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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벚꽃이 늦게 핀다

이규성 선임기자.

마당의 벚꽃이 화들짝 피었다. 서울 여의도가 벚꽃이 비오듯 쏟아진게 일주일전 쯤이다. 나는 벚꽃을 다른 이들보다 좀 오래 본다. 그 증거가 마당의 벚꽃이다. 사실 마당의 벚꽃은 집을 짓고 입구에 제일 먼저 심었던 토종 왕벚나무다. 유독 벚꽃에 약한 이유는 사십여년전 입대하던 날의 기억 때문이다.

 

그날 진해는 군항제 마지막을 즐기려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처음으로 꽃구경이란 걸 실감한 날이기도 하다. 이전까지 꽃이 피고 지는게 어느 싯구처럼 너무도 사소했다. 그냥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그러나 벚꽃만은 다르다. 훈련소에 들어간 후 며칠간 벚꽃이 지는 걸 진저리나게 볼 수 있어 더욱 그랬다. 바람이 불 때면 아예 꽃비가, 비가 오면 꽃물이 흘러가는게 진해다. 그 광경이란 훈련소의 색다른 풍경이어서 이맘때 더욱 절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간 꽃은 하루 100여㎞쯤 북상한다는 걸 벚꽃 때문에 알게 됐다. 그러니까 진해벚꽃이 만개한 지 3, 4일 후면 여의도에 벚꽃이 핀다. 올해는 4월초에 여의도 벚꽃이 개화했으므로 적어도 우리 동네도 같은 시기 벚꽃이 피어야 맞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여의도 벚꽃 질 무렵에야 우리 동네 벚꽃이 핀다. 아마도 기온 탓이리라. 여기보다 위도가 좀 높은(사실 별 차이는 아니지만) 여주에서도 열리는 감이 우리동네에는 없을 정도다. 벚꽃이란 식생은 지정학적 이치를 넘어서지 못했다고나 할까. 그걸 생각하면 좀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이다. 가령 강릉 앞바다에서 낚시로 참치를 잡았다고 놀라는 것 따위는 아직 일어나진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벚나무 한그루를 마당에 심던 때로부터 개화일은 일주일 가량 빨라졌다. 봄철이면 언제나 나는 벚꽃을 열흘 이상 즐기고 있다고 허풍쳐 왔던 것도 이제는 일주일쯤으로 줄었다. 여의도에 벚꽃 피고 3일 후쯤 여기서 벚꽃이 핀다. 우리 집 마당의 벚나무는 개량종과는 다른, 토종 왕벚나무라서인지 마을의 벚꽃이 질때쯤 피기 시작, 그게 바로 지금이다. 토종은 개량종이 질 때쯤 피어난다. 꽃잎은 희고 넓다. 토종의 위엄이랄까. 개량종들이 지고 나서야 은은한 자태를 피워내는 모습이 왠지 멋스럽게 느껴진다. 뒤이어 산수유며 매화꽃을 거느리고 오는 것도 그렇고.

 

예전에 여의도로 출근할 때는 열흘 이상 벚꽃 구경을 하곤 했다. 여의도 벚꽃을 보고, 그 다음 곤지암의 벚꽃을 보고, 마지막으로 우리 집 마당의 벚꽃을 보고 나면 온전히 봄을 만끽한거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마다 하나씩은 심겨져 있을 법한 벚나무꽃이 져버린 지 여러 날 됐을 테지만 내겐 아직 꽃구경 중이란게 여간 호사스럽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그 꽃이 피고 지는 사이 세상도 개벽한 듯이 달라졌다. 요새 총선거가 끝나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란게 실감난다. 어느 당의 우두머리는 목련이 필 때 김포는 서울이 돼 있을거라는 말을 해서 이곳 사람들도 조금은 술렁였다. 여기도 서울과 인접한 도농복합지역인데 그런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굳이 이곳이 서울 편입이라는 이슈를 내놓는다해도 별 이슈가 될거라고는 생각을 하는 이가 없겠지만, 우리는 거론조차 될 수 없다는 감정은 숨길 수 없다.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고. 그런 나날에 벚꽃은 피는 꽃과 지는 꽃의 의미를 되새겨준.

 

하여간 봄꽃조차 늦게 오는 동네, 시끄러울 법한 이슈에도 낄 수 없다는게 좀 아프달까. 그러고 보면 여기는 다 늦다. 개발도 늦고 벚꽃 개화도 늦고. 물론 한탄은 아니다. 그저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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