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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팽의 일본 이야기] 일본의 문화, 노렌(暖簾)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일본에서 아침에 길을 나서면, 골목길 작은 식당이나 상점들이 가게 문을 열면서 늘어진 발과 같은 모양의 천을 문 앞에 걸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천은 '노렌(暖簾)'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으로 에도시대 상점에서 영업 중임을 알리는 표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렌은 비단 골목길 작은 가게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고 큰 여관이나 식당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여행자들에게는 이 노렌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로 가벼이 인식되지만, 노렌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본의 상업문화를 보여주는 역사적인 상징물이다.

 

노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천으로 만들어진 '발'이며, 애초에 그 용도 또한 추위와 더위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에도 시대에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상점들이 늘어나게 되었고, 고객들에게 영업 중임을 알리기 위해 노렌을 걸어 둔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이 노렌에 가게의 상호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문장 등을 염색하여 새겨 넣으면서 오늘날의 간판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노렌이 가지는 의미는 브랜드와 신뢰이다. 일본에는 노렌과 관련된 몇 가지 관용적 표현이 있다. 첫 번째는 '노렌에 흠이 가다(暖簾に傷が付く)'이다. 이는 지금까지 쌓아온 가게의 신용이나 명성이 훼손되었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만큼 일본의 상인들이 노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렌와케(暖簾分け)'라는 표현이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노렌 나누기'인데 여기에는 표면상의 의미가 아닌 일본의 상업문화를 대표하는 관습이 내포되어 있다. 노렌이란 그 가게를 대표하는 간판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을 한 가게에서 함께한 제자나 종업원에게만 본점의 이름과 영업 방식 등을 사용해서 독립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노렌을 지킨다(暖簾を守る)'와 '노렌을 더럽히다(暖簾を汚す)'라는 표현이 있다. '노렌을 지킨다'라는 것은 외부 환경 변화에 타협하지 않고 본점의 전통을 고수한다는 것으로 어쩌면 미련해 보일 수 있지만, 전통과 신뢰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노렌을 더립힌다.'라고 하는 것은 본점의 배워온 것과 다르게 경영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경영의 성패와 상관없이 윤리적 배신으로 받아들여져 심한 경우 노렌 사용을 금지당할 수도 있다. 일본의 오래되고 유명한 전통 가게들의 점포 수가 많지 않은 것 역시 이러한 노렌 문화 때문이다.

 

노렌이 일본의 상업문화를 상징한다는 것은 단순히 음식점이나 상점 등에 대한 이러한 특이점 때문만은 아니다. 먼저 노렌을 통해 일본 사회가 바라보는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다. 서구적 감각에서 브랜드는 인지도와 접근성을 중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노렌 문화가 정착하면서 브랜드는 신뢰와 평판을 중시하고 있다. 다음으로 노렌적 사고방식은 상업뿐만 아니라 제조업과 기업 거래 관행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일본 기업들은 일시적으로 조건이 나빠지더라도 거래처를 바꾸지 않고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장기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다. 즉, 서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가 발전하였다면,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렌'에 의해 상업과 경제가 발전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렌은 단순히 낡은 천 조각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지키고 발전 시켜온 하나의 문화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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