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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종의 잠시쉼표] 투표용지 부족에 갇힌 참정권…선관위는 책임져야

지난 6월 3일 치러진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사태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거대한 오점을 남겼다.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 등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주권을 행사하러 온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종이 몇 장이 모자라 투표를 못 했다는 상식 밖의 참사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자, 주권재민의 원칙을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무대다. 선관위의 부실한 준비와 안일함은 이 신성한 무대를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24조가 보장하는 참정권은 국민이 국정에 참여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수단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 위에 세워진 체제이며, 그 권력은 오직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정당성을 얻는다.

 

투표용지가 부족해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 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에게 부여된 가장 성스러운 권리를 강제로 박탈한 것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정면으로 훼손한 반헌법적 사태다. 더군다나 유권자의 110%에 해당하는 투표용지 인쇄 예산을 배정받고도 50%만 인쇄했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뿐만 아니라, 모든 유권자가 물리적 장벽 없이 투표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의무다. 기술의 발전으로 선거 행정이 나날이 스마트해진다고 자랑하던 선관위가, 가장 기본적인 물품 관리에 구멍을 낸 것은 참담한 역설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물량 부족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목소리를 소중히 여겨야 할 국가 기관의 기본 태도와 철학이 부재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상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현장에서 황당함을 넘어 깊은 절망감과 허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민주 국가의 시민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행정 편의주의와 안일한 수요 예측 앞에 무력하게 꺾였기 때문이다.

 

'한 표'의 가치는 엄중하다. 그 한 표를 위해 수많은 선조가 피와 땀을 흘려 민주주의를 쟁취해 왔다. 선관위는 그 역사의 무게를 망각한 채, 가장 기본적인 선거 물품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유권자들의 주권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선관위는 이번 참사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과 원활한 진행을 완벽하게 보장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독립성을 보장받는 헌법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존재 이유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다. 철저한 원인 규명은 물론, 행정 마비에 가까운 무능을 보여준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즉각 이루어져야 한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지방선거 투표 하루 전인 2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 여러분의 귀중한 한 표, 한 표가 오롯이 선거 결과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정하고 정확한 투·개표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노태악 위원장은 저 발표를 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지방선거 준비상황을 들여다보기는 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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