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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미의 와이 와인]<332>'테루아 도서관' 루시엔 르 무앙…론에서 그르나슈를 읽다

<322>佛 루시엔 르 무앙·로템&뮈니에 사우마

 

안상미 기자.

 

 

오래된 수도권의 고즈넉한 도서관이다. 한 권, 한 권 고유의 개성을 가진 책들이 정갈하게 꽂혀있는 가운데 하나를 골라 펼쳐본다. 시간의 흐름 속에 과거와 현재의 내가 다르듯, 책 역시 어제와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와인으로 재해석해본다. 지하 깊숙한 셀러에는 고유의 테루아를 잘 담은 한 병, 한 병의 와인이 시간과 함께 숙성되고 있다. 와인은 잔 속에서도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며 나고 자란 곳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금양인터내셔날은 지난달 루시엔 르 무앙의 공동 설립자인 뮈니에 사우마(Mounir Saouma·사진)를 한국에 초청하여 브랜드 철학과 와인 스타일을 직접 소개하는 공식 행사를 개최했다. /안상미 기자

프랑스 부르고뉴 와이너리 루시엔 르 무앙(Lucien Le Moine)의 설립자인 뮈니에 사우마(Mounir Saouma·사진)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각 와인은 테루아와 빈티지의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록물과 같다"며 "다양한 부르고뉴 테루아의 도서관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루시엔 르 무앙은 뮈니에가 로템 사우마(Rotem Saouma)와 함께 1999년 설립해 부르고뉴의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만을 다루는 초소형 하우스다. 소유밭 없이 포도를 사들여 와인을 만드는 네고시앙인데 부르고뉴에서도 테루아를 가장 섬세하게 해석하는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루시엔'은 빛을, '르 무앙'은 수도승을 뜻한다. 중동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시작된 그의 와인 여정과 함께 양조에 있어 수행자적 태도를 모두 나타내는 네이밍이다.

 

루시엔 르 무앙은 매년 각 마을의 가장 좋은 크뤼를 골라 크뤼당 단 1~3배럴만 만든다. 각 빈티지와 크뤼의 개성을 가장 정교하게 읽어내기 위해 모든 과정을 두 사람이 직접 손으로 관리한다. 그래서 전체 생산량도 100배럴, 약 3만병을 넘기지 않는다.

 

뮈니에는 "와인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역사, 문화, 농업, 인간의 경험이 결합된 하나의 문화적 산물"이라며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와인만이 가진 고유성(Particularity)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와인 양조 과정은 세 가지 단어로 압축된다. 길고, 단순하지만, 세심하다. 그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과거 부르고뉴와 론 지역에서 수백 년 동안 사용되었던 전통적 방법이다.

 

루시엔 르 무앙의 와인을 잔에 따르니 쨍한 투명함이 없다. 오랜 시간 침전물과 숙성하고, 따로 걸러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서다.

 

뮈니에는 "침전물은 단순히 제거해야 할 불순물이 아니라 와인의 구조와 질감, 후미를 형성하는 중요한 구성 요소"라며 "이를 통해 단순한 과실 향을 넘어 테루아와 빈티지가 만들어내는 긴 여운과 깊이를 표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갈아만든 오렌지 주스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워진다. 냉장고에 하루 이틀 보관한 주스를 그대로 윗부분의 맑은 액체만 마시면 마치 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면 바닥까지 흔들어 마시면 질감과 풍미가 훨씬 풍부해진다. 와인도 똑같다.

 

그는 "자연은 본질적으로 완벽하게 깨끗하지 않다. 바다에도 유기물이 있고, 숲에는 낙엽과 곤충이 존재한다"며 "와인 역시 자연의 산물로 지나친 정제와 표준화가 오히려 자연성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간은 가장 큰 아군이다. 침전물과 어떠한 개입도 없이 숙성되는 과정을 통해 와인은 자연스러운 활력과 신선함을 가지면서 은은하고 일관된 풍미를 얻게 된다.

 

루시엔 르 무앙과 로템&뮈니에 사우마 와이너리를 방문한다면 2024 빈티지가 여전히 배럴에서 침전물과 함께 숙성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2024 빈티지라면 다른 곳에선 대부분 병입까지 마친 상태다.

 

(왼쪽부터)루시엔 르 무앙 부르고뉴 루즈 2023, 루시엔 르 무앙 부르고뉴 블랑 2023, 로템&뮈니에 사우마 샤토네프 뒤 파프 마지스 블랑 2022, 로템&뮈니에 사우마 샤토네프 뒤 파프 옴니아 루즈 2020, 루시엔 르 무앙 뽀마르 프리미에 크뤼 레 그랑 제프노 루즈 2023. /안상미 기자

로템&뮈니에 사우마 와이너리는 이들이 2009년 론 밸리의 샤또네프 뒤 파프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론에서도 역시 긴 숙성과 최소한의 개입 방식으로 와인을 만든다.

 

뮈니에는 "오늘날 많은 소비자들이 샤또네프 뒤 파프를 강렬함과 파워로 인식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론은 훨씬 더 다양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며 "우리는 강렬함과 파워보다는 그르나슈가 가진 우아함과 긴장감, 그리고 테루아의 순수한 질감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로템&뮈니에 사우마 샤토네프 뒤 파프 옴니아 루즈'는 론을 하나의 병에 담아내고자 했다. 옴니아는 라틴어로 '모든 것(All)'을 뜻한다. 5개 마을과 9종의 토양을 블렌딩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와인은 좋은 책과 같다.

 

뮈니에는 "좋은 와인(Great Bottle)은 가격이나 희소성, 혹은 평론가의 점수로 정의되지 않는다"려 "한 권의 책을 읽은 것과 같이 좋은 와인은 계속 변화해 몇 분 후, 또는 몇 시간 후에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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