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회생, 파산절차를 신청해 채무를 면책받게 되면, 면책받은 채무의 범위 내에서는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채권자 입장에서 돈은 받지 못하더라도 채무자를 채무불이행자명부에 등재해 법원 결정으로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적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
개인 채무자 A가 있다. A는 B에게 돈을 빌려 사용한 뒤 이를 갚지 않았고, B는 A에게 돈을 반환 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해 승소한 상황이었다. 승소 이후 판결이 확정됐으나 6개월이 지나도록 A가 돈을 갚지 않자, B는 채무자 A를 채무불이행자명부에 등재해줄 것을 법원에 신청했다. 대법원은 "그 사이 채무자 A가 파산선고 및 면책 결정을 받았음을 들어 B의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신청을 기각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이처럼 판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제도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불성실한 채무자의 인적 사항을 공개함으로써 명예와 신용 훼손과 같은 불이익을 주고, 이를 통해 채무 이행을 유도하는 간접적 강제 효과를 가진다. 또한 일반인이 거래 상대방의 신용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해 거래 안전을 도모하는 기능도 있다. 반면, 도산절차에서 진행되는 면책 제도는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채무자에게 경제적 재기와 회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채무 책임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면책받은 채무자에 대해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를 허용하는 것은 면책 제도의 취지에 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 즉, 도산 절차에서 면책 결정이 이뤄지면 단순히 '채무는 존재하지만 강제집행이 불가능한 상태'가 아니라, 채무에 대한 책임 자체가 소멸하게 된다.
파산, 면책 절차에서 누락된 채권은 어떨까. 실제로 파산, 면책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채무자 A는 채권자인 B의 채권을 채권자목록에서 누락했다. 이 경우 B의 채권에는 면책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대법원은 '채무자가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않은 청구권'에 한해 면책결정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어, 법원은 △면책신청 직전까지 카드 사용 및 연체가 지속되고 독촉장을 수령했음에도 신용카드 채무를 누락한 경우 △채권자가 내용증명을 발송하고 지급독촉을 지속한 상태에서 채무를 일부 변제하였음에도 대여금 채무를 누락한 경우 △사업상 거래관계를 반복적으로 유지하면서 거래명세서를 발행하고 정산 협의를 진행했음에도 물품대금채무를 누락한 경우 등은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를 명확히 인식했으면서도 고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면책결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바 있다.
반면, △채권자가 오랜 기간 권리행사를 하지 않아 채무자가 채권의 존재를 명확히 기억하지 못한 경우 △사업이 폐업한 후 정산이 불분명하게 이뤄졌고 장기간 이에 대한 분쟁이 없어 거래가 종결된 것으로 인식했던 경우 △채권자와 채권액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추후 추가 청구를 제기한 경우 등에는 면책결정의 효력이 미친다고 보았다.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러한 데에 과실이 있었던 정도만으로는 악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채권자목록에서 누락됐더라도 면책의 효력이 미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채무자 A가 채권자인 B의 채권을 채권자목록에서 누락한 것 역시 악의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따라서 면책 결정으로 채무에 대한 A의 책임이 소멸했다는 이유로 채무불이행자명부 등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처럼 도산 관련 소송에서는 채권, 채무관계에 대한 채무자의 인식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고, 일단 도산 절차가 적법하게 진행되어 면책결정이 이뤄졌다면 면책된 채권에 대해서는 더이상 채무자에게 그 책임을 추궁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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