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 자리에 오르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메모리 업황 침체와 적자 우려 속에 고전했던 기업이 이제는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를 단순한 메모리 제조업체가 아니라 AI 혁명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바라보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시총이 사상 처음 삼성전자 시총을 뛰어넘었다. 이날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KRX종가 기준 2080조3782억원으로 삼성전자(2066조6595억원)를 넘어 시총 1위에 올랐다. 다만 삼성전자우(약 180조원)까지 포함하면 여전히 약 179조7311조원 가량 격차가 존재한다. 삼성전자 우선주의 시가총액을 합산한 삼성전자의 총 시가총액은 2260조1093억원으로, SK하이닉스 시가총액이 91.44%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대도약에는 폭발적인 AI 산업 성장과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자리 잡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무엇보다 AI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과감한 기술 투자를 단행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기술 개발과 양산 체제를 구축했다. 특히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HBM 시장에서 사실상 표준 공급업체 역할을 수행하면서 글로벌 AI 투자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를 '가장 날카로운 창'에 비유한다. SK하이닉스가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무기인 메모리 기술에서 경쟁사 대비 우위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최근 HBM5를 겨냥해 HBM 패키지에 일체형 냉각 요소 'ICE'를 넣어 발열을 획기적으로 낮춘 iHBM 기술을 공개한 것도 반도체 리더십을 다시 한번 증명하기 위함이다. AI 서버의 가장 큰 난제로 꼽히는 발열 문제를 30% 이상 개선하면서 차세대 HBM5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이어갈 가능성을 높였다.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은 단순히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엔비디아와 TSMC를 연결하는 강력한 삼각 동맹 역시 핵심 자산이다.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와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 TSMC가 구축한 생태계 속에서 SK하이닉스는 사실상 필수 공급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컴퓨텍스를 통해 더욱 공고해진 협력 관계는 향후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플랫폼인 '루빈(Rubin)'에서도 높은 점유율 유지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또다른 성장 동력은 기업용 SSD(eSSD) 사업이다. 그동안 시장은 SK하이닉스를 HBM 중심 기업으로 평가해 왔지만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저장장치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장장치 수요 역시 급증하고 있으며, 고마진 제품인 eSSD가 새로운 캐시카우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HBM 의존도를 완화하고 실적 안정성을 높이는 긍정적 요인으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의 뉴욕증시 상장을 앞에 두고 있다는 점도 현재의 주가 고공행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ADR 상장이 현실화될 경우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다. 그동안 한국 증시가 안고 있던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일부 해소하며 기업가치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앞으로도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박준영 한화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는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SK하이닉스와 완벽히 같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마이크론은 주가수익비율(P/E) 10배 이상을 부여받고 있다"며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P/E는 6.6배로 여전히 글로벌 테크들의 기본 배수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SK하이닉스도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안심하기 이르다.
엔비디아가 투자 전략을 바꾸거나 AI 인프라 투자 둔화가 발생할 경우 실적 변동성은 커질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매출 상당부분을 AI 서버 시장과 엔비디아 생태계에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도 무시할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자체 파운드리를 보유하지 않아 최첨단 패키징 과정에서 TSMC의 CoWoS 공정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대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나 자연재해, 공급망 차질이 발생할 경우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HBM 성공을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로 확장하고 엔비디아 중심 구조를 넘어 고객 다변화에 집중해야할 것"이라며 "eSSD 등 신규 사업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면 SK하이닉스는 일시적 1위가 아닌 글로벌 AI 반도체 시대의 장기 승자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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