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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53) 고려 명장 강감찬 장군 만나는 곳, 관악구 '낙성대'

21일 오후 시민들이 안국문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현정 기자

"실로 오랜만에 문곡성을 뵙습니다" 송나라 사신이 강감찬 장군을 보고 엎드려 큰 절을 올리며 한 말이다. 강감찬 장군은 북두칠성 중 4번째 별로 '문(文)'과 재물 운을 주관하는 문곡성의 화신으로 여겨질 만큼 뛰어난 업적을 이뤄냈다.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등 거란군을 물리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이순신, 을지문덕 장군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명장으로 꼽힌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이 탄생한 곳으로 알려졌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한 사신이 하늘에서 큰 별이 이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확인해보니 그 집에서 아들이 태어났고 그가 강감찬이었다고 한다.

 

고려의 수도에도 낙성대가 있었다. 사람들은 개경에 있던 강감찬의 저택을 낙성대라고 불렀다. 서울과 반대로 이곳엔 강감찬이 사망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한다.

 

◆유허비·향나무 덩그러니…쓸쓸한 생가 터

 

지난 21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강감찬 장군 생가 터를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 21일 낙성대를 찾았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하차해 4번 출구로 나와 관악구민 종합체육센터 방향으로 398m(도보 7분 소요)를 걸었다. 주택가 한켠에 작게 마련된 쌈지공원이 보였다. 커다란 향나무 한 그루와 비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거북이 석상 위에 얹어진 비석엔 '강감찬 장군 낙성대 유허비'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유허비는 선인들의 자취가 남은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거란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호국 영웅, 강감찬 장군의 생가 터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초라한 모습이었다.

 

비석 옆에 지팡이 쥔 노인의 모습을 한 향나무는 낙성대의 정취를 더 쓸쓸하게 만들었다. 강감찬 장군과 함께 자란 향나무(일명 '강감찬 나무')는 1968년 2월 26일 서울시 보호수(제1-23)로 지정·관리돼 오다가 1987년 고사했다.

 

관악구는 1996년 4월 낙성대유지 확장 조경 공사를 벌이며 이곳에 죽은 향나무를 대신할 수목을 심기로 결정했다. 같은해 11월 구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수령 150년된 나무를 사와 이 자리에 식재했다.

 

이 향나무를 대체해 심은 이유는 고사된 강감찬 나무의 영속성을 이어받아 유허비와 함께 장군이 태어난 성역임을 표시, 그의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구는 설명했다.

 

◆장군 업적 기리는 삼층석탑·안국사

 

21일 오후 안국사(사당)에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김현정 기자

강감찬 장군 생가 터에서 서울대학교 쪽으로 480m(도보 8분 소요)를 더 걸어 관악산 낙성대공원에 도착했다. 열린마당엔 낙성대공원 도서관과 강감찬 카페, 공원관리소가 들어섰다. 이날 오후 10대 대여섯명이 드넓은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마당 옆에는 아담한 한옥이 마련됐다. 관악구에서 조성한 전통 야외 소극장이다. 우리 고유의 문화(전통혼례식·예절·다도·국악 놀이마당 등)와 미풍양속을 발굴·재현·체험하면서 조상의 얼과 예와 멋을 일깨우는 장소라는 소개글이 눈에 띄었다. 구옥의 낮은 돌담과 누리끼리한 흰색 벽이 인상적이었다. 터만 남겨두는 것보다는, 고즈넉한 정취를 풍기는 한옥으로 강감찬 장군의 생가를 만들어놨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달 21일 오후 낙성대 삼층석탑을 감상했다./ 김현정 기자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안국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에는 삼층석탑이 우뚝 서 있었다. 고려 백성들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강감찬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며 그의 집 터에 석탑을 만들었다. 석탑은 원래는 낙성대에 있었는데, 1974년 안국사를 짓고 주변을 정비하면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화강암으로 된 석탑 앞면엔 '강감찬 낙성대'가 한문으로 쓰여 있었다. 현재 탑의 꼭대기에 세워놓은 장식부분은 훼손돼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석탑은 상륜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형미가 뛰어났다.

 

탑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새해 소원을 빈 뒤 안국사로 향했다. 안국사는 고려시대 목조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을 본떠 만든 것이라고 한다. 팔각 청기와 지붕이 얹어진 사당 내부에는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사당 벽에는 장군의 활약상이 그림으로 그려졌다. 강감찬 장군이 귀주대첩에 출전해 대승을 거두고 전장에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볼 수 있었다.

 

21일 오후 안국사(사당)를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낙성대공원에는 강감찬 전시관도 마련됐다. 문 여는 시간은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3~12월에는 운영 시간이 1시간 연장돼 밤 6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1월 1일, 설과 추석 당일,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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