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게임 산업 지식 공유 행사인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6)'가 16일 경기 성남시 판교 넥슨 사옥과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막을 올렸다. 올해 NDC는 인공지능(AI)을 핵심 화두로 내세우며 게임 개발 현장의 실제 활용 사례와 미래 경쟁력을 집중 조명했다. AI가 구현의 장벽을 빠르게 허물고 있는 시대, 게임 산업의 승부처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용자와 함께 축적한 경험과 관계, 즉 '맥락(Context)'에 있다는 메시지가 행사장을 관통했다.
NDC 26은 오는 18일까지 사흘간 열린다. AI를 비롯해 기획·프로그래밍·아트·사운드·프로덕션·데이터 분석 등 9개 분야에서 총 51개 세션이 진행되며, 모든 세션은 NDC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다. 행사 기간 판교 넥슨 사옥에서는 넥슨 IP 기반 게임아트 전시회 'NEXTAGE'도 함께 열린다.
이날 개막 환영사에 나선 이정헌 넥슨 일본법인 대표는 AI를 인터넷 보급과 산업혁명에 비견하며 "AI는 거부할 수 없는 확정적인 흐름의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AI는 정보와 콘텐츠를 생성하고 분석하는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낮추는 창작과 연산의 혁명"이라며 "그동안 해보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것들을 훨씬 쉽게 구현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다.
다만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지는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AI가 잘하는 것은 답이 정해진 일"이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과 함께 울고 웃는 감동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아직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AI와 경쟁하려 하지 말고 훌륭한 도구이자 수단으로 정의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며 "모두가 같은 도구를 손에 쥔 시대에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안목과 판단이고, 그 안목은 이용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통찰과 경험을 서로 배우고 나누는 자리가 바로 NDC"라며 "기술이 빠르게 바뀔수록 서로의 영역을 이해하고 현장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무대에 오른 강대현 넥슨코리아 공동대표는 '구현이 쉬워지는 시대, 우리는 무엇으로 경쟁하는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강 대표는 AI가 코딩과 이미지 생성, 프로토타이핑 비용을 크게 낮추고 있지만 "우리만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쉬워진다"며 "경쟁의 무게중심은 구현의 수준에서 맥락의 깊이로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 대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컬링 열풍을 사례로 들었다. 경기 규칙은 달라진 것이 없지만 국가대표팀과 역전 드라마, '영미'라는 상징이 만들어낸 이야기와 공감이 컬링을 온 국민의 스포츠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재미의 본질은 구현의 바깥에도 있다"며 "게임 역시 그래픽과 사운드 같은 정적인 요소보다 누구를 만나고 어떤 사건을 겪느냐는 동적인 요소가 더 큰 즐거움을 줄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AI 시대 새로운 경쟁력을 '맥락 자본(Contextual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했다. 개발자가 오랜 시간 축적한 장르에 대한 이해와 운영 경험, 이용자들이 커뮤니티에서 함께 만든 관계와 추억, 세대를 거쳐 이어진 문화가 바로 맥락 자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AI 모델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지만, 유저와 함께 보낸 시간과, 운영하며 쌓은 판단, 커뮤니티와 함께 만든 문화는 돈으로도 살 수 없고 프롬프트로도 만들 수 없다"며 "오직 시간으로만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강 대표는 메이플스토리 사례를 꺼냈다. 범용 AI에게 메이플 캐릭터가 쓸 귀여운 모자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어디서나 볼 법한 결과물이 나오지만, 20년간 쌓인 메이플의 스타일과 이용자 취향을 이해하는 데이터가 더해질 때 비로소 '메이플다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맥락"이라며 "유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보다 그 게임이 쌓아온 세계관과 관계"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라이브 서비스에서 축적된 경험이 '복리'처럼 쌓인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자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개발 경험이 다음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고 유저들의 플레이와 커뮤니티 활동, 영상 제작과 창작이 다시 게임의 가치를 키우는 선순환이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그는 "유저가 특정 보스를 공략하고, 공략법을 공유하고, 클리어 영상을 자랑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문화가 된다"며 "단순히 난이도를 낮출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AI가 아니라 그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말했다.
실제 사례도 소개했다. 강 대표는 "최근 넥슨 고객센터에 5년 동안 한 게임을 함께 즐긴 커플이 결혼 소식을 담은 청첩장을 보내왔다"며 "두 사람이 함께 쌓은 시간은 개발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유저들이 직접 채워 넣은 삶의 일부였다"고 말했다. 또 2009년 메이플스토리에서 발생한 '헤네시스 대참사' 이벤트와 이를 15년 뒤 이용자들이 창작 플랫폼 '메이플스토리 월드'에서 재현한 사례를 언급하며 "게임은 개발사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저와 함께 만들어가는 매체"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강연 말미에 AI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다른 하나는 유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축적한 지혜인 '축적된 지능'이다.
그는 "첫 번째 AI는 모두의 무기지만, 두 번째 AI는 맥락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의 것"이라며 "구현이 쉬워지는 시대일수록 첫 번째 AI를 누구보다 잘 활용하고, 그 위에 두 번째 AI를 누구보다 두텁게 쌓아가는 것이 게임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NDC는 AI를 포함해 총 9개 분야에서 51개 세션이 진행된다. 실제 개발 현장에서 AI를 적용한 사례와 시행착오를 공유하는 발표를 비롯해 개발 철학과 게임 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한 패널 토크가 마련됐으며, 최근 신작 '아크 레이더스'로 주목받고 있는 엠바크 스튜디오 개발진도 참여해 머신러닝과 데이터 분석, 아트 제작 경험 등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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