 수소 경제를 두산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수소 생산, 유통, 활용을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전략을 펼쳤다. 두산그룹은 수소 연료전지와 수소 혼소 가스터빈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하여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고 있다. 특히, 수소 모빌리티와 관련된 사업에도 적극 투자하며 수소 기반 에너지 생산과 사용의 중심 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포트폴리오도 다변화해 산업기계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두산밥캣은 지난 5년 동안 외형이 2배로 성장했고 북미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와 영업망을 활용해 신사업인 농업 및 조경용 장비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전동식 중장비와 같은 친환경 제품을 출시하며 스마트·친환경 트렌드에 발맞추고 있다. 또한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을 통해 글로벌 톱4에 진입하면서 국내 협동로봇 시장 점유율 1위를 이어가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그룹의 미래를 위해 에너지, 반도체, 산업기계 등 핵심 산업에서의 성장을 독려하고 있고 두산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게 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특히 수소 경제와 친환경 에너지 분야에서의 선도적인 기술 개발은 두산그룹을 지속 가능하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박정원 회장은 미래 지향적인 경영을 통해 두산그룹의 내일을 준비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층 더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 반도체 테스트 분야 등 미래 성장 동력 발굴 주력 박정원 회장은 두산이 기존에 영위하던 에너지(발전), 산업기계 부문과 함께 그룹을 이끌어갈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며 미래 성장 잠재력이 큰 반도체 및 첨단IT 분야의 사업 발굴과 육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박정원 회장은 작년 초 CES 2024 현장을 찾아 AI, 로보틱스, 자율주행, 에너지 분야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최신기술 트렌드를 살피고 미래사업 방향을 경영진과 함께 모색했다. 'Our Planet, Our Future'를 주제로 한 두산 부스를 살펴본 박 회장은 "AI 기술은 IT기업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면서 "두산도 이번에 선보인 것처럼 이미 협동로봇, 건설기계 분야에서 AI를 적용한 기술과 제품을 갖고 있고 높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다른 모든 사업 분야에서도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자동화·무인화·스마트화 등 디지털 전환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상황에서 반도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반도체 분야 진입 기회를 꾸준히 모색해왔다. 그 결과 ㈜두산은 2022년 국내 반도체 테스트 분야 1위 기업인 테스나(TESNA) 인수를 결정했다. 테스나는 어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와 카메라이미지센서(CIS) 등 시스템 반도체 제품에 대한 테스트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국내 동종 기업 중 최상위권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웨이퍼 테스트 분야에서는 시장점유율 1위를 굳게 지키고 있다. 두산은 적극적 투자를 통해 국내 1위 반도체 테스트 전문업체로서 테스나의 경쟁력을 확고히 하고 중장기적으로 첨단 패키징 기술을 확보하는 등 반도체 후공정 전문회사로 사업영역을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작년에는 이미지센서 후공정 전문기업 '엔지온'을 인수 합병하며 외형 확장에 나섰다. 엔지온은 이미지센서 반도체 후공정 전문기업으로, 반도체칩 선별 및 재배열, 웨이퍼 연마 등 반도체 후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등의 다양한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두산테스나와의 사업 시너지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 박정원 회장, 체코 원전 수주 최전방 지원 나서 박정원 회장은 체코 신규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앞둔 작년 5월, 체코 프라하에서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신규원전 건설 사업 수주를 지원하는 행사를 직접 주관하며 수주전에 힘을 실었다. 행사를 통해 두산그룹은 한수원이 체코 원전사업을 수주할 경우 원자로, 증기발생기 등 1차 계통 핵심 주기기는 두산에너빌리티가 공급하고, 증기터빈 등 2차 계통 핵심 주기기는 체코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가 공급하게 함으로써 한국과 체코 간 파트너십을 강화할 계획임을 밝혔다. 아울러 두산에너빌리티가 보유한 수소·가스터빈 등 무탄소 발전기술을 두산스코다파워에 제공해, 체코가 유럽 내 무탄소 발전 전초기지로 부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계획도 공개했다. 박 회장은 당시 "두산은 해외수출 1호 UAE 바라카 원전에 성공적으로 주기기를 공급한 경험을 바탕으로, 15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해외원전 수주에 최선을 다해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산은 에너지 및 기계산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체코 정부를 비롯해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을 이어왔다"면서 "앞으로도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 약력 -생년월일: 1962년 3월 9일 -출생지: 서울 -현 직함: 두산그룹 회장 -혼인: 김소영 -1981년 대일고등학교 졸업 -1985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89년 보스턴대학교 MBA ◆ 경력 -1994~1998: 오비맥주㈜ 상무 -1999~2001: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 -2001~2007: ㈜두산 대표이사 사장 -2007~2012: ㈜두산 부회장 -2009~현재: 두산베어스 구단주 -2012~2016: ㈜두산 회장 -2016~현재: 두산그룹 회장

2025-09-30 11:30:29 이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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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칭] '실용주의 리더십' 삼성 이재용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 속에서 삼성그룹의 미래를 책임지는 리더로서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며 존재감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 경영 행보는 단순히 기업을 이끄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경제와 미래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1991년 삼성전자 총무그룹에 입사하며 경영 일선에 발을 디뎠다. 이후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상무, 전무, COO 부사장, 사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경영 역량을 쌓았다. 2014년 이건희 선대회장의 와병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섰고, 2022년 10월에는 삼성전자 회장으로 공식 취임하며 명실상부한 삼성그룹의 최고 경영자로서의 위상을 확립했다. 이재용 회장은 복잡한 지분 구조를 단순화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였으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적 문제들도 성공적으로 해결하며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구축해 나갔다. 