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채권, 채무관계가 과거보다 복잡한 경우가 많다. 특히 자산유동화 거래나 신탁 등이 거래에 포함돼 있는 경우, 실제로 누구에게 채권을 변제해야 하는지 알기 매우 어려울 수 있다. 이번 사례도 그런 경우다.
주식회사 A는 B 은행으로부터 신탁 방식의 자산유동화 거래를 실행하기로 했고, 유동화대출거래를 위한 특수목적법인으로 C가 설립되었다. C 법인은 대주들로부터 자금을 대여받아 B은행을 거쳐 주식회사 A에게 자금을 조달했다. 이후 주식회사 A가 회생절차에 접어들게 되자 B 은행과 C 법인이 각각 조달한 자금을 근거로 회생채권을 신고했다. A는 C법인을 회생채권자로 인정하되 B의 채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권을 부인했고, 그대로 회생채권자표가 확정되었다. 그런데 이후 주식회사 A가 "위 회생채권의 채권이 실제로 B은행의 것이지 C법인의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회생채권자표에 회생채권자로 기재된 C법인을 상대로 회생채권자표기재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했다.
채무자회생법에서는 '회생채권에 기해 회생계획에 의해 인정된 권리에 관한 회생채권자표의 기재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본다. 확정된 회생채권자표에 기재된 내용은 확정판결과 같이 불가쟁의 효력을 가진다. 즉, 그 기재된 내용을 부정하거나 모순된 주장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첫 번째, 주식회사 A의 소송은 이미 확정된 회생채권자표의 기재를 부정하는 주장이므로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일까? 그건 아니다. 불가쟁의 효력은 회생절차 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생채권자표의 기재는 언제든 진실된 채권, 채무관계와 다를 수 있고 회생절차 밖에서 민사상 권리의 존재를 다투는 것까지 금지할 수는 없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두 번째, 주식회사 A는 스스로 C법인을 회생채권자로 인정하고 B 은행의 회생채권자 지위를 부인했다. 실제로 유동화대출거래에 다수의 거래당사자가 개입되어 있어 채권자 확정에 복잡한 측면이 있는 상황이었다. B 은행은 주식회사 A가 C법인을 회생채권자로 인정했기 때문에 회생채권자표에 기재되지 않은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회생절차 내에서의 채권자 지위를 상실한 채 회생계획에 따른 변제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와 주식회사 A가 C법인의 회생채권자 지위를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 상식적으로 주식회사 A의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져도 되는 것일까?
우리 민법은 신의성실의 원칙을 갖고 있다.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주식회사 A의 주장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봤다. 대법원은 "B은행이 회생채권자 지위의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A 주식회사가 이해관계자인 C법인을 해당 채권에 대한 채권자로 인정했기 때문인데, 이를 뒤집고 C법인에 대한 회생채권자 지위를 부인하는 것은 B은행과 C법인의 신의에 반하는 주장이고, 정의 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른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보니 진정한 채권자가 아닌 C법인이라도, 이런 경우 주식회사 A는 회생계획에 따라 C법인에 성실히 변제해야 한다. 복잡한 금융거래가 관여되어 있는 상황에서 회생채권을 확정함에 있어 채무자,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들이 성실하게 법률 자문을 받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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