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 지급과 자기부담금 처리 문제는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특히 사고의 당사자인 피보험자와 제3자의 쌍방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보험자와 피보험자의 권리 범위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다. 최근 대법원은 이에 대해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대법원 2026. 1. 29. 선고 2022다287284 판결).
원고들(피보험자들)은 보험회사(보험자)와 자기차량손해보험 항목이 포함된 자동차보험계약을 체결했다. 원고들은 각각 상대차량 운전자들(제3자들)과 쌍방과실이 경합한 자동차사고를 발생시켰고, 자기차량손해가 발생함에 따라 보험자로부터 자기부담금을 공제한 액수 상당의 자기차량손해보험금을 지급받았다. 이후 원고들은 이처럼 공제된 자기부담금 상당액이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에 해당함을 전제로, 제3자들의 보험회사들(피고들)을 상대로 위 자기부담금 중 과실 비율에 따라 안분한 금액을 청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원심은 "원고들은 스스로 자기부담금을 부담할 의사로 자기부담금 약정이 포함된 자기차량손해보험계약을 체결했고, 사고발생 후 그로 인한 손해 중 일부인 '자기부담금'을 그 '약정'에 의해 자신들이 부담하게 된 것일 뿐이므로, 이를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로 볼 수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보험자대위권(상법 제682조 제1항)에 따라 보험자는 자신이 피보험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에 대해서만 제3자에게 청구 가능하나, 자기부담금 약정이 있는 경우 피보험자가 자기부담금 상당액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상응하는 금액 부분까지 제3자에게 별도로 청구하지 못한다고 볼 이유는 없다"면서 "원고들은 제3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자기부담금 부분을 피고를 상대로 별도로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보험자대위권은 보험자(보험회사)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뒤, 그만큼을 대신해서 제3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보험자대위권의 취지는 피보험자와 보험자 및 제3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위험을 분배하며, 피보험자가 보험금 수령 후에도 제3자에게 중복 청구해 이득을 얻는 것을 방지하는 데 있다. 이에 대법원은 보험자는 자신이 지급한 보험금 범위 내에서만 제3자에 대한 권리를 대위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자기차량손해보험에서 자기부담금의 성격을 고려해 피보험자는 자기부담금 중 자신의 과실에 해당하는 부분만 최종적으로 부담할 책임이 있고, 자기부담금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은 제3자에게 직접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보험자대위권과 자기부담금 약정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보험계약의 본질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에 있다. 피보험자가 보험금 수령 후에도 제3자에게 중복 청구해 이득을 얻는 것은 손해보험의 원칙에 반한다. 반대로 제3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정의에 어긋난다.
대법원은 이 두 가지 위험을 동시에 차단하면서, 피보험자가 보험계약에서 보장된 범위를 넘어 이득을 얻지 않도록 하면서도, 제3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보험자·피보험자·제3자의 이해관계를 균형 있게 조정했다. 이번 판결은 자동차보험 실무에서 자기부담금 처리 방식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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