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부장님'이 사라진다. 대기업들이 '소통'과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조직 개편에 고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직급을 간소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젊은 연차 직원들과 호흡을 맞추고 성과위주로 조직을 경영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부 직원들은 오히려 직급 체계가 단순해지면 '사기 저하'와 '연봉 인상 불리해 질 것'이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호칭 바뀌니 진짜 바뀐다"…능력 중시, 빨라진 직원 의견 수렴
13일 업계에 따르면 오는 21일부터 두산그룹은 임원을 제외한 기존 5개 직급을 2개 직급으로 단순화하는 개편을 진행한다. 사무직부터 기존에 사원·대리는 '선임'으로, 과장·차장·부장은 '수석'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에는 생산직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두산그룹 내에서도 임직원 대상으로 그룹 인터뷰가 시행됐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올해 신년사를 통해 "빠른 의사결정의 강점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수평적으로 열린 소통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호칭 통일은 CJ그룹이 가장 먼저 2000년에 '님' 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목을 끌었고, 지금은 '트렌드'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CJ는 부장, 과장, 대리 등의 직급 호칭을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 쓰고, 공식석상에서는 이재현 회장도 '이재현 님'으로 부른다. 지난해에는 '님'을 넘어 사장, 총괄부사장, 부사장, 부사장대우, 상무, 상무대우로 나뉘었던 6개 임원 직급도 '경영리더'라는 하나의 직급으로 통합했다.
CJ는 수직적인 조직 구조에서 탈피해 성과에 따른 보상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연공서열'보다 '성과·능력'에 중점을 둔다는 방침이다. CJ 관계자는 "직원들 뿐만 아니라, 임원들 사이에서도 수평적인 문화가 형성되는 것이며, 해당 호칭 변경의 목적 자체는 '능력'이 있으면 더 빠르게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위로 올라간다'는 말은 조직장이나 실장 등의 '보직'을 의미하는 말이지 직급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니다.
가령 과거에는 과장을 맡고 있던 A가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서 바로 부사장 급으로 올라갈 수는 없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직급이 간소화돼 임원 승진이 성과 위주로 더욱 빠르게 단행된다는 특징이 있다.
CJ가 불씨를 당겼다면, 연공서열 파괴로 대표적인 기업은 삼성전자와 SK그룹이다. 삼성전자는 2017년부터 수평 호칭 제도를 시행하며 직함 대신 '님', '프로' 또는 영어 이름을 자율적으로 사용해왔다. 올해들어서는 경영진, 임원으로 '수평 호칭' 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우 '재용 님', 영문 이름 'Jay', 이니셜 'JY'으로 불러야 한다.
해당 제도가 잘 정착됐는지 묻는 말에 삼성전자 관계자는 "사실 같은 부서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직급을 아니 '부장님', '선배' 등의 호칭이 나오기도 한다"면서도 "타부서와 소통할 때는 '프로'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통할 때 동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효과는 분명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의 경우는 승진 시에도 승진 대상 당사자와 인사팀만 승진 사실을 알고 있다.
이러한 효과가 현장에서 나타난 경우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권영수 부회장은 2022년 신년사에서 "구성원 간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고,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되도록 더욱 힘써 도울 것"이라고 말 한 바 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CEO에게 질문과 건의를 할 수 있는 '엔톡(EnTalk)'을 운영하며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실례로 LG에너지솔루션의 '오창 공장'은 엔톡 건의를 받아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새 명칭 '오창 에너지플랜트'로 변경됐다.
이처럼 대부분의 그룹은 수평적인 조직 문화 확산과 원활한 소통을 목적으로 호칭 간소화를 진행했다. 이 밖에도 HD현대그룹, 한화그룹, HMM, 효성그룹 등이 기존의 연공서열 직급 체계 대신 수평 호칭 제도를 채택했다.
◆"보여주기"…업무 동기 부여 약해지고 연봉 인상 하락 '꼼수'
하지만 모든 구성원이 직급 간소화의 장점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삼성 계열사를 다니는 A씨는 "대등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장점이지만 직급을 알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몇 사람을 거쳐서 알아봐야 하는 경우도 있어 불편할 때가 있다"고 말했고, B씨는 "20년을 일해도 호칭 변경이 없어 승진 동기 부여가 약해진 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자업계 C씨는 "회사가 지난달 호칭을 폐지하기 위해 내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는데, 결국 올해는 일부 조직에서 파일럿 형태로 운영해 볼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걱정을 표한 이유는 '연봉인상' 기회를 줄이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는 측면 때문이다. 기업이 '고과별 연봉인상 차등을 두면 된다', '동기부여는 성과로 이뤄진다'고 말하고 있지만, 호칭 폐지와 더불어 직급 통폐합에 반대하는 직원들은 "고과대로 준다는 말을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겠냐"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의견에 재계 관계자는 "회사도 직원들이 인정할 수 있는 페이밴드(보수단계) 근거와 결과를 제공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며 "지금은 어떤 기업도 이 제도가 온전히 의도대로 안착됐다고 말하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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