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지목된 기업들 "개혁동참" 눈물의 호소
[메트로신문 김승호·양성운·오세성 기자] 조선·석유화학·해운 등 공급과잉업종을 중심으로 국내 산업계가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정부는 26일 조선·해운·석유화학·건설·철강 등 5대 취약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확정·발표했다. 이날 구조조정 계획에는 각 업종별 기업의 통·폐합이나 세부 사업 조정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대해 기업마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자구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최길선·권오갑 대표, 현대미포조선 강환구 대표, 현대삼호중공업 윤문균 대표, 힘스 김재훈 대표, 현대E&T 이홍기 대표 등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관련 5개 계열사 대표들은 26일 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담화문을 발표했다. 5개사 대표들은 이날 담화문을 통해 회사 경영 실적 설명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일감부족에 대한 우려, 비용절감 방안 등을 설명하며 회사 살리기를 위한 임직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된 현대중공업 1·4분기 실적에 대해 "현대중공업 가족 모두의 노력으로 10분기만에 흑자 전환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흑자전환은 우리 내부의 역량보다는 외부요인의 영향이 더 컸다"며 "기뻐하기보단 일감이 점점 없어지는, 더 큰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올해 선박수주는 5척밖에 못했고 해양플랜트 역시 2014년 11월 이후 수주를 못했다"며 "일감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도크가 비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일감확보를 위해 중국 조선소와 경쟁해야 하며 가격, 품질, 납기 등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우리 일자리는 없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경영진은 현재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방안으로 "5월 1일부터 주말과 공휴일 등 휴일근무 폐지, 향후 고정 연장근로 폐지, 안식월 휴가, 샌드위치 휴가 등을 통한 연월차 촉진 제도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5개사 대표들은 회사 정상화 노력에 적극적인 협력과 동참을 호소했다. 해운업계는 생존을 위해 채권단과 정부의 마음을 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해운업계는 용선료(배를 빌리는 비용) 협상에 집중하고 있다.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한 한진해운의 구조조정 역시 먼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용선료 협상이 핵심 키워드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비슷한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채권단에 제출한 자율협약 신청서가 받아들여져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해운업계는 자구안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지목된 석유화학업계는 큰 충격이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저유가로 석유화학 기초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떨어진 반면, 나프타를 가공해 만드는 에틸렌은 공급이 감소하며 가격이 올라 호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스프레드(마진)는 작년 10월 톤당 494달러에서 12월 644달러로 오르고 이번 달에는 820달러까지 급등했다. 지난해 국내 석유화학업계 큰형격인 LG화학은 1조8236억원, 롯데케미칼은 1조611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정부는 공급과잉 품목을 조절하고 M&A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크지 않은 상황이다. 화학제품 가운데 중국의 자급력이 높아지며 공급과잉에 처한 품목은 테레프탈산(TPA)이다. TPA는 폴리에스테르, 페트, 필름,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주 원료인 백색 분말로, 파라자일렌(PX)을 원료로 사용한다. 세계적 공급과잉에 맞춰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자율적으로 TPA 생산량 감산을 진행해 성과를 얻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생산라인 전환을 추진하고 있고 한화종합화학과 효성도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SK유화는 아예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TPA 생산량도 연간 555만톤에서 460만톤으로 95만톤이 감소했고 70만~115만톤이 추가로 감소할 예정이다. TPA 외에는 공급과잉이 문제되는 품목은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구조조정 추진에 대해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들은 "구조조정은 항상 나오던 얘기여서 정부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면서도 "중국의 화학제품 자급률이 빠르게 오르고는 있지만 40~70%에 그치는 수준이라 공급과잉이 문제되는 품목은 없다"고 답했다. 이어 "고부가 화학제품 비중 확대에는 업계가 꾸준히 힘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계는 정부의 5대 산업 구조조정에 대해선 찬성하면서도 대기업 협력사 등 중소기업들에 불똥이 튀기는 것을 최소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구조조정 필요성에 적극 공감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한정된 자원이 성장성 있는 새로운 사업으로 흘러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면서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들 대기업과 협력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이 금융, 인력, 공정거래 분야에서 입을 피해가 우려된다"고 전했다. 실제 중소기업계는 판매대금을 못받아 연쇄 도산하거나 금융기관들의 심사가 더욱 엄격해져 자금난이 심화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 근로자 임금체불이나 대량실업도 걱정거리다. 중기중앙회는 "대기업 구조조정 시 협력업체에 대한 영향평가를 실시하고 협력업체에 지급하지 않은 하도급대금과 근로자 노임채무를 우선변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 "고용유지지원금 협력업체 우선지원, 대기업의 고통분담 강요 등 불공정행위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