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간 '제3자 뇌물죄'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고위 임원에 대한 일괄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내비췄다. 이 부회장과 함께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무 등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되면서 삼성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특검이 지목한 삼성측 주요 피의자는 이 부회장,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무 등 5명이다. 최악의 경우 삼성은 완전한 경영공백을 맞게 된다.
13일 오전 9시 28분께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도착한 이 부회장은 "모든 진실을 특검에서 성실하게 답하겠다"는 말만 남긴 후 조사실로 향했다. 지난달 12일 첫 소환 이후 32일만의 재소환이다.
잠시 후인 오전 10시께에는 박상진 사장과 황 전무가 특검사무실로 들어섰다.
당초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서만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나머지 임원들에 대해서는 '불구속 기소'를 진행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비선실세' 최순실 지원 외에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 특혜 의혹까지 제기되자 기존의 수사 계획을 백지화 했다.
특검 대변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이 부회장) 재소환 이후 모든 관계자에 대해 원점서 재검토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검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게 영장이 재청구될 즈음에 다른 관계자에 대해서도 일괄적으로 영장이 청구될 가능성도 있다"며 "다만 아직 결정된 사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법원으로부터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판결을 받은 특검은 3주간의 보강수사를 통해 영장 재청구를 준비해왔다. 당시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죄를 적용해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측은 범죄의 소명이 부족하고 일부 혐의에 대해 다툼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특히 법원은 삼성의 뇌물공여 수수자로 지목된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없이 이 부회장의 혐의를 단정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검이 이날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을 재소환한 이유는 앞선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대한 지원 의혹보다는 공정위의 삼성 특혜관련 추가 조사를 하기 위함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의 재소환을 앞두고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양사의 주식을 보유한 삼성SDI의 통합 삼성물산 주식처분 규모를 당초 1000만주에서 500만주로 줄여줬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특검은 이 과정에서 삼성이 청와대 등을 상대로 '부정한 청탁'과 함께 '대가성 뇌물'을 제공했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가 공정위에 압력을 행사해 삼성SDI의 보유주식 처분 규모를 줄임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줬다는 것이다.
특검은 이와 관련 지난 8일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10일에는 정재찬 공정위 위원장을 소환해 삼성SDI 주식 처분에 관한 공정위의 조치와 청와대 지시여부 등을 조사했다. 이달 3일에는 금융위원회와 공정위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여전히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정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 부회장을 포함한 삼성 임원들에 대한 영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측은 "공정위로부터 어떠한 특혜도 받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
삼성 관계자는 "양사의 합병당시 삼성SDI 보유주식 처분 필요성에 대해 법률 자문을 받았으며 주식을 처분하지 않아도 '공정거래법'상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밝혔다.
삼성측은 처분하지 않아도 되는 주식에 대해 자발적으로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공정위는 외부 전문가 등 위원 9명으로 구성된 회의를 거쳐 2015년 12월 '신규 순환출자금지 제도 법집행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이듬해 2월까지 삼성SDI 주식 500만 주를 처분하도록 통보했다.
특검측은 당초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청와대의 외압이 있어 절반으로 줄였다고 의심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공정위에 자발적 해석을 요청했으며 500만주 매각 역시 공정위의 결정을 이행했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의 지배력 유지를 위해서라는 입장에 대해서는 삼성SDI가 처분한 500만주는 전체 주식의 2.64% 수준으로 보유하더라도 지배력에는 큰 영향이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