삼성그룹의 미래 성장을 위한 핵심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이재용 회장은 기술 혁신 및 미래 사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는 '기술 중시'와 '선행 투자'를 강조하며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미래 핵심 기술 분야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삼성은 2022년 5월 반도체, 바이오, AI 등에 대해 2026년까지 5년 간 국내 360조원 포함, 총 45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 글로벌 산업구조 개편을 선도하는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업'을 선언했다. 우선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을 위해 시스템 반도체 투자도 기존 133조원에서 171조원으로 확대했다. 2042년까지 총 300조원을 들여 용인에 세계 최대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차세대 통신, AI, 로봇, 슈퍼컴 등 미래 신기술에 대한 R&D를 강화해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추진 중이다. 특히 바이오를 '제2의 반도체 신화'로 육성할 예정으로, 삼성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모더나 백신 조기 대량 생산에 성공하며 백신 접종률 제고를 통한 '단계적 일상회복'에 크게 기여했다. 삼성은 '미래 사업 준비'에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청년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향후 5년간 8만명 신규 채용을 진행할 예정이다. 인력 수요는 연간 1만명으로 첨단산업 위주로 채용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5대 그룹 중 유일하게 공채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청년희망 ON' 간담회에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약속한 바 있다. 삼성은 CSR 활동이 우리 사회에 더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재정립해 추진 중이다. 학습 여건이 어려운 중학생들의 진학을 돕기 위한 '드림클래스'를 온라인으로 전면 개편하고, 진로탐색·미래역량 교육을 강화해 교육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또 삼성은 S/W 교육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해 청년들에게 양질의 S/W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청년들의 취업 기회 확대를 돕는 삼성 청년SW아카데미(SSAFY)를 운영 중이다. ◆ 약력 -생년월일 : 1968.6.23 (양력) -출생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현 직함 : 삼성전자 회장(2022~) -혼인 : 임세령 대상 부회장(2009년 합의 이혼) -자녀 : 1남 1녀 -경복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동양사학 학사 -게이오기주쿠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석사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 ◆ 경력 -1991 삼성전자 총무그룹 입사 -2001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보 -2003 삼성전자 경영기획팀 상무 -2004~2008 에스엘시디 등기이사 -2007~2008 삼성전자 전무(CCO, Chief Customer Officer) -2007~2008 삼성전자 전무 -2010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 부사장 (COO) -2010 ~ 2012 삼성전자 최고운영책임자 사장 (COO) -2012 삼성전자 부회장 -2015~2020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2015~2021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2022 삼성전자 회장 ◆ '크고 강한 기업' 넘어 모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신뢰받는 기업'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와병 이후 삼성을 이끌어 온 이재용 회장은 2020년 12월 '더 크고 강한 기업'을 넘어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기업가로서의 '꿈'을 밝혔다. 이를 위해 이재용 회장은 ▲신사업 발굴을 통한 사업 확장 ▲준법문화 정착 ▲산업 생태계와의 소통 확대 및 지원 ▲임직원 자부심 및 국민 신뢰도를 높여 '국격에 맞는 새로운 삼성'을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실제 이 회장은 "선대보다 더 크고 강하게 만드는 것이 효도라는 가르침, 그 말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경쟁에서 이기고 성장시키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제가 꿈꾸는 승어부는 더 큰 의미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 임직원들이 우리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모든 국민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기업인 이재용의 일관된 꿈"이라고 밝혔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으로부터 삼성을 이어 받아, 진정한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 '승어부(勝於父)'를 이뤄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것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삼성을 '사랑받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노력을 축적해 가는 모습에 호평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철학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진지한 고뇌를 거듭하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인의 품격이 느껴진다. 이재용 회장의 '뉴 삼성' 변신이 기대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픈 손가락 e삼성·e삼성인터내셔널 이재용 회장이 반도체 등에서 역대 최대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뒷면에는 상처도 있다. 2000년 당시 33세의 이재용 회장은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창업했다. 이 회장이 직접 지분 60%의 대주주로 출자했고, 나머지 지분은 삼성 관계사와 특히 당시 삼성 2인자 이학수 부회장까지 참여한 사실상 삼성 수뇌부가 단단히 베팅한 사업이었다. IT벤처사업 투자를 목표로 한 e삼성은 국내 투자를 맡고 e삼성인터내셔널은 해외 투자를 책임졌다. 이 회장은 e삼성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성과지표로 사용하고, 미국의 거대 IT 기업인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처럼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설립 1년 만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e삼성을 위한 삼성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와 내부거래, 부당 지원으로 경고를 받으며 사업 초기부터 흔들렸다. 2001년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은 외국 법인과 투자한 모든 회사를 합쳐 당시 총 17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자신의 첫 사업의 쓴잔을 마셨다. 삼성자동차, 삼성중공업 등에서 산업분석가로 일했던 삼성맨 출신 칼럼니스트가 쓴 '삼성의 몰락'에서도 이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삼성 반도체 기술혁신의 기틀을 닦은 자가 이병철이라면, 그 바통을 이어 받아 그룹을 '세계 최고'로 거듭나도록 만든 인물은 이건희였다. 1987년 삼성 그룹의 경영자가 된 그는 거침 없는 반도체 투자를 단행했고, 그 결과는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왕좌' 타이틀로 증명됐다. 합리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리더십을 갖춘 이재용 회장은 '실용주의'를 앞세워 삼성그룹의 '이재용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2025-09-30 11:25:55 양성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