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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키쿠오의 삶

/홍경한 미술평론가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요시다 슈이치(吉田修一)의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국보'는 전후 일본 가부키계를 배경으로, 혈통과 제도의 장벽을 극복한 한 예술가가 인간 국보라는 절대적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반세기를 그린다.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 키쿠오의 삶을 통해 예술이 한 인간을 어떻게 빚고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냉정하게 기록했다.

 

모든 배역을 남성이 연기하는(온나가타) 가부키는 전통적으로 혈통을 중시한다. 예술적 정당성도 그것에서 비롯된다. 대대로 이어진 가문의 이름은 배우의 기량 보다 우선하며, 무대에 오를 자격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법이기도 하다. 키쿠오는 이 질서의 바깥에서 태어난 존재다. 타고난 신체 감각과 연기력, 무대를 장악하는 재능을 지녔지만, 그것을 정당화해줄 '피'를 갖지 못했다.

 

그의 앞에는 가부키 명문가 오미야 집안의 적자 슌스케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무대 위의 미래가 약속된 인물로, 출발선부터 키쿠오와는 정반대다. 그러나 슌스케 역시 육중한 가문의 이름 아래 개인으로서의 욕망과 불안을 억눌러야 했고 감당해야 할 역할 또한 만만치 않다.

 

두 소년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엮는 인물은 오미야 가문의 당주이자 당대 최고의 배우 하나이 한지로다. 그는 전통을 수호하는 가부장이면서 누구보다 예술의 절대성을 신봉했다. 아들 슌스케를 엄격히 훈육하며 가문의 명맥을 잇게 하려 하지만, 동시에 키쿠오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전율과 순수한 예술적 감응을 느낀다.

 

한지로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키쿠오를 제자로 받아들인 후 역사를 상속받는 예명(藝名)까지 물려준다. 이 선택은 가문의 질서 안에서 보면 위험한 균열이었으며, 그 결정의 대가는 두 젊은 배우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슌스케에게는 끝내 아버지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결핍이, 키쿠오에게는 평범한 삶을 포기해야만 감당할 수 있는 기대가 주어진다.

 

이 과정에서 전설적인 배우 만기쿠의 존재는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아름다운 괴물'이라 불렸던 그는, 예술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삶을 거의 소진해버린 존재다. 키쿠오와 슌스케가 바라보는 정상은 사실상 괴물의 그림자였으나 각자의 방식으로 그 검은 그늘 안으로 다가간다. 경쟁 속 미움과 질투가 교차하는 가운데 서로를 완성시키는 불편한 공존을 잇는다.

 

키쿠오는 어린 혼외자에게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최고가 되겠다"고 말한다. 그건 야망의 다른 표현이었다. 혈통이 허락되지 않은 세계에서 그에게 최고의 자리는 원래부터 금지된 영역이었고, 그 불가능성은 그를 더욱 집요하게 만든다. 영화는 이 집요함을 미화하지 않는다. 키쿠오가 정점에 이를수록 점점 더 많은 것을 잃었고, 무대 위의 완벽함을 위해 스스로 속박과 굴레의 늪에 빠진다.

 

키쿠오는 마침내 국보가 된다. 이는 사회적·제도적 성공이며, 그가 평생 갈망해온 인정의 완성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성취를 찬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대 위에서 완벽한 형상을 구현한 그의 모습과, 장막 뒤의 텅 빈 실존으로서의 인간, 그리고 피의 계급을 넘어선 욕망하는 인간의 고독을 비춘다. 모든 것을 얻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자의 고통 또는 애처로움이 담긴 극중 마지막 공연 '백로 아가씨'(Sagi Musume)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영상의 아름다움과 과잉된 양식의 기묘함이 인상적인 국보는 저주이자 축복인 재능을 볼모로 잡힌 예술가의 인생을 따라가며 관습 및 제도, 사회와 욕망의 구조 속에서 서서히 소멸하는 인간에 초점을 둔다. 그러면서 예술을 위해 나와 타인의 삶을 소진하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것인지, 보다 넓게는 성공과 영광을 위한 대가로 우리는 어떤 것을 내어주고 희생하는지를 묻는다. 물론 답을 제시하진 않는다. 각자의 삶에 견줘 사유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다. 2025년, 마침 한해가 곧 진다.■홍경한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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