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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육

[르포] 과밀학급 떠나자, 살아난 작은학교…농촌유학이 만든 ‘상생의 역습’

올해 2학기 서울학생 443명, 강원·제주·전남·전북으로

'교실 밖이 곧 수업' 자연·문화·공동체가 교과서가 되다

 

제주 평대초 3학년 학생들이 한 달간의 연안습지 탐구를 엮어 만든 책 『쉰모살, 어디까지 가봤니?』./서울시교육청

[제주=이현진 기자] "Hello everyone. Are you ready to begin?", "Yes, I'm ready!"

 

지난 28일 원어민 교사와 마주 앉은 8명의 아이들이 또렷한 목소리로 작은 교실을 채웠다. 이곳은 제주도 제주시에 위치한 평대초등학교. 제주 본토 학생 4명과 서울에서 온 유학생 4명이 반반 섞인 2학년 교실이다.

 

"Could someone read this in Korean?". 'supplies'라는 단어를 가리키는 교사의 질문에 하린이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한다. "'학용품'이요."

 

하린이는 지난 9월 2학기 제주도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30명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 조용히 섞여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교사와 눈을 맞추며 자연스럽게 수업의 중심에 선다.

 

같은 시각 옆 3학년 교실에서는 출판기념회가 한창이다. 한 반 전원 8명이 한 달 동안 제주 해안의 연안습지와 모래 지형을 탐구하며 기록한 생태체험을 엮어 만든 책 '쉰모살, 어디까지 가봤니?'를 소개하는 자리다.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자연의 시간과 감각이 아이들의 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연안습지는 바닷물과 썰물의 차이로 인해 해안가에 형성되는 습지로, 밀물과 썰물의 주기적 변화에 따라 해수면이 오르내리며 생기는 웅덩이와 갯벌이 특징입니다."

 

하린이의 오빠 하진(3학년)이다. 하린이네 네 남매 하윤(5학년), 하진(3학년), 하린(2학년), 하준(1학년)이는 이번 학기 모두 함께 제주로 내려왔다. 바로 '농촌유학'을 위해서다.

 

제주 평대초 3학년 아이들이 직접 만든 생태체험 책 '쉰모살, 어디까지 가봤니?'를 들고 발표하고 있다. 한 달 동안 바닷가 연안습지를 탐구한 결과물이 담겼다./서울시교육청

■ 도시를 떠나 작은 학교로…한 반 학생 두 배로

 

농촌유학은 도시 학생이 일정 기간 농어촌 학교로 전학해 지역에서 생활하며 배우는 공교육 체류 프로그램이다.

 

2021년 서울시교육청이 처음 문을 연 농촌유학은 전라남도를 시작으로 전북·강원으로 확산됐고, 올해 2학기 제주도까지 합류하며 전국적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참여 학생 수도 2021년 1학기 81명에서 올해 2학기 443명으로 꾸준히 늘어, 4년간 누적 참여자가 2670명에 이르렀다. 과밀학급을 겪는 도시 아이들에게는 자연 기반의 교육 경험을, 학생 수가 줄어든 농촌 학교에는 활력을 불어넣는 상생형 모델로 평가된다.

 

최근 5년간 농촌유학 참여 학생 추이(학기별)/서울시교육청 제공

제주 평대초는 올해 2학기부터 서울 학생 12명을 받아들이며 전교생이 74명으로 늘었다. 특히 2학년·3학년은 각 8명 가운데 절반이 서울 출신 학생이다.

 

평대초는 '글로벌 역량학교'로서 원어민 협력수업을 운영하고, '평대마을과 세계의 문화'를 함께 배우는 글로벌 특색과목을 둔다. 앞서 하린이네 2학년 교실에서 진행된 영어 수업도 이 프로그램의 일부다. 1학년은 국어를 제외한 전 과목에서 주 17시간 동안 원어민 교사가 교실에 상주하고, 2학년은 주 5시간, 3~4학년은 3시간, 5~6학년은 4시간동안 원어민 교사와 함께 협력 수업을 진행한다.

 

승마·수영·서핑·캠핑·보드·숲체험 등 글로벌 생태스포츠 활동도 일상처럼 이어진다. 말레이시아와 대만 학교와의 교류로 세계를 향한 시야도 자연스레 넓어진다. 들과 바다가 생활권인 학교에서 '자연·글로벌·스포츠'가 동시에 이어지는 셈이다.

