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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역

[되살아난 서울] (50) 국가 형장, 노숙자 쉼터 거쳐 재탄생한 '서소문역사공원'

지난 6월 24일 '서소문역사공원'을 찾은 한 시민이 순교자 현양탑 앞에 앉아 기도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소문역사공원 일대는 조선 시대 때 국가 형장으로, 일제강점기엔 수산청과시장으로, IMF에는 노숙인들의 광장으로 사용됐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서소문 밖 저잣거리였던 자리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줄 수 있고 최종 판결을 내리는 형조, 의금부와 가까워 국가 중죄인을 처형하던 '형장'으로 이용됐다.

홍경래의 난, 갑신정변, 동학농민혁명 등 민란을 주모했던 국사범들이 참형됐으며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에는 1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형장에서 죽임을 당했다.

서울시는 한국사의 질곡을 겪은 서소문근린공원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 2011년부터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사업'을 추진했다. 공원은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8년 만에 역사·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상에는 역사공원과 시민편의시설이, 지하에는 박물관, 하늘광장, 도서관이 들어섰다.

◆노숙자로 온 예수

지난달 24일 한 시민이 서소문역사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난 6월 24일과 27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인 '서소문역사공원'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로 나와 염천교 사거리 쪽으로 700m가량을 걸었다. 잘 정돈된 아스팔트 길이 끊기고 울퉁불퉁한 자갈이 깔린 기찻길이 나왔다. 멈춤선에서 잠시 기차가 지나가는 걸 기다렸다가 다섯 발자국을 내디뎠다. 축구장 6.5개 크기(4만6000여㎡)의 거대한 녹지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24일 서소문역사공원을 찾은 직장인 신다솔(26) 씨는 "인스타에서 보고 남자친구랑 같이 왔다"며 "에키네시아, 은쑥 등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꽃과 풀들이 잔뜩 심어져 있어 눈으로만 보고 지나치기 아까워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며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이날 공원에서는 분홍색 해바라기 꽃처럼 생긴 에키네시아와 은빛 융단 같은 은쑥 외에도 황금사철, 무늬둥글레, 금낭화, 노루오줌 등을 만나볼 수 있었다. 시는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힐링할 수 있는 녹지공간을 만들기 위해 소나무, 대왕참나무 등 45종의 수목 7100주와 창포, 억새 등 33종의 초화류 10만본을 식재했다.

지난달 27일 서소문역사공원을 방문한 시민이 순교자 현양탑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이날 공원에서 만난 김은희(54) 씨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며 "서소문역사공원이 생겨 기쁘다. 이제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이들의 희생정신을 알릴 수 있게 됐다"며 빙긋 웃었다.

공원 광장 한가운데에는 목칼형틀을 형상화해 만든 순교자 현양탑이 우뚝 솟아있었다. 중앙의 청동 조각에는 참혹한 순교의 형장이 재현됐다. 포승줄에 묶여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과 십자가에 묶인 순교자의 모습이 형상화됐다.

지난달 24일 서소문역사공원에는 '노숙자 예수상'이 설치돼 있었다./ 김현정 기자



김 씨는 현양탑 옆 조각상을 가리키며 "노숙자가 벤치에 누워있는 줄 알았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아 깜짝 놀랐다"며 "가까이서 찬찬히 살펴봤는데 발등이 모두 찢어져 있어 마음이 아팠다"며 금세 울상을 지었다.

거리부랑자가 낡은 담요 한 장을 꽁꽁 둘러 싸맨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은 캐나다 조각가 티모시 슈말츠가 만들었다. 작가는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서 영감을 받아 '노숙자 예수상'을 제작했다. 추위로 죽은 노숙자 여인을 기억하기 위해 교황청이 바티칸에 설치를 의뢰했고 이후 여러 성당과 교회에 조각상이 만들어졌다.

◆서소문순교성지박물관, 세금으로 성당 짓나···

지난 6월 27일 서소문역사박물관을 방문한 시민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역사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지난 27일 서소문역사공원을 한번 더 방문했다. 공원 지하 1층에는 도서관과 세미나실, 지하 2~3층에는 하늘광장과 상설·기획전시실이 있었다.

시는 "상설전시실 1관에는 '서소문 밖'이라는 장소와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자취, 1960년대 복개된 만초천의 흔적을 전시했다"며 "2관에는 서소문을 둘러싼 구한말 역사를 알려주는 전시물로 채웠다"고 밝혔다.

이날 박물관을 찾은 김모(29) 씨는 "위(공원)에서 박물관을 한참 찾다가 들어왔는데 전시관도 못 찾겠다"면서 "안내표지판 좀 제대로 설치해놨으면 한다. 무조건 멋있게만 지으려다 보니 관람객에게 불친절한 공간이 됐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김 씨는 "들어오면서 건물 벽에 자음 'ㅅㅅㅁ'이 붙어있는 걸 봤는데 이런 걸 만들어 놓을 거면 옆에 무엇을 형상화한 건지 써놨으면 좋겠다"면서 "서소문의 자음인 거 같은데 여기에 오는 어르신들이 그런 걸 알겠냐"고 반문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ㅅㅅㅁ'는 서소문의 자음을 한 줄기로 연결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의 상징마크다. 박물관은 "첫 번째 'ㅅ'은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두 번째 'ㅅ'은 대지의 길을 걷는 순례자를, 마지막 'ㅁ'은 순교의 정신을 간직한 성지를 상징한다"고 전했다.

지난달 27일 서소문역사박물관 지하 3층 콘솔레이션 홀에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김현정



박물관 지하 3층 콘솔레이션 홀에서는 기도하는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콘솔레이션(Consolation)은 '위로', '위안', '위무'를 뜻하는 단어다. 홀 내부가 철제 메쉬 패널로 둘러싸여 있었다. 멀티 프로젝터를 통해 다원예술, 전시, 퍼포먼스, 교육 등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난 6월 27일 서소문 역사박물관 하늘광장에는 정현 작가의 작품, '서 있는 사람들'이 설치돼 있었다./ 김현정 기자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장소는 하늘광장이었다. 지하 3층에서 지상 공원까지 뚫려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땅과 하늘이 소통하는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공간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라고 박물관은 설명했다.

지난달 27일 한 시민이 서소문역사박물관 지하 3층에 있는 '성 정하상 기념경당'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김현정 기자



중구 만리동에 사는 박모(33) 씨는 "동학농민운동 지도자인 전봉준이 이곳에서 교수형을 당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 역사는 전혀 나와 있지 않아 놀랐다"면서 "시민 세금으로 성당을 지어 천주교에 기증하는 게 말이 되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는 "서소문공원은 천주교 순교자들 보다 사육신, 허균, 홍경래, 임오군란, 동학농민혁명 등 우리 역사의 비중의 훨씬 더 큰 장소"라면서 "천주교의 일방적 주장을 반영해 서소문공원을 천주교 성지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서소문역사공원에는 국비 282억원, 시비 170억원, 구비 144억원 등 총 596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종교 편향성에 대해서는 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시와 중구는 역사고증을 위한 학술용역을 수행했고, 전문가 자문회의 등을 거쳐 서소문역사공원을 조성했다"며 "범대위 측에 동학 관련 유물들을 제출하면 역사 검증 절차를 통해 박물관에 반영하겠다고 전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서소문역사공원의 지상 공원 부분은 중구청에서 관리하고 그 외 시설운영은 민간위탁으로 (재)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에서 맡는다.

이와 관련해 시 관계자는 "민간위탁 공모를 냈는데 한 차례 유찰됐고 이후 한번 더 공모를 진행했다"며 "정당한 공모 절차를 거쳐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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