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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40) 서울살이 희로애락 담긴 '서울생활사박물관'

이달 16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생활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은 우리나라 국민 5156만명 중 18%인 942만명이 터를 잡고 사는 대한민국의 수도다. 노원구 공릉동에는 '서울에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서울생활사박물관'이 있다. 서울시는 옛 북부법조단지 부지에 자리한 법원과 검찰청 건물을 리모델링해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조성, 지난 2019년 9월 개관했다. 이곳엔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민의 일상 생활사를 보여주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변천사 한눈에

 

16일 오후 한 시민이 아이와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난 16일 오후 노원구 동일로 174길 27에 위치한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찾았다. 지하철 7호선 태릉입구역 4번 출구에서 화랑대역 방향으로 407m(도보 6분 소요)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박물관은 본관동, 별관동, 구치감동으로 이뤄졌다. 본관동에는 생활사 전시실, 어린이 체험실(옴팡), 법정 체험실, 아기 쉼터, 카페, 기획전시실이 들어섰다. 별관동은 교육실과 수장고로, 구치감동은 구치감 전시실·자료실·사무실·관장실·휴게실로 구성됐다.

 

가장 먼저 본관동 생활사 전시실을 둘러봤다. 1층 전시의 키워드는 '서울 풍경'이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가 현재의 모습을 이루기까지 그 변천사를 추적한다. 상복을 입은 꼬마가 침통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커다란 냄비를 손에 쥔 채 우유 배급을 기다리는 아이들, 산산조각이 난 명동 건물의 모습에서 6·25전쟁의 참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16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이어 1960~1980년대 잿더미 위에 재건되는 도시의 모습이 나타났다. 불량주택을 허문 자리엔 초고층 빌딩과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됐다. 1966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11개월 만에 준공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인 세운상가를 짓는 모습, 윤중제 위에 놓인 '서울은 싸우면서 건설한다'는 팻말, 산 아래 옹기종기 모인 기와집 뒤에 조성된 금화아파트 등 당시 365일 24시간 공사 중인 서울의 풍광을 포착한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이달 16일 오후 한 어린이가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전시물을 감상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 살이'를 주제로 한 2층 전시실에는 서울로 모여든 사람들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담겼다. '서울토박이 찾기'라는 재밌는 일화를 소개한 전시가 눈에 띄었다. 전시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들어 서울토박이란 단어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고도성장기 동안 지방에서 유입인구가 크게 증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서울토박이의 희소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서울시는 1994년 조선왕조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지 60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 서울의 토박이들을 발굴해 지정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선정 기준은 1910년 이전부터 한성부에 살고 있던 사람으로, 시는 '한양 사람의 후손'만을 서울토박이로 인정했다. 1994년 당시 전체 시민의 0.12%인 1만3753명이 서울토박인 것으로 확인됐다. 2005년 호적 조사에서는 서울 인구의 4.9%가 토박이로 파악됐다.

 

◆온 가족이 즐기는 박물관

 

16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생활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3층 전시실의 키워드는 '서울의 꿈'이다. 서울 사람들이 왜 바쁘게 사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공간이다. 내 집 마련을 위한 분투, 치열한 입시 경쟁, 가족을 위해 일하는 부모님의 헌신을 다룬 기록물이 전시됐다. 전시실 입구엔 각양각색의 문패가 걸려 있었다. "집은 열심히 살아보자, 웃으면서 살아보자 다짐을 한 곳이다", "만약에 집이 생기면 밖에 나가지 않고 계속 안에 붙어 있을 것 같다" 집을 주제로 한 시민인터뷰 영상은 한자나 한글로 주소와 이름을 적어 놓은 플라스틱 팻말이 서울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생활사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잠을 쫓는 새로운 약이 나왔읍니다", "시험기 박두! 잠을 쫓고 정신 나게 하는 약" 등 1960년대 각성제 광고 문구들은 좋은 성적을 위해서라면 각성제도 마다치 않는 흉흉한 사회 분위기를 드러냈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부모님의 직업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시물도 있었다. 1936년 밤섬에서 4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배목수 이일용씨의 생이 몇 줄의 짧은 문장으로 요약돼 있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어렸을 때부터 배목수였던 아버지 밑에서 배 만드는 일을 배웠다. 주로 한강에서 배를 만들었으며 종종 서해안의 어촌에 가 배를 수리하기도 했다. 1968년 여의도 개발로 밤섬이 폭파돼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마포 와우산 자락으로 이주했다. 1980년대까지 배목수로 일을 했고, 배 제작일이 없을 땐 목수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 현장에서 근무했다. 현재 밤섬의 배목수 중 유일한 생존 인물이다"

 

이일용씨가 배를 만들 때 사용한 도구들도 전시됐다. 대패, 끌, 톱, 사시, 먹칼 등의 손잡이는 오래도록 사람 손을 타서 그런지 기름이 반질반질하게 묻어 있었다.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운영 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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