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거래관계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 당사자들은 거래대금 수령에 대해 확실한 보장을 받고자 한다. 이를 위해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를 대비해 여러 가지 페널티를 부과하는 조항들을 계약서에 삽입하곤 한다. 이때 흔히 포함되는 것이 '도산 등의 사유로 채권 보전에 현저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상대방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이른바 도산해지조항이다.
법원은 도산해지조항 자체를 무효로 보지는 않는다. 민법이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 어디에도 도산해지 조항을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구체적인 사정을 도외시한 채 도산해지 조항이 언제나 일률적으로 무효라고 본다면 이는 계약자유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자 입장에서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하려는, 보호 가치 있는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무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다. 따라서 도산해지조항이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반해 그 효력이 부정되어야 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지 도산절차의 진행 과정에서 채무자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무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도산해지 조항을 통해 실질적인 채권 보호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회생절차에서는 쌍방미이행 쌍무계약의 경우, 계약의 이행 또는 해제에 관해 관리인에게 선택권이 부여된다. 즉, 서로 대등한 대가관계에 있는 계약상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이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생절차에 들어간 경우, 계약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해제할 것인지는 관리인의 판단에 맡겨진다. 이 때문에 채권자인 계약 상대방이 도산해지 조항을 근거로 임의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해지권의 행사가 도산절차 전반에 미치는 영향 역시 중요하게 고려된다. 대법원은, △ 권리자가 회생절차에서 보인 태도와 그 절차에서 부여받은 지위 △해지권을 행사할 당시 회생절차의 진행 단계 △그 권리 행사가 회생절차 및 다른 회생담보권자·회생채권자 등 이해관계인들에게 미치는 영향 △채무자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고자 하는 회생절차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지 여부△권리행사를 허용할 경우 권리자가 부당한 이익을 얻게 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해지권 행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회생절차 중 채무자 A를 상대로 리스계약에 따른 도산해지 조항을 근거로 계약해지권을 행사하고 리스한 의료기기의 반환을 청구한 채권자 B에 대해, 대법원은 "B가 계약을 해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회생담보권자로서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했고, 채무자 A가 의료기기를 계속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수립된 회생 계획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즉시항고를 하지 않았으며, 의료기기가 반환될 경우 채무자 A의 회생계획의 정상적인 수행과 영업활동에 중대한 지장이 초래되는 점 등을 종합하여, 해지권의 행사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법원이 도산해지 조항 자체의 효력을 원칙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상, 채권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도산해지조항의 활용을 모색해 볼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그 실효성은 도산절차의 구조적 특성에 따라 상당히 제한될 수 있으므로, 사안 발생 시 전문가와 함께 선제적이고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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