 

평대초 교사 송명혜 씨는 "자연으로 가는 길이 곧 수업"이라고 했다. 실제로 아이들은 바닷가 해안사구에서 식물과 해양 생물을 관찰하고, 마을 작은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수업 뒤엔 바로 운동장이나 들판으로 뛰어나간다. 자연과 일상이 이어지는 이 구조가 평대초 학생들의 배움을 깊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송파 명원초에서 온 이어진(2학년) 양의 어머니 정은우 씨는 "환경이 바뀌는 게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도전이었지만, 와 보니 여기서는 교실 밖 체험이 훨씬 많아 일상이 더 다채롭다"라며 "똑같은 하루를 살아도 서울에서는 일정에 쫓기지만, 제주에서는 여유롭고 더 풍성하다"고 말했다.

 

제주 평대초 학생들이 해양 생태·스포츠 활동의 일환으로 해변에서 서핑 기초훈련을 하고 있다./평대초 제공

■ 성읍초에서도 확인되는 변화…'작은학교'의 재발견

 

농촌유학이 만드는 변화는 제주도 서귀포시 성읍초등학교에서도 확인된다. 이곳은 제주형자율학교(제주문화학교)로 운영되며, 민속마을과 연계한 탐구 수업과 '성읍사이로 제주봄' 같은 문화·생태 프로그램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강수연 성읍초 교장은 "처음 서울에서 온 아이들이 메뚜기를 보고 도망가던 모습이 이제는 잡으러 다닐 만큼 달라졌다"라며 "농촌유학생 8명, 전입 2명까지 늘면서 작은학교에 활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성읍초 학부모들도 농촌유학 이후 아이들의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 한 학부모는 "아이들이 텃밭을 가꾸고 마을을 탐구하며 자연을 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늘었다"라며 "전교생이 서로 이름을 다 알고, 6학년 언니·형들이 저학년을 안아주는 관계의 깊이도 서울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의 과밀학급에서 벗어나 제주로 온 학생들은 학습 환경의 차이를 더욱 선명하게 체감한다. 서울에서 전교생 1000명 규모의 학교에 다니다 성읍초로 농촌유학 온 한 학생 학부모는 "아이는 30명 넘는 교실에서 컨테이너 교실 수업을 받으며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제주에 오니 한 반 10명 남짓한 환경에서 선생님이 눈을 맞추고 아이 마음을 읽어주며 학습 어려움까지 세밀하게 챙겨주는 걸 처음 봤다"며 "특히 저학년에게는 이런 환경이 자존감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친구들은 기존 제주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됐다. 제주에서 살아온 평대초 한 학부모는 "아이 친구 폭이 좁아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다양성을 주고받으며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아이들이 갈등을 마주하며 관계를 깊게 맺는 법을 배운다"며 작은학교 장점을 강조했다.

 

■ "6개월은 너무 짧다"…가족 지원·일자리 대책 보완 필요

 

하지만 제도 개선 요구도 크다. 당초 1년 운영을 목표로 설계됐던 농촌유학은 시의회 예산 부족으로 현재 6개월만 지원되고 있다. 많은 학부모는 "6개월은 너무 짧다"며 지원 기간을 최소 1년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외에도 ▲미취학 자녀까지 포함한 가족 단위 지원 ▲부모 일자리 대책 ▲부모 대상 제주어·문화 교육 등 지역 정착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편 제도 확대 움직임도 있다. 지금까지는 자녀 두 명까지만 지원됐지만, 내년부터는 세 자녀 이상을 둔 가정도 모두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서울시교육청은 기본적으로 6개월까지만 지원하지만, 6개월 이후 체류 가정에는 제주도가 추가 지원금을 부담하기로 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농촌유학은 서울 학생이 농촌 학교에 오며 도시와 지방이 함께 살아나는 상생 프로그램"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육감은 "서울 아이들이 제주에서 억새밭과 갈대밭을 걷는 경험은 평생의 기억이 될 것"이라며 "세상은 서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학부모 만족도가 높아 1년 이상 연장을 원하는 가정이 많다"며 "예산이 시의회에서 줄어 6개월만 지원하고 있지만, 전면 1년 지원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은 "농촌유학이 읍·면동 작은학교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제주 학생들도 서울 친구들과 어울리며 더 풍부한 교육을 받는 선순환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 "부모들이 제주를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문화 프로그램을 검토 중"이라며 "예산이 어려워도 농촌유학 지원은 줄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28일 제주 성읍초 '벨롱벨롱 꿈자랑 발표회'에서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학생들과 화이팅을 나누고 있다./서울시교육청

/ 이현진 메트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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