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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82) 그리움이 사무치는 공원, 서울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이달 25일 오후 양재 시민의 숲을 방문한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김현정 기자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개최 준비가 한창이었던 1980년대, 서울에는 공원 조성 열풍이 불었다. 도심재개발 사업에 열을 올리던 서울시는 1984년 대지면적의 30% 이상을 조경 공간으로 만들도록 의무화했고, 크고 작은 공원 500여개가 새롭게 탄생했다. 서울의 1인당 공원면적은 1979년 4㎡에서 1991년 8㎡로 2배 늘었다. 서울대공원(1984년), 보라매공원(1986년), 올림픽공원(1988년)이 차례로 개원했고, 양재 시민의 숲도 이때 생겨났다.

 

1983년 개포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으로 부지를 확보한 서울시는 도심의 관문인 양재 톨게이트 일대 미관을 개선하고 시민들에게 쾌적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자 공원 조성 공사에 들어가 1986년 11월 시민의 숲을 일반에 개방했다. 공원은 양재동 경부고속도로 양편에 7만8500여평 규모로 만들어졌으며, 사업비로 총 25억5000만원이 투입됐다.

 

◆왁자지껄한 공원이 보고픈 시민들

 

지난 25일 오후 한 시민이 양재 시민의 숲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난 25일 올해 개원 35주년을 맞이하는 양재 시민의 숲을 방문했다. 공원은 신분당선 양재 시민의 숲역 5번 출구로 나와 매헌로 방향으로 2분(185m)을 걸으면 나온다. 양재 시민의 숲은 피자 조각 모양처럼 생겼다. 세 면은 각각 경부고속도로, 강남대로, 양재천으로 둘러싸였다. 매헌로를 기준으로 공원 북측엔 윤봉길의사 동상과 기념관, 야외무대, 지식서재, 테니스장, 연못, 체육시설이 설치됐고 남쪽에는 백마부대 충혼탑, 대한항공기 피폭 희생자 위령탑, 삼풍 참사 위령탑,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졌다.

 

양재 시민의 숲은 국내 최초로 숲 개념이 도입된 공원으로 조성 당시 단풍나무, 소나무, 느티나무를 포함 약 23만4600그루의 관목·교목이 심어졌다. 공원에는 한자리에서 30년 넘게 쑥쑥 자란 나무들이 큰 키를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는데 건물 4~5층 높이는 족히 돼 보였다. 하늘로 고개를 한껏 쳐들어도 나무의 키가 워낙 커 그 끝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중년 여성 두명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벤치 양 끝에 1m 넘게 떨어져 앉아 마스크를 낀 채 서로의 얼굴이 아닌 정면을 바라보고 담소를 나누다 금방 자리를 떴다.

 

이달 25일 오후 양재 시민의 숲에 온 한 어린이가 출입금지선이 쳐져 있는 놀이터를 밖에서 둘러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이날 양재 시민의 숲을 찾은 주부 이모(35) 씨는 "아이가 심심하다고 노래를 불러서 코로나 터지고 오랜만에 공원에 나와봤다"면서 "여기저기 못 보던 출입금지선이 쳐져 있고 사람도 너무 없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는 "애가 또래 친구가 하나도 없어서 풀이 죽었다"며 "다음에 왔을 땐 코로나가 잠잠해져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원 정자와 어린이 놀이터에는 '위험 안전제일'이라는 문구가 적힌 빨간색 테이프와 함께 "코로나19로 시설물을 전면 폐쇄하오니 협조 부탁드립니다"는 안내문이 붙었고 바비큐장으로 들어가는 문도 굳게 잠겨 시민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동네 주민 이모(57) 씨는 "예전에는 공원에 예식장도 있고 행사다 뭐다 주말마다 시끄럽게 굴어서 구청에 민원 넣고 싶을 정도였는데 그런 게 싹 없어졌다"면서 "암만 그래도 코로나 전이 훨씬 낫다"고 말했다.

 

◆떠나간 가족과 친구를 그리워하는 공간

 

양재 시민의 숲에 설치된 삼풍참사 위령탑 앞에 유족들이 남긴 조화가 놓여 있다./ 김현정 기자

 

 

시민들이 체력 단련 장소로 주로 이용하는 공원 북측을 둘러본 후 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계 최고 높이의 건축물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를 두개로 쪼개놓은 것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삼풍참사 위령탑'이었다. 조형물 옆에는 뽀얀 먼지가 쌓인 하얀색, 노란색 국화와 시들어 갈색으로 변한 생화 꽃다발이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꽃이 빽빽이 꽂힌 화분들에는 "사랑하는 사위 ㅇㅇ, 딸 ㅇㅇ아…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어라. 너희들을 항상 사랑하는 양가 엄마, 아빠로부터", "보고 싶은 ㅇㅇ이, 사랑하는 가족이" 등 '사랑한다'와 '보고싶다'는 말이 잔뜩 적힌 편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횃불탑'이라고 불리는 이 조형물은 1995년 6월 29일 서초구 서초동에 소재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502위의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화여자대학교 김봉구 교수가 조각했다. 건립 취지에 따르면 위령탑은 두 손을 모아 명복을 비는 형상, 대지에서 새싹이 움터서 우주공간을 향해 어둠을 밝혀주는 형상, 봉황이 두 나래(날개)를 펴고 하늘나라를 향해 날아가는 형상, 넓은 대지 위에 둥근 태양과 햇살을 상징한다. 앞으로 이런 참사가 없고 햇빛처럼 밝은 세상이 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아 만들었다고 한다.

 

양재 시민의 숲에는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가 마련돼 있다./ 김현정 기자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추모비도 보는 이의 마음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이 조형물은 흰색의 대리석 기둥 12개가 가차 없이 뜯겨나간 모양을 하고 있었다. 2011년 7월 27일 우면산, 청계산, 구룡산 등 서울시 일대 81곳에서 산사태가 나 16명의 고귀한 생명을 잃은 사실을 반성하며 이런 피해가 또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성찰해 재난안전의 교훈으로 삼고자 여기에 비를 세웠다고 시는 설명했다. 우면산 산사태 피해로 아들을 잃은 시인 임방춘 씨는 이 자리에 "고운 산에 오르면/그 해 7월 빗속에서 떠난 임/눈에 삼삼/목이 메이고//심장이 파열된 채/내 가슴이 부서져/이제는/한 줄기 바람으로 돌아와/야윈 볼에 감긴다"는 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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