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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연윤열의 푸드톡톡] 설탕과 밀가루는 죄가 없다

연윤열 식품기술사·푸드테크 칼럼니스트

아침에 마시는 달콤한 커피 한 잔, 점심의 국수 한 그릇, 간식으로 빵과 과자 한 봉지. 설탕과 밀가루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됐다. 그런데 이 평범한 식재료들이 자주 뉴스에 등장한다. 이유는 늘 비슷하다. 가격담합 의혹이다. 국내 설탕과 밀가루 시장은 몇몇 대기업이 70% 이상 차지하는 전형적인 과점구조다. 이런 시장구조 하에서는 가격이 움직일 때마다 소비자의 시선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20여 년간 설탕과 밀가루 제조업체들은 여러 차례 담합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고 과징금도 부과됐다. 그런데도 비슷한 논란은 반복된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원재료 가격과 완제품 가격 사이의 괴리다. 국제 원당 가격이 떨어지고, 밀값이 내려가도 설탕과 밀가루 가격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반대로 국제 시세가 오를 때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가격 인상 소식이 전해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왜 오를 때는 같이 오르고, 내릴 때는 안 내리는지" 고개를 갸웃할 수 밖에 없다. 과점 시장에서는 명시적인 담합이 없어도 '눈치 게임'이 가능하다. 누가 먼저 가격을 올리면, 다른 업체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폭으로 따라간다.

 

법적으로는 증거가 없으니 담합이 아니지만, 소비자가 보기에는 너무 정교한 우연처럼 보인다. 공정위가 "직접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할 때마다, 소비자의 체감 신뢰는 조금씩 깎인다. 문제는 하방 경직성이다. 원당 가격이나 밀값이 오를 때는 즉각 반영되지만, 내려갈 때는 조용하다. 기업은 "재고", "환율", "인건비" 같은 이유를 댄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가격은 내려오지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공정위의 사후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증거를 잡기 어렵고, 처벌이 있어도 시장 구조는 그대로다. 담합을 잡는 것보다, 담합이 필요 없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설탕과 밀가루 가격은 단순한 생활물가를 넘어 국민건강과도 직결돼 있다. 설탕 섭취증가는 비만과 당뇨병으로 이어지고, 실제로 국내 당뇨병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설탕세" 또한 국민 정서 측면에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세금을 더 걷겠다는 말이냐"는 반응이먼저 나온다. 영국은 당류 함량이 높은 음료에 단계별로 세금을 부과했고, 그 결과 제조사들은 경쟁하듯 당을 줄였다.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이라는 직접적인 부담을 주기보다, 기업의 레시피를 바꾼 것이다.

 

밀가루도 마찬가지다. '글루텐 프리'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밀가루 자체가 마치 건강의 적처럼 취급되지만, 정작 국내에서 글루텐이 반드시 문제 되는 사람은 극소수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선택지가 부족하고,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비싼 대체식품이 넘쳐난다. 이 역시 시장 구조와 정보의 비대칭이 만든 병폐다. 결국 설탕과 밀가루가 문제라기보다, 가격을 둘러싼 구조와 제도가 문제다.

 

원가 하락이 소비자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 반복되는 담합 의혹에도 실효성 있는 제재가 어려운 제도, 그리고 건강 문제와 가격 정책이 따로 노는 정책 환경이 맞물려 있다. 해법은 단순하지 않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과점 시장에 대한 가격 모니터링과 정보 공개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설탕세와 같은 건강 연계 가격 정책을 중장기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했을 때 이를 소비자에게 환원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설탕과 밀가루는 죄가 없다. 그 위에 얹혀있는 가격과 구조가 문제이고 그 구조를 오래 방치해 온 우리의 무관심이다.

 

달콤함과 편리함을 즐기되 그 가격이 정당한지 한 번쯤 따져보는 사회가 될 때, 식탁 위의 선택도 조금은 건강해질 것이다. 대안은 경쟁을 늘리고 구조의 투명성이다. 수입 다변화, 중소 제분·제당 업체의 시장 진입 지원, 공공 비축물량의 가격 완충기능 강화 같은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담합을 막겠다고 외치는 것보다 담합할 이유를 줄이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다. 원가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원재료비 외에도 인건비, 물류비, 마케팅비, 설비 투자비가 얽혀 있다. 이를 모두 공개하면 기업의 경영 전략이 노출되고, 오히려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원가의 세부 항목 비율, 원재료 가격 변동이 최종 가격에 반영되는 방식 정도만 공개해도 소비자의 이해는 크게 높아진다. 식약처와 한국식품기술사협회와 같은 비영리 전문가 단체에서 민관공동으로 저당식품 인증제도를 도입하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정부나 공공기관이 중립적인 가격 분석 리포트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면 신뢰도는 더 올라간다. 원가 공개는 가격을 내리기 위한 수단이지, 처벌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투명성은 협박이 아니라 설득의 도구여야 한다. 설탕세, 가격담합, 원가 공개는 각각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문제는 가격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그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으려 했던 구조에 있다. 제도 개선이 시급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설탕과 밀가루는 죄가 없다. 죄가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의 무관심이다. /연윤열 식품기술사·푸드테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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