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가전과 스마트폰 완제품 개발에 특화한 고성능컴퓨팅(HPC) 전용 인프라를 자체 구축했다. 제품 검증을 실물 시제품이 아닌 가상 환경에서 처리해 개발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으로, 출시 주기가 곧 경쟁력인 가전·정보기술(IT) 시장에서 우위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완제품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은 서울 상암동 데이터센터에 HPC 서버 517대를 구축하고 이달부터 기구·회로 개발 인력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새 인프라는 기존 시스템보다 연산 속도가 약 5.8배 빨라지고 가상 검증량은 약 6배 늘었다.
검증 효과는 개발 일정 단축으로 이어진다. TV 낙하 검증은 기존 15일에서 2일로, 세탁기 부품 장기 검증은 5일로 줄어든다. 스마트폰은 물리적 제약으로 수행하지 못했던 모든 각도의 낙하 시험이 가능해졌다. 이밖에도 삼성전자는 TV 발열 검증, 로봇청소기 충돌 검증 등에 HPC 인프라를 활용한다.
그동안 HPC는 시제품 제작비가 큰 자동차·항공 등 산업에서 주로 쓰였다. 삼성전자는 이를 스마트폰·TV·세탁기 등 가전·IT 완제품 검증용으로 전용 구축했다. 그 결과 실물 시제품을 만들어 반복 시험하던 과정을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면서, 시제품 제작 비용과 시험 기간을 동시에 줄일 수 있게 됐다.
검증기간 단축은 신제품 출시 주기와 직결된다. 스마트폰과 가전은 신제품 경쟁이 치열하고 출시 시점이 시장 점유율을 좌우하는 만큼, 개발 단계의 시간 단축은 제품을 시장에 먼저 출시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검증 횟수를 늘려 품질 신뢰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으로 꼽힌다.
자체 시스템으로 구축했다는 점 역시 삼성전자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외부 클라우드에 의존하지 않아 제품 설계 도면과 검증 데이터 등 핵심 기술 자산을 내부에서 처리함으로써 보안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규모 해석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이번 인프라는 삼성전자의 AI 자율공장 전환 전략과도 연결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2030년까지 국내외 모든 생산 공장을 AI 자율공장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개발 단계에서 축적한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해석 역량이 제조 공정의 디지털트윈으로 이어지면서 개발부터 양산까지 전 주기를 아우르는 AI 전환(AX) 체계로 확장될 전망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전과 스마트폰은 출시 시점을 며칠만 앞당겨도 시장 선점 효과가 크다"며 "검증을 가상으로 돌려 개발 일정을 단축하면 경쟁사와의 출시 경쟁에서 직접적인 이점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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